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베스트셀러 오늘의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리뷰 총점9.7 리뷰 76건 | 판매지수 138,711
베스트
국내도서 171위 | 국내도서 top20 6주
구매혜택

포함 국내도서 2만원 이상 구매 시 쉬폰 포스터 증정(각 포인트 차감)

정가
16,800
판매가
15,12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496g | 133*200*30mm
ISBN13 9788954695053
ISBN10 8954695051

이 상품의 태그

도둑맞은 집중력

도둑맞은 집중력

16,920 (10%)

'도둑맞은 집중력' 상세페이지 이동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15,120 (10%)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상세페이지 이동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15,750 (10%)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상세페이지 이동

고통에 관하여

고통에 관하여

16,200 (10%)

'고통에 관하여' 상세페이지 이동

MBC를 날리면

MBC를 날리면

15,300 (10%)

'MBC를 날리면' 상세페이지 이동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12,600 (10%)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상세페이지 이동

타인의 고통

타인의 고통

14,850 (10%)

'타인의 고통' 상세페이지 이동

큰발 중국 아가씨

큰발 중국 아가씨

8,550 (10%)

'큰발 중국 아가씨' 상세페이지 이동

가자에 띄운 편지

가자에 띄운 편지

12,600 (10%)

'가자에 띄운 편지' 상세페이지 이동

시네마토피아

시네마토피아

16,200 (10%)

'시네마토피아' 상세페이지 이동

숫자 사회

숫자 사회

16,200 (10%)

'숫자 사회' 상세페이지 이동

짐승처럼

짐승처럼

12,600 (10%)

'짐승처럼' 상세페이지 이동

타오르는 마음

타오르는 마음

13,050 (10%)

'타오르는 마음' 상세페이지 이동

산 자들

산 자들

12,600 (10%)

'산 자들' 상세페이지 이동

타워

타워

13,500 (10%)

'타워' 상세페이지 이동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13,500 (10%)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상세페이지 이동

낮은 해상도로부터

낮은 해상도로부터

15,300 (10%)

'낮은 해상도로부터' 상세페이지 이동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

12,600 (10%)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 상세페이지 이동

유전자 로또

유전자 로또

20,700 (10%)

'유전자 로또' 상세페이지 이동

행동하는 종이 건축

행동하는 종이 건축

12,420 (10%)

'행동하는 종이 건축' 상세페이지 이동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상품 이미지를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원본 이미지

MD 한마디

[최은영이 건네는 ‘더 가보고 싶어하는 마음‘] 최은영 소설가의 신작 소설집. 서정적이고 세밀한 언어들이 7편의 소설에 아름답게 축적되었다. 소설들은 무너진 관계들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찾아내 “더 가보고 싶”도록 독자에게 연대의 손을 건넨다. 다정하지만 외롭고, 아름답지만 슬프기도 한 장면들이 모여 경건함을 자아내는 소설집. - 소설/시 PD 김유리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007
몫 / 047
일 년 / 085
답신 / 125
파종 / 181
이모에게 / 213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267

해설│양경언(문학평론가)
더 가보고 싶어 / 321

작가의 말 / 347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의 결핍을 안고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가여워하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슬프면 슬프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나를 계속 지켜보는 일. 나는 지금 그런 일을 하는 중인 것 같다.
---「작가의 말」중에서

나는 아직도 그 말을 하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가 잔인함을 잔인함이라고 말하고, 저항을 저항이라고 소리 내어 말할 때 내 마음도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날것 그대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덜 외로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그럴 수 없었던, 그러지 않았던 내 비겁함을 동시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중에서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중에서

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주는 일에 가까웠다.
---「몫」중에서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몫」중에서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몫」중에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희영은 거기까지 말하고 당신을 부드럽게 바라봤다.
정윤 언니가 그랬지. 나는 이 문제로 글을 쓸 수 없다고.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몰라. 가끔씩 언니들의 마음이 너무 가깝게 다가와서 내가 언니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정윤 언니의 말을 생각해.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모른다고. 착각하지 말자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당신은 희영의 여린 얼굴을 떠올렸다. 그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외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몫」중에서

다희와 이야기할 때면 따뜻한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몸에 부드럽게 감기는 물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다희와 만나고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해온 대화가 사실은 서로를 향한 독백일 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을 메우기 위해, 혹은 최소한의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했던 말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 그녀가 나눈 대화의 전부였으니까. 그제야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마음 안에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일 년」중에서

그녀는 그런 상황에 체념한 채로, 그 모든 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고통스러웠지만 살아졌고, 그녀는 살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일 년」중에서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다.
---「일 년」중에서

네가 자면서 배냇짓을 할 때 나는 네 안에서 분주히 세워지고 있을 네 안의 세상이 궁금했고 그곳이 어떤 세상이든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너는 무슨 힘으로 매일매일 자라나는 걸까. 어떻게 그토록 작은 네가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는 걸까. 어떻게 너의 잇몸에서 작고 반투명한 유치가 돋아나는 걸까. 네가 그 부드러운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붙잡았을 때, 나는 내가 너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았지.
---「답신」중에서

하지만 그게 그때 우리가 솔직하지 않았던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아.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들쑤셔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
---「답신」중에서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나를 수습할 수 없을 때 나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노트에 적은 후에 바로 찢어서 없애버렸어. 글은 글일 뿐이라고, 예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어떤 글을 남기기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바람을 담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마음은 실제로 전해지지. 상대가 그 글을 읽든, 읽지 않든 말이야.
---「답신」중에서

하지만 모두 다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었다. 죽어서라도, 다시 태어나서라도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단순한 진실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으며, 그가 자신에게 준 마음을 갚을 방법 같은 건 없다는 진실이었다.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고,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지울 수 없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남으리라는 진실이었다.
---「파종」중에서

엄마와 아빠가 항상 바빴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이모와 함께 보냈다. 말도 이모에게서 배웠다. 내가 재밌다, 무섭다, 행복하다, 예쁘다, 나쁘다 같은 언어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그런 관념을 형성한 바탕에는 이모의 세계관과 해석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모가 예쁘다고 말하는 것들의 특징을 내 안에서 관념적으로 구성했고, 이모가 나쁘다고 하는 것들의 특징 또한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내가 무섭고 싫고 밉다는 말을 하게 됐을 때, 그 말에는 이모의 삶을 통과한 세계관과 해석이 들어 있었다.
---「이모에게」중에서

나는 안정과 독립에 대한 갈급함으로 입시에 매진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나를 몰아세우자 놀랍게도 나를 아프게 하는 생각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건 가학적으로 귀를 막으면서 진짜 문제들을 뒤로 미루는 방식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내가 꽤 잘해내고 있다고 믿었다. (…) 내 수준에서 해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력으로 몸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기분이 좋았다.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고양감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이모에게」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내 안에서는 언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나와
언니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또다른 내가 싸우고 있었지.”

깊은 애정과 투명한 미움이 복잡하게 얽힐 때
한 시절 내가 건네받은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될 때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7편의 긴 편지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리는 데 특출한 감각을 발휘하는 최은영의 소설은 특히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과 부서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데, 더 정확히는 무엇이 관계를 어그러뜨렸는지 치열하게 들여다보는 데 능하다. 이번 소설집의 특징 중 하나는 그러한 관계의 양상을 사회적 문제와의 연관 속에서 헤아린다는 점이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이 정확하게 적시하듯 “최은영의 작품은 언제나 미묘한 파동이 만들어진 원인으로 여러 사회 조건 및 역사적,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짚어왔”고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일에 ‘여전히’ 용감”(「더 가보고 싶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해설, 332쪽)하다. 그러니 소설 속 인물들이 맺는 관계를 살피는 일은 그들이 발 딛고 선 땅이 어떠한지 파악하는 일과 떨어뜨릴 수 없다.

“솔기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바느질이다. 인간관계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독특한 대답”(평론가 정여울)이라는 평과 함께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일 년」은 화자인 ‘지수’가 3년 차 사원이었을 때 계약직 인턴으로 입사한 동갑내기 ‘다희’와 함께 보낸 1년의 시간을 따라간다. 당시 지수는 풍력발전소 개소식을 앞두고 매일 공사 현장에 나가 상황을 점검하는 일을 맡고 있었고, 다희는 중국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지수의 어시스턴트로 근무를 시작한 참이었다. 정규직 사원과 계약직 인턴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함께 카풀을 하며 공사장을 오가는 동안 어디서도 한 적 없는 진실된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를 통해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123쪽)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다른 처지는 예상치 못한 순간 관계에 균열을 내고 둘은 서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만다. 그러나 소설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치는 상황을 마련해놓는다. 중요한 점은 이 짧은 마주침이 두 사람이 다시 관계를 시작하는 산뜻한 계기가 되는 게 아니라, 그 1년의 시간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솔직하게 돌아보는 시간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집중해 그리는 것도 그런 복잡한 어긋남과 화해의 과정이다. 은행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대학교 영문과에 편입한 스물일곱 살의 ‘희원’은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고 한국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말하는”(10쪽) 젊은 강사인 ‘그녀’에게 매료된다. 희원은 지적인 자극을 주는 그녀의 수업을 통해 자신의 글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는 ‘안전한 글쓰기’가 아니었는지 깊이 되돌아보게 되고, 조금 더 진지하고 용기 있게 글쓰기에 다가가게 된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공부는 대학원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거, 희원씨도 알죠”(37쪽)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대답에 희원은 상처를 받고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뱉어버린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는지 희원이 어림해보게 되는 것은, 시간이 흘러 자신이 그녀와 마찬가지로 젊은 강사가 되고 나서이다. 그녀를 떠올리며 희원이 “비록 동의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마음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며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43쪽)라고 담담히 고백할 때, 우리는 희원과 그녀 사이에 이어져 있는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빛을 보게 된다.

한편 「일 년」이 관계의 변화 위에 비정규직 문제를 겹쳐놓는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용산’이라는 공간을 부각시킨다. 소설은 희원과 그녀를 공통의 기억으로 가깝게 묶어주는 공간이자 정부의 과잉 진압으로 참사가 일어난 장소인 용산을 글쓰기의 바탕으로 환기함으로써 글을 쓰는 일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해나간다. 「몫」 역시 관계와 사회, 글쓰기라는 이번 소설집의 핵심 키워드가 집약돼 있는 작품으로, 교지 편집부 활동을 함께하며 가까워진 세 인물이 글쓰기를 통해 경험하는 성취와 보람, 한계를 강렬하게 그려낸다. 1996년 가을, 도서관 앞에 쌓인 교지를 우연히 집어들었다가 ‘정윤’의 글을 읽고 마음을 빼앗긴 스무 살의 ‘해진’은 운명처럼 교지 편집부에 들어간다. 해진은 날카롭고 유려한 글을 쓰는 동갑내기 ‘희영’의 모습에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조금씩 자신만의 글을 써나가면서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75쪽)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여성문제를 둘러싸고 갈등과 논쟁이 첨예했던, 어쩌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1990년대의 상황은 해진과 희영, 정윤 사이에 점점 틈을 만들어낸다.

같은 여성이라는 조건만으로 연대나 화해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음을 인정하고 여성문제의 복잡함을 살피는 「몫」의 문제의식은 「답신」에서도 이어진다. 수록작 가운데 가장 온도가 높은 이 소설은 ‘나’가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된 언니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왜 언니가 아닌 조카에게 편지를 쓰는 걸까. ‘나’는 왜 더는 언니와 조카를 만날 수 없게 된 걸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보일 만큼 완강한 폭력이다. ‘나’는 조카인 ‘너’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한다. ‘나’는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빠의 방치 속에서 자라왔지만 책임감이 강한 3살 터울의 언니가 어려서부터 ‘나’의 부모 역할을 하며 가장 큰 힘이 되어준다. 그런 언니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날 집 앞에 검은색 세단이 멈춰 서더니 그 안에서 뜻밖에 언니가 내린다. 언니는 당황스러워하며 우연히 만난 학교 선생이 태워다줬을 뿐이라고 변명하듯 말하지만 ‘나’는 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언니는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자신보다 열다섯 살이 많은 그 선생과 결혼할 거라고 말한다. 임신을 했다고, 그 남자가 자신을 책임지겠다고 했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 상견례 자리에서, 그리고 결혼한 뒤에도 거리낄 게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노골적으로 언니를 무시한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 참을 수 없이 분노하면서도 자신이 어떻게 언니를 도와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분노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고 만다. ‘나’는 “사랑하는 언니를 보호하고 싶어서, 언니가 그렇게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그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어서”(177쪽) 온 힘을 다해 그에게 맞서기 시작한다. “그때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170쪽)라도.

“바라지 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스스로에게 새겨진 흔적을 정직하게 응시하며
타인과 사회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


후반부에 나란히 배치된 세 편의 소설 「파종」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흔히 ‘정상가족’이라 여겨지는 것과는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보살펴준 오빠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동생의 이야기인 「파종」은 삶에 대한 오빠의 태도와 그가 남긴 사랑을 은유하는 공간인 ‘텃밭’을 배경으로 남매가 나눈 마음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이모에게」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나’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이모를 떠올리며 써내려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감정적으로 인색하고 엄격한 이모를 견딜 수 없어하며 자신에게 깊이 새겨진 그 흔적을 부정하려 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누구와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아껴준 이모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때문에 ‘나’가 “나는 이모를 판단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런 판단은 너무 쉬우니까. 나는 그런 쉬운 방식으로 이모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217쪽)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이모를 받아들이는 일이 도무지 견딜 수 없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이 되기도 하리라는 걸 알게 된다.

「파종」이 남매를, 「이모에게」가 이모와 조카를 다룬다면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가장 복잡하면서 어려운 모녀 관계를 긴 호흡으로 살핀다. 육십대 여성인 ‘기남’은 홍콩에 살고 있는 작은딸 ‘우경’을 만나기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기남이 새삼 실감하는 것은 자신과 우경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선이지만, 그런 기남에게 뜻밖에 위안이 되는 존재는 바로 일곱 살의 손자 ‘마이클’이다. 마이클은 오랜만에 만난 기남의 관심을 끌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한편으로, 맑은 표정으로 기남에게 예상치 못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기남은 우경과 마이클과 함께 홍콩 시내로 나들이를 갔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 때문에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집에 돌아온 기남은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다 불현듯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기남의 곁에 마이클이 다가와 앉더니 마치 기남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한다. “부끄러워도 돼요. 부끄러운 건 귀여워요”(318쪽)라고.

기남은 조심스럽게 마이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숱이 많은 곱슬머리가 우경의 어린 시절과 똑같았다.
“마이클은 다정하구나.”
“맞아요. 엄마가 그랬어요. 마이클은 너무 다정해. 한국 할머니처럼.”
“정말?”
“근데 너무 다정하면 안 된대요.”
마이클이 잠시 기남을 보다 말을 이었다.
“너무 다정한 건 나쁜 거래요.”
따뜻한 통증이 기남의 등과 배에 퍼져나갔다. 기남은 마이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은 자신을 몰랐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애가 오히려 자신보다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무슨 이유였을까. 부끄러워도 돼요. 기남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말. 기남은 그 말을 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319쪽)

마이클의 말에 기남이 느끼는 ‘따뜻한 통증’은 최은영의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 안에 퍼져나가는 감정과도 같다. 상처가 정확하게 건드려질 때, 잘 모르는 누군가가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 그래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으리라고 예감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과 상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관계 안에서, 사회 안에서 무엇과도 무관한 채 서 있을 수 없는 우리의 존재. 그간 빛나는 작품들을 선보여온 최은영이 자신의 글쓰기를 끊임없이 점검하며 이번 소설집에 또렷이 새겨넣은 것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희미한 빛을 찾아 어두운 허공을 오래 찬찬히 응시한 자의 고요와 열기를, 마치 한 자루의 초에 불을 붙이고 그것이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행위와 같은 경건함으로 그려낸다. 이런 문장은 당해낼 길이 없다. 나는 늘 최은영에게 다른 것을 바란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늘 이것을 바라왔다는 걸 깨닫는다. 비슷한 것 같지만 읽을 때마다 생판 다른, 최은영은 그런 작가다.
- 권여선 (소설가)
최은영은 정치적 치열성에 걸맞은 빈틈없는 서사의 힘을 구사하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그는 편재(遍在)하는 권력과 그 압도적 기울기, 편재성(偏在性)을 추적한다. 그는 ‘갑을’을 넘어 갑을병정…의 세계를 드러낸다. 우리는 그의 문학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지 않는지를 알게 된다. 이것은 축복이고 해방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문학의 존재 이유는 없다. 그의 문장은 미시와 거시, 로컬과 글로벌, 다정함과 외로움, 분노와 체념의 살얼음판이다. 우리의 일상이 여기 있다. 긴장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그의 문장에 잠겨들 무렵,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운다.
- 정희진 (서평가,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그러니 최은영의 인물들이 특별히 더 작고 연약하게 느껴진다고 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는 작고 연약한 면을 최은영의 소설이 기민하게 포착할 줄 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아지고 연약해진 덕분에 연결된 타인을 통해 영향을 받고, 변화할 용기를 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최은영의 화자들 중 결말에 이르러 바뀌지 않는 인물은 거의 없다. 최은영의 인물들은 약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아닌 스스로를 성찰하기를 망설이지 않음으로써 회복하는 자리에 있고자 한다. 소란으로 가득찬 침묵 속에서, 각각의 존재가 품고 있던 목소리의 빛깔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최은영은 회복하는 이야기를 쓴다.
- 양경언 (문학평론가)

회원리뷰 (76건) 리뷰 총점9.7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주간우수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_최은영 소설 &#129653;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R**a | 2023.09.12 | 추천15 | 댓글16 리뷰제목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소설 문학동네 출판     7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어둡고 힘들었던 시기와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 포기하고 싶었지만 끝내 이루었던 순간들. 다양한 감정들을 나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언어로 글로 표현한다는 것에 놀라웠다. 책 전체를 필사하먄 작가님 같은 언어를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만큼.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리뷰제목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소설
문학동네 출판

 

 

7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어둡고 힘들었던 시기와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 포기하고 싶었지만 끝내 이루었던 순간들. 다양한 감정들을 나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언어로 글로 표현한다는 것에 놀라웠다. 책 전체를 필사하먄 작가님 같은 언어를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만큼.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일 년>, <이모에게> 소설이 가장 좋았다. 다양한 인물들이 가진 삶이 나와 내 주변과 닮아있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살아내다보면 살아진다는 말을 고요하게 마음에 전달해준 책 ♥

 


 


◈ 작가님과 줌 토크에서

 

*작가님이 최근에 읽은 책
- 대만 ‘우밍이 작가’의 <도둑맞은 자전거>
 (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를 읽고 알게 되었다.)
- ‘우춘희 작가’의 <깻잎 투쟁기>

 

*좋은 자극을 준 책
-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
  작가님이 경력과 압력에 빠지지 않고 글을 잘 쓰는지 궁금하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포터’로 분위기는 원래도 작가님 환한 미소에 친근했지만 더 가까워진 느낌 ^^ 32-33쪽을 작가님 목소리로 들으니 이야기가 편하고 집중이 더 잘되었다. 

 

*책 이야기
- <파종>이라는 단어의 피상적이면서 저항하는 의미가 좋아 글을 쓰게 되면 제목으로 쓰고 싶었다.

- <답신> 썼을 때는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었다. 상처받고 보복하고 싶은 마음들이 있지만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은 잘 살고 있을 때의 절망들이 있었다. 유사한 상태의 인물이 있는데 경험을 하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 끊어버리고 나아가고 싶다. 삶에 찾아오는 불행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마지막 문장을 쓰면 그 세계가 닫힌다는 생각으로 쓸 수가 없다. 사라지는 것은 내가 세계있다는 것을 잊는 고통을 잊는 것이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인물들과 만났던 시간과 인연은 내 안에 남아 있어 일체감이 있다. 글로 언어로 쓰면서 정리가 되고 납득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희원은 2009년 2학기, 구 년 전 스물일곱 대학교 3학년 학사 편입생. 
은행을 그만두고 늦게 대학생활을 하다 시간강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게 되는 일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녀의 삶을 동경하고 또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여자, 시간강사의 말이 주는 힘은 남자 정교수보다 약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한계에 있는 그녀에게 상처주는 말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자신이 동경했지만 자신도 그렇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눈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 같은 아련함이 가득했고, 아주 희미한 빛처럼 흐릿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글로 쓰는지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어도 너무 좋은 글 ♥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P11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P43-44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쫓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P 44

 


 

 

 

<몫>

 

신입 대학생 혜진, 희영, 한 살이 더 많은 정윤.  
공동체 안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겨진 사람들의 몫. 사람으로써의 몫. 
풋풋했지만 누구보다 열정 강했고 삶에 대해 진심이었던 스무살. 왜 이 대학생들이 멋있게 보이는 걸까.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있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P52

 

 

<일 년>

 

회사 선배인 그녀는 인턴 다희와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다희는 허물없이 귤을 까먹고 대화했는데 그 모습을 특이하게 느꼈다. 자신은 입사 초기 최선을 다하고도 낙담했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다희의 행동이 부러웠나 혹은 이해가 되지 않았었나. 

반복되는 체념 속에 빛을 잃어가고 껍데기만 남은 다희의 표현은 일상에 지쳐버린 일하는 사람들의 고됨같았다. 
오래 전 한 사람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았고 그 사람만 보면 자동적으로 내 힘든 사정을 쏟아내듯 말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힘든 마음을 담아 내준 사람이지만 그 힘듦을 담고 있어서 알고 있어서인지 어느 순간 내가 자꾸 거리를 두게 된 적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실망하는 거죠. 전 언제나 사람들의 기대만큼 밝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 너 이런 애였니? 이러고 가버리는 거예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말하고 다희는 힘없이 웃었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잃고 싶지 않으니까 무리를 하게 돼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P97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겉돌지 않았고, 그들의 세계에 나름대로 진입했다. 모든 건 변하고 사람들은 변덕스러우니까. 그러나 그 후에도 그녀는 잠들지 못하거나 질이 낮은 잠을 끊어 자며 아침을 맞았다. P108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P115 (-서운함을 이렇게 글로 표현한다는 것에 또 놀라움)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 묻곤 하니까.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 잠근다. P119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P120

 


<답신>

 

엄마를 닮은 나와 아빠를 닮은 언니. 그런 언니에게 수치스럽다, 창녀같다는 말은 어린 아이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고 한말이었을까. 아빠는 남겨진 딸들에게 꼭 그렇게 생채기를 내야했을까. 

나쁜남자의 절정을 달리는 형부와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는 언니. 언니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느낀 언니에 대한 감정을 조카는 알아주길 바래서 편지를 쓴 것 같다. 많이 슬프고 여자를 기만하는 남자들로 기분이 나쁘게 만든 소설. (너무 공감이 되어서요^^)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나의 욕구를 무시했지. 그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P133

 

밤하늘 아래의 불빛들이 반짝이면서 너는 앞으로도 살아야 해, 살아가야 해, 하고 낮게 합창하는 것 같았어. 더 알고 싶은 것도,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이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고 자꾸만 누가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지. P160-161

 

 

<파종>

 

창작과비평 문학부분에서 읽고 이번 소설집에서 두 번째이다.
소리와 엄마는 소라의 삼촌이자 엄마 민주의 오빠의 빈자리를 그리워한다. 오빠가 떠나기전 그녀의 힘든 것을 손바닥에 다 주고 가져가겠다는 말을 하지만 고개를 흔들며 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오빠가 이제는 편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담겨있었다. 소리와 엄마는 삼촌이 일구던 밭을 다시 일구며 그의 흔적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운 마음을 함께 해본다.

삶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저렇게 동생의 힘든 마음까지 생각할 수 있을까. 가정폭력 속에 자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가족의 아픔을 본인 마음에 품어줄 수 있는지  삼촌은 따뜻한 사람이었고, 충분히 빈자리가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언어로 그 적는 순간순간들을 복원했다. P186


 

 

세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시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길을 돌고 돌았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버리고 싶었다. P204-205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꼭 버려지는 것 같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 마음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P206

 

<이모에게>

 

파종의 삼촌 같은 남자는 드물다. 대게의 남자들음 밥상 숟가락도 안놓거나 여자를 깔보는게 습관인 사람들이 자주 나오는데 이모에게의 아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
희진은 엄마보다 나이가 20살도 넘게 차이나는 이모와 함께 살며 이모의 양육방식으로 자랐고, 부모에게도 할 수 없었던 감정을 유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이 이모였다.

어릴 적 함께 살았던 막내 고모가 생각났다.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숙제도 곧잘 봐줬던 고모. 어른들의 관계로 연락도 이제는 닿지 않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늘  있었던 고모는 희진의 이모같은 느낌이어서 그런지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잘 컸고,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나를 몰아세우자 놀랍게도 나를 아프게 하는 생각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건 가학적으로 귀를 막으면서 진짜 문제들을 뒤로 미루는 방식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내가 꽤 잘해내고 있다고 믿었다. P246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고양감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P247

 

돌아보면 그 시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나의 공포와 분노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쉽게 겁내지 않고, 사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연출했다. P248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헐값에 어린 막내를 팔아버린 가족. 식모살이로 성장한 기남은 홍콩에 사는 둘째 딸 우경이 자식임에도 불편하다. 세월이 지나 가족이라고 생모 생신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불청객같은 대우에 기남은 명동 거리를 방황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은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식모살이하는 사람이었고, 결혼해서도 남편과 자식에게 무시받는 사람이다. 탁구를 칠 때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감정이 편하다고 느낄만큼 자신에게 뿌리 깊이 주변의 멸시의 행동과 시선이 익숙했던 기남. 


나도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직업과 자라온 환경만으로 무시하지는 않았나. 가족이나 친구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진 않았나 생각해보게 했다.

 

 

#아주희미한빛으로도 #최은영 #소설 #문학동네 #독파 #독파챌린지 #완독챌린지 #앰배서더3기 #앰배서더 #신간도서 #책추천 #최은영을읽는물결 #진실-치열-용기 #뒤늦게깨달은사랑 #스스로의몫 #돌봄 #서평 #내돈내산

1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5 댓글 16
구매 파워문화리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결핍을 채워가는 뜨거운 감정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블* | 2023.10.29 | 추천8 | 댓글1 리뷰제목
소설이란 무릇 재미있어야 하고,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물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건 당연하다. 감동의 파도만큼 우리를 이루는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부모와 자녀, 이모와 조카, 정사원과 인턴사원, 후배와 선배. 교수와 학생. 모든 관계가 그렇듯 좋은 관계였다가 불편한 관계로 변하는 건 순간이라 할 수 있다.   2018년부터 발표한 단편을 모든 작;
리뷰제목

소설이란 무릇 재미있어야 하고,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물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건 당연하다. 감동의 파도만큼 우리를 이루는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부모와 자녀, 이모와 조카, 정사원과 인턴사원, 후배와 선배. 교수와 학생. 모든 관계가 그렇듯 좋은 관계였다가 불편한 관계로 변하는 건 순간이라 할 수 있다.

 

2018년부터 발표한 단편을 모든 작품으로 총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일곱 편의 작품 중 주제가 몇 갈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어떤 사건과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다룬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과 치유를 말한다. 더불어 여성으로서의 위상과 그에 따른 차별과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민낯을 발견할 수 있다.

 


 

답신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교사로서 도움이 필요한 소녀의 마음을 빼앗아 유린하고, 그것도 모자라 결혼한 언니에게 폭력을 가했다. 그 순간 동생은 형부를 죽이고 싶었다. 또 다른 연약한 소녀에게 같은 짓을 저질렀던 그를 벌하고자 했던 거다. 쌍방폭행이 아닌 일방 폭행이 되어 있었다. 구치소에 수감 되어 재판받을 때 언니는 반대 증언을 했다. 그렇게 증언할 수밖에 없었겠으나, 고모할머니의 장례식 때 제대로 대화라는 것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들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마주할 수 없었던 거다. 사랑하는 언니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했던 조카의 생일을 축하하는 쓰는 글은 사회 전반에 깔린 여러 형태의 폭력을 고발하는 글이었다.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배운다. 엄마 아빠를 대신해 희진을 키웠던 이모에게에서 희진은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던 이모를 통해 삶을 배웠다. 희진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올 때 데리고 나가서 자랑했던 이모는 칭찬을 삼갔다.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삶을 살았기에 희진에게도 같은 것을 원했다. 아빠는 아빠보다 열일곱 살이 많았던 이모를 은근히 무시했다. 희진은 수영을 할 때면 자신을 느리게 나는 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 공군 소위가 되어 비행기를 조종했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그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이모였기에 희진을 자랑스러워했다.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우리가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 슬프면 울고 애써 웃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것처럼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은 대학 교지 편집부원으로서 글을 쓰는 것과 그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심리를 말한 작품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주제를 정하고 취재한 내용을 취지에 따라 정확한 논점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해진은 정윤의 취재에 기반한 글을 보고 빠져들게 되어 교지 편집부원이 되었다. 수습 세미나 간사였던 정윤이 희영과 해진의 주제 도서에 대한 발제문을 평가했다. 희재의 글에 자주 칭찬했고 날카롭고 유려한 희영의 글에는 매번 비판했다. 셋은 세미나를 끝내고 자주 어울렸으나 정윤은 희영이 쓴 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해진은 희영의 글을 아주 좋아했다. 아내 폭력에 대한 주제를 함께 준비해보자는 희영의 제안이 좋았다. 어떤 이유로 희영이 정윤을 보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희영이 떠난 뒤 정윤과 마주한 희재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상대방을 이해하는 수도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편협해지고 마는 게 사람이라는 거다. 관대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일 년의 지수와 다희는 스물일곱 살의 동갑내기로 정사원과 일 년 계약 인턴사원으로 만났다. 중국어에 능통한 다희는 지수의 어시스턴트로 다희를 태우고 공사 현장에 다녔다. 차 안에서 대화를 자주 나눴던 그들은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정사원이 인턴사원을 두고 인사 문제로 이야기할 때의 불편함이 있다. 별다른 뜻 없이 뱉었던 말이 타인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일 수도 있다. 속마음과 달리 와전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관계의 변화까지 생긴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들 없는 집의 여섯 번째 딸이었던 기남은 가족들에게 버려져 운영하는 공장의 주방에서 일했다. 둘째 딸 우경의 초대로 홍콩에 오게 된 기남은 한국 반찬이 들어있던 수화물 가방 하나를 분실했다. 기남은 우경이 불편했다. 다만, 우경의 아들 마이클은 착하고 다정다감하여 기남을 잘 따랐다. 딸에 대한 미안함과 서운함이 마이클의 말 한마디로 사라졌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52페이지, 중에서)

 

여성 서사의 작품으로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들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춘다. 희진, 희영, 희재 등의 이름이 주인공으로 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작품으로 읽혔다. 끈끈한 관계였다가 다시는 마주치지 않는 냉정한 사이로 돌변하는 관계, 결핍을 채워가는 관계에서는 오는 뜨거운 감정이 솟구쳤다.

 

 

#아주희미한빛으로도 #최은영 #문학동네 ##책추천 #책리뷰 #북리뷰 #도서리뷰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단편소설

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8 댓글 1
구매 포토리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삶**소 | 2023.09.17 | 추천8 | 댓글0 리뷰제목
최은영의 신작 단편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총 7편의 단편 속에는 여성들의 서사가 담겨있다. 비정규직 여성이 겪는 부당대우와 용산 참사 여성 문제에 대해 지속해서 말하자 했던 자와 그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자들의 대비 죽은 오빠이자 삼촌과 지냈던 시절 각자의 기억과 추억을 가진 모녀 어린 시절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돌봐주던 이모와의 이야기 등 주인공이자 화자;
리뷰제목

최은영의 신작 단편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총 7편의 단편 속에는 여성들의 서사가 담겨있다.

비정규직 여성이 겪는 부당대우와 용산 참사
여성 문제에 대해 지속해서 말하자 했던 자와 그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자들의 대비
죽은 오빠이자 삼촌과 지냈던 시절 각자의 기억과 추억을 가진 모녀
어린 시절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돌봐주던 이모와의 이야기 등
주인공이자 화자인 여자들의 깊이 있고 섬세한 사서를 만나볼 수 있다.

7편 모두 좋았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답신」이다.
여성,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굴레에 순응하며 불행한 삶을 사는 언니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동생이 형부를 죽이게 됨으로써 회복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속의 그 절절함이 가득했다. 부디 이 가족에게 서로를 위했던 마음을 다시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p.21)

내 마음 안에서 나는 판관이었으니까. 그게 내 직업이었으니까. 나는 언니를 내 마음의 피고인석에 자주 앉혔어. 언니를 내려다보며 언니의 죄를 묻고 언니를 내 마음에서 버리고자 했지. 그게 내 가나를 버리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p.175)

'우리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 이모?' 이모는 내가 여린 탓에 함부로 대우받고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이모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모는 자기 자신을 대하듯 나를 대했을 것이다. (p.261~262)

진경을 알기 전까지 기남이 만난 사람들은 그녀에게 값을 요구했다. 자신들이 준 작은 마음이나 호의까지도 모두 두 배 세 배로 돌려받길 원했다. 그래서 기남은 사람으로 사는 일이 원래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다. (p.309)

여성들의 깊이 있고 섬세한 감정선 그리고 상처, 상실, 갈등을 겪은 후 회복과 치유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기에 이야기 속 우울함을 넘어설 수 있다. 누군가는 저자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을 대부분 비호감으로 그려내 불편하다고 하지만 난 여전히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저자가 탁월한 감수성이 너무 좋다. 그리고 가정에서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계속해나갔으면 한다. 그렇게 나는 나와 또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공감하고 싶다.

 

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8 댓글 0

한줄평 (119건) 한줄평 총점 9.8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최은영만큼 담담하면서 섬세하게 사람을 울릴 수는 없을 것이다
13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3
YES마니아 : 플래티넘 하* | 2023.08.07
구매 평점5점
사랑과 미움을 구분 지을 수 없는 대상은 날 힘들게 해
10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0
k*****k | 2023.09.02
구매 평점5점
7편 다 너무 좋아요~단편도 깊은 여운을 줄수 있다는걸 제대로 보여주심
3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3
YES마니아 : 골드 여***이 | 2023.08.18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5,12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