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절벽에서 필사를 만나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약 10년 동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나날을 보냈다.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깊숙한 땅 속으로 꺼지는 듯한 기분으로 약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맨홀의 뚜껑을 열고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략)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을 향한 분노를 필사로 풀었다. 필사를 할 때만큼은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필사를 할 때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당장이라도 우주를 뚫고 나갈 듯한 환희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극한의 슬픔을 맛보면 슬픔만큼 분노의 감정으로 치환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분노에 맞서는 나의 무기는 필사밖에 없었다. (중략)
인생의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준 건 다름 아닌 필사였다. 참혹하다는 표현밖에 쓸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날에는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읽고 싶지만 마음이 어지러워 글 한 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필사를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기분 전환이 되었다. 마음에 에너지가 샘솟고,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필사를 하게 되면서 시련을 방관하지 않고 운명을 움켜쥐고, 나의 의지대로 개척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 p. 50
남에게서 배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
그들의 기억, 그들의 사고방식, 그들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당장 그들이 쓴 책을 통째로 옮겨 써라. 이보다 그들의 영혼을 훔치는 손쉬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진 영혼이라도 그들이 남긴 책만 있다면,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다. 이미 지나가버린 그들의 일상을 되새기는 것도 가능하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그들의 하루하루 족적을 쫓아가보며 그들의 감정선을 느껴보는 것도 가능하다. 기록만 남아 있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기록은 위대하다. 기록은 영원하다. 그들의 영혼을 기록한 책으로 나의 가슴과 머리에 그들의 영혼을 이식하라! 이것이 바로 내게 없는 것을 남에게 배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 p. 69
하루 15분으로 시작하라
대한민국 사람의 평균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1시간 17분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1시간 동안 필사하는 것은 힘들다. 하루에 단 15분이라도 짬을 내어 빛나는 정 신의 세계에 접속할 수 있다면 분명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하루 15분이 쌓여 한 달이면 7시간 50분, 석 달이면 22시간 50분, 1년이면 90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이 된다. 하루에 1시간 습관을 들이기는 힘들지만 하루에 15분 정도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시간이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라. 힘들어서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작은 승리를 차곡차곡 맛보아라. 작은 승리는 뇌에 쾌감을 선사한다. 사람은 이러한 쾌감을 한 번 느끼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쾌감을 느끼고 싶어진다. 뇌에 습관으로 자리 잡혀 쾌감의 선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식과 지혜를 추수하는 시간, 바로 하루 15분부터 시작하라. 하루 5분도 괜찮다. 하지만 필사는 손으로 하기 때문에 5분으로는 몇 문장밖에 쓰지 못한다. 시작한다면 15분 정도는 필요하다.
--- p. 90
손은 밖으로 나온 뇌
셰프가 되고 싶은 사람은 요리를 하며 요리의 신체감각을 익히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그림을 따라 그리며 손의 감각을 익히고, 연주자들은 연주를 하며 악기를 다루는 신체감각을 익힌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기를 원하고, 세상과 널리 소통하고 싶고, 논리적으로 사람을 설득하려면 손과 뇌를 같이 사용하라. 글을 쓰는 신체감각은 손과 뇌의 컬래버레이션이다. 필사는 지혜와 성찰의 문장을 머리로 받아들이고 손으로 이해하게 한다.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손으로도 생각하게 하라.
--- p. 107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된다
특별한 사람이 되려면 특별한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특별한 경험을 하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협소한 경험은 다양한 관점을 갖는 데 가장 큰 적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틀이 있고, 웬만하면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틀 안에서 자신을 정의하고, 틀 안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다양한 관점이 생기려면 여러 가지 틀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도 물리적인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다. 아무리 많은 자본을 투입한다 해도 죽은 공자나 맹자를 불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물리적 한계를 넘어 그들의 생각과 영혼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들이 쓴 책을 필사하면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인 대가의 책을 필사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관점을 얻게 된다. 그런 관점이 한두 개가 아닌, 뛰어난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세계 최고 수준의 관점 자본가가 될 것이다. 대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대가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관점의 힘이다.
--- p. 140
피카소의 비밀
피카소는 살아생전 8만 점의 그림을 남겼다. 피카소는 작품 활동을 하다 영감이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다른 사람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 그리기 시작했다. 무려 그의 나이 70세에도 말이다.
피카소는 “시작할 때 품었던 아이디어는 도중에 다른 것으로 변하곤 한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시작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재료가 바로 모방이었다. 피카소가 얼마나 모방을 열심히 했던지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명언을 남길 정도였다. 피카소의 작품이야말로 어느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창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카소는 모든 그림의 화풍을 모방했다. 모방의 대상은 입이 벌어질 만큼 다양했는데 고야, 고갱, 고흐, 세잔, 벨라스케스 등을 비롯해 여러 대가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심지어 피카소가 건드리지 않는 화풍이 없을 정도로 모방을 했다. 피카소는 젊은 시절 뛰어난 모방 화가였다.
--- p. 184
필사 준비물
필사 충동을 느끼게 하는 책을 만났다면, 이제 필사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노트는 마음에 드는 것도 좋고, 집에 굴러다니고 있는 노트도 상관없다. 하지만 처음 필사하는 사람이라면 새 노트가 좋다. 무언가 쓰여 있는 노트의 중간부터 필사하는 것보다는 필사 전용 노트를 마련해서 필사를 시작하는 편이 좋다. 필사노트는 평생을 가져갈 보물이기 때문이다.
노트가 준비되었다면 다음은 필기구다. 어떤 필기구를 사용해도 좋다. 대신 정말 쓰고 싶은, 좋아하는 필기구여야 한다. 연필의 사각거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연필로 필사해도 좋다. 만년필의 필기감을 선호한다면 마음에 쏙 드는 만년필로 필사를 시작하라. (중략)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필기구에 쓰는 돈은 결코 사치가 아니라고 했다. 마음에 쏙 드는 필기구가 있다면 뭐라도 쓰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필사를 할 때 필기구는 필사를 하고 싶은 책만큼 중요한 도구이다. 슥슥 잘 써지는 필기구가 있다면 필사를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필사할 때는 워낙 많은 글을 손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필기구가 조금만 불편해도 맥이 끊기게 된다. 필기감이 좋지 않은 펜을 쓰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 글을 쓸 때 불편해진다. 가볍고 손이 덜 아픈, 그야말로 내 손에 꼭 들어맞는 필기구가 있다면 필사 진도가 시원하게 술술 나갈 것이다.
--- p. 196
꾸준함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탁월함은 열정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빨리 지친다. 열정은 언제나 끓어오를 수 없다. 열정이 사그라진 빈자리에 무엇을 채울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시스템이다. 제 풀에 빨리 나가떨어지는 사람을 위해 시스템이 존재한다. 매일 15분이라도 필사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두자. 그 시스템이 바로 습관이 된다.
하루 15분이 짧아 보이지만 이 15분은 1시간보다도 밀도 있게 쓸 수 있다. 스톱워치를 15분에 맞춰두고 초침이 흐르는 소리를 들어라. 자,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뿐이다. 미치도록 필사하고 싶어도 하루 15분밖에 하지 못한다. 어떤가, 느슨한 마음으로 필사할 수 있겠는가? 15분을 필사하더라도 고농도의 영감을 받을 수 있고,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깨달음을 건질 수도 있다. 무조건 오래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은 의식보다 강력하다.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나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건 무의식적인 습관이다. 무의식에 행동이 세팅되면 습관이 된다. 이 습관의 힘은 놀랍다.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힘들다. 꼭 필사를 해야겠다면 필사가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면 필사는 힘을 들이지 않고 하루하루의 일과가 된다. 꾸준함은 모든 것을 이긴다. 그 무엇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 시간을 채워라. 짧은 시간이라도 필사하는 시간으로 꾸준하게 채워라. 나만의 노트를 완성해가라. 필사를 10년 동안 계속 이어갈 방법은 이것밖에는 없다.
--- p.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