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5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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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520쪽 | 648g | 140*210*35mm |
ISBN13 | 9791164050277 |
ISBN10 | 1164050273 |
발행일 | 2019년 05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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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520쪽 | 648g | 140*210*35mm |
ISBN13 | 9791164050277 |
ISBN10 | 1164050273 |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9 2. 숨 / 59 3. 우리가 해야 할 일 / 89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97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 249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267 7. 거대한 침묵 / 333 8. 옴팔로스 / 345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395 창작 노트 / 493 감사의 말 / 509 옮긴이의 말 / 511 |
테드 창의 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17년 만에 나온 작품집인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일 년 혹은 이 년에 한 편 정도씩 쓴 중, 단편을 모아서 펴낸 이 책엔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있다. 전작에서 너무나 특이한 내용에 마음을 뺏겼다면 이번 작품집에서는 어떤 형식을 빌었던 결국 동시대 사람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라는 걸 느끼면서 읽었다.
소설의 시간은 미래거나 과거이며 장소 또한 지구라는 행성에 머물지 않고 우주로 확장된다. 하지만 작품에서 배경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현재까지 살아온 경이로움은 오로지 인간의 선택이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읽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에서 부유한 상인 압바스를 통해 인간이 자유의지로 과거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보여준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후회와 불안을 안고 산다. 만약 다시 같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는 이미 한 선택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일어난 일에 대해 회개와 속죄, 용서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위해 시간의 문을 지나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지나온 과거 중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회개의 시간을 갖고 진심을 다해 속죄한다면 용서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었다.
표제작인 <숨(Exhalation)>은 우리의 사소한 일상이 사실은 어마어마한 기적임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자신의 뇌를 스스로 들춰보며 삶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학자를 등장시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기적이 찾아온 것인가를 설득한다. 지금 그대로인 자신의 존재를 경이롭게 여기고 기뻐하라는 메시지는 무기력해지려는 여름 하루를 갑자기 활기차게 만들어 주었다.
가상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디지털 유기체인 디지언트에 대해 이들의 생명을 어디까지 인정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반려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란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반려인이 있어야만 보호를 받는 반려동물들의 생활은 전적으로 반려인에게 달려있다. 디지언트도 이와 비슷해서 자신의 오너에 의해 그 활동이 정지 되거나 이어진다. 수 년 동안 자신의 디지언트에게 시간과 돈, 애정을 쏟은 오너들은 디지언트를 좀 더 쓸모 있게 만들려는 사람들과 충돌하면서 이들은 각자 선택의 기로에 선다.
우리가 디지언트를 키우는 이유에 관해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어. 우리 디지언트들이 실용적인 스킬을 배울 수 있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설령 그러지 못한다고 해서 실패로 간주할 필요는 없어. 잭스가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잭스는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냐. 잭스는 드레이터나 잡초깎기 로봇과는 달라. 잭스가 어떤 퍼즐을 풀든, 어떤 일을 하든 , 그건 내가 잭스를 키우는 이유가 아냐. (168)
며칠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읽은 책의 마지막은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여기에도 선택 앞에 선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앞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방식에 과학적 상상력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를 프리즘을 통과한 다른 세상에 둘 수 있다. 자신의 다른 자아가 다른 세상에서 활동하는 것을 기대와 호기심으로 보기도 하고, 아예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의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에 불과한데 프리즘을 통과한 나의 자아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질투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자아를 만들어 다른 상황을 겪게 해도 결국 고유한 자신의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구성을 통해 선함이 어떻게 유지되고 이어지는지를 말하고 있다.
우리 누구도 성인군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선한 일을 할 때마다, 당신은 다음 번에도 선한 일을 할 가능성이 많은 인물로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건 의미가 있는 일이지요. (477)
굳이 고민하지 않고 쉽게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 사람들이 쉽게 그럴 수 있는 것은 선하게 행동하려는 작은 선택을 예전에도 여러 번 했기 때문일 거예요. 내 경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건 예전에도 이기적으로 행동하려는 작은 선택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겠죠. 결국 내가 선하게 행동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나 자신이었던 거예요. (488)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질문이다. 앞으로 세상은 현재의 내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나갈 수도 있다. 지금은 개그프로그램의 한 소재에 불과한 상상이라 할 지라도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다. 두 개의 문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하는 일이 계속 꿈 일 수만은 없다. 세상의 변화 속에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하는 작가의 말에 나는 귀를 기울인다. 내가 하는 많은 선택들이 나를 말해줄 것이다. 어제까지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었다면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SF소설로 분류되고 있는 이 책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현재를 만든 기적이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의 숨결로 이어진다는 내용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일하던 동물원이 폐쇄된 후 일자리를 찾던 애나는 블루 감마라는 게임 회사에서 뜻밖의 일자리를 제안받게 되는데 디지탈 애완동물의 일종인 디지언트들을 훈련기키는 직업이다. 고작 몇달간의 소프트웨어 테스터 교육으로 큰 게임회사에 취엄할 수 있었던 건 블루 감마가 출시하는 디지털 애완 동물이 실제 동물을 다루던 기술이 절실히 필요할 만큼 고차원적으로 진화했기 대문이다.
20여년 전 다마고치의 형태로 전세계에 가상펫 열풍을 일으켰던 가상펫의 21세기 버전이라 생각할 수 있다. 디지언트들은 뉴로 블래스터 라는 게놈 엔진을 사용하여 다양한 형태로 개체의 진화가 나타나고 의식이 있다. 이들의 서식지는 데이타 어스라는 게임 플랫폼으로 인간과 상호작용하지 않을 때에도 데이터 어스 환경 내 에서 다른 디지언트들과 상호 소통하면서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있다. (참고로 유전학적 진화와는 다른 의미로 이 책에서는 개체의 변화를 진화라는 말로 쓰고 있다) 침팬지와 곰 등 여러 형태의 아바타를 사용하여 개별 사용자의 선호도와 니즈를 만족시킨다. 뉴로 블래스트 게놈 엔진을 사용한 디지언트들은 기본적으로 애완 동물의 필수 조건인 순종적 성격과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고 언어 능력을 비롯해 학습과 훈련에 의해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당연히 출시와 함께 전세계적인 빅히트를 친다.
과학 소설이 독자에게 인도하는 것은 조금 다른 버전으로 대체된 가상의 시스템을 경험함으로써 철판같은 현실에서 제공하는 가치관과 철학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것이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는 자각하지 못한 다른 시선이 보는 미러를 통해 세계관을 이루는 것들을 자각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에 객체라는 말이 붙기에 프로그래밍을 배우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제목부터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사실 내용도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테스트, 출시, 고객 대응 유지보수 등의 일련의 주기를 다룬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개발자이거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익숙하다면 훨씬 풍부하게 컨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IT 산업의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 책의 문장 하나 하나가 주는 의미와 현실에 대한 비유를 일부 놓칠 가능성이 있다. 장황한 설명이 없기 때문인데, 이는 테드 창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그가 주로 중단편을 쓰는 이유는 서사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핍진성을 생략해서도 아니다. 나는 이 작가의 간결함이 주는 울림이 좋다.
소프트웨어의 소프트함 때문에 소프트웨어는 흥하고 소프트웨어는 망한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몰라도 우리는 무생물 소유물에게 자주 감정이입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끼던 물건들을 쉽게 방치하고 잊고 버린다. 유행이 밀물처럼 온세상을 덮쳤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듯 한 때 세상 전부라도 가진 듯 소유 속에 행복을 찾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것들로 변하고 새 것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크게 보면 이 소설은 그 대체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SNS만 해도 우리는 대세의 변화에 따라 천리안에서 각종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싸이월드에서 페북과 트위터 인스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이 파도 타듯 갈아타기를 반복하머 영원할 것 같았던 가치들 영광과 몰락을 지켜보았던가.
소프트웨어의 유지 보수가 어려운 건 아이러닉하게도 소프트웨어의 그 소프트함에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상태에서 고작 망가진 부품을 교체하는 수리 차원의 유지 보수를 요구하는 하드웨어 기계와 달리 소프트웨어는 출시 후에도 고객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쉽게 수용하고 변경할 수 수 있다. 계속되는 업그레이드는, 계속 생겨나는 다른 버전을 의미한다. 안드로이드 앱은 기본으로 자동 업데이트 되도록 설정되어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기능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갑자기 원하지 않는 (광고) 기능이 추가되거나 오래된 폰에서 메모리 문제나 오류 등이 나타나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거나 혹은 있던 기능이 사라지고 그 기능을 쓰려면 유료 버전을 사야되는 것 같은 정책의 변화를 수용해야 할 때가 있다. 원치 않은 업그레이드를 정지시키면 새로운 기능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를 경험하며 툴툴거리겠지만 개발사 측에서는 매번 발생하는 버전마다 다르게 발생하는 오류와 문제들을 개별적으로 관리할 수 없으므로 다른 대안이 없다.
동일한 유전자, 다른 객체
어떤 소설은 작가의 신작 발표 기간이 긴 까닭에 일부러 천천히 읽거나 반복하여 다시 읽게 된다. 말하자면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거나 읽었던 책을 꾸역꾸역 되새김질하면서 오직 작가의 다음 작품이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식이다. 세상에 작가라고는 해당 도서의 저자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목을 길게 늘이고 오매불망 기다리다 보면 이따금 잊기도 하고, 다른 작가의 작품에 빠져 외면을 하게도 되지만 막상 신간이 나오는 순간 또다시 오랜 기다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에게 테드 창은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의 원작이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출간되었던 게 벌써 17년 전 일이다. SF소설로는 이례적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팬층을 거느리게 된 작가는 작품이 나올 때마다 여러 상을 휩쓸곤 하지만 정작 그가 세상에 내놓는 작품의 수는 상당히 제한적인 까닭에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늘 기다림의 연속인 것이다. 작가의 수상 경력을 보더라도 최연소 네뷸러상을 포함해 네뷸러상 4번, 휴고상 4번, 로커스상 4번을 받았다. 다른 작가들은 한 번도 받지 못한 상을 수 차례 받았다는 사실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기술 저술가로 일한다는 사실도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 사이에서는 그닥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때로는 그의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도, 읽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평도, 그리고 '역시 테드 창'이라는 평도 다 그의 몫이자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테드 창의 신작 소설집 <숨>에는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8편의 단편이 실렸던 걸 감안하면 적은 숫자도 아니지만 왠지 아쉬운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작품 역시 나는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는 있지만 줄어드는 쪽수를 보면서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책을 읽는 속도를 일부러 천천히 늦춰보기도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하여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을 한 편씩 리뷰를 쓰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른 것이다.
소설집 <숨>의 첫 번째 단편소설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다. <천일야화>와 같은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바그다드 출신의 상인 후와드 이븐 압바스가 자신의 거래처 사람들에게 선물할 은쟁반을 사기 위해 세공사들의 거리에 있는 어느 가게에 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목이 좋은 자리에 새로 들어선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바샤라트. 그가 보여주는 신기한 물건들 중 하나가 원형 고리 모양의 타임머신이었다.
"바샤라트는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현실의 피막에는 나무에 난 벌레구멍 같은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 그 구멍을 찾아내면, 유리 직공이 녹은 유리 덩어리를 잡아끌어 목이 긴 파이프로 바꾸듯이, 그 구멍을 넓혀 길게 끌어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한쪽 부리의 시간을 마치 물처럼 흐르게 하고, 반대쪽 부리에서는 그것을 시럽처럼 걸쭉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바샤라트의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도 엇습니다. 저는 그저 이렇게 답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로 경이로운 것을 만들어내셨군요."" (p.17~p.18)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바샤라트는 압바스에게 '세월의 문'을 보여주고 문의 양쪽이 이십 년의 세월로 분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믿지 못하는 압바스에게 세월의 문을 통과하여 미래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밧줄 직공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하산이 이십 년 후 유명한 거상이 된 자신을 만났던 이야기와 아지브라는 젊은 직조공이 이십 년 후 자신이 많은 금화를 모았음에도 쓰지는 않고 옹색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금화가 든 궤를 훔쳐 현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와 하산과 결혼하여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라니야가 젊은 시절의 하산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후 압바스는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후회하며 젊은 시절의 자신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한다. 바샤라트는 자신의 아들이 운영하는 카이로의 가게에 과거로 갈 수 있는 '세월의 문'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압바스를 소개하는 편지를 써준다. 압바스는 과연 어떤 경이로운 여정을 걷게 될까?
"이제 저에겐 카이로에 있는 '세월의 문'으로 되돌아갈 노자조차 없지만, 저는 저 자신이 상상 못할 행운을 맛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고, 알라가 어떤 방식의 구제를 허락하시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대교주님이 묻기로 결정하신다면, 저는 미래에 관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기꺼이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제가 가진 가장 값진 지식은 이것입니다.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p.58)
SF작가로서의 테드 창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이야기 스타일에 무한히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의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우리 삶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단편소설 하나하나가 마치 각각의 철학적 주제를 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에서 연유한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회개와 속죄와 용서가 있을 뿐이라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압바스의 고백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