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분석(「옮긴이의 말」에서 발췌)
1)구성
우선 1940년대 초의 니우청 가정 이야기는 1980년 6월 독일에서 47세의 니자오가 회상하는 형태로 서술된다. 니자오는 중국 학자 대표단의 일원으로 독일을 방문한 길에 아버지의 옛 친구 볼프강 슈트라우스(스푸강)를 방문했다가 거기서 ‘난득호도’라는 편액(그것은 유년 시절 그의 집에 걸려 있던 바로 그 편액이다)을 발견하고, 망각 속에 묻혀 있던 과거사를 회상하게 된다. 이것이 제1장이고, 제2장부터 제23장까지가 1942~43년의 과거사의 서술이다. 그리고 그뒤에 속집 5장이 더 붙어 있다. 속집 제1장은 다시 1980년의 니자오에게로 되돌아와 그의 귀국과 아버지 니우청의 죽음을 서술하고, 제2장은 니자오를 시점으로 1944년 이후의 니우청의 행적을 회술하고, 제3장은 외할머니 쟝자오씨와 이모 쟝징전의 삶과 죽음을 회술하고, 제4장은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다른 인물들의 후일담을 전하며, 제5장은 작가가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1985년 여름에 니자오를 만난 일을 서술한다.
2)시점과 화법
사실주의 서술 미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서술의 불일치와 산만함 내지 혼란스러움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바로 이 서술 형태에 이 작품의 비밀이 숨어 있다. 작중인물 니자오가 바로 작가 왕멍이고 작가 왕멍이 바로 작중인물 니자오이다. 『변신 인형』은 왕멍의 자전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전이라면 아주 독특한 자전이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 작가 왕멍과 언어학자 니자오가(작가와 언어학자는 모두 언어를 다룬다)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 속집 제5장에서 둘은 함께 해수욕을 하며, 레스토랑에서 니자오는 춤추고 왕멍은 그것을 바라보며 소설을 구상한다. 니자오가 반성되고 서술되는 자아라면 왕멍은 반성하고 서술하는 자아라 할 수 있다. 반성하고 서술하는 자아는 속집 제5장 후반부 이외에도 제1장 첫머리와 제5장 첫머리, 제10장 후반부에서 내적 독백을 하고 독자에게 말을 건네며, 속집 제4장에서는 해설을 하고, 제18장 첫머리와 속집 제5장 전반부에서는 이인칭 서술을 하며 자기 자신을 이인칭으로 부르거나(제18장) 가상적 독자를 이인칭으로 부른다(속집 제5장). 그 외에는 대체로 화자가 직접 나타나지 않고 시점 속으로 들어가는데, 시점 역시 단일하지 않아 성인 니자오, 유년 니자오, 니우청, 쟝징이, 쟝징전 등이 번갈아가며 시점이 되고 있다. 화법은 직접화법(따옴표를 치기도 하고 치지 않기도 한다), 간접화법, 자유간접화법을 다 사용하며 내적 독백의 비중이 높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자유간접화법의 애용이다. 자유간접화법은 그 중간 형태로서 인물의 주관성과 화자의 주관성, 사실의 객관성(혹은 그렇다고 믿어지는 것)을 포괄하며 동시에 드러낸다. 시점의 복합과 화법의 복합의 결과 인물과 사건은 단순 규정의 틀을 벗어나 그 복잡한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가령, 똑같은 일도 시점이 달라지는 데 따라 그 설명과 판단이 달라진다.
3)주제
이 작품이 그리는 것은 이 인물들의 부정적인 모습 자체가 아니라 봉건적인 것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가, 어떻게 인간을 악으로 물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묘사는 한 가족으로부터 사회 전체로, 식민지 반봉건 사회로부터 여전히 봉건성에 침윤되어 있는 사회주의 중국의 사회로, 더 나아가서는 신시기까지 포함하는 20세기 중국 역사 전체로까지 확대된다. 봉건 사회의 음습한 그늘은 지금까지도 인간의 영혼 깊숙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고, 그 극복은 여전한 역사적 실존적 과제인 것이다. 여기서 파괴되는 인간들 개개인은 한편으로 자신도 그 파괴 행위의 한 가해자임과 동시에 그 피해자, 희생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의미를 손쉽게 부정해버릴 수는 없다. 그들의 삶에는 왜곡된 모습으로일망정 어김없이 진정성이 들어 있는 것이며 그것이 그들의 삶에 의미를 가능케 해준다.
이 작품의 번역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성민엽 교수가 1988년에 번역하여 1989년에 중앙일보사 간 중국현대문학전집의 제15권으로 출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붙인 역제는 『변신하는 인형』이었는데, 아마 세계적으로도 거의 초역으로 기록된다. 그후 절판되었다가 성교수가 직접 왕멍과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고, 수해에 걸친 퇴고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동안 왕멍은 1999년 가을, 『현대문학』 초청으로 국내 중국문학 전공자들과 문인들과 함께 대담을 갖기도 했고, 2000년 방문 시에는 서울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성민엽 교수는 「옮긴이의 말」에서 다음과 같은 경험을 고백하고 있다.
“2001년 가을에 나로서는 감동적인 경험을 하나 하게 되었다. 독문학자인 시인 김광규 선생이 한국을 방문한 함부르크 대학의 중국인 교수 관위치엔(關愚謙)을 만나는 자리에 동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문득 『변신 인형』의 작중 인물 자오웨이투(趙微土)가 생각나서 나는 관교수에게 혹시 자오웨이투를 아느냐, 왕멍 소설의 작중인물이고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 있는 걸로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실제 인물인 것 같다, 라고 물었다. “내가 바로 자오웨이투요!” 그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고 나는 한순간 할 말을 잃었다. 작가를 만났을 때보다 작중인물을 만났을 때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감동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바로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나는 『변신 인형』의 번역 개정을 더 미루지 말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