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버림받을까 두려웠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상처를 허용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처를 허락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단순히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나를 쏟아붓고 또 쏟아부었는데 상대가 어떤 그릇을 가지고 있는지, 속도가 어떤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쏟아부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저 열심히 받아주면 되는 줄 알았다. 상대가 주는 그것이 쓰레기라고 해도.
뜨거운 것은 잠시지만, 따뜻함은 오래간다. 나는 이제 뜨거운 사랑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슬프지 않다. 나는 나의 순간적인 감정을 믿지 않고 조심하며, 화가 나고 싸우는 그 순간에도 이 사람을 끝까지 놓지 않으며, 그렇게 잠잠하게 같이 늙어가는 선택을 매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또 헤어져야 하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내가 마음에 담아오고 꿈꾸는 소소한 행복함을, 함께 누리는 것이, 왜 나에게는 이렇게나 힘겨운 것인지. 왜 항상 끝에는 이별이 있는 건지.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연인 관계를 시작할 때 분명 필요한 연료이지만, 안타깝게도 감정이라는 것은 영원히 기댈 만큼 튼튼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남는다. 콩깍지라는 감정이 지나가고, 결국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가 남는 것이다. 그것은 의지로 유지되며, 의도적인 습관으로 감정보다 더 깊은 차원의 관계로 강해지는 것이다.
아프고 또 아픈 뒤, 수많은 실수 뒤에 무엇이 남았는지 누가 물어본다면 나에게는 ‘혹시나’라는 이름의 간절함이라는 것이 남았었다. 그렇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기다렸던 만큼, 실망했던 만큼, 아팠던 만큼 더 단단해진 내 진짜 모습을 찾았고 더 건강한 눈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악마는 늘 행복이 먼 곳에 있다고 우리를 속이지만, 사랑받아야 행복할 것이라고 속이지만, 진정한 행복은 당신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당신을 사랑하는 그것임을 평생 잊지 않고 싶어요. 당신에게 받는 사랑과 행복을 마땅한 권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싶어요.
지금 연애에서 을이 되었다고 슬퍼하지 말자. 사랑에 실패한 것은 오히려 계산하고 있는 그들이다. 그들과의 연애에 실패했을지언정, 당신은 사랑에 실패하지 않았다. 일단 내가 퍼주는 마음을 받을 그릇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된다.
‘이 행복이 영원히 가게 해주세요’라는 행복에 초점을 맞춘 기도가 아닌, 지난날 내가 겪었던 아픔과 간절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결국 성숙한 타이밍이란, 상대방이 아닌, ‘나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사람이 변하는 것보다, 내가 이 마음을 잃는 것이 더욱 두렵다.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사람이 나를 떠날까 봐 걱정 때문에 상대에게 조심하게 되는 관계가 아닌, 그저 ‘이 소중한 사람이 상처받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아파서’라는 생각이 들어 조심하게 되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다.
사랑이 권리가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랑을, 그리고 그 사람을 자신의 소유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관계는 지옥이 되어버린다. 좋은 사람은 맞지만, 좋은 관계는 아니다. 연애만큼은 갑과 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함부로 대하는 그 사람은 당신을 더 사랑한 죄밖에 없다.
을이 되는 사람들은 이렇게 나의 기질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부딪혀도 안고 가는 방법을 배운다. 나의 완벽한 ‘반쪽’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완전한 ‘원’이 되어가는 것이다. 사랑에 아파본 사람들, 곰 같은 사람들. 그렇게 ‘을’끼리 만나서 하는 사랑은, 그러므로 참 이상적이다.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끌어안으려고, 이해하려고, 아파하느라 쓰였던 에너지가 훨씬 덜하기 때문이다.
‘죽겠다’라는 애끓는 감정적인 요인보다, 이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들이 편하게 느껴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같이 있으면 공기마저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 좋다. 서로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람이 좋다. 왜냐하면 결혼이란, 나의 하루를 투명하게 다 보여주는 것이고, 나의 모든 공간을 함께 나눠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 과거가 약점으로 보이나요, 아니면 상처로 보이나요?”
이 질문의 답에 따라서 관계의 방향이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랑, 감당할 만한 사람을 만나세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 인격입니다.
감정은 지나간다. 그러나 사람은 남는다. 서로에 대한 감사함을 평생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세상 모든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것 같아도, 다 내 사람이 다 아닌 것 같아도. 나만의 그 한 사람만 만나면 된다. 그땐 유통기한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간절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간사한 사람에게 간절함을 함부로 내어주지 않길 바란다. 상처를 입었어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꿈꾸면 좋겠다. 왜냐하면 진짜 좋은 것은 얻기 힘든 거니까.
연애할 때 두근두근하는 심장의 떨림을 사랑의 전부라고 믿어왔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사랑에 빠졌다’라는 감정, 도파민이 주는 황홀함과 짜릿함이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의 뜨거움을 기준 삼아서 그것만을 ‘사랑’이라고 정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은 둘이 하는 건데, 나만 하는 희생은 감옥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고통이 없는 사랑에 익숙해지길 권한다.
나를 갉아먹는 연애는 이제 그만하자. ‘사랑할만한 사람’을 만나면 쉬워진다. 이제까지는 고작 더는 상처받지 않는 것이 소원이었다면, 서로를 채워주려고 노력해왔던 사람, 지금까지 나와 같이 을의 연애를 해왔던 사람을 만나면 사랑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아프지 않은 것을 넘어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다. 비록 사람은 사람을 100% 채워주지도, 100% 채움 받지도 못하지만 나날이 이 퍼센티지를 채워나가는 것. 완벽하지는 않아도 오늘의 진심이 조금씩 나아져서 언젠가는 전심이 되길 바라는 것.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