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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 발행일 | 2022년 06월 24일 |
|---|---|
| 쪽수, 무게, 크기 | 240쪽 | 224g | 115*183*15mm |
| ISBN13 | 9788983929624 |
| ISBN10 | 8983929626 |
남애리 저
|
문학수첩
|
2022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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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번 전시는 제목을 정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작품 속 철학적 사유에 중점을 두자니 제목이 너무 무겁고 어렵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제목을 듣자마자 ‘오, 저거 재미없을 것 같아’라고 생각할 것만 같다. 그런데 작품의 스타일에 집중하자니 팝아트적인 작품들이 자꾸 자극적인 제목으로 나를 이끈다. 어떤 제목들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도 몰라서 덜컥 겁이 난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 p.30~31 「전시 작업 중 제일 어려운 그것」 중에서
고백하면, 사실 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흥미로운 책을 읽거나 재미있는 연구를 할 때면 며칠이고 방 안에 처박혀 있을 수 있는 성격이지만, 그것만큼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도 즐겁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할 때 집의 가구를 새롭게 배치하기도 한다. 침대와 책상의 위치를 바꾸고 방을 싹 정리하고 나면 바뀐 집 안의 모습처럼 생각도 정리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전시실이 있다. 사무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생각이 엉키고 집중이 되지 않으면 나는 미뤄뒀던 일들을 한다. 전시실 벽면에 금이 간 것을 보수할 때도 있고, 오염물이 묻은 벽에 사포질을 하거나 천장에 달린 레일을 손보기도 한다.
--- p.54~55 「정장 스커트 입고 사다리 타기」 중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했던 처음 몇 년간은 근거 없이 자신감만 넘쳐흘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못해 오싹하기까지 한 것이, 나는 유물 관리가 교과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불평했고 전시 기획을 할 때도 ‘전문가’인 내 말이 옳다고 끊임없이 우겨댔다. 나중에 다른 여러 큐레이터들이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고 경력이 1년, 2년 쌓여가면서 이 근거 없는 자신감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금은 누가 나에게 ‘전문가’라고 부르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 p.127 「어중간한 맛의 전문가」 중에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일제강점기 어느 수산업 회사의 기록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 누구도 들춰보지 않은 채 묶음 자료로 보관되어 온 기록을 내가 처음으로 펼쳐 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조심조심 서류철을 순서대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 p.154 「‘성덕’의 은혜로운 월급 생활」 중에서
“그림 같은 거…… 그냥 보면 됩니까?”
“네,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무료 관람이에요.”
나는 친절하지만 다소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차피 이분도 “볼 것도 없네”라고 말하면서 10초 정도 있
다가 나가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대답에 그분은 다시 작업복에 손을 슥슥 문지르면서 자신의 옷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나에게물었다.
“이렇게 입고 들어가도 됩니까?”
나는 그가 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 p.30~31 「전시 작업 중 제일 어려운 그것」 중에서
고백하면, 사실 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흥미로운 책을 읽거나 재미있는 연구를 할 때면 며칠이고 방 안에 처박혀 있을 수 있는 성격이지만, 그것만큼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도 즐겁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할 때 집의 가구를 새롭게 배치하기도 한다. 침대와 책상의 위치를 바꾸고 방을 싹 정리하고 나면 바뀐 집 안의 모습처럼 생각도 정리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전시실이 있다. 사무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생각이 엉키고 집중이 되지 않으면 나는 미뤄뒀던 일들을 한다. 전시실 벽면에 금이 간 것을 보수할 때도 있고, 오염물이 묻은 벽에 사포질을 하거나 천장에 달린 레일을 손보기도 한다.
--- p.54~55 「정장 스커트 입고 사다리 타기」 중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했던 처음 몇 년간은 근거 없이 자신감만 넘쳐흘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못해 오싹하기까지 한 것이, 나는 유물 관리가 교과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불평했고 전시 기획을 할 때도 ‘전문가’인 내 말이 옳다고 끊임없이 우겨댔다. 나중에 다른 여러 큐레이터들이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고 경력이 1년, 2년 쌓여가면서 이 근거 없는 자신감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금은 누가 나에게 ‘전문가’라고 부르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 p.127 「어중간한 맛의 전문가」 중에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일제강점기 어느 수산업 회사의 기록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 누구도 들춰보지 않은 채 묶음 자료로 보관되어 온 기록을 내가 처음으로 펼쳐 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조심조심 서류철을 순서대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 p.154 「‘성덕’의 은혜로운 월급 생활」 중에서
“그림 같은 거…… 그냥 보면 됩니까?”
“네,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무료 관람이에요.”
나는 친절하지만 다소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차피 이분도 “볼 것도 없네”라고 말하면서 10초 정도 있
다가 나가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대답에 그분은 다시 작업복에 손을 슥슥 문지르면서 자신의 옷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나에게물었다.
“이렇게 입고 들어가도 됩니까?”
나는 그가 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 p.228 「작업복 입은 아저씨의 예술 작품 감상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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