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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를 새롭게 펴내며
1장 이런 내가 어때서 낭만이고 뭐고 그날 아침 삶은 달걀은 누가 먹었을까? 나의 홈쇼핑 탐구 생활 뽀글 파마 할머니로 사는 재미 2장 나이들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취향 난 죽을 때까지 영화를 쫓아다니고 싶다 내가 CSI에 열광하는 이유 갈까 말까 망설이는 여행은 무조건 가라 맥주 한 잔의 행복 개띠 클럽 혼자 놀기 3장 페미니스트가 보는 세상 그 연세가 어때서? 남자들, 달라졌다 고독사 난 이런 프로그램이 싫다고 동경 유람단 4장 살면서 저절로 얻어지는 건 없다 명랑 투병 나이드니까, 글쎄 회갑이 가져다준 선물 식탁은 가구가 아닙니다 나도 저렇게 멋지게 살 수 있을까? 요즘 시어머니로 사는 법 5장 나는 자유다! 버스는 인생이다 여자들이 오래 사는 이유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자세 내 남편 맞아? 우리 서로 손뼉을! 60 넘어, 자유! 에필로그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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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흉을 잡히면서도 꿋꿋하게 10년을 버티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싹둑 자른 것은 갱년기 우울증 때문도 아니요, 남이 흉보는 것에 지쳐서도 아니요, 순전히 내 팔 문이었다. 어느 날 아침, 머리를 뒤로 빗어 넘겨 왼손으로 잡은 후 고무줄로 묶어야 하는데 오른쪽 팔이 올라가지 않는 거였다. 도대체 팔에서 뒤통수까지 몇 센티나 된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오십견이 온 것이다. 내 머리도 내가 마음대로 못 묶는다는 사실에 맥이 빠져 며칠이나 서글퍼하다가 나는 동네 미용실로 달려갔다. 묶을 수 없으면 묶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으면 되지 뭐.
--- 「뽀글 파마」 중에서 〈러브 스토리〉가 국내에서 개봉된 그날은 바로 내 생일이었으며 난 첫 출산을 한 달 앞둔 만삭의 임신부였다. 호르몬의 작용 때문이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날처럼 많은 눈물을 흘린 날은 내 생애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행복의 문턱에서 백혈병으로 죽어야 하는 여자 주인공에게 난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다. 극장 문을 나와서도 거의 곡소리를 내며 우는 나를 보고 남편은 난감해하다 못해 화를 버럭 냈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건데?” --- 「난 죽을 때까지 영화를 쫓아다니고 싶다」 중에서 마침 내 옆자리에는 영화를 좋아하고 글도 잘 쓰는 재기발랄한 정신과 의사가 앉았다. 내가 피 칠갑한 시체들이 등장하는 수사 드라마를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혹시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거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도 수사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한다면서 아무 문제도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재차 당신이야 젊은 남자니까 괜찮겠지만 나처럼 늙은 여자가 그렇다면 혹시 변태가 아니냐고 물었고, 그는 유쾌한 웃음과 함께 “선생님은 정상이십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둘째에게 전하면 분명 정신과 의사치고 정상인 사람은 없다며 나의 정상 진단을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크게 안도했다. --- 「내가 CSI에 열광하는 이유」 중에서 모든 일은 그렇게 물처럼 흘러간다. 죽을 것 같았던 고통도 며칠 지나면 그저 어릴 적 읽은 소설의 한 구절처럼 아스라하기만 하다. 나이 덕분이다. 나이든다는 거, 생각했던 것보다 참 괜찮은 일이다.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던 그 끈질긴 욕심, 회한, 미움, 불안이 어느새 슬그머니 다 녹아 버렸다. 그 자리에 느긋함, 넉넉함, 연민, 고마움이 밀고 들어오는 중이다. ---「60 넘어, 자유」중에서 |
나답게 늙는다구, 그게 뭔데?
그렇다면 나답게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가 말하는 나답게 늙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갖는 것이다. 물론 젊었을 때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재미있게 살고 싶은 젊은 여성들의 모임’이라는 말에 이끌려 찾아간 낯선 파티에서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건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지만 바깥에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꽝꽝 얼어붙은 거리의 미끄러움을 먼저 떠올리고 집으로의 무사 귀환할 일이 벅찬 과제가 될 수도 있다. 아침저녁 식후에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려서 어느 땐 안 먹고 어느 땐 두 번씩 먹는 일이 다반사가 되면서 이렇게 건망증이 심하니 치매에 걸릴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시시때때로 찾아올 수도 있다. 번번이 맘에 쏙 드는 물건 사기에 실패하는 홈쇼핑과 나이들수록 함께 술 마실 사람이 점점 줄어가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위해 혼자서라도 영화관을 찾아 관람하고, 살인, 시체, 수사를 좋아하는 심리엔 무언가 정신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는 둘째 아들의 핀잔에도 좋아하는 미국 수사 드라마 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버스로 부산을 1박 2일에 다녀오면서 이젠 이런 여행은 무리라고 투정을 부리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의 따끈한 김치우동 국물에 짜증과 근심을 녹여 내기도 한다. 혼자 밥 먹는 늙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지만, 남들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는다. 저자는 혼자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항상 남에게 의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50년을 같이 살았어도 배우자와 내 취향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자식은 자기 사는 일만으로도 바쁘다. “혼자 놀 줄 안다는 것은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외로움을 즐길 수 있다면 남에게 섭섭함 따위를 느낄 겨를이 없다. 그러니 혼자 잘 노는 사람이 곧 여럿과 잘 어울릴 줄 아는 사람”(100쪽)이라고 얘기한다. 나이들수록 자기 취향을 가지고 혼자 놀 줄 알아야 인생이 그나마 덜 외롭고 덜 삭막해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혼자 하더라도 스스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려면 자신만의 취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혼자 걷고 싶은 소망을 가진다. 지독한 연령차별주의의 벽을 넘기를 바라며 그 시작은 바로 나로부터 “겨우 10년 정도 차이 나는 사람들이 ‘그 연세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불과 10년 후에 다다를 나이를 마치 아득한 먼 훗날인 양 취급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언어도단이다.”(105쪽) 함께 여행을 떠난 무리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그 연세에~~’를 들먹이는 사람들, TV 노인 대상 프로그램에서 노인들을 희화화하거나 50대에게 ‘어르신,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저자는 이런 모습들을 가리켜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나이든 사람과 자신을 분리하고 싶어 하는 연령차별주의에서 나온”(43쪽)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 역시 ‘나이주의자’였던 순간을 고백하기도 했다. 젊은 날의 우상이었던 전설의 배우 백성희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80 노인’ 같지 않은 노老 배우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저자는 대학로에서 젊은 가수의 콘서트를 보고 나왔는데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몇 명이 한꺼번에 벌떡 일어섰을 때 몇 시간 동안 누렸던 젊음이 순식간에 깨어져 버릴 때의 그 낭패감을 떠올리며 “몇 살 덜 먹은 거, 몇 살 더 먹은 거 너무 의식하지 말고 살자”(110쪽)고 얘기한다. 연세 따위는 애써 잊고 사는 사람에게 새삼 나이를 의식하게 만드는 건 칭찬도 예의도 아니라고 얘기하면서 예의를 빌미로 사람 사이에 벽을 쌓지는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출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박혜란의 [新시어머니 십계명](187쪽)과 [스무 살을 맞는 그대들에게 예순네 살 먹은 헤라니 할머니가] 띄우는 20가지의 다짐들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