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분리된 두 개의 자아로 살아왔다. 작가와 자영업자. 흰색의 아이패드 화면 앞에서만 잠시 작가가 된다. 집 나간 영감을 어떻게든 끌어와서 작가의 자아로 그림을 그린다. 자아가 교체되는 시점에 생리라도 하게 되면, PMS라도 겪게 되면, 심각한 ‘자아분열’이 올 수도 있다. 그전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자아를 갈아 끼워야 한다. 오늘 계약을 하고 이번 주, 이번 달 안에 작업을 마쳐야 다음 달에 정산을 받고 카드값을 갚을 수 있다. 미래의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나밖에 없다.
--- p.15, 「작가이자 자영업자라는 두 개의 자아」 중에서
나는 나의 노동을 지키기 위해 체계를 만들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의뢰서’를 만들어 서로의 책임을 확인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나의 작업에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의 예산과 기간이 중요하듯, 작업을 위한 나의 고민과 노동도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프로젝트가 예정된 마감일에 맞춰 안전하게 완료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만약 작업이 중단되면 그 기간까지의 노동에 대한 비용을 정산받을 수 있도록 설정해두었다. 그리고 작업의 사용 방식과 기간을 정해 가격을 산정하려고 노력했다.
--- p.35, 「창작이라는 노동」 중에서
외주업무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한 번에 몰려 들어오기도 하고, 한동안 아예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가질 수 없는 직업을 선택했으니 그런 상황 정도는 감내해야겠지만, 일이 많이 들어올 때는 그걸 다 감당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우울이 깊어져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최대한 규칙적인 과업을 만들어 이어가면서, 불규칙해 보이는 일정이라도 1년 단위로 크게 보면 하루의 일상은 규칙적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오전에 꼭 운동을 간다.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운동은 정말 명약이다. 잡생각을 날려주고 몸을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운동밖에 없다.
--- p.70, 「프리랜서의 멘털 관리법」 중에서
생각해보면 그건 자세의 문제이다. 20대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지만 일에는 귀천이 없다. 사람의 행동에 귀천이 있을 뿐. 경험상 ‘내가 사실 이런 일할 사람은 아닌데’ 식의 태도로 일하는 사람들이 꼭 문제를 만들었다. (중략) ‘그럴 사람’은 자신의 태도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림이나 그릴 사람이 아닌데 그림을 그려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태도라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시작부터 기분이 상할 것이다. 분명 그런 태도로는 거드름을 피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일을 끝까지 잘 책임지려는 마음은 세상 어떤 일에도 다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 p.104, 「일, 작업, 자존심」 중에서
재능은 낚싯줄이고 그 줄 끝에 걸려 있는 게 나의 작업물이라고 생각하며 자주 그 낚싯줄을 던졌다. 자주 던져서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고 그 반응을 모았다. SNS를 통한 사람들의 반응은 100퍼센트 정답은 아니어도 참고하기에는 정말 좋다. 시간을 많이 들여 요소에 신경 쓴 작업물보다 5분 만에 그린 작업물의 반응이 더 좋을 때도 있고, 내 눈에는 맘에 들지 않는 작업물도 사람들은 좋게 볼 때가 많았다.
결국 균형을 맞추는 일이었다. 나의 예측과 사람들의 반응을 모아 그 교집합에 들어갈 만한 작업을 하는 것. 그러나 이 교집합이 안정적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위험하기도 하다. 안정만 추구하면 발전이 없게 마련이라, 타인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업물과 개인이 발전할 수 있는 도전적인 작업을 병행해야 돈도 벌고 ‘나’도 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p.139, 「재능을 돈으로 바꾸기까지」 중에서
이왕이면 젊은 나이에, 수려한 외모를 갖춘 남성과 여성 그리고 털도 잘 손질된 예쁜 반려동물.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답고 반듯한 이미지에 끌리게 마련이고, 작업하는 나조차도 그것을 이겨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관습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이미지가 한편으로는 이미 지겹게 그려진, 질리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는 특정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 그리고 그만큼의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작업의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 p.159, 「그림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중에서
스티비에서 뉴스레터를 발행했을 때와 비슷하게 마감 날짜를 정했다. 한 달에 두 편에서 세 편의 글과 그림을 발행하는 것. 이후 프로젝트를 생각보다 성실하게 진행해냈다. 이쯤 되니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마감에 대한 압박감이 심하지 않고, 일단 마감일을 정하면 곧잘 지킨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개인 프로젝트에 타인을 연결시키는 것이 나의 치트키였다. (중략) 결국 나의 동력을 타인에게서 가져오는 방식으로 개인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셈인데, 무언가를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되는 경험이 많았던 나에게는 좋은 방식임에 틀림없다. 마땅한 창구가 없는 작가라면 텀블벅 같은 펀딩 플랫폼을 추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pp.169~170, 「개인작업의 치트키」 중에서
결국 무엇을 이용해서 표현하느냐는 나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방식과 마음을 풀어가는 방식이 좀 더 깊은 숙성의 시간을 맞고 나면, 어떤 매체가 되었든 작업의 의미가 일관되게 관통하는 지점이 생긴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작업을 해내는 작업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하는 사람. 바로 작가 자신이다. 그리고 나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 p.213, 「나를 먼저 탐구하기」 중에서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사무실을 알아보고 부동산을 왔다 갔다 하며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느꼈고, 지금은 그림과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더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애쓰는 중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보다 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 해서는 발전하지 않는다. 의외로 다소 뜬금없거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진심을 담아 해낼 때 주요 업무 능력이 향상된다. 특히 창작을 주요 업으로 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창작 이외의 행위들이 의외로 창작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앉아서 무언가를 주구장창 만들어낸다고 해서 좋은 작업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 p.223, 「나로 살고 나로 죽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