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다. 정말 그럴까?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면 불행한 삶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무조건 행복한 삶일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그 둘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도 아주 격하게. 그리고 시너지 효과를 내며 ‘성장’이라는 선물을 안겨준다. 해야 하는 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타의성’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는 회사 일, 게다가 익숙하지도 않은 일일 때가 많다. 그러니 두렵다. 억지로 한다는 생각이 온 세포를 휘감는다. 행복할 리가 없다. --- 「‘하고 싶은 일하고 살라’는 달콤한 거짓말에 속지 마라」 중에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눈치 보며 설렁설렁 하는데도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죽어라 해도 일이 줄어들지 않고, 누군가는 널널하게 월급 루팡의 삶을 산다. 일 잘해서 인정받다가 어르신 모시고 과속방지턱 한번 잘못 넘어 미운털 박힌 사람, 일은 죽어라 못하는데 노래방에서 분위기 한번 잘 살려 요직에 배치되는 사람, 모두의 인정을 받지만 임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퇴사하는 사람, 아랫사람에게 업무 능력을 최악으로 평가받는데도 이상하게 승진을 거듭하는 사람, 빨리 승진한다고 좋아하다가 급격하게 내리막을 겪는 사람, 느리게 간다고 슬퍼하다가 앞서 나갔던 사람보다 더 잘되는 사람 등,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직장이다. 직장에서는 동화 《개미와 베짱이》와는 다른 결론이 흔히 나온다. 따라서 직장생활에는 정답이 없다. --- 「직장생활, 정답은 없고 오답은 있다」 중에서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사이코패스 기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질 없이는 버텨낼 수 없는 곳이 직장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상황과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이성적이고 정상적으로만 직장생활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정말로 ‘선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미 직장생활을 접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사이코패스’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 단어가 거북하다면, 일단 ‘정상적이지 않음’이라도 인정하자. 조금 전 나를 혼낸 상사와 웃으며 점심을 같이 먹어야 하고, 어제 싸운 유관부서 담당자에게 내가 아쉬울 땐 음료수 하나라도 건네며 부탁해야 할 때도 있다. 가뜩이나 회사 가기 싫은 사람들이 모여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곳이 직장인데 갈등이 안 생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지내야 하니,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 「일희일비하지 않는 긍정적 사이코패스의 기술」 중에서
직장생활이 힘든 건 일 때문만이 아니다. 만약 일이 잘된다고 해보자.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진척이 빨라 크게 인정받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아마 시키지 않아도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주말도 반납한 채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일’이란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완성된다. 나 하나 잘났다고, 나 하나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해서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결국, 직장생활의 핵심은 관계다. 관계는 직장생활의 시작과 끝이자,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는 원흉이기도 하다. 내 편은커녕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과 상황에 둘러싸여 있다면 그것처럼 괴로운 게 없다. 따라서 직장생활 하면서는 절대 적을 만들어선 안 된다. 문제는 내가 적을 만들지 않아도, 이미 사방에 적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화를 낸 적도 없고, 공격적 내용 가득한 메일을 보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이 점이 직장생활을 힘들게 한다. --- 「사방이 적인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중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만큼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가 없다. 하지만 그 말의 본질이 제대로 활용되진 않는다. 보통은 남이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때, “입장 바꿔 생각해봐!”란 성토조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러면 어김없이, 상대방 쪽에서도 “그쪽이야말로 입장 바꿔 생각해보시죠!”라는 반박이 날아온다.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는 가장 큰 원인은, 역지사지를 ‘해결책’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역지사지는 해결책이 아닌 ‘대비책’이 되어야 한다. 즉, 막판에 가서 내 말을 알아들을 의도가 전혀 없는 상대방에게 역지사지를 들이밀면 안 된다. 평소에 상대방을 헤아려 내가 필요할 때 나의 의도가 전달될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 「갈등을 줄이는 역지사지의 기술」 중에서
우리는 보고를 위해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상사에게 잔뜩 깨지고 좌절하기도 한다.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머릿속에는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힘겹게 작성한 보고서를 들고 갔는데,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심지어 상사의 말을 꼬박꼬박 적어놓고 체크해가며 작성한 보고서인데도 말이다. 회사생활은 즐겁지 않고,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일을 못한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상사의 부정적 피드백을 줄이기 위한 유용한 방법이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시때때로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하는 것처럼 일할 때는 상사에게 그 일에 관해 표현해야 한다. 즉, ‘중간보고’를 해야 한다.
--- 「중간보고가 만드는 기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