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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

[ 양장 ] 오늘의 젊은 작가-17이동
리뷰 총점9.1 리뷰 81건 | 판매지수 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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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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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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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0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9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32g | 127*188*20mm
ISBN13 9788937473173
ISBN10 893747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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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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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 p.32

“이 애들은 유식하고 세련된 깡패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주먹을 쓰는 대신 주먹보다 강한 걸 쓰는 방법을 가르쳐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뺏긴 줄도 모르고, 당한 줄도 모르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거겠지.” --- p.46

“네가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이미 많이 들었다. 무슨 말을 또 얼마나 해서 가슴에 대못을 치려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권리가 있다. 힘들게 키운 자식이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단 말이다.” --- p.66

“그리고 아프게 깨달았다. 이대로 딸애를 계속 당기기만 하면 결국 이 팽팽하고 위태로운 끈이 끊어지고 말겠구나. 이대로 딸을 잃고 말겠구나. 그러나 그게 이해를 뜻하는 건 아니다.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 것뿐이다.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를 버리고 계속 버리면서 물러선 것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딸애는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모르고 싶은 걸까.” --- p.68

“엄마, 여기 봐. 이걸 보라고. 이 말들이 바로 나야. 성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 여기 이 말들이 바로 나라고. 이게 그냥 나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른다고, 그래서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이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냐고.” --- p.107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자가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 너무나도 분명한 예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기댈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게 저 여자의 탓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이제 딸애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념해 버린 걸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 될까.”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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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외동딸을 둔 엄마인 ‘나’는 딸이 살던 집에서 쫓겨 날 처지에 처하자 딸에게 자기 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하고, 딸은 자신의 동성 연인과 함께 엄마 집으로 들어온다. 한 집에서 딸의 연인과 마주하는 것도 모자라 딸은 동성애 문제로 대학에서 해고된 동료들을 위해 시위에 나서고, 급기야 함께 시위하는 사람들마저 집을 드나든다. ‘나’는 많이 배우고 똑똑한 딸이 거리에서 시위하며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인생을 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분노와 미움은 딸의 연인을 향한다.
한편 노인요양병원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나’는 담당 환자인 젠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병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성심껏 젠을 돌본다. 하지만 요양소는 가족도 없고 의식도 불분명한 젠을 저렴한 병원으로 옮겨 이익을 남길 생각뿐이다.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나’는 입장을 요구받고, ‘나’의 고민은 깊어져만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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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엄마의 이야기

“내 딸은 하필이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한번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날 다그치고 닦달하는 걸까요.”

전직 초등학교 교사. 남편은 병환으로 사망. 노인요양병원에서 일하며 딸과 딸의 동성 연인과 한 집에 살고 있다. 일찍이 딸을 돌보기 위해 교사 직업을 그만두고 도배장이, 유치원 통학 버스 운전, 보험 세일즈, 구내식당에서 음식 만들기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끝없는 노동 속에서 살아 왔다. 딸이 대단히 성공적인 삶을 살아 주리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토록 예기치 못한 삶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작품 내내 엄마는 자신에 대해, 딸에 대해, 미래에 대해, 인생에 대해, 독백을 멈추지 않는다.

그린과 레인의 이야기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며?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며?
다른 게 나쁜 게 아니라며? 그거 다 엄마가 한 말 아냐?
그런 말이 왜 나한테는 항상 예외인 건데.”

그린과 레인은 화자의 딸과 딸의 연인이 서로를 부르는 이름이다. 7년 동안 교제한 사이로, 그린은 현재 대학교 시간 강사다. 동료 강사를 일방적으로 해직한 대학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맞서느라 어느덧 세계와 불화하는 법, 세계를 거부하는 법에 익숙해진 투쟁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선입견과 편견에 갇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은 이들의 이야기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젠의 이야기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자가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 될까.”

화자가 요양원에서 돌보는 노인. 젊은 날 해외에서 공부하며 한국계 입양아들을 위해 일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다 이제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다. “젊은 날의 그 귀한 힘과 정성, 마음과 시간”을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에게 “함부러 나눠”주고 지금은 충분한 돈을 내고 요양원에 들어왔으나 가족도 없는 치매 노인인 탓에 정당한 대우를 받기는커녕 값싼 요양원으로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다. 평생을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데 헌신한 삶이지만 정작 누구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젠의 비참한 노후. 그리고 젠에게 곧잘 자신을 투영하는 ‘나’. 이는 ‘늙은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자리할 수 있는 위치를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는 동안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해라는 말 속엔 늘 실패로 끝나는 시도만 있다고 생각한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그런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딸에 대하여』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퀴어가 어떻고 페미니즘이 어떻고 담론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이 소설은 담론을 가로지른다. 대학의 지식 노동자로 살지만 제대로 생존하기 어려운 딸을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은 칠레 출신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가 딸에게 쓴 편지 『파울라』에서처럼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한밤중에 다들 두려움에 떨며 숲을 가로지를까 말까 논의하는 사이 혼자 도주해 숲을 건넌 한 어린아이의 이미지처럼, 『딸에 대하여』는 대단히 앞서가는 소설이고 대담한 작품이다. 모든 것이 다 자신의 죄인 것처럼 생각하는 엄마도,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그린과 레인도 다들 여성이고, 우리가 지금껏 기다려온 소설도 이런 여성들의 서사가 아니었는지.

강영숙(소설가)

회원리뷰 (81건) 리뷰 총점9.1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파워문화리뷰 딸의 새로운 가족관에 대한 엄마의 힘겨움.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나*이 | 2019.04.22 | 추천10 | 댓글6 리뷰제목
‘딸에 대하여’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딸을 걱정하면서 제도권 속에 들어와 타인들의 기대에 어울리는 그러면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딸은 그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것을 위하여 가족의 동의도 필요치 않다는 자세를 보인다. 그것은 딸이 외국에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집을 나가는;
리뷰제목

딸에 대하여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딸을 걱정하면서 제도권 속에 들어와 타인들의 기대에 어울리는 그러면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딸은 그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것을 위하여 가족의 동의도 필요치 않다는 자세를 보인다. 그것은 딸이 외국에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집을 나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엄마의 시선과는 상관이 없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한다.

 

보따리를 들춰 메고 전국을 돌면서 강의를 하는 딸은 약방에 감초처럼 의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적인 일에 끼어들고, 그러면서 물질적인 궁핍함을 느낀다. 집을 나가 기거하는 곳에서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고 엄마에게 SOS를 친다. 엄마는 딸의 그 상황이 황당하다. 남편을 잃고 혼자 요양사로 근무하면서 집세를 받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딸이 원하는 거금을 만들 수도 없고, 만들더라도 앞으로 해결해 나갈 길이 막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자는 얘기를 하게 되고, 딸애에게 자신이 가진 전세금을 저당 잡힌, 같이 사는 여자애까지 함께 집에 들어온다. 엄마는 그 상황이 너무나 황당하다. 딸은 혈육이기에 어떻더라도 같이 살 수가 있는데, 전혀 상관이 없는 여자애까지 같이 산다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다. 더구나 딸과 여자애의 관계가 엄마가 보기엔 정상적이지 않다. 얼마나 같이 있는 것이 부담이 되랴.

 

공부도 많이 시켰고, 비교적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 키웠는데 엉뚱한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딸은 엄마에겐 상처다. 엄마는 딸이 좋은 남자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기들을 가지며 세상이 보기에 단란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딸애는 그럴 생각이 없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여자애와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고 생각한다. 7년의 시간을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떨어져 살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 관계를 엄마는 지켜보면서 그들의 입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새어 나올까봐 전전긍긍한다. 이런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딸의 삶을 보면서 엄마는 여자애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여자애만 내보내면 딸애가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래서 여자애에게 집을 나가달라는 말까지 한다. 하지만 여자애는 지극히 현명한 태도를 보인다. 들어오면서 미리 세를 주고 있음과 가사에 일정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음도 말한다. 딸애는 여자애와 같이 살지 않은 모습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딸애를 키우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만 두고 집에 들어앉은 사람이다. 딸 하나만 키우며 즐거운 삶을 살아왔는데, 남편도 떠나고 딸애도 엄마의 심기를 어지럽게 하는 생활을 한다. 그런 딸과의 관계가 고통이다. 엄마는 요양사로, 지난 시간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타인을 도우며 살았다가 지금은 보호자 하나 없이 요양원에 들어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치매 노인 젠을 간호한다. 젠은 처음 요양원에 들어올 때는 사회적 명성 때문에 요양원에 많은 이익을 준다. 독지가들로부터 후원금이 들어오게 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 일환으로 젊은이들이 젠을 취재 차 요양원에 들린다. 엄마는 젠이 과거의 기억을 얘기함으로 요양원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자가 되어 조금이라도 요양원 측으로부터 대접을 받는 입장이 되길 원한다. 하지만 젠은 취재 상 더 기대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되고 젊은이들도 취재에 별로 열을 올리지 않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젠은 육체적으로 궁핍해져 간다. 속이 곪아 가는데도 소독하는 것과 치유하기 위한 물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엄마는 그것이 무척이나 못마땅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젠이 요양원으로부터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요양원 측에서도 관심이 급감한다. 요양원에서는 젠을 다른 곳으로 보낼 계획을 세우고 엄마에게도 젠의 보호에서 손을 떼라고 한다. 엄마는 고용인의 입장에서 어찌할 수가 없다. 결국 젠은 죽을 때까지 보호되는 시설인 수용소 비슷한 곳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수면제 등으로 몽롱한 상태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엄마는 그런 젠의 모습 속에서 딸의 미래를 본다. 엄마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죽어가는 젠을 찾아 집에 데려오기도 한다. 아마 안타까운 마음이 작용해서였으리라. 이런 젠을 통해서 딸이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활동만 하다가 결국엔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의구심도 일어났으리라. 그런 마음들이 또 딸을 위해 지속적으로 여자애를 떨어지게 하려는 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리라.

 

딸애에게는 직장이 없다. 일을 하지만 직장이 없는 사람들. 열에 일곱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자격이 없다. 대출을 받을 자격도, 공공 주택에 들어갈 자격도.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다수라는 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내 딸이 그런 부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매일 충격적이고 놀랍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강도의 실망감과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불필요한 공부를 내가 너무 많이 시킨 걸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p32)

 

딸이 살아가는 현실을 통해 오늘날 젊은이들의 삶의 환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일을 하기는 하는데 제대로 된 직장도, 적절한 물질도, 보편적인 삶도 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잘 그려진다. 이것이 딸애가 엄마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된다. 원하지 않은 동거를 하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이런 상황에 대해 엄마는 생각한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너무 특별한 삶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을 배워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뒤집어 지는 상황을 딸의 삶 속에서 만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조금, 엄마가 원하는 보편의 삶 쪽으로 흐를 수 있게 원하는 간절함이 된다.

 

딸애는 대학 강사다. 사회와 합의하지 못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간다고 불합리한 대접을 받는 일에 딸애는 몹시 분개한다. 그래서 동질의 사람들이 해직되었을 때, 그들을 위해 투쟁을 한다. 대학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 전단지를 나누고 활동을 한다. 그런 활동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함께 있다. 투쟁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사이에서 육체적으로 상처를 입는 상황이 발생한다. 딸애도 상처를 입는다. 딸애는 기본적인 자유도 하락되지 않는 세상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일, 엄마가 생각하는 세계와 불화하는 법이 되리라. 그렇게 딸애는 세계를 거부하고, 불화하는 삶을 보여준다. 그것이 엄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돈 앞에서 쩔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그건 내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이를테면 그런 이야기를 나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게 될까. 딸애에 대한 두려움과 서운함, 배신감과 노여움 같은, 어떤 감정이라 할 만한 것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 애들이 서 있는 자리가 가차 없는 세계의 한가운데라는 걸 말할 수 있게 될까.(p169)

 

딸이 투쟁을 하다가 다치고 그것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여자애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생각이 조금은 변화의 여지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정이라는 것이 꼭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인정하기 싫지만 딸애는 보통의 가정을 뛰어넘는 형태의 삶을 보여주고 있고, 그것이 비현실적인 현실의 모습으로 엄마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엄마는 말하는 것이다. 딸의 운동을 변호할 수 입장이 될 수 있을까? 라고.

 

결국 이 이야기는 엄마의 이야기다. 딸이 바라보는 엄마의 걱정, 그것이 저자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리라. 아마 엄마는 상식과 다른 가족관계를 형성해 살아가고 있는 딸애의 삶이 딸이 엄마를 역지사지하여 나타내고 있다고 여기면 되리라. 저자가 엄마의 연령대를 산 것은 아니다. 저자는 딸의 입장에서 자기 주변의 삶을 나타내고 있으리라.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의 엄마들이 어떠한 생각을 지닐 것인가? 나의 엄마는 어떻게 대처할까? 이런 생각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엄마의 생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랴 생각되어 진다. 전통적이고 윤리적인 가정을 꿈꾸며 그렇게 보편적으로 무난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엄마의 마음이 이라는 사회에 봉사하면서 가족 등의 연고자 없이 살아간 사람의 결과를 보면서 더욱 안타까움으로 표현되는 것이리라. 지금까지의 가정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삶에 대한 이해의 범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이다.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전통적인 가정만이 가정이 아니라는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같이 살면서 행복하고, 즐거우면 그것이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육체적인 결합과 자신의 배를 통해서 낳은 아이, 그것만이 가족을 형성하는 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자가 들어가는 단어가 많이 생겨나는 것도 이런 생각의 하나가 아닌가 여겨진다. 이런 생각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리라. 하지만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삶의 방식, 개성적인 사고 등이 오늘의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고 생각할 때 앞으로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도 변화의 바람 앞에 서지 않을까 생각도 되어 진다. 이 책이 하나의 예시로 보여주고 있는 삶의 방식은 내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어가는 세상이 되어 가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일일까? 조금은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1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0 댓글 6
파워문화리뷰 [2017 결산]그게 인간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꼼* | 2018.01.13 | 추천9 | 댓글8 리뷰제목
일주일을 달구었던 삶의 부지깽이가 주말이면 차갑게 식어버리곤 한다. 서늘한 한기가 목덜미를 쓸고 가는 느낌이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주일 내내 지었던 어색한 표정들을 지우기 위해, 때로는 더 깊은 고요를 선물받기 위해, 그리고 소매 끝에 남은 가식의 부스러기를 털어내기 위해 주말에도  이렇게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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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을 달구었던 삶의 부지깽이가 주말이면 차갑게 식어버리곤 한다. 서늘한 한기가 목덜미를 쓸고 가는 느낌이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주일 내내 지었던 어색한 표정들을 지우기 위해, 때로는 더 깊은 고요를 선물받기 위해, 그리고 소매 끝에 남은 가식의 부스러기를 털어내기 위해 주말에도  이렇게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 <딸에 대하여>를 손에 올려 놓았을 때, 손끝으로 전해지는 양장본 표지의 차갑고 단단한 느낌에 흠칫 놀란다.

 

 늙음에 대해 이렇게 적나라한 표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오직 그 하나의 문장이 맴맴 맴을 돌았다.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이 소설에서 작가는 늙어간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오래전 태어날 때처럼 여자, 남자, 그런 성별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다만 한 인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여자'. 정말이지 그렇다. 우리가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늙는다는 건 성별의 경계도, 네 것 내 것을 가름하는 소유의 경계도 조금씩 무너뜨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런 후회는언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p.30)

 

<딸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제목과는 달리 딸의 입장에서 스토리가 전개되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어머니인 '나'의 시선에 비친 딸의 모습이며, 생각 또한 오롯이 '나'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살갑고 가꿔야 할 두 사람의 관계는 매번 엇나가고 틀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남편을 잃고 사력을 다해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동성애자인 까닭이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어머니일지라도 우리 사회 전체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동성애자를 자신의 딸이 그렇다고 하여 무작정 감싸고 옹호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산 속 깊이 들어가서 살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을 터였다.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날 다그치고 닦달하는 걸까요. 왜 저를 낳아 준 나를 이토록 슬프게 만드는 걸까요. 내 딸은 왜 이토록 가혹한 걸까요. 내 배로 낳은 자식을 나는 왜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나는 그 애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어요. 그 애는 왜 나로 하여금 그 애를 부정하게 하고 나조차 부정하게 하고 내가 살아온 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드는 걸까요."    (p.84)

 

결혼 전 초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결혼 후 딸애를 낳고 교습소에서 일을 했던 것을 필두로 도배, 유치원 통학버스 운전, 보험 세일즈, 구내식당 조리사를 거쳐 지금은 요양병원의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시간제 강사를 하며 따로 살던 딸애는 살던 집에서 쫓겨날 신세라며 나에게 '돈'을 부탁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나'는 결국 딸애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고, 딸애는 연인인 그 애와 함께 '나'의 집으로 이사한다.

 

"이 애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언제나 적당한 만큼의 배려와 예의를 보일 수 있는 거겠지.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을 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번번이 그 애가 하는 말에 동의를 하고 한마디를 보태고 그러면서 어떤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을 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 애는 때때로 지나치게 사려 깊다. 내게 어떤 말이 필요하고, 무슨 말을 듣기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p.61)

 

주인공이 돌보는 일인실의 노인 '젠'은 젊은 시절 해외에서 공부하며 한국계 입양아들을 위해 일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다 이제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다. 평생을 사회와 타인을 위해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돈을 내고 요양원에 들어왔건만 젠은 이제 가족도 없는 치매 노인이라는 이유로 요양원에서도 쫓겨날 처지가 되고 말았다.

 

"노을이 깔린다. 지치고 서글픈 빛깔이 교문 너머에까지 가닿는다. 이렇게 좋은 시절이 다 가 버렸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머무는 시간, 그리고 내가 보게 되는 것들, 이런 것들을 통해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너무나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다."    (p.96)

 

딸애와 따로 살 때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딸애와 그 애와의 관계를 한 집에서 함께 살며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자 '나'와 딸애, '나'와 그 애 사이의 반목과 갈등은 점점 심해져간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던 딸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젠에게 자신의 심정을 하소연하며 위로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애는 동성애와 관련된 수업을 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직된 동료 시간 강사를 위해 시민단체와 함께 시위에 나서게 되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시민들에게 맞아 병원에 실려가고 만다. 딸애의 부상으로 주인공이 출근하지 않았던 며칠 사이에 요양원 사람들은 '나'도 모르게 젠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 '나'는 일련의 이런 일들을 겪으며 딸애와 그 애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비록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상처와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뚜렷해진다. 이 애들은 삶 한가운데에 있다. 환상도 꿈도 아닌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이 애들은 무시무시하고 혹독한 삶 한가운데에 살아 있다."    (p.149)

 

소설에서 '나'는 젠의 모습에서 딸애의 미래를 보고 있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오직 홀로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로부터의 수모와 멸시마저 홀로 감당해야 하는 두려움. 그 두려움은 고스란히 딸애를 향한 날선 분노로 표출된다. 그런 분노는 딸애가 지금이라도 다수의 편에 서서 젠과 같은 미래를 맞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간절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나'의 바람이 성취될 수만 있다면 '나'는 딸애에게도 딸애의 연인에게도 얼마든지 나쁜 사람으로 남아도 좋은 것이다.  

 

무거운 돌덩이를 삼킨 듯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나 답답함의 끄트머리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외면과 눈 감음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비단 그들 속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삶을 영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쪽, 다수의 사람들이 포진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야만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것은 사사로운 감정이나 도덕적 정의의 결핍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의 잣대로도 어찌할 수 없는 실존의 문제인 것이다.

 

'평범한 삶'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알지 못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몹쓸 병에 걸리거나, 실직이나 부도 등 갑작스럽게 찾아온 경제적 위기만으로도 '평범한 삶'은 아주 쉽게 무너너져버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젊음도 그렇듯, 다 잃고 난 후에 그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다수의 편에 서 있을 때에는 소수자의 고통이나 아픈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산다. 그것이 나의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일 당장 강추위가 몰려올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잘 믿지 않는다. 그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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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2017 결산] 딸에 대하여 - 김혜진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책*사 | 2018.01.08 | 추천9 | 댓글14 리뷰제목
 월세, 생활비, 권리. 돈과 맞바꾼 나의 권위, 부모로서의 자격, 심장을 떨리게 하는 수치심과 모멸감. 내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듯이. 그러다 불현듯 이 애들은 내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그건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거다. 그렇게 나는 없는 사람처럼 되겠지. 아니다. 이 애;
리뷰제목

 월세, 생활비, 권리. 돈과 맞바꾼 나의 권위, 부모로서의 자격, 심장을 떨리게 하는 수치심과 모멸감. 내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듯이. 그러다 불현듯 이 애들은 내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그건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거다. 그렇게 나는 없는 사람처럼 되겠지. 아니다. 이 애들은 그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 p. 47 中에서 -

 

 자신의 바램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딸을 보며 이러한 생각을 하는 어머니의 심경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딸에 대하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오롯이 어머니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30대의 딸을 둔 60대 전후로 추정되는 어머니가 왜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위기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일까? 기대했던 자식에 대한 실망감과 더불어 자식이 성적 소수자인 퀴어라는 점, 그리고, 딸의 애인인 또 다른 누군가의 딸과 한 공간에서 살게 되었으니 그녀의 푸념과 위기감, 분노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2017년 한국 문학을 휩쓴 페미니즘 열풍을 감안하더라도 쉽사리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이 페미니즘에 대한 화두를 던진 상황에서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도 그와 관련하여 묵직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한 의견에 순순히 동조하기란 쉽지가 않다.

 

 

 기본적으로 내 자신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는 여성만이 등장한다. 딸은 물론이거니와 딸의 애인,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 그러한 어머니가 돌보는 젠이라는 사람들 모두가 여자이다.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어머니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사람과 이웃이지만 왠지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릴까봐 어머니가 노심초사하는 대상은 남자이다. 여기에 더하여 어머니가 바라보는 딸은 동성애자(퀴어)이면서 동시에 시간 강사로서 수업 시간에 동성애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된 동료 시간 강사를 위하여 투쟁에 뛰어든 인물로 묘사된다. 어머니가 돌보는 젠이라는 여성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한 이후에는 수 많은 외국의 불쌍한 아이들을 후원하면서 평생 봉사를 하던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성적 소수자를 자처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투쟁을 벌이고, 기성 세대의 틈바구니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봉사와 자선 사업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페미니즘과 연관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주인공의 딸이 시간 강사로서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 동시에 저항하는 모습 역시 어떻게 보면 페미니즘의 연장선으로도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재가 등장한다고 페미니즘 문학으로 볼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의구심이 느껴진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배제하고 어머니의 시선에서 오히려 투박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의 표현을 통한 감정 묘사가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페미니즘과의 연관성을 내세우기에는 애매한 느낌이 든다.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에서의 어려움이라든지 동성애라는 성적 소수자라는 소재는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의 불평등한 것에 대한 지적을 넘어서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용해야 한다는 확장된 개념을 상징하기 위한 시도로 보여지지만, 단순히 등장만으로 그러한 페미니즘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공하지 못한 딸과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 여기에 딸의 동성애 대상을 등장시켜 미묘한 감정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는 이 상황은 굳이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바꿔도 감정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성공하지 못한 아들이 심지어 게이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아들에 대하여>라는 작품으로 썼다고 한다면 이 작품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게이가 아닌 평범한 보통의 남성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에서 쓴 것처럼 아내와 갓 태어난 자식을 건사하기에 너무나 부족한 시간강사의 자리를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동성애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당했다는 이 책의 상황과 크게 다른 것일까? 시간강사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부조리는 실제 현실이나 이 책의 상황과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동성애라는 코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시간 강사에 대한 처우가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로 간주하기에는 무리라는 느낌이 든다.

 

 

 어머니는 딸과 더불어 함께 자신의 집에 기거하는 딸의 연인을 보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성애 자체에 대한 확실한 부정 또는 혐오로 인한 것이 아니라 딸의 성공을 가로막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동성애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성 소수자에 대한 불편한 시각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생각마저 든다. 과연 어머니가 기대했던 딸이 남자와 결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수긍할 수 있었을까? 평생 결혼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살았지만 요양 병원에서 치매로 고생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젠의 모습에서 딸을 투영하는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보통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딸이 그러한 운동을 하면서 경제적인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이 어머니와 그의 동성애 대상이라는 점 역시 전통적인 기성세대로부터 기인한 피해라고 단정짓기에는 개인적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이 책의 뒷편에 실려있는 비평을 읽고 난 뒤에 오히려 이 작품을 읽었을 때보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에 대하여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한 해설이 때론 도움이 되지만, 비평을 통하여 독자의 생각을 왠지 의도적으로 이끄는 것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 비평도 개인적으로 그 후자에 속하게 된다. <딸에 대하여>는 이야기 자체에서 아마 독자라면 어머니의 시선으로 또는 딸의 시선, 젠의 시선과 같이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자연스럽게 각각의 관점을 통하여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비평은 너무 무겁게 페미니즘과 연결짓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가 왜 이제서야 부각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남근적 딸'이라는 용어를 비롯하여 몇 가지 비평 내용은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 거는 어머니의 기대감을 아들의 몫까지 기대하는 것을 '남근적 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쉽게 공감되지 않는다.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이 하나인 요즈음의 상황에서 자식에 대한 기대치의 잣대를 갖가지 어려운 개념들을 동원하여 차별적으로 설정하려는 것일까? 요즈음 변화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를 과거 남아선호 사상을 아전인수식으로 끌어들여 해석하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고단한 근로 환경에 대한 언급도 이해할 수 없다. 교사를 그만두고 이후 보험 설계사, 운전수, 요양 보호사를 하고 있는 어머니라든지 학교를 전전하며 시간 강사를 하고 있는 딸, 그리고, 식당에서 일을 배우면서 약간의 돈을 벌고 있는 딸의 애인을 언급하며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는 여성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세히 설명되고 있지 않지만, 딸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하여 중동에서 일한 건설 근로자로 묘사되는데 그러한 부분에 대한 고려는 없고, 그림자 노동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그들의 경제적 불안정을 여성이 받는 사회적인 부당한 대우로 연결하는 과정은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보통 한국 문학 작품에는 비평들이 실려 있다. 작품을 출간하기에 앞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비평을 내는 것은 좋지만, 이슈가 될만한 부분에 대한 비평은 다각도로 실어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딸에 대하여>를 읽고 나는 고단한 그녀들의 삶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 사회의 모습과 더불어 나 또한 그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방의 비평은 사실 납득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이 리뷰 역시 그러한 비평의 반대쪽 시선으로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책을 읽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다.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있고, 정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그 파악의 정도 역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작품에 대한 비평은 최소화 내지는 다양한 의견들로 구성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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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11건) 한줄평 총점 9.4

혜택 및 유의사항 ?
평점5점
엄마의 심리묘사가 상당히 탁월한 책! 김혜진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싶어진다
4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4
YES마니아 : 로얄 w*******s | 2020.03.29
구매 평점5점
무언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4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4
백**복 | 2019.07.22
구매 평점5점
참신한 소재, 이건 단순한 가족영화가 아니다. 여성이 보는 여성들의 투쟁과 그 이야기.
4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4
r*******2 |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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