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30대의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그는 자살 전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격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남긴 일기에는 [나에게 휴식은 없구나. 사람 대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일이 자꾸 쌓여만 가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고 쓰여 있었다. 물론 과로와 자살이 직접 연결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해에만 4명의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 p.6
번아웃 증후군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무기력증, 자기혐오에 빠지는 증상이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다. 자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감정이 다 사라졌다. (…) 살기 위해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 사는지 모를 때부터 인생이다. 토요일도 출근해야 한다고 결정 났다. 진짜로 죽고 싶다. 매일 다음 날이 오는 게 무서워 잘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자살한 일본의 어느 광고회사 신입사원의 사례가 번아웃 상태를 잘 보여준다. --- pp.20-21
우리가 더욱 우려해야 하는 점은 폭력적인 장시간 노동에 발을 딛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시간 노동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거나 못한다는 사실이다. 과로 위험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무뎌진 상태, 일종의 ‘저인지’ 상태다. 이러한 상황은 EU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EU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에 대한 한국인의 주관적 인식은 EU 국가 국민들에 비해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 일에 투여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음에도 이를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다. --- pp.25-26
과로사를 심신이 허약한 사람의 문제로 보거나 ‘평소 건강 관리를 못했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다’며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례들이 많다. ‘무리하지 말아야지’ ‘건강 관리 잘 해야지’라는 대처도 마찬가지다. 진단과 대안 모두 ‘자기관리’ 담론 또는 ‘감내’ 프레임에 갇혀 있다. 과로사를 특정 집단의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보는 예외주의적 시선이나 문제의 원인을 개인화하는 자기관리 담론은 과로사가 착취적 생산관계에 따른 산물이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이런 시선과 담론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언어가 어느 정도로 작동하고 있는지 말해주는 증거 아닐까? --- pp.56-57
장시간 노동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그래서 눈여겨볼 만하다. 정치사상가인 더글라스 러미스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으로 ‘자유시간’을 언급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빌려 다음과 같이 여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모여 의논을 하고, 합의를 하고, 정치에 참가하는 데에는 시간이 든다. 그러한 틈이 없으면 정치는 불가능하다. 여가 시간이 있어야 정치를 하고, 문화를 만들고, 예술을 만들고, 철학을 한다.” 시간 박탈로 관계를 상실하면 지역 참여의 쇠퇴는 물론 장기적으로 사회 보수화까지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pp.103-104
역설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장시간 노동을 명예의 표식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오래 일하는 것을 자긍심이나 우월감 혹은 아버지다움이나 남편다움과 같은 선상에 놓는다. “2~3일 밤샘 안 해 봤으면 아직 개발자가 덜 된 거야”라는 농담 섞인 조언은 ‘나는 고통의 과정을 감내하고 이겨냈다’는 승자의 자부심을 담고 있다. 이상적 노동자상은 ‘일만 하는 남성의 성 역할’을 기준으로 설계됐다. 여기서 노동 이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동시에 기존의 성별 분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 pp.151-152
개인별, 팀별 경쟁을 장려하는 업무 패턴은 노동자들을 무한 쳇바퀴에서 질주하게 만들었다. 인센티브, 핵심인재, 역량평가, 360도 수행평가 같은 성과 장치들은 자기 계발하는 주체, 기업가적 주체라는 새로운 인간형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인센티브는 업무에 대한 보상만 뜻하는 게 아니다. 우월성의 표식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자기 계발은 우월성을 성취하는 일종의 방법론이 된다. 성과 장치를 매개로 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주체 생산방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p.167
낯설게 하기의 일환으로 ‘상징 투쟁’을 들 수 있다. 상징 투쟁에는 공격적 화법을 동원하는 방식이 있다. 이를테면 ‘야근은 암이다’ ‘야간노동은 발암물질이다’ ‘과로는 가정파괴범이다’ ‘기업도 인권을 탄압하는 주체다’와 같은 슬로건이 이에 해당한다. ‘살인기업 선정식’ ‘블랙기업 운동’ ‘과로사 백서’처럼 장시간 노동이 일종의 사회 질병이라는 사실을 문제화하는 방법이다. --- p.205
새로운 시간 투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선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주목할 만한 새 언어다. 우리는 신기술이 이미 설계 단계부터 자본화된 의미를 담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기술 설계 단계부터 시간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을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독일의 다임러가 시행하는 ‘휴가 기간 중 업무 관련 메일이 자동 삭제되도록 한 장치’가 이에 해당한다. --- p.230
시간마름병은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유발한 감자마름병에서 따왔다. 감자마름병은 자연재해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영국의 지배자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차별이 결합된 구조적 착취의 산물이다. 마찬가지로 시간마름병도 오랜 구조적 착취의 결과로 빚어진 사회적 질병이다. 개인 질병의 단계를 넘어선 일종의 국민병이다. 시간마름병이 창궐하는 곳에서 워라밸이나 칼퇴근, 시간권리는 요원한 일이다. 현재 시간마름병의 수준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의 강력한 처벌이 우선되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다. 개별적 요법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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