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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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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04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250g | 104*182*20mm
ISBN13 9791167901972
ISBN10 116790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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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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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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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나한테 잘못한 건 없잖아요. 잘못한 게 없으니 용서할 수도 없는데, 용서가 안 돼요. 그게 미안해요.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요. (……) 고작 그런 이유로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를 그렇게 평생 혼자, 혼자서 외롭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게. 지원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상담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치만, 지원 씨도 외로웠잖아요. (……) ‘고작 그런 이유’라고 하지 않아도 돼요.
--- pp.35~36

입추가 지날 무렵 401호 남자가 왔다. 그가 들고나는 것을 보지 못한 지 사흘쯤 되었을 때, 주미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객실 문을 연 순간 주미의 머릿속에는 오래전에 보았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인파 사이로 기둥처럼 솟아 있던, 크레인에 매달려 있던 거대한 주검. 경이로운 동시에 참혹했던.
--- p.60

아까 그 여자 말야, 하고 주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네, 정말 이상한 여자네, 지원이 그렇게 말해주기를 조금은 기대하면서. 하지만 지원은 가만히 주미의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알 것 같아, 하고 지원이 말했다. (……) 그러고 보니 지원의 말이 맞았다. 그 먼 곳에서 아는 이도 하나 없는 이곳에 와서, 그렇게 혼자 씩씩하게 밥을 먹고. 아마도 누군가를, 무언가를 이해해보겠다고 여자는 애쓰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자 자신은 그 무엇에도 그렇게 애써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p.70

필요하면 아무 때나 연락하라고. 그렇게 적으면서 주미는 생각했다. 남겨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여기 있는 사람. 누군가 나 왔어, 하고 돌아왔을 때 거기 있는 사람. 아무 때나 연락해도 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상에 드물고, 주미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 p.72

어려서는 서핑 선수가 꿈이었지만, 자신이 그 정도로 잘하는 건 아니란 걸 다행히도 일찍 깨달아 그냥 취미로 즐기기로 했다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서핑 동아리를 만들기까지 했는데, 동아리 이름은 ‘Ding’이었다. 보드에 뭔가에 부딪혀 상처가 나면 그걸 ‘딩’이라고 부른다고 P가 말해주었다. 왜 하필 동아리 이름을 그렇게 지었느냐고 재인이 묻자 P는 대답했다.
서핑을 하면 딩 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 P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덧붙였다.
그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니까.
--- pp.85~86

영식이 술에 취한 채로 테트라포드 위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아저씨, 아저씨’ 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돌아보니 주미였다. 일고여덟 살쯤 되었을 것이다. 주미가 영식에게 어서 이쪽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영식이 멍하니 반응이 없자, 그 어린 게 영식을 직접 끌고 가기라도 할 셈인지 테트라포드 위로 넘어오려고 자세를 낮추는 거였다. 정신이 번쩍 났다. 안 돼! 오지 마! 영식이 외쳤다. 영식이 비틀거리며 방파제 위로 올라서는 순간, 주미가 영식에게 달려와 덥석 안겼다. 조그맣고 따뜻한 몸이. 그때 영식은 주미에게 안긴 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주미는 잊었을지도 모르지만, 영식은 잊지 않았다. 영식이 술을 끊은 건 그때부터였다.
--- pp.128~129

쑤언에게 운이 좋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내가 아니라 너인 것. 불행의 화살이 내가 아닌 네게 날아가 꽂힌 것. 능력도, 성실함도, 나이도 아무 상관 없었다. 왜 내가 아니라 너인가. 쑤언은 궁금했다. 신만이 그 답을 알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잠시 있었다. 그전까지 쑤언은 신이란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기도하는 마수드를 가만히 지켜보자면 내 믿음 따위와 별개로 신은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 pp.144~145

“서핑을 하면 딩 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니까.”

글을 다 읽고 나는 ‘딩 났어’라는 말을 자주 중얼거렸다. (……) 그러면 알 수 없는 상처들이, 내 것도 아닌 상처들이, 이상하게 내 것처럼 밀려왔다. (……) 딩, 하고 발음해보면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딩─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여러 겹으로 계속 퍼져나간다. 산책을 하며 눈에 보이는 풍경마다 딩 났어, 하고 중얼거리다 보니 나는 이 소설이 딩에 대한 소설이지만 딩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지만 딩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를 말하는 소설도 아니고 상처를 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소설도 아니다. 그저 딩, 하고 가만히 말해보고 그 울림을 적어나가는 소설이다. 그러니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그 울림을 느낄 때 알 수 있지 않을까?
---「윤성희_발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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