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한델스만(Jo Handelsman)은 예일 대학의 하워드 휴 의학 연구소의 생물학 교수이자 백악관 과학기술 정책위원회 부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비교적 간단한 한 가지 실험을 설계했다. 과학 분야에서 고용 시 일종의 성차별이 존재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한델스만은 사립대학 세 곳과 공립대학 세 곳의 과학 교수들에게 실험실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대학원생들을 냉철하게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모든 교수에게 한 페이지로 요약된 지원자 이력서를 보냈다. 이력서에는 지원자가 비록 장래는 촉망되지만 아주 뛰어나지는 않은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이력의 지원자를 놓고 일부에는 ‘존’이라는 이름을, 나머지에는 ‘제니퍼’라는 이름을 붙였다.
127명의 교수가 답을 보내왔다.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곤혹스러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1~7점(가장 높은 점수가 7점)으로 지원자들을 평가해달라는 연구진의 요청에 ‘존’은 모든 능력에서 평균 4점을, 제니퍼는 평균 3.3을 받았다. 게다가 지원자를 고용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제니퍼’보다 ‘존’을 고용하겠다는 답변이 훨씬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단지 고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기꺼이 ‘존’의 멘토가 되어주겠다고 답변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연구팀은 교수들에게 지원자들을 고용할 경우 지급할 연봉을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존’의 이름이 붙은 지원자에게는 평균 3만 328달러의 연봉이 잠정 책정되었고, ‘제니퍼’ 이름이 붙은 지원자에게는 평균 2만 6,508달러가 책정되었다.
이 실험 결과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여자 교수들의 답변이 남자 교수들의 답변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누구보다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과학자들이 과연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이성적인지 의문스럽다.
― 본문 중에서 --- pp.22~23
심리학자 조지프 레독스(Joseph LeDoux)는 편향성이 우리가 생각할 기회를 얻기 전에 사람이나 상황의 안전을 결정하는 무의식적 ‘위험 탐지기’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아주 먼 옛날 당신이 강에서 물을 긷는 사람과 마주쳤다고 가정해보자. 순간적으로 당신은 상대방이 적인지 당신 편인지 즉각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은 당신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고 자칫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만큼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는 진화 과정에 자연스럽게 학습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길을 건널 때 위험에 대해 ‘편향적’이 되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이 길에서 공을 차며 뛰어가거나 걸어서 학교에 갈 때 커브 길을 만나면 무조건 멈추라고 이야기한다. 난로가 뜨거운지 뜨겁지 않은지 판단하도록 가르칠 때도 그런 식으로 한다. 성급하게 덥석 만지지 말고 조심스럽게 만져보도록 반복해서 가르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은 우리 유전자 안에 각인되어 있다.
이에 관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우리 안의 편향성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편향성이 전혀 없는 세상에 산다고 상상해보자.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 그가 친구인지 적인지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천차만별의 수많은 상황에서 어떻게 일일이 올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 만약 누군가가 손에 칼을 들고 자기에게 다가오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으로 대체 뭘 할 생각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군!”
실제로 그렇게 하다가는 자칫 큰 봉변을 당하기에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지체하지 않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도망치기, 혹은 상대보다 더 빠르게 공격하기. 일종의 긍정적인 편견·편향성이 원천적으로 빠져 있다면 이런 대응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거나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렇듯 편견·편향성이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 본문 중에서 --- pp.63~64
우리는 매 순간 1,100만 개나 되는 수많은 감각 방아쇠(Sensory Triggers)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우리가 흡수할 수 있는 것은 고작 40~50개 정도뿐이다. 그나마 분명하게 감지하는 것은 훨씬 더 적을 수 있는데, 어쩌면 예닐곱 개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특정한 순간에 노출된 이런 엄청난 자극 수를 고려할 때 우리가 반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편도는 신호를 받으면 그것을 뇌의 복잡한 조직체, 즉 변연계로 보낸다. 변연계는 수많은 세포가 빠르게, 그리고 자동으로 작동하는 곳이다. 해마는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수색해 촉매가 되는 사람이나 물체, 상황을 확인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한다(잿빛 머리를 보면 나이가 들었고 등등).
이 모든 일은 그야말로 휙 지나가듯 순식간에 일어난다. 해마는 우리가 계속 걷고, 말하고, 숨 쉬게 하는 것뿐 아니라 자극에 대해 자동 반응하게 한다. 만약 새로운 환경에서 자극이 주어질 때마다 매번 생각해야 한다면 우리는 거의 마비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 시스템은 사태의 중요성을 판단하고, 그 어떤 것이든 적절히 대응하는 데 필요한 정서적 동기를 유발한다. 그런 다음 해마는 교통 통제 시스템 역할을 하는 데 이어 대상 회전 부위와 앞쪽 대상피질에 신호를 보내 인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 본문 중에서 --- pp.109~110
여섯 번째 패턴을 소개하기 전에 머리도 식힐 겸 잠깐 동안 간단한 연습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당신은 최대한 신속하게 다음의 지시에 답해야 한다. 자, 준비되었는가?
1. 될 수 있는 한 빠른 속도로 silk를 다섯 번 말하라.
2. silk를 네 번 큰 소리로 스펠링을 말하라.
3. 그것을 다시 여섯 번 말하라.
4. 그 스펠링을 다섯 번 큰 소리로 말하라.
5. 그것을 다시 일곱 번 반복해서 말하라.
자, 재빨리 답한다. 소들은 무엇을 마실까? 이 문제를 초고속으로 푼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같다면(약 75퍼센트), “소들은 무엇을 마시는가?”라고 물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답은 ‘milk’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잘 안다. 소가 milk, 즉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소는 우유가 아니라 물을 마신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재빠르게 water가 아닌 milk로 향한다. 왜 그럴까? ‘silk’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청각 연상 효과 때문이다. ‘silk’의 반복 낭독으로 ‘milk’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점화 효과(priming effect)’의 간단한 예다.
……(중략)
‘점화’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많은 경험이 우리를 점화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브르타뉴 수드 대학의 니콜라스 게겡(Nicholas Gueguen)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색깔과 냄새, 사소한 터치 등 수십 가지 미묘한 요인이 데이트, 팁, 히치하이크, 혹은 다양한 행동과 습관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점화 효과’는 매우 강력하고 오랫동안 지속한다. 그런 터라,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에도 쉽게 점화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 pp.172~173
볼류와 토도로브는 피실험자들에게 상원의원과 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1초 내에 그들의 능력과 신뢰성을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피실험자들이 선택한 도지사 선거 후보자는 실제 선거에서 68.6퍼센트의 승률을 보였으며 상원의원 선거는 72퍼센트의 승률을 보였다. 그들은 단지 1초도 안 되는 노출 시간을 토대로 누구를 찍을지 결정했다. 그것은 심사숙고한 결과라기보다는 본능적 정서 반응에 가까웠다.
우리 정치관은 이런 정서적 현상의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연구자들인 티에리 데보스(Thierry Devos)와 트래비스 가퍼드(Travis Gaffud), 그리고 시카고 대학의 데비 마(Debbie Ma)는 ‘미국인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지’와 ‘일상적으로 접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념 사이의 무의식적 연관성을 테스트했다. 그들은 두 여배우에 대한 반응을 비교함으로써 이 일을 시작했다.
한 여배우는 영국 태생의 케이트 윈즐릿(Kate Winslet)으로 영화 [타이태닉(Titanic)]과 [더 리더(The Reader)]로 널리 알려진 배우였고, 다른 하나는 미국 뉴욕 퀸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 루시 리우(Lucy Liu)로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여배우였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이 생각할 것도 없이 영국 태생의 백인인 케이트 윈즐릿이 미국 태생의 루시 리우보다 미국인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연관 지었다. 다음 차례로 토니 블레어(Tony Blair)와 버락 오바마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실험에 참가한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전직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가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미국인에 더 가깝다고 여겼다.
이 밖에도 많은 연구들이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하는 어떤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시사했다.
― 본문 중에서
--- pp.291~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