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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 업고 걷기 · 홍은전(인권기록활동가) 효자 아닌 시민 · 조기현(청년 예술가) 생각보다 부서지기 쉬운 한 명 · 원도(과학수사대 경찰)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 김용현(자연주의자) 나답게의 힘 · 임현주(아나운서) 아들의 방 · 김미숙(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의 엄마) 2부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노래 속의 대화 · 시와(가수) 서로의 곁 · 김중미(소설가) 사람이라는 희망 · 이영문(국립정신건강센터장) 가까이 서 있는 것 · 김혜진(소설가) 두루두루 이롭게 · 민금채(지구인컴퍼니 대표) 미안함의 동력 · 신영전(한양대 의대 교수) 3부 사는 일 자체로 누군가의 해방을 돕는 사람 시대의 복직 · 김진숙(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멋있지 않아요? · 수신지(만화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장) 문제는 잘 싸우기 · 박선민(국회의원 보좌관) 작은 목소리라도 · 김도현(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우리 같이 있어요 · 김현(시인) 에필로그 |
저은유
관심작가 알림신청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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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들에서 십몇 년간 한 모든 것이 차별을 저항으로 만드는 일이었구나. 차별과 저항이 얼마나 멀고 이어지기 어려운지 알았죠. 그게 얼마나 어렵냐면 내 청춘이 거기 다 들어간 거예요, 우리의 청춘이.”(홍은전)
--- p.16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삶, 좀 더 나은 세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아빠한테 붙어요. 눈앞에 있는 현실이 해결되지 못하면 저한테는 좋은 세상은 없는 거예요.” (조기현) --- p.30 “경찰은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모습을 잊지 않는 것. 현장 갔다 오면 눈물이 난다니까요. 고인의 안식 하나만 생각하고 해요.” (원도) --- p.44 “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남의 돈을 뺏은 거 같아. 마음이 불편해. 자연인으로서 자연법에 따라 어울려 살아야 하는데 내 것이라고 싸우고 그런 게 안 맞아요.” (김용현) --- p.60 “그날의 작은 시도가 저를 자유롭게 만들었어요. 몸도 생각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저의 모든 행동에 따라붙어요.” (임현주) --- p.80 “가해자도 저처럼 잠 못 잘까요? 왜 피해자는 평생 벌 받듯 아프게 사는데 가해자는 반대가 될까요?" (김미숙) --- p.94 “제가 공연하는 걸 좋아하는 뮤지션이에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까 사람을 보고 싶은 거예요, 결국 내 노래를 듣는 사람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시와) --- p.110 “사람이 있으면 달라져요. 가족이 아니어도 곁에 사람이 있으면 달라지거든요. 전 그걸 믿기도 하고 또 실제 경험도 해요.” (김중미) --- p.124 “어떤 사회든 고유의 회복력이 있고, 한국은 회복력이 매우 강한 나라예요. 희망이 있습니까, 하면 희망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희망이 있다는 쪽을 나는 택하겠어요.” (이영문) --- p.138 “소설을 읽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기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지 않을까요.” (김혜진) --- p.154 “환경이든 음식이든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지켜줄 수 있는 방식, 그게 지구인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았어요.” (민금채) --- p.168 “저는 우리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왕복하는 존재라는 인식, 이게 더 본질 같아요. 내가 가해자라는 인식을 가지면 할 일들이 많잖아요. 해를 끼치기 싫으니까.” (신영전) --- p.182 “내가 저 일을 하면 자랑스럽겠구나 생각했어요. 폼 나잖아요, 용접공. 저는 그냥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이 좋아요. 나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건 해고자의 삶이었으니까.” (김진숙) --- p.200 “우리가 사는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니까 그냥 사실대로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다 같이 잘 살아야 나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신지) --- p.220 “어둡고 무거운 건 피해자의 삶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김혜정) --- p.234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고 그걸 통해 작지만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게 굉장히 두려운 일이거든요.” (박선민) --- p.248 “다시는 저희 같은 유가족 보고 싶지 않아요. 태규, 동준이, 용균이 누구 하나의 죽음도 개인 탓은 없어요. 열심히 일한 죄밖에…… 근데 죽은 거예요. 자그마한 목소리라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도현) --- p.262 “성소수자들도 당신네들과 똑같이 밥 먹고 음악 듣고 화내고 사랑하는 ‘보통의 존재’임 항변하듯이 쓰고 싶었어요.” (김현) --- p.278 |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
삶의 위기와 고통에 쪼그라들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이의 이야기 작가는 이야기의 견고한 힘을 믿는다. 내가 듣는 이야기가 곧 나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바꿔 나의 토대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설파한다. “살아가면서 참조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가 많아야, 삶에 대한 질문을 비축해두어야 내가 덜 불행하고 남을 덜 괴롭히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가 독자에게 ‘연결’한 인터뷰이 18명은 “자기에게 찾아온 느낌들, 생각들, 마음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마치 재물을 지키듯이 지켜내고 사는 사람들”(300쪽)이다. 1부에서는 누구나 가는 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름으로써 진정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들을 묶었다. 사범대를 다니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홍은전은 남을 물리쳐야 꿈을 이루는 제도 교육의 경쟁 트랙을 벗어나 노들장애인야학에 들어감으로써 ‘아무도 이기지 않고’ 교사가 되었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인권기록활동가로 산다. 조기현은 스무 살에, 덜컥 병이 든 아버지를 외면하지 않고 돌봄을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투쟁을 시작한다. 원도는 경찰로서 자신이 목도한 ‘민생’을 낱낱이 기록한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증인이자 측은지심으로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 자연인 씨돌 김용현, 기다리고 선택받는 직업의 틀을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하고 실천하며 아나운서의 외연을 확장한 임현주, 자식을 잃고 비정규직 청년들이 일하다가 죽는 현실에 눈뜨며 말하는 주체로 거듭난 고 김용균의 엄마 김미숙이 그들이다. 2부에서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힘을 믿고 긍정하며 나아가는 이들을 엮었다. 코로나로 노래하는 무대가 사라지자 직접 관객을 찾아 나선 가수 시와,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소설가 김중미, 인간의 정신세계를 보호하고 탐구하는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이영문, 소설을 읽으면 더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소설가 김혜진, 기후위기 시대 대체육 개발 사업을 이끄는 기업인 민금채, 가난한 사람들의 옹호자로서 ‘무상의료’를 앞장서 지지하는 의사 신영전이 그렇다. 3부에서는 나의 힘으로 타인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존가들을 모았다. 스물여섯에 해고자가 된 김진숙은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복직투쟁을 37년간 이어간다. 담백한 외유내강 만화로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만화가 수신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척박한 인식과 싸워가는 한국성폭력상담소장 김혜정, 법과 제도를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설계하는 비선출직 정치인 박선민, 혈육은 잃었지만 다시는 산업재해가 생기지 않는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고 김태규의 누나 김도현, 소수자의 평범한 일상을 시로 엮어내는 시인 김현이 그들이다. 은유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질문하며 크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본디 가지고 태어난 고유의 기품을 호명한다. 나는 이런 사람을 크게 그리고 싶었다. 모두가 쳐다보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사유를 자극하는 사람들.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 자체로 모두의 해방에 기여하는 사람들.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힘이 세서 견고한 관념을 부순다. 내가 듣는 이야기는 내 감각과 정신의 속성을 천천히 바꾼다. 살아가면서 참조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가 많아야, 삶에 대한 질문을 비축해두어야 내가 덜 불행하고 남을 덜 괴롭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지배는 단절과 분열의 문화 속에서 가장 잘 기능한다는 말이 있듯이 ‘연결’은 억압을 벗어나고 해방에 이르는 시작이자 원리다. 여기 살아 숨 쉬는 사람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세계로 어서 편입되었으면 한다. 삶의 위기와 고통에 쪼그라들지 않고 인간다움의 가치를 질문하며 크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갖고 태어난 고귀함의 유전자를 깨어나게 할 것이다. _‘책머리에’에서 인터뷰라는 사랑의 능력 은유 식 실천하는 인문학 “출근 시간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탑승 투쟁을 벌이던 장애인들이 이번에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 지하철을 탔다. 참담함은 투쟁하는 그들의 모습이 처절함을 극대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동료 시민이 존엄을 위해 저렇게 할 때까지 무엇을 했느냐는 반성에서 나오는 참담함이다.”(엄기호) 2022년 5월 3일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참담하게도’ 지하철에 탑승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5월 5일 은유 작가는 국회 앞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인터뷰로 만난 “귀인”들을 통해 “장애, 의료, 돌봄, 여성, 노동, 정치, 환경 등 삶의 다양한 분야를 공부”(9쪽)했다는 그는 애써 배운 것들을 일상 안에서 힘껏 실천하고 전파하고 있다. “기록하는 사람, 반성하는 사람”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크게 그린 사람》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던 것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전선에 서긴 했는데 확 불태워지질 않았다. 내 싸움이어서였을까. 큰 싸움들이 도처인데 한 사람의 복직이라는 작은 싸움이어서였을까. 자꾸 쭈뼛거리던 와중에 인터뷰가 이루어지고 울고 웃으며 폭포처럼 생애를 쏟아내고 그걸 글로 보니, 아, 이건 꼭 해야 하는 싸움이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복직투쟁의 전선이 제대로 쳐진 건 이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 나서다. 그리고 나는 2022년 2월 25일 마침내 37년 만의 복직을 이루어냈다. 은유 작가의 힘이 컸다._219쪽에서 “이 시대의 인물 화첩이자 나만의 인생 수업 노트이고 인간학 교재”인 《크게 그린 사람》으로 작가는 다시 예의 ‘사랑의 능력’을 세상으로 부지런히 타전 중이다. 인터뷰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