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10년 동안 소설의 세계를 떠나 있었다. 잘 사는 어른은 그런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용감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만큼 용감해지지도, 기대만큼 현명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 소설 번역가로 일하게 되면서 다시 소설의 세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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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어떤 힘이 있기에 나를 이렇게 힘센 손으로 꽉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소설은 어린 나에게 그 어떤 고난이 닥쳐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법을 상상하게 해준 시뮬레이션 게임이자, 항상 서재에 틀어박혀 번역만 하느라 한없이 작은 세계에 갇혀 사는 내가 흥미로운 의문을 품을 수 있게 해준 사고의 실험장이자,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과 그들의 복잡다단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 만남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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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글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좀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문인을 ‘교양인’과 동급으로 여기며 고상하게 여기는 분위기는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유니스는 글을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한 번 본 것은 머릿속에 사진으로 찍어놓듯이 정확하게 기억했고, 산책을 통해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은밀한 관계와 감정을 알아차리는 감각 능력이 있었다.
만약 세상이 그토록 문자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만약 유니스가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닌 다른 능력과 감각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배려를 받았더라면 커버데일 가족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니스는 오랫동안 보모로 일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산책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낯선 이들을 찍은 비비언 마이어 같은 예술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예리한 관찰력을 이용해 경찰 수사에 협조하는 범죄 전문가나 탐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저 가정이기에 한없이 무력하지만.
--- pp.19~20
사실 SF 영화 하면 흔히 연상하는 소재는, 인간과 우주 생물의 결합으로 탄생한 무시무시하고 놀라운 능력을 지닌 괴생명체이다. 그것이 던지는 주요 메시지는 지극히 평범하다. 새롭고 낯선 것은 위험하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수상한 웅덩이에서 낯선 생명체와 조우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잉태하는 공포를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서 배 속에 잉태된 무언가는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새로운 지능이자 관념이며 아이디어를 뜻한다.
--- p.30
이렇게 숫자로 입증된 사실이 있기에, 여성들이 사냥당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 작품과 다른 류의 스릴러 소설 사이에는 꽤 큰 온도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절대 이런 끔찍한 일은 당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안전한 나의 공간에서 페이지를 넘기는 사치를 만끽할 수 있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나는 너를 본다》에서 일어나는 일은 지금 이 순간 나도 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두렵다.
--- pp.54~55
소설 번역을 하다 보면 무의식중에 등장인물 중 가장 나와 닮았다고 느끼거나 혹은 닮고 싶은 인물에 감정 이입한다. 그 몰입 정도가 심해지면 어느 순간 극 중 인물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어 그가 웃으면 나도 웃고, 그가 울면 나도 웃고, 그가 고통받으면 나도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 번역가는 대본을 받아 연기하는 연기자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할에 빙의했다’는 표현은 연기자뿐만 아니라 번역가에게도 해당할 수 있지 않을까.
--- p.65
만약 이 소설을 한국에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었다면, 잘나가는 부잣집 명문대생들 틈바구니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고졸 주인공이 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좌절에 빠지는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예쁘고 돈 많은 부잣집 딸과 비교당하며 평범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우울해하는 장면이 나올 수도 있다. 우리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대체적으로 느끼는 반응에 가깝기도 하니까.
--- p.77
요즘은 번역 소설을 읽으면서 시대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소설에서 부부 간의 대화가 나오면 아내가 남편에게 존칭을 쓰는 식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잦았지만 이제는 완전히 평등하게 번역한다.
--- p.83
게센의 종교인 한다라교(에스트라벤도 신자이다)의 핵심 교리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해서는 안 될 질문이 뭔지 판단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다. 이는 상대가 어떤 성인지 알 수 없고, 알려 하는 것이 무용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아는 게센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철학일 것이다.
서서히 게센인들의 철학을 이해하게 된 겐리는 마침내 임무에 성공하고 몇 년 만에 동료들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는다. 그는 남성과 여성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동료들의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끼다가 중성적인 게센인들을 보며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나는 누구의 편인지 구분 짓는 것은 실로 고통스러우며 의미 없는 행동이자 사고방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결말이 아닐까 싶다. 이 결말을 보며 완경 후 한동안 방황했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내가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 조금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 pp.88~89
내가 감탄한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낯선 존재, 낯선 생명이 우리 세계와 우리 몸을 침범한다고 상상하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갈등, 충돌, 대립, 적대’라는 구도를 떠올리고 만다. 내 몸에 들어온 균은 반드시 박멸해야 하고, 이민은 우리에게 이로운 사람들에게만 허용해야 하며, 강대국의 언어가 아닌 외국어는 배울 가치가 없고, 낯선 제도나 시스템은 불편하고 짜증난다. 이런 통념을 코아티는 거침없이 부숴버린다.
--- p.95
그런데 이 이야기가 단순히 조앤과 링컨 모자의 숨 막히는 동물원 탈출기에 불과했다면 나는 이야기 전개에 집중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밤의 동물원》에는 나이 든 은퇴한 교사 마거릿과 발랄하고 수다스러운 열여섯 살 소녀 케일린이 등장하는데, 작가 진 필립스는 조앤과 이런 인물들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우리가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존재가 위험에 처한 순간 인간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 라는 화두를 제기한다.
--- pp.108~109
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예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 친척, 친구, 동료가 어느 날 입에 올리기도 부끄럽거나 끔찍한 행동을 해서 비난받는 일을 겪는 여성이 세상엔 많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과연 진실을 알고 싶었을까. 진실이라고 해서 모든 류의 진실이 자신에게 이로운 건 아니니,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각각 다를 것이다.
--- pp.123~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