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속 정글에는 세 부류의 애들이 있다. 누가 봐도 강자인 사자 같은 애에게는 가만히 있어도 애들이 모여든다. 이 교실에서는 이서희, 저 애가 바로 사자다.
“서희야! 오늘은 더 예쁘다. 틴트 못 보던 색인데, 새로 산 거야?”
사자가 등장하면 벌 떼처럼 하이에나 무리가 달려든다. ‘나는 잡아먹지 말아 주세요.’라는 듯 적당히 아부하며 사자의 비호를 받고 싶은 거겠지.
“응, 이건데 선물 받았어.”
사자가 선물 받은 틴트를 보여 주며 도도히 말했다.
“우아, 너한테 진짜 잘 어울려!”
가장 먼저 지윤이가 다가갔다. 하이에나들은 사자가 기분이 좋은지부터 살핀다. 사자가 기분이 좋으면 일단 다행이다.
“어! 나도 이거 사려고 했는데. 우리, 커플로 바르고 다닐까?”
서희 옆에서 한껏 들뜬 수민이가 거들었다. 갑자기 서희 표정과 함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사자는 특권을 독식하고 싶어 한다. 절대 하이에나 따위와 나눌 리 없다.
서희의 기분을 알아챈 지윤이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근데…… 너한테는 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아, 그, 그렇지? 나는 웜톤이니까……. 서희는 어떤 색이든 다 잘 어울리잖아. 완전 부러워.”
엄청난 태세 전환이다. 잘 훈련된 하이에나가 분명하다. 그제서야 사자는 갈퀴를 뽐내며 편안하게 미소 짓는다. 나머지 애들은 언제 사냥감이 될지 모르는 임팔라와 얼룩말 같은 초식 동물이다. 초식 동물은 사자와 하이에나를 피하거나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자와 하이에나, 그리고 초식 동물. 일주일 동안 관찰한 6학년 1반도 여느 정글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피나연을 알기 전까지는.
--- pp.14~17
“아, 나 완전히 당황했잖아. 당연히 밴쿠버가 수도인 줄 알았는데.”
다른 애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을 터인데, 아까 가장 당황했을 서희가 다시 수도 퀴즈 이야기를 꺼냈다.
“서희야, 난 밴쿠버라는 도시가 있는 줄도 몰랐어.”
수민이가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 고기 냄새가 풍기는지 하이에나들이 와르르 몰려들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웠어.”
지윤이도 서희의 기분을 맞추는 듯 보였다.
“답이 뭐였지? 난 아직도 모르겠어.”
“야, 그거 알아서 뭐 해?”
다들 사자의 기분을 좋게 하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쟤는 오타와를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서희가 고갯짓으로 피나연을 가리켰다.
“수도 덕후인가 보지. 크크.”
“하하하. 야, 수도 덕후가 뭐냐?”
“쟤가 이상한 거야. 쟤, 평소에도 좀 이상하잖아.”
“무슨 성이 피씨야?”
“나, 어제 종이에 손 베었거든. 피 나.”
“킥킥킥.”
“나, 진짜 피 난단 말이야!”
갑자기 하이에나들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무슨 소리인지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좋은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 pp.29~30
공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더니 피나연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혔다. 피나연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수민이와 서희는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너무 세게 맞은 것 같은데……, 괜찮은 건가?’
만약 다른 애가 그렇게 공을 맞았다면 누군가는 달려가서 괜찮은지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피나연에게 다가서지 않았다. 나는 내 발끝을 바라보았다. 내 발끝도 앞으로 나아가는 걸 망설이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자.’
피나연은 곧 일어서더니 선생님에게 뭔가를 말하고서 강당 한쪽에 쪼그려 앉았다. 허옇던 얼굴이 공에 맞아서 시뻘게졌다.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럴 땐 내가 타깃이 아니어서 다행인 건가?’
작년에 있었던 일보다 더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공을 맞은 것보다 더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피나연이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자 마음이 더 불편했다.
하지만 잘 안다. 피나연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다가서지 않은 것은 내 선택이다. 이 불편한 느낌의 책임은 나한테 있는 셈이다. 다시는 그 어떤 사건에도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다고 애써 핑계 삼았다.
--- pp.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