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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

: 자아의 부재, 극단적 우울증 그리고 사랑

[ 양장 ]
리뷰 총점8.0 리뷰 4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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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2월 1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326g | 145*205*20mm
ISBN13 9791195247165
ISBN10 119524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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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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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달 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슈퍼마켓에서 같이 일하는 남자에게 가볍게 데이트나 하자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놈한테도 내가 쉽게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우울증에 빠졌다.이게 몇 번째인지 모른다. 우울증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지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어 애매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나름 심각한 놈이 왔구나 하고 감은 잡을 수 있었다. 아마 그 남자가 누런색 스웨터에 누런색 코듀로이 바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는 황당한 패션 감각을 가진 인간인데다 스타킹을 뒤집어쓴 듯한 얼굴 생김새에 충격이 더 심했던 것 같다.
--- p.14

에이씨, 이게 아닌데.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야. 얘기가 이상하게 되어버렸잖아. 이 멍청이가 나를 무시하니까 그런 거야. 나를 그냥 대충 대하니까. 나는 네가 장갑을 끼고서 ‘어, 진짜네. 뭐야, 정말 따뜻하잖아. 역시 야스코는 대단해’ 하며 고마워하기를 바랐을 뿐인데, 어째서 그렇게 간단한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거야? 내가 “아니, 됐어”라고 말하자 츠나키는 “응” 하며 장갑을 벗더니 소파 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지금의 실랑이조차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영혼 없는 그 표정을 보니 아까 30도로 올리자 멈춰버린 온풍기가 생각났다. 나에 대한 설정을 ‘27도/약’으로 해놓고 거기에 맞춰 그렁저렁 대하는 츠나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3도가 모자라다는 점이 이 바보한테는 도무지 전달이 되지 않는다. --- p.28

“직장도 없이 24시간 계속 집에 있으면서도 집안일을 아무것도 안 하다니, 너무한 것 아냐? 도대체 케이랑 같이 사는 이유가 뭔데? 돈이야?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그쪽은 여자로서 어쩌고저쩌고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꽝인 거 알아? 뭐하러 사는 건지……. 케이는 도대체 뭐가 좋다고 그쪽이랑 같이 사는 거야?” ‘이런 여자가 하는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 이건 정당한 평가도 아니고,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하는 말이니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안도는 날 선 말을 연거푸 쏘아댔다.
--- p.68

이렇게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하고 정말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벽의 액자에 걸린 ‘서툴러도 괜찮아, 인간이니까’라는, 서예가이자 시인인 아이다 미쓰오(相田みつを)의 글귀를 읽으면서 자문자답해보았다. 자라온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금까지 내가 가까이했던 사람들은 적어도 어딘가 비뚤어진 구석이 있거나 남들하고 뭔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그 점은 정말 재미없는 말밖에 못하는 츠나키도 마찬가지였다.
--- p.94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정말 갑자기 아닌 거야. 뭔지 모르겠어, 그게. 비데가 좀 겁난다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갑자기 어쩔 줄 모르게 된 거야. 생각해봐. 그까짓 비데 가지고 그렇게 됐다니까. 난 말이야, 그 자리를 무슨 일이 있어도 소중하게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별것 아닌 일로 엉망진창 망가뜨려 버렸어. 잘할 수 있었는데. 정말 대책 없어.” 나는 거기까지 쉬지 않고 떠벌린 다음 히죽 웃었다. 그러나 츠나키는 웃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힘들어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어떡하지? 맛이 갔어, 난. 돌아버린 거야.”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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