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클래식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제목을 알지 못해서다. 20년 가까이 클래식 강의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토로하는 어려움이 바로 제목이 어렵다는 것이다. 클래식을 많이 듣긴 하는데 제목을 외우지 못해서 다시 들으려고 해도 음악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물론 외국어에다 전문용어가 혼합된 제목을 단박에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클래식의 제목을 작품번호나 조성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물며 전공자도 세상의 모든 클래식을 기억하는 건 아니라고 하면 조금 마음이 가벼워질까? 하지만 적어도 네가 좋아하고 즐겨듣는 음악 정도는 제목을 기억해서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클래식 음악이 너에게 와서 의미를 갖는다.
--- p.22, 「이름을 불러줄 때 클래식은 네게로 와 꽃이 된다」중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자세로 클래식 음악도 들어보면 어떨까? 음악을 들을 때 단순히 ‘Hear’의 자세가 아니라 ‘Listen’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클래식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만 들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 p.31, 「클래식을 네 삶의 무기로 만드는 법」중에서
바로 여기에 형태가 없는 고전인 클래식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남는 이유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 클래식이 스며들었을 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물론 대중가요도 인생을 위로하는 힘이 있지만, 때론 대중가요에 붙은 가사가 오히려 한정된 상황을 만들어서 딱 ‘나를 위한 노래다!’라고 느끼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 가사가 없는 클래식은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기에 각자의 상황에 맞는 음악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 p.41~42, 「형태가 없기에 어려운 고전, 클래식」중에서
예술가 대부분은 세간의 평가와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를 좋아할 순 없다는 진리를 일찍 깨달은 사람도 있다. 바로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다. 그는 우리에게 《사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뿐 아니라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이라는 곡은 서울시 지하철 환승음악으로 흘러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런데 비발디보다 200년 뒤쯤에 태어난 스트라빈스키는 비발디를 두고 “똑같은 곡을 100곡이나 쓴 사람 아니야?”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비발디의 반복되는 음악적 선율과 형식을 비꼬아 말한 것일 텐데, 비발디가 음악을 작곡하면서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스트라빈스키의 입장에서는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는 지루한 음악이지만, 누군가는 그런 반복 때문에 귀에 잘 들린다며 좋아한다. 비록 비발디가 먼저 죽어서 스트라빈스키의 평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비발디는 아마 그런 악평을 들었더라도 개의치 않았을 성격이다.
--- p.82~83, 「유명한 작곡가더라도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중에서
오케스트라곡 안에는 서로를 위한 배려와 조화가 자연스레 녹아 있다. 하나가 되어 들리는 음악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제서야 악기마다 들려주는 다른 소리가 들린다. 모든 악기가 같은 소리만 낸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다양함과 풍성함이 사라진 음악은 감동도 약할 수밖에 없다. 어떤 부분은 바이올린이 연주해서, 어떤 부분은 비올라가, 어떤 부분은 타악기가 연주해서 각각 미세하면서도 확연하게 다른 소리를 내기 때문에 듣기 좋은 것이 오케스트라 음악이다. 아무리 멋진 바이올린 연주라도 비올라가 내야 할 소리를 바이올린이 대신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에 오케스트라가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p.91, 「사람 때문에 힘들 땐 오케스트라를」중에서
화가 날 때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을까? 웅장하고 환희에 찬 음악을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차분한 음악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좋을까? 아마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 큰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과 조용한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에 따라 도움이 되는 음악이 각각 다를 것이다. 취향은 변할 수 있는 것이니 때에 따라 다른 음악이 너를 위로하기도 할 것이다. 다만 나는 너에게 화를 다스리는 좋은 방법으로 ‘죽음’을 모티브로 한 음악 듣기를 권한다. (…)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리스트의 〈죽음의 춤〉, 차이콥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이 그것이다. 죽음의 선율에 평생 사로잡혔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도 빼놓을 수 없다.
--- p.99~100, 「클래식은 나쁜 감정을 무디게 해준다」중에서
말러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과 실패가 모두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구나 인생에서 추운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어 몸을 움츠려야만 하는 때가 있다. 나도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뒤 막상 꿈꾸었던 삶과 거리가 있음을 확인했을 때 무척 괴로웠다. 유학하면서 IMF로 경제가 좋지 않았을 때, 귀국해서 누구보다 빛날 줄 알았지만 현실은 이미 모든 것이 정해진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일을 찾으려 했지만 피아노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음을 알았을 때, 모두가 절망의 순간들이었다. 모든 것을 걸었는데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꼈던 그 순간, 말러의 〈부활〉은 나에게 전부를 잃은 건 아니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 p.120~121,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자신이 없을 때」중에서
전 세계 오페라 순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카르멘》은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1838~1875)가 작곡했다. (…) 초연 3개월 뒤 비제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는다. 실패도 성공도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인데 건강까지 해쳐가며 스트레스를 받은 조르주 비제를 보면 안타깝다. 실제로 그는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 작곡한 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조리 찢어서 버렸기에 후대에 전해지는 음악이 많지 않다. (…) 나는 네가 겪은 실패를 인생 전체로 확대 해석하지 않았으면 한다. 실패에 상반된 반응을 보인 조르주 비제와 자코모 푸치니의 모습에서 보듯,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이다.
--- p.181~185, 「위대한 작곡가도 수많은 실패를 했다」중에서
언젠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인생을 악장으로 구분한다면 1악장은 10대, 2악장은 20대, 3악장은 30대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 지금까지 살아 보니 ‘인생은 끝까지 살아 보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이 깊이 와닿는다. 매 악장마다 다른 음악이 펼쳐지는 클래식처럼 우리의 인생도 매 순간 다채롭다. 그러니 나는 네가 설령 인생의 1악장 첫 음을 누르는 것부터 실수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음까지 당당히 누르길 바란다. 클래식에 악장이 있는 것처럼 인생은 우리에게 숨을 쉬고 재정비할 기회를 반드시 주기 마련이고, 아무리 연주하기 힘든 악장이라도 반드시 끝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악장이 닫히면 새로운 악장이 열리듯 네 인생에도 힘든 순간이 지나면 환희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 p.207~208, 「클래식에 악장이 있는 것처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