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5년 07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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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64쪽 | 600g | 153*224*30mm |
ISBN13 | 9788927806615 |
ISBN10 | 8927806611 |
발행일 | 2015년 07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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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64쪽 | 600g | 153*224*30mm |
ISBN13 | 9788927806615 |
ISBN10 | 8927806611 |
1부 전통에 관하여 2부 변화에 관하여 3부 미래를 향하여 |
귀청을 찢는 음악에 리듬을 맡기고, 처음 본 사람들과 한 무리로 엉켜 에너지를 내뿜는 무대의 뜨거움과 땀 냄새와 몰아의 상태를 좋아한다.
“살아있다!”는 느낌, 그 원시적인 느낌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사냥을 나가기 전 원시인류의 출정식과 같은 흥분되고 고양된 감정과 같은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주 가는 건 아니다. 지금껏 고작 세 번밖엔 못 가 봤다.
내가 끼가 많아서가 아니라, 무리지어 노는 걸 좋아하는 원시적 심성이 내 속에 많기 때문이다. 책도 혼자서 집에서 읽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집단적으로다 읽는 걸 더 좋아하니까 말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읽으면서, 인류의 심성은 지구 어느 편에 있더라도 공통된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해 봤다. 공동체 의식과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 말이다. 동양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인도의 최북단 카라코람과 히말라야의 산악에 끼어있는 고원의 사막인,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로 온 그녀는 이곳에서 16년 동안 살면서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과 가치관에 깊이 감화되면서, 또한 그것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몸소 겪는다.
혹독한 기후 탓에 일 년에 4개월밖엔 농사를 짓지 못하는 라다크 사람들은 기후에 적합한 흙으로 빚은 벽돌집에 살며, 고도 10000피트가 넘는 곳에서 적응할 수 있는 보리를 주곡으로 심고, 소와 야크의 교배종인 ‘조’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다. 연료로는 가축의 똥을 주로 사용하고, 칠월에서 구월까지 어떤 가족들은 더 높은 고도의 초지에서 짐승을 돌보고 똥을 모으며, 버터와 치즈를 만들면서 지낸다.
그녀는 처음에는 라다크의 언어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점차 라다크인들의 가치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왜 그들은 항상 미소를 띠고 있으며, 그토록 험악한 환경에서 상당한 수준의 안락을 누리며 사는지?
헬레나가 라다크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개울에서 더러운 옷을 빨려고 할 때 일곱 살도 채 안된 어린 소녀가 물길의 위쪽에서 와서 그 물에 옷을 넣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저 아래쪽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셔야 된다고 말하며 소녀는 적어도 한마일 정도 떨어진 마을을 가리켰다. 그 소녀는 밭으로 가는 물을 쓰라고 했다.
라다크 사람들은 어떤 것도 그냥 내버리지 않는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짐승에게 먹일 수 있고, 연료로 쓸 수 없는 것은 땅에 거름으로 쓴다. 그런 식으로 라다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재순환시켰다. 그들은 사람들끼리, 그리고 그들이 의지하는 땅과 짐승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라다크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활동한다. 여든두 살 된 한 할아버지는 지붕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뒤 글쓴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 오후 세 시에 의자에 앉아 잠든 것처럼 죽었다. 그들의 영양은 서구인들이 보기엔 불균형하지만, 에스키모인들이 생선과 고기만 먹고 곡물을 거의 먹지 않고도 건강한 것처럼, 라다크인들은 푸른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고 버터와 소금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는데도(극단적으로 높은 콜레스테롤 섭취에도 불구하고) 심장병은 거의 없다. 절대적으로 옳은 영양이나 그른 영양이라는 것은 없으며 오히려 영양은 운동이나 스트레스 같은 다양한 요인들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의 격차가 거의 없으며,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툼이 거의 없다. 분쟁이 발생할 경우엔 둘을 잘 알고 있는 제 삼자가 개입하여 적당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들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두레’와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 농번기에 공동 노동을 한다. 그들의 공동 노동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축제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가족제도이다. 기후의 특성상 인구를 조절해야 할 필요 때문에 라다크에선 일처다부제가 보편적이었다. 한 여자가 두 형제와 동시에 결혼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두 남자를 모두 ‘압바(아버지)’라고 부른다. 일처다부제 외에도, 일부다처제, 일부일처제 등 다양한 형태의 혼인제도가 공존한다.
혼외정사에 대해서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데스키트는 남편 남기알과 사이에 자녀를 여럿 두고 있었다. 그런데 남기알이 앙그모와 연애를 했고 여자가 임신을 하자 남기알은 데스키트에게 앙그모와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 그녀를 둘째 부인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데스키트는 처음엔 화가 났지만, 남기알과 앙그모가 모두 함께 살기를 몹시 바랐기 때문에, ‘그러면 어때. 우리 다 같이 행복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두 여자는 12년간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단다. 소유하는 사랑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겐 어쩌면 비도덕적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들에게도 사랑과 우정이 있지만 그것은 격렬하거나 구속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만족과 마음의 평화는 외부의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오며, 그들이 삶의 흐름의 일부임을 느끼면서 긴장을 풀고 그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데서 온다. 그들의 삶의 태도는, 길을 떠날 때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불행할 게 뭐냐?”이다.
자, 이런 라다크에 개발이 시작된다. 산업화의 물결이 밀려들어오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협동노동으로 농부들이 돈이 필요 없었다면, 협동노동이 붕괴되자 이제 농장의 일꾼들에게 지불해야 할 임금이 자꾸 커져서 어떤 사람들은 도시에서 돈을 벌려고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강하고 외향적이던 라다크의 여성들이 자신감 없고 외모에 몹시 신경을 쓰는 새로운 세대로 대체되었다. 그들은 핵가족 속에 갇히고, 더 큰 공동체로부터 유리되었으며, 의미 있는 일을 빼앗겨 버렸다. 선진국은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며 그들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뒤흔든다. 아, 그들은 자신들의 일처다부제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하고 일부일처제는 심각한 인구증가를 초래한다.
그들은 입던 모직 옷을 벗어던지고 싸구려 나일론 옷을 입고, 그들의 혹독한 기후에 꼭 맞는 흙벽돌집을 버리고, 시멘트로 그들의 집을 바르기 시작한다.
“소외”가 그들의 삶을 파괴한다.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 사람들에게 그들이 흉내낼 수 없는 서구의 모델을 따르라는 압력이 심각하게 가해진다. 예의바르고 성실하던 젊은이들은 청바지를 입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건달이 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옛 문화는 자연적 한계를 존중하면서 근원적인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였다. 전통사회에서 유대관계와 책임이 부담이기는커녕 내면의 평화와 만족감을 위한 전제조건인 깊은 안정감을 제공했다는 확신을 갖는다. 바로,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민중의 복지이며, 환경적인 면에서는 지속가능성이다.’>
부탄은 거의 자급자족 경제이기 때문에 국민총생산(GNP)가 세계에서도 저 아래에 있는 나라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높다. 부탄의 국왕이 이렇게 말했다 한다. 국민총생산이 중요한 게 아니고, 국민총행복이 중요하다고.
과거로 무조건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환경, 국민총행복이란 말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화두를 안고 살자는 얘기다.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지 생각하며 살자는 얘기다. 미친듯이 앞만 보고 달려가면 무덤 밖에 더 나오나요?
불과 어제까지 읽었던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2016. 열린책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책은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별표로 따지면 3개 정도. 그래서 한참 동안 독후기도 쓸 생각도 없었다. 문이장도 읽었다는 소문난 책이라 소문난 잔치 집에 먹을 게 없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어느 언어학자의 뽐내기처럼 느껴졌고, 과거를 찬양해 마지않는 과거 바라기 같은 몸짓이며, 청정지역을 알려 오염을 더욱 가속하는 책이라 생각했다.
티베트의 오래된 마을 라다크로부터 과거를 배우며 그 마을의 개혁 개방을 안타까워했던 저자는 자본의 논리에 라다크가 지켜지기란 만무하기에 이왕 훼손될 마을을 지역을, 전통을, 과거를, 공동체를 살리며 조금씩 변화되길 바란다. 일개 한 사람의 활동으로 치부했던 몇 달 동안의 독후기에서 어제까지 읽었던 책으로 인해 그녀의 활동이 이 시대에 칭송해 마지않을 활동임을 깨닫는다. 어쩌면 자본에 대항하여 오래된 과거와 공동체의식, 지속가능한 환경을 바탕으로 지역을 조금씩 바꿔나가도록 돕는 그녀의 활동이 이 시대의 대안이지 않을까. 이왕 속을 보일 바에야.
오래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저항이요, 곧 우리의 미래이며, 지구의 미래다. 흥하지 마라 라다크여.
2007년 초판에, 2015년 개정판이다. 그사이 얼마나 변했을까 검색 뇌가 발동했지만, 두려워 그냥 둔다.
처음 책 제목을 보고 의아해 했었다. 미래인데 오래된 미래라니.. 오래된 과거라면 이해가 쉬울 텐데, 미래가 오래되었다고 하니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10년도 훨씬 전에 중국에 갔을 때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도시를 방문한적이 있다. 연안지방은 개방이다, 경제특구다 하여 이미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강소성 서쪽에 위치한 그곳은 개발과는 거리가 먼 곳 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어렸을 때 뛰어 놀던 고향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순박했고, 처음 보는 이방인인 나에게도 친절하기 그지 없었다. 공기는 맑았으며, 집들과 시가지는 인공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애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한 부분과도 같았다. 그러다 한 10년쯤 전에 다시 그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그곳은 예전에 내가 방문했던 그곳이 아니었다. 도심 한가운데로 길은 넓게 닦여있었고, 그 길 위엔 차들로 꽉 차 있었으며, 건물들이 들어선 시내 한복판에선 사방을 둘러보아도 콘크리트 벽뿐이었다. 개방의, 개발의 기운이 그곳에까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개방은 그렇게 한 지역을 10년도 안된 시간 안에 급격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음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언어학자인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에서 16년을 보내면서, 전통사회가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쓴 글이다. 티베트를 포함한 히말라야 인근의 다른 지역들처럼 라다크 역시 지난 수세기 동안 외부의 영향에서 독립되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삶의 방식을 지켜온 곳 이었다. 지난 수세기 동안 라다크 사회에 나타난 급격한 변화는 역시 세계화 추세의 반영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티베트 고원과 고대 문화의 고장 라다크에서 생활하면서 미래를 향하는 길이 꼭 하나가 아니라는 확신과 커다란 힘과, 희망을 얻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방법 외에도 더 바람직한 삶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현대화된 외부 세계가 그들의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목격하면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세계가 너무 한쪽으로 치닫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그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라다크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해주는 상호연계의 의미를 알려주고, 향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총3부로 되어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1부에서 라다크의 전통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개방에 따라 전통이 붕괴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고 3부에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라다크는 리틀 티베트로 불리는 지역이라고 한다. 인도-파키스탄 전쟁과 중국의 티베트 침략을 거치면서 인도의 전략적 요충지가 된 라다크는,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8개월가량 계속되는 겨울에는 영하 40도의 혹한이 몰아치는 히말라야 계곡의 황량한 고원 사막지대이다.
그곳에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이 경작하는 농지는 가족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대략 한 사람당 1에이커 정도라고 한다. 더 이상의 농지는 그들에게 필요 없는 땅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과 가축은 인간이 예전부터 그러했듯이 한 공동체의 구성원 이었고, 한정된 자원을 아껴 쓰는 그들의 검약은 바로 풍요의 기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이 외부세계에 의존하는 것은 소금과 차, 그리고 요리기구나 공구 같은 몇가지 금속제품뿐 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간다. 생활이 진행되는 속도가 여유롭고 편안하기만 하다.
일처다부제 사회이지만 여성의 성적인 불평등은 없으며, 오히려 여성의 지위는 형식적인 영역에서 보다 비형식적인 일상에서 더욱 폭넓은 역할을 하고 있다. 절대 다수가 불교를 믿고 있지만, 수도인 레에 거주하는 사람들 절반은 무슬림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갈등은 없으며, 서로에 대한 존중심과 넉넉한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고,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는 결혼들도 빈번했다고 한다.
그들도 일상음식 보다는 잔치를 더 좋아하고, 불편함 보다는 편안함, 아픈것 보다는 건강한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기쁨의 모습과 마음의 평화는 외부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그들 내부로부터 나오고 있었다고 한다. 사회 구성원 사이의 유대관계, 그리고 주변 자연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내면의 평화로움과 기쁨이 넘치는 삶의 태도를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거듭되는 동안 라다크 고유의 문화는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1974년 인도 정부가 라다크 지역을 관광지역으로 개방하자, 변화의 과정이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도로나 에너지 생산시설등 인프라 건설로 대변되는 공적부문의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서구식의 개발이 본격화되자 인구가 증가하고, 사람들은 도시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도시는 제3세계 국가들이 흔히 그러하듯 슬럼가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일례로 관광산업의 호황은 수도 레에 전에는 하나도 없었던 호텔과 접객시설이 100개가 넘게 생겨나게 만들었으며, 이는 라다크 사람들의 정서에 물질문화의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 자급자족하던 라다크 인들은, 관광객 한사람이 하루 동안 쓰는 돈이, 그들 가정이 1년 동안 쓰는 돈과 맞먹을 정도가 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서구와 인도영화가 유입되고, tv가 보급되자 현대화된 사회의 겉모습만 보게된 그들은 자신들에게 절망하고, 한심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문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제화폐 경제의 한부분으로 갑자기 편입되어 외부세계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상황이 되자, 사람들은 돈에 정신을 빼앗기고, 그러자 축제가 사라지고, 구성원들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고, 빈부의 차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교육기관은 많이 생겼지만, 어디에서도 라다크에 관한 것은 가르쳐주지 않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원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공동체가 분열되어 분쟁과 반목현상이 증가하고, 전통적 가족 체계의 붕괴와 함께 핵가족화 되어 갔으며, 급기야 종교간 폭력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전통사회는 문맹율이 높고, 영아사망률도 더 높으며, 개인의 기대수명도 서양보다 낮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주변부에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생동감과 행복감이라는 삶의 기쁨이 자신들이 살고있는 그곳에 있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안에 있다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발이란 많은경우 착취나 신식민주의의 완곡한 표현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러나 개발이라는 것이 꼭 파괴의 의미만을 지니지는 않을것 이라고 말한다. 라다크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영위해온 사회적, 생태학적 균형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그들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릴수 있을것 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1980년 저자는 라다크와 서구사회를 오가며 라다크 프로젝트란 이름의 작은 국제기구를 만들어, 그들이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회복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 기구를 1991년 생태친화적이고 공동체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을 장려하기 위한 기구 ISEC(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로 재탄생 시킨다
오늘날 서구사회에는 두가지 흐름이 있다고 한다.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주류문화와, 다양한 분야의 공동체와 사상들을 통합하는 비주류문화가 그것이다. 주류문화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기술개발의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자연의 한계를 압박하고 인간의 욕구를 무시하지만, 비주류문화는 모든 생명체는 연결되어 있다는 오래된 지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은 지역차원의 사회적, 생태적 연대를 변형시키려는 글로벌 경제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비록 글로벌 경제화에 의해 파생된 문제들, 예를 들어 테러리즘, 지구 온난화, 오염, 근본주의등의 불길에 휩싸여 있지만, 서구식의 소모를 전제로 하는 개발의 폐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적절치 못한 개발계획에 맞서 건전하고 유익한 지역 차원의 유대관계를 재건하려는 시민운동이 힘과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미래는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었던 오랜 전통사회의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