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용 선장은 베트남 보트피플을 발견했을 때 회사의 지침을 어기고 그들을 구한다면 자신의 미래와 경력을 모두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경력보다 96명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정확히 분별했고, 희생을 감수하기로 선택했고 실제로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은 것입니다. 회사의 지침과 생명을 선택하라는 양심의 명령 사이에서 생기는 윤리적인 갈등 상황은 무수히 일어나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분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민감하게 깨어 있지 않으면, 이런 순간들이 윤리적인 갈등 상황인지도 모르고 그저 하던 대로, 누군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지나가기가 쉽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자기 죄가 아니라고 부인否認하는 사람에게 “억지로라도 자백을 받아내려면 고문도 불사해야 한다”는 상관의 지시를 받은 경찰관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회사에 취직했는데 처음 맡게 된 일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폐기물을 인근 야산에 허가도 받지 않고 버리는 작업이라면요? 실제로 대개의 경찰관은 그런 상황에서 고문을 합니다. 신입사원들은 회사가 해오던 대로 오염물질을 불법적으로 투기합니다. 과연 그들은 고문이 불법이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오염물질 투척이 불법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까요? 네, 어쩌면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상관의 지시거나 회사의 관행이라 할지라도 그릇된 것이라면 거부해야 하는데 그럴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분별력과 용기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올바른 선택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 「올바른 선택에는 분별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중에서
우리나라 대한민국 헌법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알아볼까요? 우리나라 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되는 전문前文 다음에 모두 제130개조가 제1장 총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 10개의 장에 나누어 열거되고, 마지막에 부칙附則이라고 해서 경과 규정이 붙어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1장 총강에는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해서 대한민국의 정체가 민주공화국임을 밝히고, 제9조에 이르기까지 국민, 영토, 통일 정책, 침략적 전쟁 부인, 복수정당제 등 대한민국의 정치적 기본 질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는 제목 아래 제10조부터 제39조까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법 앞의 평등, 신체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재산권 보장, 참정권, 청원할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장부터 이후까지는 국회, 대통령, 행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 관리, 지방자치 등 통치 기구의 조직과 운영에 대해 정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헌법도 ●우리 헌법의 연혁과 이념을 밝힌 전문 및 나라의 정체와 국민 주권주의 등 기본 질서를 선언하는 총강, ●권리장전」에 해당하는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열거한 부분, 그리고 ●통치기구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원칙을 밝힌 부분으로서 제3장에서 9장까지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의 장, 제10장 헌법 개정 및 부칙까지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도 「권리장전」을 그 안에 가지고 있는 ‘입헌주의 헌법’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동시에, 입헌군주제는 자유민주주의와 군주제가 결합된 것인데 대한민국은 군주국가가 아닌 민주공화국이므로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이기도 합니다. --- 「대한민국 헌법의 형식과 특징」 중에서
만일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독일에서 태어나 군인이 되었더라면, 나 역시 아몬 괴트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상상도 하기 싫지만 한번 자문해봅니다. “나라면 차라리 거지가 되는 한이 있어도 군인을 그만두겠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소극적으로 군인 지위를 유지하면서 주어진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을까요? 앞의 장에서 보았던 예루살렘의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말입니다. 이 고민은 아마 아몬 괴트라는 인물을 연기했던 배우가 가장 많이 해보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아몬 괴트 역을 맡았던 배우 파인스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악은 집단적인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이 악을 저지르고 있다기보다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몬 괴트는 악행과 살인을 그의 일상적인 업무로서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파인스는 아몬 괴트 역을 소름끼치도록 잘 소화해냈던 것 같습니다.
악은 집단적인 것이어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둔감하게 만듭니다. 옆 사람도 또 다른 옆 사람도 뭔가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비록 나쁜 일일지라도 “하면 안 돼”라는 생각보다는 “나도 해야 되나? 해도 괜찮겠지” 하면서 의심하던 마음이 옅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악이란 것이 아몬 괴트라는 고유한 한 인간의 마음에만 존재했던 걸까요, 아니면 악행을 통해 이것을 본 사람들에게 전염되기라도 한 것일까요? --- 「오스카 쉰들러에겐 있는데 아몬 괴트에겐 없는 것」 중에서
곽씨 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 역시 앞 못 보는 남편과 젖도 못 뗀 청이가 어떻게 살지 염려하며 눈도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청이와 심봉사를 가엾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서로 젖을 먹여주고 헌옷가지를 나눠주며 심봉사를 도왔습니다. 청이를 살게 해준 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던 사랑이었어요. 청이나 심봉사처럼 사회적으로 약자인 구성원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함이 모여 만들어내는 사회 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회 안전망을 제도화한 것이 바로 사회복지제도이며, 그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기 위해 만든 법이 사회보장기본법입니다. (…) 대한민국의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면서 국가가 사회보장 및 사회복지를 증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그럴 의무를 진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자의 복지와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가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헌법에 여자의 복지 권익,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 실시의 의무를 명기한 것은 우리나라가 약자를 돕는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데 가치를 두고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법과 사랑의 오묘한 조합」 중에서
이렇게 한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게 보이면 이런 부당한 상황을 계속 유지하는 법질서에 대해서 회의를 품는 사상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법질서를 수호하는 쪽이 적군이고 법망을 피해가는 쪽이 아군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이런 소설이 널리 읽혔다는 것은 그 시대에 분명 부조리한 측면이 있었고, 그 피해자에 대해 동류의식을 느끼는 독자층이 많았음을 뜻합니다. 게다가 『홍길동전』에서는 피해자가 약자로서 고통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포도대장을 농락하고 해인사를 털어 또 다른 약자 집단인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승리자로 승승장구하니 독자들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소설 속에서나마 이루어내고 상상 속에서나마 불만을 해소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한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게 보이면 이런 부당한 상황을 계속 유지하는 법질서에 대해서 회의를 품는 사상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 조선에 헌법재판소가 있었더라면 홍길동이 도적떼의 두목이 되었을까요? 아마 그 시대에 헌법재판소가 있었더라면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된 서자들이 “서자들의 벼슬길을 막는 제도나 법 때문에 헌법상 권리를 침해받았다”라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는 “서자라는 이유로 벼슬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평등권 조항과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를 침해하였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라고 위헌 결정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 결과 악법인 적서차별법은 폐지되었을 것이고, 길동도 벼슬길로 나갈 수 있었을 테니 도적떼 두목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 「자연법과 실정법의 괴리를 좁히는 헌법재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