그러나 나는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기 센 여자’로 자란 내가 좋다. 그리고 바라건대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기 센 여자로, 잘 먹고 잘살았으면 한다. 기질이 센 여자아이의 존재가 그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여자가 기 센 게 뭐 어때서?
--- p.18~19, 「따님이 기가 세요」 중에서
새의 시점이지만 그 새를 만들어낸 것도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좋았다. 세상을 위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감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야를 넓혀주는 기분이었다. 세차게 날아가는 드론의 날갯짓을 바라보고 있자 더 이상 Bird’s eye view가 아니라 ‘Sol’s eye view’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찍고 싶은 것을 찍겠다는 다짐을 했다.
--- p.43, 「똑딱이부터 드론까지」 중에서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금전적 상황이 지금껏 나의 가능성을 얼마나 축소해왔는지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단순히 여행뿐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의사 결정을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내 통장 잔고가 결정해왔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앞서 말한, 적은 예산을 들이길 선호하는 나의 성향은 늘 어떤 상황 앞에 돈과 경험의 가치를 저울질하게 했다.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내렸던 결정들도 결국은 그때그때 내 경제적 상황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았을지.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일시적 보상에 많은 것을 소비해버린 내 지나간 시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내 미래를 위해 조금씩 비상금을 만들어 두기 시작했다. 돈 몇 푼 때문에 큰 가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 p.70, 「뜻밖의 인생 공부」 중에서
그리고서 덧붙여서 하는 말이 있다면 “열심히 해보세요.”인데,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의 경험들이 쌓이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채널에 처음부터 대충 만들어진 영상이 전시되고 있었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굉장히 쉬운 명제다. 운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귀신같이 비켜간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는 것은 분명한 축복이다. 다만 그 다양성에 열의 없는 실패를 누적해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했으나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실패와 입으로만 열심히 하겠다고 외치며 필연적으로 걷는 실패의 길은 전혀 다른 성장의 결과물을 내놓는다고 믿는다. 반복되는 실패에 익숙해지면 인간은 무력해지며 결국 새로운 일을 도모할 동력까지 잃어버린다.
--- p.87, 「못 먹어도 GO」 중에서
결과가 좋았던 것도 그렇지 못했던 것도 있었지만 우리가 지금 꿈꾸는 이 모든 것이 10년 뒤, 20년 뒤에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임을 안다. 복합 문화 공연을 꿈꾸던 우리는 2020년 결국 우리의 자본으로 공연과 전시가 융합된 복합 전시를 만들어 냈으니까.
--- p.96, 「서류와의 전쟁」 중에서
“여성으로 태어나서 적당한 곳에 취직하고 회사 생활 하다가 적당히 퇴직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가 미션입니다. 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버텨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야망 없이 이루어내기 어려운 문장이에요.”
슬프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여성에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뭘까 고민했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평범하게’ 사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적은 임금을 벌어 비싼 월세를 내고 결혼 적령기가 되면 적당한 남자를 찾아 결혼하고 출산해 육아하다 보니 어느 순간 경력이 단절되어 버린 삶. 여성들이 비혼 선언을 하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게 되자 숱한 어른들이 우리에게 했던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라는 말에 저런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사회가 정해준 길을 걷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사실 야망이 필요한 것이었다. 어쩐지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문장에 배신감이 느껴졌다.
--- p.175~176, 「꼭 야망이 있어야 하나요?」 중에서
물론 현실에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내가 조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비가 오는 날엔 신발이 젖어야 하고, 태양이 뜨면 그림자를 숨길 수 없다. 그러나 C4D 안에서 몇 가지 요소들을 직접 조합할 수 있는 것처럼, 적어도 현실의 가능성은 스스로 넓힐 수 있어 감사하다. 삶을 살아가며 가지게 되는 능력과 얻게 되는 새로운 인연, 그리고 그 인연들의 새로운 조합 덕분에 나의 X,Y,Z축은 오늘도 확장되고 있다.
--- p.190, 「렌더링 100%」 중에서
여성인 내가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데 겁을 먹었다. 내가 여성이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 여성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 나는 여성에 대해 잘 모르는데? 페미니스트 대신 내가 말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마치 합격 목걸이가 주어져야만 발화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런 과정 때문에 여성들이 본인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에 필요한 자격은 없다.
--- p.192, 「내가 놓쳤던 마이크」 중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것의 원동력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때마다 ‘그냥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믿음과 의리가 깔려있다. 바람이 있다면 부디 더 많은 여성이 여성들과의 다양한 관계, 그 관계에서 나오는 시너지를 느낄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것이다. 세상엔 아직 더 많은 기회가 있음을 함께 알아갔으면 한다.
--- p.224~225, 「혼자여도 좋지만, 함께라면 더 좋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