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저를 채찍으로 때리려고 들었어요. 저는 완전히 어리둥절했어요. 그 거친 말을 듣느니 차라리 매질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채찍을 휘두르다 말고 허공에서 동작을 멈추더니 비틀거리며 헐떡거렸어요. ‘저주야, 저주!’ 저는 공포에 사로잡혀 아버지를 올려다보았죠. 맞은편 커다란 거울에 제 모습이 보였어요. 그리고 바로 그 뒤로 사악하고 무시무시한 또 하나의 자아가 보였어요. 저와 너무나 똑같아 보여 저는 영혼까지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저와 똑같이 생긴 저 몸이 누구의 몸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도 동시에 나의 분신을 똑똑히 보았어요. 그게 뭔지는 몰라도 무시무시하게 현실적인 모습이었죠. 거울 속에 비친 모습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 순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요. 제가 기절해버리고 말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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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더 선실 주방에 머물렀다. 내 분신은 올 때처럼 가뭇없이 사라진 걸까? 그가 나타난 일은 해명되었다. 반면 사라진 일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어둑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램프의 불을 밝혔다. 몸을 돌려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용기를 냈을 때 그가 좁은 구석 자리에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충격받았다고 말한다면 진실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육체적 존재를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자가 혹시 내 눈에만 보이고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건 아닐까? 대체 그게 가능한 일일까? 유령에 씌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꼼짝하지 않던 그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향해 두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분명 ‘맙소사! 완전히 구사일생이었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실로 아슬아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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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램프의 밝은 불빛에 그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동시에 내 시선은 얼굴을 향했다. 나는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서늘한 느낌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두 무릎이 비틀거렸다. 내 영혼 전체가 대상이 없는 견딜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램프를 얼굴에 더욱더 가까이 가져갔다. 이것이……, 이것이 윌리엄 윌슨의 얼굴인가? 나는 사실 그게 그의 얼굴임을 확인했지만, 그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말라리아에 걸린 것처럼 달달 떨었다. 도대체 이 이목구비에 무엇이 있기에 이토록 나를 혼란에 빠뜨린 것일까? 나는 시선을 고정한 채 계속 바라보았다. 머리는 수많은 생각이 뒤죽박죽 섞여 어지러웠다. 그 아이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분명 환한 대낮에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똑같은 이름! 똑같은 자태! 똑같은 입학일! 거기에 집요하고 무의미한 흉내 내기! 내 걸음걸이며 내 목소리, 나의 습성, 나의 태도까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과연 습관적으로 빈정거리며 모방한 결과라는 게 현실 세계에서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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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말 그런 광경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홈즈 씨. 동서남북 사방에서 머리가 좀 붉다 싶은 사람은 모조리 광고를 보고 시티 지역에 몰려들었더라고요. 플리트가는 빨간 머리 남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답니다. 포프스 코트는 과일 가게의 오렌지 수레 같았어요. 정말 그런 광고 하나에 전국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몰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답니다. 온갖 색조가 다 있더군요. 밀짚색, 레몬색, 오렌지색, 벽돌색, 아이리시 세터색, 찰흙색 등등이요. 그런데 스폴딩 말마따나 진짜 생생한 불꽃색은 많지 않더라고요. 저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걸 보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스폴딩이 고집을 꺾지 않았어요. 대체 그 친구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밀고 당기고 들이받고 하면서 나를 끌고 군중 사이를 헤쳐 나가더니, 어느새 사무실 바로 앞 계단까지 가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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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분주하고 또 한편 멍한 상태로 그렇게 앉아 있을 때 그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번쩍하고 온몸에 차갑게 소름이 덮쳤다. 그러더니 다시 화들짝 불에 덴 듯 벌게졌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했다. 그는 오싹해지며 그 자리에 꼼짝 못 하고 얼어붙었다. 천천히 꾸준하게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나더니, 이내 문손잡이에 손이 닿고 딸깍 자물쇠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마크하임은 말 그대로 옴짝달싹 못 하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죽은 자가 걸어오는 건지,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경관이 찾아온 건지, 또는 우연히 사건을 목격한 이가 무턱대고 들어와 그를 교수대로 끌고 가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떤 이가 불쑥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방 안을 휘 둘러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마치 지인을 알아본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가 문을 닫았을 때, 마크하임은 더 이상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비명을 내지르자 그 방문객이 다시 돌아왔다.
“날 불렀나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