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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별 사이 / 김주영
이상한 미래의 사춘기 / 김동식 토끼와 해파리 / 전삼혜 그냥 그런 체질이라서 / 홍지운 |
저김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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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전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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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또 욕이 나왔다. 끔찍한 벌레들이 다시 우르르 눈앞으로 떨어졌다. 자꾸 보니까 이젠 익숙해져서 처음처럼 징그럽지는 않다. 떨어지는 벌레를 손으로 쿡쿡 찔러 보았다. 내 눈에만 보이고,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벌레. 이 세상에 존재감이 1도 없는 것이 나랑 비슷하다.
--- p.15 이 애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별과 별 사이처럼 까마득하게 멀다. 그냥 저기 저 별이 있구나, 생각하듯이 멀뚱멀뚱 바라보며 서로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거다. 뭐, 대개는 사회에서 빛나는 이 애들을 우리가 별처럼 쳐다보게 되겠지. 우리는 빛나지 못할 테니까. --- p.21 원하는 감정을 설정한 뒤, 머리를 파이프에 대고 밸브를 열면 감정 에너지 파장이 쏟아져 나온다. 쐬는 시간이 길수록 효과가 커지는데, ‘기쁨’을 오래 쐬면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은 잠이 오지 않을 땐 ‘나른함’을 쐬고, 밥맛이 없을 땐 ‘허기’를 쐰다. --- p.50 은행을 지나쳐 편의점 앞을 걷던 예지는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쌓아 둔 폐지 더미 속에서 감정 에너지 캔을 발견하고는 딸깍딸깍 흔들었다. 예지는 텅 빈 캔을 얼굴에 가져다 대는 할아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애써 지나쳤다. --- p.58 “너는 이걸 잘하고 쟤는 저걸 잘해.”라고 호들갑스러운 칭찬을 받으며 자랐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저마다 향기가 다른 꽃이다.”라는 교육 모토는 결국 “너와 쟤가 같은 꽃이면 안 돼. 의견이 같으면 안 돼!”라는 강요에 가깝다는 것을. --- p.93 “자신의 의견을 꽃처럼 피우세요. 제각각의 색과 크기로 피어나는 꽃이 되세요.” 어디를 가나 걸려 있는 표어. 각자 자신의 위치를 찾아 발버둥 치는 우리는, 꽃이 피면 시들듯 언젠가 성장을 멈출 것이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 p.109 물론 가장 이상한 사실은 첫째가 대학생이고 둘째가 중학생이 된, 그런 집안에서 아직까지 가족회의를 한다는 점일 거야. 내가 고백하려다가 너무 흥분해서 콧김으로 불을 뿜어내기까진 했지만, 이건 그만큼이나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 p.122 그런 상황에서 체육 창고 뒤에는 얼마나 사람이 없었는지. ㄱ의 숨소리조차, 내 심장이 뛰는 소리조차 이건 너무 시끄러운 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로 크게 들렸어. 누가 내 심장 소리를 듣고 우리가 숨은 곳을 발견하면 어떡하나 싶을 만큼. 아, 웃지 말라고. --- p.134 |
SF X 사춘기
장르와 주제의 환상적인 시너지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SF 장르가 톡톡 튀고 변화무쌍한 사춘기와 만나, 그야말로 폭발력 넘치는 앤솔러지가 탄생했다. 네 명의 SF 작가들이 ‘사춘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놀라운 상상력과 뚜렷한 개성을 담은 작품들을 완성한 것이다. 과학적인 방식으로 미래를 디테일하게 그려 내는 SF 문학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장르적인 재미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오늘날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호기심이 가득한 ‘청소년’이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청소년 SF 소설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 가운데 분야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SF 작가들이 ‘사춘기’ 시기를 맞닥뜨린 청소년들에 주목하며, 각자의 개성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네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별 별 사이』에 실린 네 편의 소설들은 모두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미래를 상상하는 SF 장르의 특징과 장점을 잘 갖추고 있다. 현실과 흡사한 가까운 미래에서부터 먼 미래까지 담고 있는 네 작품은 공통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작품 속에서 그리는 미래가 실제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 볼 만한 지점들을 내보이며, 미래를 통해 현실을 또렷이 바라볼 수 있는 SF의 고유한 매력 또한 드러낸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성장통, 아직은 미숙하고 서툰 감정들,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이 장르적 특징과 어우러지며, 네 작품 모두 독자들의 눈길과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조금은 특별하고 이상한 미래에서 어김없이 경험하는 사춘기의 감정들 ‘변화’는 사춘기를 표현할 때 빠질 수 없는 단어다. 김동식 작가의 작품 「이상한 미래의 사춘기」와 홍지운 작가의 작품 「그저 그런 체질이라서」는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에 주목한다. 그 어느 시기보다 격렬한 감정을 경험하고, 변덕스럽기도 하며, 사랑에 눈을 뜨고, 자아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신체적 변화를 겪어 나가는 아이들이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작품 속에 살아 숨 쉰다. 「이상한 미래의 사춘기」는 ‘내 기분을 내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참신한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또한 집마다 ‘감정 에너지 파이프’가 연결되어, 원하는 감정을 설정한 뒤 밸브를 열면 감정 에너지 파장이 쏟아져 나오는 미래를 생생하게 그려 낸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감정세를 내는 대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기쁨’ 파장을 쐬고, 잠이 오지 않을 땐 ‘나른함’ 파장을 쐬며, 밥맛이 없을 땐 ‘허기’를 쐬며 불편한 상태를 가리고 감춘다. 감정을 강렬하게 분출하는 사춘기에 에너지 자가발전 패치를 붙이면 감정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기에, 예지의 부모님은 어서 예지에게 사춘기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좀처럼 오지 않는 예지의 사춘기를 앞당기기 위한 시도들과 감정 에너지 파장을 쐬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을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예지와 마찬가지로 조금씩 의문을 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이 과연 유토피아일까?’라고. 작가는 거짓 행복과 진짜 고통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지 우리에게 질문을 건넨다. 「그저 그런 체질이라서」의 주인공 B는 오랜 친구였던 ㄱ을 향한 설레는 감정을 키우다, 고백하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엄청난 사고를 저지른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ㄱ을 향해 콧김으로 불을 뿜어 버린 것이다. 이 작품에는 위험한 상황이면 파충류처럼 변하는 눈을 감추기 위해 색이 들어간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삼촌, 담석 때문에 수술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여의주를 품고 있었던 할머니 등 ‘드래곤 혼혈’이라는 유머러스하면서도 그럴듯한 설정을 갖춘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중간중간 극본 형식으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입말의 리듬감을 만끽할 수 있다. 코로 불을 뿜은 사건의 진실과 B의 속마음을 명명백백히 밝혀내기 위해 열린 가족회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B와 가족들의 거짓말 같은 진실은 독자들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별처럼 멀리서 빛나는 너와 내가 미래에서 만나는 특별한 경험 사춘기가 된 아이들에게 우정은 쉽게 결론내리기 힘든, 알쏭달쏭하고 어렵지만 영향력이 큰 관계임이 분명하다. 앤솔러지의 제목이기도 한 김주영 작가의 작품 「별 별 사이」는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보안 기술자인 엄마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고아가 되어 버린 주인공 ‘나’는 학교에서 욕을 했다는 이유로 받은 징계 때문에 화가 나도 제대로 욕을 내뱉을 수 없다. 욕을 할 때마다 입으로는 음악 교과서에 실린 노래가 흘러나오고, 눈앞으로 끔찍한 벌레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필터가 실행되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마련하려고 청소년에게는 금지된 ‘보디 스캔본’ 거래를 하기 위해 나선다. 보디 스캔본은 앱으로 접속해 진짜 몸은 안전한 상태로 두고, 연결된 사람 대신 모든 감각을 느끼며 작동하는 ‘세컨드 보디’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그러다 ‘나’와는 다르게 꽃길만 걸으며 자라온 ‘제니퍼’로부터 보디 스캔본을 넘기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두 별처럼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이 만남으로 엮여 별 사이가 된다는 뜻이 담긴 제목처럼, 제니퍼와 ‘나’는 과연 별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물리적 거리가 아무리 멀어진다 해도 언제나 설레고 소중할 친구와의 만남에 대해, 그리고 우정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선사한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전삼혜 작가의 작품 「토끼와 해파리」 또한 조금 특별한 우정을 다룬다. 신생아 통계 한가운데가 뻥 뚫린 ‘구멍 세대’에 태어난 은유와 지우는 ‘모두가 다른 향기로 피어나는 꽃처럼’이라는 교육 모토 아래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지 않으며 경쟁이 없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하지만 은유는 ‘자기만의 의견’과 ‘독창성’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모순을 느끼면서 남과 달라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판소리 〈수궁가〉에서 토끼 편을 들며 토끼에게 간이 없다고 속삭인 동물이 무엇인지 발표하는 과제를 하기 위해 해양생물체험관으로 향한 은유는 그곳에서 천재로 태어나 일찍부터 주목받은 지우를 만난다. 그리고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한 번도 배워 본 적 없는 ‘평범하게 살기’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미래에 ‘특별하지만 외롭고’, ‘특별하지 않아도 외로운’ 열다섯의 존재를 바라보며 독자들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처한 현실의 모순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다. 독특한 발상과 남다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네 작품을 읽으며 독자들은 글을 읽는 재미와 앞날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네 명의 작가가 만들어 낸 미래 속으로 스며들어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들을 즐겨도 좋다. 훗날을 내다보는 깊이 있는 통찰력을 발휘하며 윤리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삶과 사춘기의 의미를 찬찬히 되새겨 보는 것도 좋다. 어떤 인물에 좀 더 집중할지, 어떤 미래에 몰입할지 또한 독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아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미래처럼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별 별 사이』가 독자들과 만나 제각기 특별한 빛을 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각자의 방식으로 뜨겁게 타오르며 치열하게 방황하고 아름답게 흔들리는 작품 속 아이들과 미래에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독자들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