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5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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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40쪽 | 803g | 150*225*34mm |
ISBN13 | 9791187142867 |
ISBN10 | 1187142867 |
발행일 | 2019년 05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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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40쪽 | 803g | 150*225*34mm |
ISBN13 | 9791187142867 |
ISBN10 | 1187142867 |
제4쇄 저자 서문 11 발간 25주년 기념판에 들어간 헨리 조지 2세의 서문 18 서론 문제의 제기 23 [제1권 임금과 자본] 35 제1장 현재의 임금 이론은 타당하지 않다 36 제2장 용어들의 의미 49 제3장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6 8 제4장 노동자의 생계비는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88 제5장 자본의 진정한 기능 97 [제2권 인구와 식량] 107 제1장 맬서스 이론의 기원과 지지자들 108 제2장 객관적 사실에 의한 추론 120 제3장 비유에 의한 추론 148 제4장 맬서스 이론에 대한 반박 159 [제3권 분배의 법칙] 171 제1장 분배의 법칙들과 법칙 간의 필연적 관계 172 제2장 지대와 지대의 법칙 183 제3장 이자와 이자의 원인 191 제4장 가짜 자본과 종종 이자로 오해되는 이윤 207 제5장 이자의 법칙 213 제6장 임금과 임금의 법칙 221 제7장 부의 분배 법칙의 상호 관련과 협동 235 [제4권 물질적 진보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241 제1장 문제의 동태적 측면에 대한 탐구 242 제2장 인구 증가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245 제3장 기술의 개선이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260 제4장 물질적 진보에 따른 기대감의 효과 271 [제5권 문제의 해결] 277 제1장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산업 불황의 근본 원인 278 제2장 부가 증가하는 데도 빈곤이 지속되는 현상 296 [제6권 해결책] 313 제1장 현재 지지를 받고 있는 해결책들은 미흡하다 314 제2장 진정한 해결책 342 [제7권 해결책의 정당성] 345 제1장 토지 사유제는 정의롭지 못하다 346 제2장 토지 사유제는 노동자를 노예로 만든다 361 제3장 토지 소유자의 보상 요구 372 제4장 토지 사유제의 역사적 사례 382 제5장 미국의 토지 사유제 399 [제8권 해결책의 적용] 411 제1장 토지 사유제는 토지의 선용을 방해한다 412 제2장 토지 평등권의 주장과 확보 418 제3장 조세 정의의 기준으로 검증해본 토지 가치세 424 제4장 토지 가치세에 대한 찬반 438 [제9권 해결책의 효과] 447 제1장 해결책이 부의 생산에 미치는 효과 448 제2장 분배와 생산에 미치는 효과 455 제3장 개인과 계급에 미치는 효과 462 제4장 사회 조직과 사회생활에 벌어질 변화 469 [제10권 인류 진보의 법칙] 489 제1장 현행 진보 이론은 충분하지 않다 490 제2장 문명의 차이는 무엇 때문인가? 504 제3장 인류 진보의 법칙 520 제4장 현대 문명의 쇠퇴 가능성 541 제5장 핵심적 진리 560 결론 개인 생활의 문제 571 헨리 조지 연보 584 역자 해제: 용기 있는 도덕적 경제학자 593 |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주기적인 산업불황과 빈부격차는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인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 원인으로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폐해 등을 꼽고 있지만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고, 그 해결책이라고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그들은 한결같이 시장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론을 위한 이론, 현실과 유리된 이론, 일부계급의 이익만을 옹호하기 위한 이론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경제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 책 [진보와 빈곤]은 재야 경제학자로 불리는 헨리 조지가 1879년에 쓴 책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젊어서 식자공으로 일하면서, 세상은 물질적 진보를 이루어가고 있는데도 왜 노동자는 일을 해도 더 가난해지는가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물질적 진보를 가져오는 조건들이 온전하게 실현될수록 산업불황과 빈부격차는 더욱 뚜렷하고 분명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기존의 경제이론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진보와 빈곤이 공존하게 만드는 법칙을 찾고자 했다. 사회가 물질적 진보를 이룰수록 노동자들이 더 심각한 가난, 더 힘든 생존의 몸부림, 더 만연한 강제실업에 직면하게 되는 원인과 해결책을 탐구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이 책이다.
헨리 조지는 먼저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토머스 맬서스, 존 스튜어트 밀로 이어지는 고전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임금과 지대 그리고 분배의 법칙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임금은 자본으로부터 나온다는 임금기금 이론, 어떤 일정한 지점을 지나면 토지에 자본과 노동을 투입해도 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에 지대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지대의 법칙, 자본을 생산의 제1요인으로 보고 토지를 수단, 노동을 도구로 여기는 분배의 법칙 모두가 그들의 오해 및 실상의 은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맬서스의 인구이론은 현실이 아닌 가정과 순환논법에 기댄 얼토당토 않는 이론이지만 기존 경제학자들의 학설에 기대어 확고해졌고, 다시 기존학설을 강화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임금은 자본이 아니라 임금의 대가인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나오며, 자본은 생산과정 중의 노동을 돕고 교환을 원활하게 하는데 필요한 부(富), 즉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투입된 부라고 정의한다. 생산의 3요소를 토지, 노동, 자본이라고 할 때, 토지와 노동에 해당되는 것은 당연히 자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생산력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노동자들의 임금이 떨어지는 원인은 자본이나, 노동에 반응하는 자연의 생산력 한계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빈곤의 원인은 부의 생산을 지배하는 법칙이 아니라 분배를 지배하는 법칙 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물은 토지, 자본, 노동이 모여 만들어 낸다. 따라서 생산물은 이 셋 사이에서 지대, 임금, 이자의 형태로 분배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자와 이윤을 혼동하여 사용하며 자본의 대가로 이윤을 꼽고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이윤에는 기업 관리를 위한 임금, 위험부담에 대한 보상과 이자가 포함되어 있다. 즉, 자신들의 임금이론에 적용되지 않는 인적 노력에 대한 보상 등을 은폐하고자 이자대신 이윤을 사용한다고 헨리 조지는 강조한다.
또한 지대는 그 소유주가 갖고 있는 토지의 자연적 능력에 대한 독점적 권리로 그것이 만들어 내는 부를 뜻한다. 즉, 지대는 경작의 한계에 달려 있으며 그 한계가 떨어지면 오르고, 올라가면 떨어진다. 임금과 이자는 노동과 자본의 생산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대를 제외하고 남는 부분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임금과 이자 역시 경작의 한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한계가 떨어지면 떨어지고, 올라가면 오른다. 그러나 물질적 진보가 진행되어도 임금이나 이자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물질적 진보에 수반되는 특징이 지대의 상승이기 때문이라고 헨리 조지는 말한다. 즉 경작의 한계에 관계없이 토지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토지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창출된 부를 나눠가지는 소유의 권리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따라서 토지 가치의 상승은 언제나 노동의 가치를 희생시킨다. 생산력의 증가가 임금을 상승시키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토지의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지대가 이처럼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사회가 진보하는데도 빈곤이 생겨나는 것이다.’(239쪽) 여기에 더하여 앞으로 토지의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투기를 유도하고, 투기는 물질적 진보가 진행될수록 증가되는 생산력보다 더 높은 비율로 지대를 상승시키는 힘이 된다. 그는 모든 국가가 직면하는 주기적인 산업불황의 근본원인 또한 토지 가치의 투기적 상승에서 찾고 있다.
이처럼 헨리 조지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산업불황과, 물질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빈곤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는 바로 토지소유권의 불평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아직도 경제학자들은 물질적 진보나 인구증가의 억제가 빈곤퇴치의 주요 수단이라고 믿고 여러 가지 조치들을 내세우지만, 그것들은 단지 증상을 완화시켜주거나 혹은 자신들의 이익을 은폐하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빈곤퇴치의 근본대책은 오직 토지공유제뿐이라고 강조한다. 토지는 자연물로써 그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토지사유는 권력계급이 전쟁을 기화로 공유지를 독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봉건시대 이후 현대문명이 발전해온 전반적 과정은 토지의 집단소유라는 자연스럽고 근본적인 사상을 파괴해온 과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따라서 토지사유제는 정의롭지 못한 제도이며, 노동자를 노예의 신세로 전락시키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토지몰수 같은 과격한 방법에 대해서는 그도 망설이며, 그것을 적용하는 방법으로써 토지의 소유권은 인정하여 매매나 양도가 가능하게 하되 지대는 모두 조세로 흡수하자고 제안한다. 토지의 가치를 평가하여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가치세만을 부과하고 다른 모든 세금은 철폐하자는 것이다. 물론 토지 위에 개선된 시설에 대한 안전보장은 그전과 마찬가지이다.
헨리 조지는 자신이 주장한 토지가치세가 이해관계자들의 조직적인 저항 등 많은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다. 특히 법률가들이 널리 퍼뜨리려 애쓰고, 정치경제학자들이 묵인해온 ‘토지를 공동재산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문명을 파괴하여 야만사회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을 혼동하는 망상이라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토지가치세가 산업불황과 부의 불평등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일반대중이 이해하기만 한다면, 토지가치세를 실천하라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정치적 세력의 연합이 결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현대문명이 진행될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정의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부의 분배는 진보의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 경향으로써 결국 진보를 멈춰 세운다. 그런 경향은 저절로 치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점점 더 심해지다가 결국에는 우리 문명을 야만으로 퇴행시킬 것이다.’(560쪽)라고 우려한다. 따라서 우리는 ‘부의 생산과 분배를 지배하는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현재의 사회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가난과 불의는 불필요한 것임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가난이 아예 없어지고, 인간 본성의 더 좋은 특징과 더 높은 능력이 완전 개발되는 기회를 맞는, 그런 사회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577쪽)라고 역설한다.
책을 읽어오면서 부의 생산과 분배에 대한 법칙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된 것 같다. 자연과학을 전공하여 경제에 대한 지식은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 전부인지라 헨리 조지의 주장이 효과가 있는지, 토지공유제가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가 주장하는 부의 불평등이 부의 분배에 문제가 있다는 것, 특히 지금의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이 간다. 우리사회는 부동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정의와 진보에 대해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헨리 조지의 경제사상 또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고 있다. 잠시 틈이 생겨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많은 생각거리를 준 것 같다. [자본]을 읽어가면서 헨리 조지의 주장과 어떤 면이 다르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하며 읽는 것도 괜찮은 독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을 선물해준 블로그 지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은 책읽기였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미 20세기 초에 누구든지 하루 4시간만 일하고도 충분한 음식과 생필품을 풍족하게 쓸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인생을 즐기고 향유하는 데 쓸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기존에 10명이 하던 일을 5명이 할 수 있게 되니 자연스러운 예측이다. 문제는 높아진 생산성의 혜택을 고르게 누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보면, 매년 생산되는 식량은 전 세계 인구의 2배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하다고 한다. 반면에 매일 25,000명 이상의 사람이 기아로 사망하고, 1초에 다섯 명 꼴의 어린이가 굶어 죽는다. 유럽 나라의 정부들은 자국 농가의 보호를 위해 수천 마리의 소를 도살하여 불태우거나 농산물을 폐기처분하기도 한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물질의 증가가 어느 정도까지는 행복과 연결되어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은 지혜로운 사람의 삶의 질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했다. 한계효용은 체감하고 아무리 금은보화와 재산이 많아도 물질 그 자체가 주는 만족도는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연약한 사람들만이 그걸 깨닫지 못하고 야심과 허영으로 욕심을 낸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순전히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가난의 고통을 느껴본 사람이나,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사회에서의 개인은 돈을 좇는 경향성이 커진다. 한국에서는 돈이 행복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다른 선진국보다 높고, 그런 사회일수록 사회의 평균 행복도는 떨어진다고 한다. 개인의 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사회 제도의 문제가 더 크다는 말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을 죄다 얼굴을 성형시키는 기술자로 양산하고, 대학생들의 절반이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를 한다. 젊은 세대의 가장 큰 관심사가 가상화폐이며, 주식과 부동산에 온 정신을 다 쏟아붓고 있는 현상을 개인의 탐욕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열심히 일해서 하루하루 흘린 땀에 보상하기보다는 드라마틱한 우연 또는 소수의 승자에만 인센티브를 주기 때문이다.
단지 그곳에 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모든 노동자의 생산성 증가에 따른 이익과 도시의 발달로 인한 가치 상승을 독식하는 것. 이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19세기 후반에 헨리조지는 만악의 근원을 지대로 보고, 토지 공영제를 제안했다. 토지에만 단일 세금을 매기면 다른 모든 세금을 다 철폐하고도 사회는 잘 굴러간다고. 나는 그의 제안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