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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

언어의 무지개

: 고종석 선집_언어학

[ 양장 ] 고종석 선집-02이동
고종석 | 알마 | 2015년 04월 0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9 리뷰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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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언어학 top20 29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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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4월 0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530g | 139*206*30mm
ISBN13 9791185430522
ISBN10 11854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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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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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_서문을 대신하여
어떤 두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얘기를 하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언어로 얘기를 하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면 그들은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인들은 7?10세기 한국어를 이해할 수 없다. 7?10세기 한국인들이 21세기 한국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7?10세기 한국어와 21세기 한국어는 ‘다른’ 언어다._15쪽

사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크게 쇠락한 것은 독일이 아니라 독일어였다. 나치즘의 문화사적 의미 가운데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 하나는 그것이 학술언어로서 독일어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에서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나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점에서 히틀러는 정치사나 전쟁사적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사적으로도 크게 문제적인 개인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20세기 후반에 독일어로 쓰였을 게 틀림없던 수많은 학문적 걸작들이 영어로 쓰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점령 지역의 가장 뛰어난 재능들이 히틀러를 피해서 영어권 세계로 탈출해 정착했고, 자신들의 작업언어를 독일어에서 영어로 바꿨기 때문이다._25쪽

지구 문명은 여러 이질적 문명들이 혼재된, 감염된 문명이다. 다시 말해 튀기 문명이다. 우리는 모두 감염된 인간이고, 감염된 언어의 사용자다. 독자들과 내가 쓰는 한국어에는 한국 고유의 것으로 간주되는 요소만이 아니라, 중국적 요소, 일본적 요소, 미국적 요소들이 섞여 있다. 그 한국어에 미국적 요소가 섞여 있다는 것은, 미국적인 것에 흡수된 영국적 요소, 프랑스적 요소, 고대 로마적 요소, 고대 그리스적 요소, 고대 이집트적 요소가 섞여 있다는 뜻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섞이고 스미고 버무려지고 반죽돼 내 언어를 이루고 내 교양을 이루고 내 정체성을 이룬다. 그 정체성은 감염된 정체성이다._31쪽

01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민족주의의 융성이 한 민족의 독립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독립을 얻은 민족의 구성원들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 역사는 그것을 증명한다. 민족주의는, 그것이 강대국의 민족주의든 약소국의 민족주의든, 얼마나 자주 대외적 패권주의와 대내적 집단주의를 가져왔는가?_53쪽

인류문화사의 관점에서, 늘상 나를 황홀경으로 몰고가는 한 시기가 있다. 그것은 유럽문화의 바탕을 마련한 고대 그리스·로마 시절도 아니고, 이백·두보·한유·유종원이 각기 문재文才를 뽐내며 세련된 귀족적·국제적 문화를 꽃피웠던 중국 당唐대도 아니고, 천재와 완전인完全人의 시절이라고 할 만한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도 아니고, 서양 르네상스의 한국판이라고 할 만한 영·정조 치하 실학의 전성기도 아니다. 그런 돌출한 문화적 개화開花들도 어느 정도 내 마음을 뛰게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내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일본 에도 중기 이래의 란가쿠(蘭學, 네덜란드 문헌들을 통한 서양 학술 연구)와 메이지 시대 이후의 번역 열풍이다. 에도 시대의 란가쿠와 메이지 시대의 번역 열풍이야말로 한문 문명권과 그리스·로마 문명권을 융화시키며 동서 문화 교섭의 가장 빛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_54쪽

우리말에서 일본어의 잔재를 솎아낸다는 것이 일부 순수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일본어에서 수입된 한자어까지를 배척하는 것이라면, 우리들은 외마디 소리 말고는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입 밖에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어휘의 태반은 한자어이고, 그 한자어의 태반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논의의 출발점이 된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인 ‘민족주의’라는 말 역시 일본인들의 발명품이다._59쪽

우리는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일본 사람들의 노력으로 한자어화된 서양의 문화를 손쉽게 빌려 쓰는 길을 걸었다. 확실한 것은, 메이지 이래 일본 열도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신조어들은 한자라는 매개를 통해 즉각 한국어에 흡수됨으로써 한국어의 어휘를 배가시키고 한국인들의 세계 인식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말의 풍부화와 그것을 통한 우 리 의식의 획기적 전환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었다는 사실마저 변하는 것은 아니다._60쪽

한글로 쓰인 첫 번째 한국어 문장은, 서울 지하철 3호선 교대역 내벽에도 크게 새겨져 있는, 그 유명한 “나랏말?미 듕귁에 달아 문?와로 서르 ??디 아니? ?…” 운운인데, 한글 탄생의 매니페스토라고 할 만한 이 문장 자체가 《훈민정음 언해》라는 이름의 번역문이다. 다시 말해 그 원문은 고전 중국어, 즉 한문인 것이다._82?83쪽

영어는 어떤 외래어에도 저항을 보인 일이 없었다. 영국이 영어의 중심이었을 때도 이미 영어 속에는 세계 구석구석이 원산지인 단어들이 들어 있었고, 20세기 들어 영어의 새로운 중심이 된 미국의 영어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언어에서 많은 어휘를 차용했다. 그런 사정은 세계의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린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영어를 위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수많은 언어로부터 영어에 흡수된 풍부한 어휘는 영어에 미세한 결들을 만들어 이 언어의 세련화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_97쪽

오늘날 어느 분야에서든 가장 뛰어난 재능들은 미국으로 몰린다. 적어도 미국에서 데뷔하지 않은 재능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리고 활동의 근거지가 미국이든 아니든, 영어로 쓰이지 않은 출판물이, 특히 그것이 자연과학 분야의 글이라면, 세상에 알려지기는 어렵다. 오늘날 언어의 위계 질서 내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은 영어다. 그리고 앞으로 머지않은 시기에, 영어를 쓰지 않고 민족어를 쓴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의 세계로부터 자신을 추방하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_137쪽

나는 그러나 영어의 국제어화와 민족어의 소멸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영어와 민족어는 긴 시간 동안 공존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은 이중언어 사용자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민족어가 사라지는 상황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민족어들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어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민족이, 민족국가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국가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것의 소멸을 추구했던 70여 년의 사회주의 실험을 거치고도 살아남았다. 그런 생명력을 가진 민족국가가 세계화 바람 앞에 쉬이 사라지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_138쪽

02 버리고 싶은 유산, 버릴 수 없는 유산
한글의 문자체계가 우연히 음절 단위의 모아쓰기가 돼 한자가 개입하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자의 개입을 허용하기 위해서 한자처럼 음절 단위의 네모글자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글의 불행이다. 똑같이 음절 단위의 네모글자여서, 한글 사이에 한자가 끼여도 ‘튄다’는 느낌이 덜한 것이다. 한자는 분명히 한글과는 이질적인 글자인데도, 그 이질성이 커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자 혼용에 대한 유혹은 이렇게 한글의 음절문자적 성격에 내재해 있고, 한자를 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따금씩 그 유혹을 느낄 것이다._161쪽

우리가 낱말을 배울 때, 그리고 그것을 사용할 때, 항상 그 어원을 염두에 두고 배우거나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 예컨대 방송放送이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죄인을 풀어준다’는 뜻이었지만, 일본어 호소放送의 영향을 받아 이제는 ‘보도나 연예를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전파에 실어 내보내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발명發明은 전통적으로 ‘죄가 없음을 말하여 밝힘’, 즉 ‘변명’의 뜻이었지만, 일본어 하쓰메이發明의 영향으로 이제는 주로 ‘새로운 기술이나 물건 따위를 만들어냄’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까 당초 중국에서 수입됐거나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말들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 똑같은 형태의 일본 한자어와 접촉하면서 일본어의 간섭을 받아, 일본 사람들이 담은 의미를 새로 담게 된 것이다. _168~170쪽

한국어 깊숙이 파고든 한자어의 이해에는 꽤 많은 경우에 한자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부정직한 짓일 것이다. 설령 대부분의 경우 한자어의 이해에 한자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한자 지식이 한자어의 이해를 돕는 것은 사실이.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우리 어휘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2,000자 내외의 학습이 부당한 뇌 혹사는 아닐 것이다. _187쪽

03 말
문명을 건설한 인간, 생각하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생각의 뭉치를 형태소로 나누고 소리의 뭉치를 음소로 나눈 뒤 이들을 이리저리 배열하고 결합하고 대응시키며 표현과 소통의 길을 뚫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문명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_190쪽

한국어 사용자는 메시지 수신자와 자신의 위계를 설정하기 전에는 단 한 마디도 입 밖에 낼 수 없다. 언어로 표현되는 그 위계 질서를 우리는 다시 그 언어를 통해 내면화한다. 경어를 썼느냐 반말을 썼느냐가 흔히 사람들 사이의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것이 그 증거다. 경어법은 연령의 위계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신분적 위계를 드러내고, 그 신분적 위계는 그것을 드러내는 경어법에 의해 다시 강화된다. _194쪽

문자의 발명은 분명히 인류의 지식 축적 방식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그 덕분에 인류의 집단적 기억의 용량은 무한대로 늘어났다. 그러나, 애달파라, 바로 그 집단적 기억의 폭증은 개인적 기억의 왜소화를 가져왔다. 기억의 전승을 문자가 떠맡게 되자마자, 인간은 자기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굳이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인쇄술의 보급은 이야기꾼과 음유 시인들을 퇴출시켰다. 기계류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발명품들이 그렇듯, 문자의 발명도 인간 육체의 완전성을 위해서는 불행한 일이었다. _195쪽

04 표준어의 폭력: 국민국가 내부의 식민주의
표준어가 다른 방언들보다 위세를 떨치게 된 것이 그 내재적 매력 때문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다시 말해 서울말의 위세는 이 말이 예컨대 강원도방언이나 전라도방언보다 본질적으로 더 섬세하다거나 명료하다거나 아름다워서 생긴 것이 아니다. 언어학의 지평에서는 서울말 역시 한국어의 한 방언일 뿐이고, 서울말과 다른 방언 사이에 위계를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울말의 위세가 큰 것은 그러니까 언어 바깥 사정, 구체적으로 이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힘 때문이다. 한국어방언 가운데 영남방언이 비교적 패기 있게 서울말에 맞서고 있는 사정 역시 이로써 설명할 수 있다._199쪽

코크니 영어 사용자들 다수는, 그 언어에 들씌워진 상징적 의미를 잘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그 ‘천한’ 언어를 사용한다. 호남 출신의 서울 거주자들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주류 언어에 동화하는 것을 제 정체성의 굴욕적 포기로 여기는 방어 본능 때문일 것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표준 프랑스어에 동화하려는 프랑스인들의 욕망이 주로 중간계급에서 두드러지고,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은 유년기 언어에 충성심이 강하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_201쪽
05 외래어와의 성전: 매혹적인 그러나 불길한 순혈주의
언어민족주의의 칼날이 무슨 이유로든 칼집을 벗어났을 때, 그 칼끝은 직접 외국어를 향하기보다 민족어 안의 ‘불순물’ 곧 외래어를 향하는 것이 예사다. 외국어 자체는 언어민족주의자들로서도 맞서 싸우기가 너무 버거운 상대다. 반면에 외래어는 사뭇 만만한, 그러나 가증스러운 내부의 적으로 비친다._205쪽

민족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감정 상태이므로 언어순화운동은 어떤 언어공동체에서도 적잖은 지지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반면에 언어순화운동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려면 권력이 고도로 집중된 전체주의 사회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엄연하다. 북한에서 이 운동이 그나마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 사회체제의 경직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불길한 함축은 고귀한 민족애의 실천 형식으로서 언어순화에 매력을 느끼는 선남선녀들이 특히 곱씹어보아야 할 생각거리다._209쪽

이런 순화운동의 방식이 대체로 번역차용(외국어 표현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형태소를 일대일로 번역하는 것) 형식의 베끼기calque여서, 거기서 어떤 정신의 확장이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점도 지적해야겠다. ‘자동사’와 ‘제움직씨’, ‘사물’과 ‘일몬’, ‘총론’과 ‘모도풀이’는 똑같은 구조를 지닌 말이다. 다시 말해 앞말을 뒷말로 베껴낸다고 해서, 거기서 새로운 지적 지평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매우 하찮은 지적 작업이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쉽게 억누를 수 없는 에너지다. 말하자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하찮은 지적 작업은 앞으로도 운동량을 쉬 잃지 않을 것이다. _210?211쪽

06 여자의 말, 남자의 말: 젠더의 사회언어학
한국어의 성적 방언으로 흔히 거론되는 예는 일부 친족명칭이다. 여성화자는 같은 성의 손위 동기同氣나 선배를 ‘언니’라 부르고, 다른 성의 손위 동기나 선배를 ‘오빠’라 부른다. 반면에 남성화자는 같은 성의 손위 동기나 선배를 ‘형’이라 부르고, 다른 성의 손위 동기나 선배를 ‘누나’라 부른다. 물론 이 규범이 돌처럼 단단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일부 지역에 선 남성화자가 같은 성의 손위 동기를 ‘언니’라 부르기도 했고, 1970?1980년대에는 여학생들이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부르는 일이 예사였다._213?214쪽

현실은 언어 이전에 있는 것이어서 언어를 바꾸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는 없겠지만, 언어의 비틀림을 응시하는 일은 현실의 비틀림을 살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_220쪽

07 거짓말이게 참말이게?: 역설의 풍경
한 무리의 논리학자들과 언어철학자들은 거짓말쟁이 역설을 의미론의 문제가 아니라 화용론의 문제로 보아, 진리의 개념 대신에 진술의 속성에 주목했다. 말하자면 “내 명령은 어느 것도 따르지 마시오” 같은 문장에서 드러나는 명령의 역설, “나는 어떤 약속도 지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같은 문장에서 드러나는 약속의 역설, “나는 내가 어떤 내기에서고 지리라는 쪽에 걸겠다” 같은 문장이 드러내는 내기의 역설 따위가 명령, 약속, 내기 라는 언어 ‘행위’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발생하듯, 거짓말쟁이 역설도 ‘참이다’라는 낱말에 담긴 ‘동의’라는 행위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참이다’라는 진리 술어도, ‘명령하다’ ‘약속하다’ ‘내기 걸다’ 같은 전형적 수행동사들처럼, (어떤 진술을 주장하거나 동의한다는) 수행기능을 지닌다는 것이다. _225쪽

러셀의 역설이란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이 맞닥뜨리는 역설이다. 이 집합은 자신을 원소로 갖는가 그렇지 않은가? 갖는다고 가정하면 갖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고, 갖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갖는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러셀은 이런 예를 들었다. 어느 마을에 제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의 머리만 깎아주는 이발사가 살고 있다. 그는 제 머리를 깎게 될까 그러지 않게 될까? 그가 제 머리를 깎는다면, 스스로 머리를 깎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제 머리를 깎아서는 안 된다. 한편 그가 제 머리를 깎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머리를 깎아주어야 할 사람들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제 머리를 깎을 수도 없고, 안 깎을 수도 없다. _227쪽

08 한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
훈민정음에는 고도의 음성학과 음운론 지식이 응축돼 있다. 훈민정음 연구로 학위를 받은 미국인 동아시아학자 게리 레드야드는 제 학위논문에 이렇게 썼다. “글자꼴에 그 기능을 관련시킨다는 착상과 그 착상을 실현한 방식에 정녕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오래고 다양한 문자사에서 그 같은 일은 있어본 적이 없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꼴을 체계화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글자꼴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조음 기관을 본 뜬 것이라니. 이것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다.”_231쪽

한글은 소리를 드러내는 데 체계적이고 섬세하다. 그렇다면 한글은 보탤 것이 전혀 없는, 완벽한 문자체계인가? 그렇지는 않다.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와 한글을 순수하게 ‘미적으로’ 견줘보자.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보는 이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 쪽을 편드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아직 한글 자체字體가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탓도 있을 게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한글이, 로마문자나 그리스문자와 달리, 음절 단위로 모아쓰게 돼 있다는 데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쓰는 이상, 아무리 자체를 다양화 해봐야 미적 세련의 정도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_233쪽

훈민정음 창제자들이 일껏 고생해서 음소문자를 만들어놓고도 그것을 음절 단위로 네모나게 모아쓰도록 한 데는 한자의 영향이 컸을 테다. 뜻글자인 한자 역시 그 한 글자 한 글자가 네모난 형상 속에 한 음절씩을 담아놓고 있는 음절문자 성격을 겸하고 있다. ‘훈민정음’의 첫 음절 ‘훈’을 굳이 네모나게 모아쓸 게 아 니라 소리의 선조성線條性에 따라 ‘ㅎㅜㄴ’처럼 한 줄로 벌여놓을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엔 한자의 그림자가 너무 짙었으리라._234쪽

09 구별짓기와 차이 지우기: 방언의 사회정치학
여타 방언 화자들의 표준어 사용이 차이 지우기의 실천이라면, 서울내기들의 표준어 일탈은 구별짓기의 실천이다. 표준어 사용이 보편화하면 거기서 위세의 상징이 제거돼버리겠지만, 서울내기들은 이것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경우에도, 표준어에 포섭되지 못한 서울말을 꿋꿋이 쓰며 다른 지방 출신 화자들과 자신들을 구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문어에서야 표준어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이 실천은 주로 구어에서 이뤄진다. 예컨대 “그 기집애두 아프겠지만, 나두 아퍼. 그러길래 내가 이 혼사 안 된댔잖어”는, 표준어로라면, “그 계집애도 아프겠지만, 나도 아파. 그러기에 내가 이 혼사 안 된댔잖아”가 돼야겠지만, 제 입에 익숙한 말투를 굳이 표준어로 바꾸는 서울 사람은 없을 테다. _240?241쪽

‘깜둥이’처럼 정치적?사회적으로 민감한 금기어들을 다른 말로 에둘러 표현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시도는 1990년대 들어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본디 PC는 보수주의자들이 비아냥거림의 맥락에서 만 든 말이지만, 자유주의자들은 이내 이 말을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여 제 정체성의 일부로 삼았다. PC의 지지자들은 ‘깜둥이’나 ‘흑인’이라는 말 대신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정신박약’이라는 말을 대체하기 위해 ‘학습곤란’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한국어에서 ‘식모’가 ‘가정부’로, ‘파출부’가 ‘가사도 우미’로, ‘운전사’가 ‘기사’로, ‘차장’이 ‘안내양’으로, ‘보험외판원’이 ‘보험설계사’나 ‘생활설계사’로, ‘청소부’가 ‘환경미화원’으로, ‘때밀이’가 ‘피부청결사’로, ‘간호원’이 ‘간호사’로, ‘광부’가 ‘광원’으로 바뀐 것도 PC의 정치언어학에 따른 것이랄 수 있다._243쪽

10 부르는 말과 가리키는 말: 친족명칭의 풍경
현대 한국어의 친족명칭에서 지칭어와 호칭어의 구별은 거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많은 경우에, 전통적 지칭어가 호칭어를 대치해 상대를 부를 때 사용된다. “당숙모!” “형수님!”이라는 말은 흔히 들을 수 있어도, 그런 뜻의 “아주머니!”는 이제 들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삼촌!”이나 “당숙!”은 흔히 들을 수 있어도, 그런 뜻의 “아저씨!”는 이제 들을 수 없다. 삼촌이나 형수를 “아저씨!”나 “아주머니!”라고 부르면 당사자가 서운해하거나 화를 낼 게다. ‘아주머니’ ‘아저씨’는 친족명칭 기능을 잃고 새로운 의미를 얻었기 때문이다._248~249쪽

친족호칭어가 은유적으로 확대된 최근의 예로서 주목할 만한 것이 ‘오빠’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여성들이 남자 선배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그 이전 세대 여성은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불렀다. (…) 그러니까 저보다 나이 많은 남편을 부르는 말로서 “형!”과 “오빠!”는 하나의 세대 징표이기도 하다. “여보!”는 그 앞 세대의 징표일 것이다._251쪽

11 합치고 뭉개고: 흔들리는 모음체계
언어 변화는 어휘 수준에서만, 더구나 문법의 다른 층위와 단절된 어휘 수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현대 한국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오히려 음운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 근년에 백낙청 씨는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거듭 거론한 바 있지만, 목하 분단체제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한국어 모음체계다. 구체적으로, 현실 한국어(또는 새 세대 한국어)는 규범한국어(또는 옛 세대 한국어)에 비해 모음이 한결 단출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_255쪽
단모음 [ㅚ]가 중모음 [ㅞ]에 합쳐지고 두 단모음 [ㅐ]와 [ㅔ]가 중화하고 있다는 것은 [ㅚ]와 [ㅙ]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역사를 슬프게 만들었던 ‘왜적’과 ‘외적’도 소리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역사 시간에 교사나 학생이 “[웨적]의 침입”을 거론했을 때, 그 적이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것인지 아니면 막연히 나라 바깥에서 왔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_256쪽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한국어 모음체계의 변화 물결은 이제 언어교육으로 되돌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말의 전문가라 할 방송 아나운서들조차 한국어사전이나 ‘표준 발음법’에 명시된 규범적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21세기 한국어가 20세기 한국어와 사뭇 다른 모음체계를 지니게 되리라는 사실을 무심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중세 한국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조가 사라진 것을 지금의 우리가 무심히 받아들이듯._258쪽

12 ‘한글소설’이라는 허깨비
한문소설(고전 중국어로 쓴 소설)은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지만, ‘한글소설(한글이라는 문자로 표기한 소설)’은 아예 성립될 수 없거나 성립될 수 있더라도 거의 쓸모없는 개념이다. ‘한글소설’이 성립될 수 없거나 거의 쓸모없는 개념인 것은, ‘로마문자소설’이나 ‘키릴문자소설’이 성립될 수 없거나 거의 쓸모없는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다. ‘로마문자소설(로마문자로 표기한 소설)’은 통상 로마자로 표기되는 이탈리아어소설, 영어소설, 스페인어소설, 프랑스어소설, 포르투갈어소설, 독일어소설, 터키어소설, 베트남어 소설, 이 밖의 수많은 언어로 쓴 소설을 다 아우를 것이다. 더 나아가, ‘로마문자소설’은 통상적으론 로마문자로 표기되지 않는 한국어소설, 일본어소설, 중국어소설, 아랍어소설 따위를 로마문자로 전사轉寫한 텍스트까지 포함하게 될 테다. 이렇게 잡다하고 들쭉날쭉한 대상들을 한꺼번에 끌어안는 개념이 쓸모 있을 수는 없다._263쪽

‘한국어소설’ ‘한국어문학’이라 불러야 할 대상을 ‘한글소설’ ‘한글문학’이라 이르는 관행에 이해할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향찰로 쓰인 향가나 부분적으로 이두를 사용했던 공문서들을 제외하면, 한국어는 한글이 만들어진 뒤에야 본격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어가 서기언어로서 살아온 역사는 한글의 역사와 거의 포개진다. 한글이 반포되기 전까지 한국어는, 예외적인 경우를 빼곤, 회화언어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한국어라는 언어와 한글이라는 문자의 차이를 흐릴 수는 없다. 문자는 언어의 그림일 뿐이다. 그리고 이 화단畵壇에선 너무나 다양한 유파들이 제 개성을 뽐내고 있어서, 어떤 자연언어와 어떤 문자체계의 결합이 필연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_264~265쪽

번역문학은 출발언어의 문학에 속하는가 아니면 도착언어의 문학에 속하는가? 예컨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프랑스어문학에 속 하는가 아니면 한국어문학에 속하는가? 말할 나위 없이 그 둘 다에 속한다. 번역문학자는 프랑스어로 읽고 한국어로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된 텍스트만을 놓고 보면, 그것은 한국어문학 쪽에 훨씬 더 가깝다. 문학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거기 사용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번역이냐 창작이냐는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실상 근대 독일어는 루터의 번역성경으로 시동을 걸었고, 유럽의 다른 많은 언어들도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 같은 고전언어의 번역문들로 초창기 규범을 확립했다. 한국어도 예외는 아니니, 한글로 적힌 첫 번째 한국어 문장은 《훈민정음 언해》라는 이름의 번역문이다._266쪽

13 눈에 거슬려도 따라야 할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로마문자는 세계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문자체계다. 영어를 흔히 국제어라 이르지만, 세계 언어생태계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몫은 세계 문자생태계에서 로마문자가 차지하는 몫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로마문자야말로 진정한 국제문자다. (…) 문자체계를 갖추지 못한 언어를 새로 찾아냈을 때, 그것을 적는 것도 일차적으로 로마문자를 통해서다. 그러니, 로마문자를 쓰지 않는 사회에서도 제 언어의 로마자 표기법 문제를 피할 수 없다._269쪽

14 언어는 생각의 감옥인가?: 사피어 워프 가설에 대하여
오늘날 언어학자나 인지과학자의 주류는 이런 언어 결정론을 부정한다. 사람의 생각은 그가 쓰는 자연언어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라고까지 판단하는 이론가도 있다. 캐나다 출신의 미국인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가 그 예다. 핑커에 따르면, 사람은 영어나 중국어나 아파치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언어language of thought’로 생각한다. 그 ‘사고의 언어’는 모든 자연언어들에 선행하는 메타언어다. 핑커는 자연언어들로부터 독립적인 이 추상언어를 ‘멘털리즈mentalese’라 불렀다._280?281쪽

사람의 사고와 인식이 모국어와 어느 정도 상호작용을 하는 듯 보이긴 하지만, 더 큰 결정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고와 인식 쪽이지 언어 쪽은 아니다. 이를테면 한국어는 그 고유어에 빛깔의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어휘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다. ‘빨갛다’ 계통의 형용사만 해도 한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것이 예순 개 가까이 된다. 그런데 자음이나 모음을 교체하고 이런저런 접사를 붙여가며 한국어가 제 어휘장 안에 마련한 이 섬세한 색채어휘 덕분에 한국인들의 색채감각은 다른 자연언어 사용자보다 훨씬 더 섬세해졌는가? 조형예술사 책에서 한국인들의 이름을 찾기 어려운 걸 보면 그건 아닌 듯하다 _281?282쪽

15 두 혀로 말하기: 다이글로시아의 풍경
코드스위칭이란 이언어 사용자가 한 문장 또는 한 담화 안에서 자신의 모어와 외국어(외래어가 아니라)를 섞어 쓰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의 한국계 미국인이 술집에서 누군가와 싸우다가 “You filthy scum이야! Get out of here! 당장!”(이런 쓰레기 같은 자식! 꺼져! 당장!)이라 말했다 치자. 여기서 한국어 ‘이야!’는 필요 없는 군더더기이거나 영어 be 동사의 대치어라 볼 수 있고, ‘당장!’은 ‘right now!’를 한국어로 대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코드스위칭은 외국어에 서툰 화자만이 아니라 그 외국어를 모어처럼 익숙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된다. _291쪽

코드스위칭은 다이글로시아를 전제로 한 언어 실천이면서, 그와 동시에 다이글로시아 내부의 언어 위계를 교란하는 언어 실천이기도 하다. 그것은 규범을 깨뜨리고 불순함을 옹호함으로써 언어민주주의에 기여한다. 코드스위칭은 영어를 비롯한 주류 언어에 비주류 언어를 섞음으로써 주류 언어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표준어에 방언을 섞음으로써 표준어의 순수성을 훼손한다. 다시 말해 주류 언어와 표준어의 식민주의적 위세와 욕망을 조롱한다. 그 광경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슬프기 십상이나, 이 광경의 아름다움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_292쪽

16 한국어의 미래
그 사용자 수로 볼 때 한국어의 순위는 12?13위 정도 된다. 1억 가까운 사람이 쓰는 독일어보다는 작은 언어지만, 7200만 남짓 되는 사람이 쓰는 프랑스어보다는 큰 언어다. 수천이 훨씬 넘는 언어들 가운데 12?13번째로 사용자가 많다는 것은 한국어가 매우 큰 언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12?13위라는 순위만큼 한국어가 위풍당당하지는 않다. (…) 한국어는 모국어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매긴 순위보다 교통어로서의 순위가 사뭇 떨어지는 언어다. 그것은 한국어공동체 바깥에서 한국어가 그리 매력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_294?295쪽

정부가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세계 여러 곳에 세울 예정이라는 세종학당도 다양하고 효율적인 한국어 학습교재가 마련된 바탕 위에서야 제 구실을 할 것이다. 한국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조붓한 길이다. 시원하게 뚫린 한길이 아니다. 그러나 정성스레 닦아놓으면 그 길을 산책로로 골라 거닐 사람이 왜 없으랴. _300쪽

17 경어
우리말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복잡하고 엄격하고 정교한 경어체계를 지닌 언어다. 우리말의 2인칭 대명사는 연령이나 신분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또는 연령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나 사용될 뿐, 존칭을 사용해야 할 자리엔 아예 사용되지 않는다. 그 경우 한국인들은 그 자리를 비워두거나 연령적?가족적?직업적?신분적 위계를 표시하는 명사(선배님, 아버님, 국장님, 선생님, 숙자 씨 등)를 사용한다._303쪽

한국어는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과 자신의 위계를 설정하기 전에는 단 한 마디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언어다. 언어로 표현되는 그 위계 질서를 우리는 다시 그 언어를 통해 내면화한다. 경어를 썼느냐 반말을 썼느냐가 흔히 사람들 사이의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것이 그 증거다. 경어법은 연령의 위계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신분적 위계를 드러내고, 그 신분적 위계는 그것을 드러내는 경어법에 의해 다시 강화된다. 한국어가 민주주의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국어에 대한 내 애정에 주름을 만든다. _303?304쪽

18 기쁘다와 기뻐하다
심리형용사들에 ‘어하다’가 첨가되면 행동성을 나타내는 동사처럼 사용된다. 예컨대 ‘기쁘다’는 마음속으로 느끼는 심리 상태를 서술하지만 ‘기뻐하다’가 되면 그런 심리 상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서술한다. 즐겁다와 즐거워하다, 반갑다와 반가워하다, 슬프다와 슬퍼하다, 분하다와 분해하다, 외롭다와 외로워하다, 싫다와 싫어하다, 두렵다와 두려워하다, 쓸쓸하다와 쓸쓸해하다, 아깝다와 아까워하다, 섭섭하다와 섭섭해하다, 귀찮다와 귀찮아하다, 그립다와 그리워하다도 마찬가지다. _307쪽
19 부정문에 대하여
일부 심리동사를 상위문에 포함한 복문에서 이 부정 요소는 상위문과 하위문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다. 예컨대 “나는 경숙이가 나쁜 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와 “나는 경숙이가 나쁜 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같은 의미다. 또 “나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와 “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의 경우에는 하위문의 부정 요소가 상위문으로 옮아갔고, 뒤의 경우는 상위문의 부정 요소가 하위문으로 옮아갔다. 이렇게 부정 요소의 오르내림을 가능케 하는 상위문의 동사로는 생각하다와 믿다 외에 바라다, 여기다, 기대하다, 짐작하다, 상상하다 따위가 있다. _312쪽

20 우리말의 시제
“신은 내일 죽어요”에서 보았듯, 우리말의 현재 시제(비과거 시제)는 현재만이 아니라 시간 부사어의 도움을 받아 미래도 표시한다. “모레 떠납니다” “두 시간 후에 가요” “그이는 다음달에나 돌아와요” “내년에 정년퇴직합니다”에서처럼. 그러나 이것은 서술어가 비상태성 용언일 경우에만 그렇다. 서술어가 형용사나 상태성 동사(알다, 믿다, 기억하다 따위) 같은 상태성 용언일 경우엔 이 형태가 미래의 시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될 수 없다. “어머니가 내일 아프셔요” “나는 모레 그 사람을 압니다” 같은 문장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_316쪽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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