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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 1부 1권

[ 양장 ]
리뷰 총점9.7 리뷰 66건 | 판매지수 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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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2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536g | 148*210*30mm
ISBN13 9788960532410
ISBN10 89605324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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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박경리는 『토지』의 작가로 불린다. 『토지』는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토지』는 1969년에서 1994년까지 26년 동안 집필되었으며, 그 크기만 해도 200자 원고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한 역사적 사건과 민중들의 삶이 고스란히 『토지』에 담겨 있다. 『토지』는 한마디로 “소설로 쓴 한국근대사”라 할 수 있다.

『토지』에는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댁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동학혁명, 식민지시대,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한 많은 근현대사가 폭넓게 그려져 있다. 당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인물들과 반세기에 걸친 장대한 서사, 그리고 참다운 삶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등은 작가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만나 한국문학에 큰 획을 그은 『토지』로 태어났다.

26년의 집필 기간 동안 작가의 수정이 가해진 대목은 수정된 원고를 적용하였고, 인물이나 지명의 혼동, 오·탈자 등 명백한 오류는 모두 바로 잡았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대목들은 작가 생전에 작가를 직접 방문해 답을 얻었고, 기존 출판사의 당시 담당자들에게도 자문을 구한 바 있다.

꼬박 10년의 시간이 걸려 오랫동안 와전·왜곡되었던 작품의 원래 모습을 되찾으려는 작업이 마로니에북스 판 『토지』로 완성되었다. 이제 독자들은 『토지』의 원래 모습과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처음 작가가 전달하려 했던 단어와 문장의 아름다움, 생생함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명실공히 『토지』의 결정판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기획의 글
自序
서문

제 1 편 어둠의 발소리
서(序)
1장 서희(西姬)
2장 추적
3장 골짜기의 초롱불
4장 수수께끼
5장 장날
6장 마을 아낙들
7장 상민 윤보와 중인 문의원
8장 오광대(五廣大)
9장 소식
10장 주막에서 만난 강포수(姜砲手)
11장 개명 양반
12장 꿈속의 수미산
13장 무녀(巫女)
14장 악당과 마녀
15장 첫 논쟁
16장 구전(口傳)
17장 습격
18장 유혹
19장 사자(使者)

제 2 편 추적과 음모
1장 사라진 여자
2장 윤씨의 비밀
3장 실패
4장 하늘과 숲이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쩌면 귀녀의 생애가 끝나는 날 강포수의 생애도 끝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함께 죽으리라는 뜻이 아니다. 귀녀의 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의 강포수 인생과는 같을 수 없는, 다른 것으로 변할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 강포수는 귀녀와 더불어 있다. 옥중과 옥 밖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엄연한 법의 거리요 지척이면서 가장 먼 그들, 서로가 서로를 보고 느낄 뿐이지만 그러나 강포수는 일찍이 귀녀가 이같이 자신 가까이 있는 것을 느낀 적이 없다. 가랑잎 더미 위에 쓰러뜨렸을 적에도 귀녀는 강포수에게 멀고 먼 존재였었다.
강포수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주받은 악녀이건 축복받은 선녀이건 그것도 강포수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다만 거기 그 여자가 있다는 것과 그 여자를 위해 서러워해줄 단 한 사람으로서 자기가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1부 3편' 중에서

“어, 어쩔 수 없네.”
조준구는 얼굴의 땀을 또 닦는다. 지폐에 손이 가면 사방에 서 사람들이 쫓아 나와 자신을 결박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앞에 돈을 보고 손을 뻗칠 수 없다. 상체는 앞으로 기우는데 팔은 천 근 같아서 들어 올릴 수가 없다. 전신을 누르는 중량을 들어 올려야 한다. 조준구는 드디어 팔을 뻗어 지폐를 집어든다. 서희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른다. 미소는 크게 확대되어 갔다. 하얀 이빨이 드러나면서 흔들린다. 웃음소리가 일정한 굴곡을 이루며, 톱날같이 조준구 마음을 썰어댄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나, 나, 그러면 가, 가야겠네.”
조준구는 허둥지둥 뒤통수에 그 날카로운 톱날 같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대문을 나서고 사뭇 걸어서 눈에 띄는 술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웃음소리는 쫓아왔다. 그러나 술 한 잔을 들이켜고 몸서리치게 괴로웠던 갈증을 면했을 때 조준구는 품 속에 있을 오천 원을 실감할 수 있었다.--- '3부 1편' 중에서

옛날, 아득한 옛날 어머니를 매장하던 날, 음달진 곳, 솔방울과 자갈이 굴러 있던 곳, 소나무에 머리를 부딪고 피를 흘리며 울던 소년의 모습이 생생하게 한복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형!’
심장에서 피가 솟구쳐오르는 것만 같다. 입속에 고인 것을 뱉어내면 그것은 침이 아닐 것이며 새빨간 선혈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형!’
증오감은 그리움으로, 절실하고 강한 그리움으로, 한복은 달음박질치듯 걸음을 빨리한다. 사방은 어두웠고 칠흑같이 캄캄하게 어두웠다. 두신거리는 사람들 소리 속으로 들어갔다. 빨간 전등이 오두머니 켜져 있는 현관에, 그 현관에 김두수가 서 있었다. 비대한 돼지 상호의 김두수가 우뚝 서 있었다.
“형아!”
“이놈아!”
가장 악랄한, 잔인무도한 악인이 선량하고 정직한 아우를 껴안고서 눈물을 흘린다.--- '3부 2편' 중에서

……설움을 모른다면 어찌 마음이 있다 할 것인가.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시궁창인들 어찌 더러울까……
‘그렇지마는 기쁜 것도 맘 아니겄소?’
……만물이 본시 혼자인데 기쁨이란 잠시 잠시 쉬어가는 고개요 슬픔만이 끝없는 길이네. 저 창공을 나는 외로운 도요새가 짝을 만나 미치는 이치를 생각해보아라. 외로움과 슬픔의 멍에를 쓰지 않았던들 그토록 미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강줄기 같은 행로의 황홀한 꿈일 뿐이네.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 란 말도 못 들어보았느냐?……
‘그거는 머, 다 하는 얘기 아니겄소?’
……부처는 대자대비라 하였고 예수는 사랑이라 하였고 공자는 인이라 했느니라. 세 가지 중에는 대자대비가 으뜸이라. 큰 슬픔 없이 사랑도 인(仁)도 자비도 있을 수 있겠느냐? 어찌하여 대비라 하였는고, 공(空)이요 무(無)이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마음으로 육신으로 진실로 빈자이니 쉬어갈 고개가 대자요 사랑이요 인이라. 쉬어갈 고개도 없는 저 안일지옥의 무리들이 어찌하여 사람이며 생명이겠는가……
--- '4부 1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박경리 『토지』,
그 거대한 서사의 결정판을 만난다!


박경리의 펜 끝에서 태어난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 아름답고 생생한 언어.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이 일렁였던 1897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격동의 반세기,
백정에서 양반까지 온갖 군상들이 보여주는 참다운 삶에 대한 하나의 해답!

이번 마로니에북스판 『토지』는 『토지』 출간 이후 43년 동안 연재와 출판을 거듭하며 와전되거나 훼손되었던 작가의 원래 의도를 복원한 판본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박경리는 『토지』의 작가로 불린다. 『토지』는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토지』는 1969년에서 1994년까지 26년 동안 집필되었으며, 그 크기만 해도 200자 원고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한 역사적 사건과 민중들의 삶이 고스란히 『토지』에 담겨 있다. 『토지』는 한마디로 “소설로 쓴 한국근대사”라 할 수 있다.

『토지』에는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댁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동학혁명, 식민지시대,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한 많은 근현대사가 폭넓게 그려져 있다.
당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인물들과 반세기에 걸친 장대한 서사, 그리고 참다운 삶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등은 작가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만나 한국문학에 큰 획을 그은 『토지』로 태어났다. 국내를 넘어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국외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토지』에 대한 재조명은 당연히 예정되어 있던 수순이라 하겠다.

43년 만에 다시 태어나는 박경리의 토지

1969년 「현대문학」에서 처음 시작한 『토지』의 연재는 여러 매체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박경리는 『토지』의 자리를 1972년 「문학사상」으로 옮겨 2부를 연재했고, 1978년 다시 「한국문학」과 「주부생활」에 3부를 연재했다. 4부는 1981년 「마당」에서 연재되었는데, 1983년부터는 「정경문화」에서 연재의 뒤를 이었다. 작가는 1992년 9월부터 「문화일보」에 『토지』의 5부를 연재하여 1994년 8월 26년간의 집필 끝에 전 5부를 완결 지었다. 『토지』는 연재 도중에 문학사상사, 삼성출판사, 지식산업사 등에서 출간되었으며, 완간 이후 솔출판사와 나남출판사에서 전권이 출간되었다.

이처럼 소설 『토지』는 여러 잡지와 신문의 연재본, 문학사상사, 지식산업사, 삼성출판사, 솔출판사, 나남출판사까지 그것의 자리가 수없이 바뀌어왔다. 이 때문에 여러 번 바뀐 저작권 등 계속되는 재출간에 의해 본래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판을 거듭하며 왜곡과 오류로 원문이 훼손되었다.
더불어 원고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원고, 26년에 걸친 집필기간도 원문의 왜곡과 훼손에 한몫을 하였다.

이에 마로니에북스는 토지 편찬위원회가 2002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정본작업을 진행한 정황을 토대로 토지 편찬위원회 교수진들과 함께 작가의 의도와 가장 가까운 토지를 출간하기 위해 연재본을 저본으로 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작업을 통해 작가 고유의 목소리를 살려낼 뿐만 아니라 여러 판본의 전권을 일일이 비교·검토하며 수정되지 않은 오류와 왜곡들도 바로잡았다.

작가의 원래 의도와 생생한 육성이 살아 있는
『토지』의 결정판!


마로니에북스의 『토지』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판본은 “연재본”이라는 작가의 평소 주장을 반영하여 “연재본”을 저본으로 하는 ‘작가의 원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한 『토지』의 결정판이다.
하지만 26년의 집필 기간 동안 작가의 수정이 가해진 대목은 수정된 원고를 적용하였고, 인물이나 지명의 혼동, 오·탈자 등 명백한 오류는 모두 바로 잡았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대목들은 작가 생전에 작가를 직접 방문해 답을 얻었고, 기존 출판사의 당시 담당자들에게도 자문을 구한 바 있다.
꼬박 10년의 시간이 걸려 오랫동안 와전·왜곡되었던 작품의 원래 모습을 되찾으려는 작업이 마로니에북스 판 『토지』로 완성되었다. 이제 독자들은 『토지』의 원래 모습과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처음 작가가 전달하려 했던 단어와 문장의 아름다움, 생생함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명실공히 『토지』의 결정판이다.

회원리뷰 (66건) 리뷰 총점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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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조병수편)-자립의 위대함과 치유의 이타성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i*****e | 2022.06.2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외모 결핍 사랑 결핍에도 불구하고 목공예의 일인자로 등극하다”라는 제목으로 꼽추 조병수를 만납니다. 꼽추는 허리가 둥글게 굽어 등이 혹처럼 튀어나온 사람을 일컫습니다. 꼽추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병수를 통해 깨달은 바는, 인류가 이기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끌어안고 살아온 이유입니다.  
리뷰제목

외모 결핍 사랑 결핍에도 불구하고 목공예의 일인자로 등극하다라는 제목으로 꼽추 조병수를 만납니다. 꼽추는 허리가 둥글게 굽어 등이 혹처럼 튀어나온 사람을 일컫습니다. 꼽추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병수를 통해 깨달은 바는, 인류가 이기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끌어안고 살아온 이유입니다.

 

꼽추 장애는 어찌하여 병수의 것이 되었으며, 또 어찌하여 파렴치한이 병수의 부모가 된 것일까요? 병수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 조준구와 홍씨에게조차 업신여김을 당해야 했던 존재였습니다.

 

조병수를 일러 꼽추도령이요 천치 바보요 오줌도 가릴 줄 모른다는 사실과 억측 속에 인간 폐물로 추호의 동정 없는 낙인 찍힌 존재다.

 

외모로써 인간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오류일 수 있는지를 소설은 여지없이 펼쳐내 보여줍니다. 또 자식은 그 부모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가차없이 드러내기도 합니다.

 

기괴스런 병신이지만 얼굴은 천상의 동자같이 깨끗하다. 부모들과는 딴판으로 어떤 성령이 그의 속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정하고 귀하게 보인다.

 

귀녀는 자신이 당한 모욕을 잊지 않고 원한을 품고 복수를 단행했습니다. 그렇지만 꼽추 병수에게 모멸은 너무나 일상적이다보니 원한이 되지 못했을까요? 모멸의 언사는 허공에 흩어질 뿐 병수에게 스며들지 못합니다. 꼽추인 자신으로써 도저히 응징할 힘이 없기에 수모를 당하더라도 애써 모른 척했던 것일까요? 약자의 처세술로써 말입니다.

 

병수는 자신의 장애보다도 부모가 남의 재물을 갈취하는 악행이 수치였습니다. 간악한 부모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대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거리로 뛰쳐나옵니다. 양반 자제 병수가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 신세를 자처하게 된 것입니다. 꼽추 장애에 걸맞은 자립은 거지가 되는 것이라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악행으로 재산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그 덕분에 얻게 되는 안락한 의식주를 박차고 뛰쳐나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거지 행세를 하는 병수를 아버지 조준구는 병신이라고 칭합니다.

 

그놈이 이 애비 얼굴에 똥칠을 하느라 유리걸식을 한다더구먼.”

조씨 어른께서 좀 거두면 그렇게 됐겄소?”

아니오. 그거는 그렇지가 않소. 거둔다고 그것 받을 놈이 아니오. 그놈은 애비가 망하고 무일푼 되기만을 고대하는 게요. , 병신이면 병신답게 엎드려 있지 못하고.”

어디서 들은 얘긴데 요즘엔 소목 일을 배우고 있다 하더마요.”

소목일, 그거 유리걸식보담은 낫구먼. 하하하 핫핫핫.”

 

꼽추라는 장애를 가진 병수가 자립한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모가 마련해주는 의식주를 과감하게 포기합니다. 고생스럽게 떠돌다가 마침내 소목일을 만나게 되고, 그 일로 차츰 자립에 이르게 됩니다. 떳떳한 자립은 곧 병수에게 자기 구원이었을 수 있습니다. 악덕한 부모의 돈으로 목숨을 부지하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병수에게 소목일이 얼마나 보배로웠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병수가 소목일의 일인자가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병수는 거리의 걸인으로 나서기 전에 굶고 싶지만 먹게 되었고, 죽고 싶지만 살게 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 중간지대에는 꼽추인 자신에게 시집을 온 아내가 있었고 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최참판댁 마당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나비를 쫓아다니는 두 아이조차 거리로 나서고자 하는 병수의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병수 내면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가족이라고해서 잠재울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병수는 이타성을 발휘하기 위해 먼저 이기적이어야 했습니다. 가족을 떳떳하게 건사하기 위해서라도 자립이 다급했던 것입니다. 꼽추인 몸으로라도 밝게 자라는 아이들을 더 밝게, 찌푸려져 있는 아내의 얼굴을 화사하게 펴주기 위해서라도 거리로 나서야 했습니다.

 

꼽추 도령 병수가 장가든 그때는 쌀밥이요 고기반찬이었을 테지만 울면서 밥을 먹어야 했던 병수였다. 일종의 희생물로 바쳐진 병수의 아내 되는 사람은 더더구나 삶에 대한 무의지가 질병처럼 스며들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시초부터 상전 되기를 거부해왔고 먹는 것을 거부해 왔으며 사는 것을 거부해온 병수는, 그러나 상전이기도 했고 자신을 저주하면서도 밥을 먹었으며 죽지도 못했다. 먹고 마시고 사는 일은 무의미했지만, 먹고 굶는 중간지대에서, 죽고 사는 중간지대에서, 엉거주춤한 생각은 퇴화해 갈밖에 없었다.

병수는 죽음으로 줄달음치고자 하는 발작이 일 때마다 죽지 않으려는 비명, 죽으려는 몸부림의 파도가 일었다. 언제나 조용하고 무시무시하게 조용한 집안은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요 나태와 오수의 온상이었다. 다만 두 아이들이 봄풀을 뜯고 술래잡기를 하고 나비를 잡고 햇볕을 쬐며 자라고 있는 것이다. 찌푸린 것이 아니라 항상 찌푸려져 있는 얼굴의 아내는 막대기처럼 무표정, 무신경, 처참했다. 찌푸려진 얼굴에는 인간적인 느낌이라곤 한 오라기 찾아볼 수 없다. 벽돌짝처럼 말뚝처럼 굳어진 모습이다.

 

사실 병수는 자신처럼 몸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과 혼인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끼리 다정다감하게 지내는 혼인을 상상하면서 얼굴을 붉히고 혼자 슬몃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어찌 서희한테 장가를 든단 말이냐? 나같이 병신 계집애가 있다면 내 색시 삼아서, 눈물도 닦아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맛난 복숭아도 따다 주고 또오 또오...... ’

 

하지만 병수의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엄마 홍씨가 병수를 서희와 혼인시키려고 다그쳤던 적이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망을 채우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병수는 그때 유순하지 않았습니다. 서희와의 혼인 추진에 죽기살기로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병수가 서희를 어여삐 여기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병수는 서희가 보고 싶어서 대숲쪽 담장에 난 조그만 구멍을 통해 별당 뜰을 몰래 들여다본 적도 있습니다.

 

병수는 대숲을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담장 가까이로 행복해진 얼굴을 가져간다. 조그마한 구멍에 한쪽 눈을 바싹 갖다 댄다. 한쪽 눈이 비친 곳은 별당 뜨락이다. 서희 모습이 나타났다. 병수 눈빛이 환해진다.

가엾은 서희......하늘의 선녀라고 저렇게 어여쁘게 생겼을까.’

병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내 이 병신만 아니더면...... 이 세상 끝까지 너를 따라가겠다! 내 이 병신만 아니더면 너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을 거야. 가엾은 서희, 너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하리. 부끄럽다! 부끄러워. 이 집도 살림도 땅도 모두 서희네 건데...... 우린 비렁뱅인데, 네 말대로 비렁뱅인데 말이야!’

눈물에 흐려 서희 모습이 물감처럼 번져난다.

 

도련님. 거기서 뭘하시오?”

노기에 찬 길상의 눈이 쏘아보고 있었다. 병수의 얼굴은 사색이다. 평소 준수했던 길상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낸다. 다음은 웃었다. 살기보다 무서운 모멸의 웃음이다.

병신 육갑한다 카더니마는 흥! 그 말이 조금도 그르잖구마. 꿈도 꾸지 마시오.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고 물어보시오. 될 법이나 한 일이오? 천지개벽이 있어도 우리 애기씨는 안 될 기요!” 하는데 길상의 얼굴은 입술빛까지 하얗게 질린다.

, 꿈에도, , 그런 생각은. , 나는 서희가 불쌍했을 뿐이야. , 꿈에도, 아 아버님이 굳이 혼인하라신다면 나, 나는 죽어버릴 테야.”

도련님? 정말로 그리 생각하시오? 정녕 그렇소?”

정말이야. 정녕! 죽어버릴 테야. 맹세하겠어. 나는 죽어버릴 테야. 아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난 그걸 알어. 어째 길상이는 그걸 몰라주니?”

그러믄 와 이런 짓을 하시오?”

, 너무 이뻐서. , 나 난 말이야. 누이동생이 예, 예뻐서 말이야. 길상아. 내 이 수치스런 짓 아, 아무에게도 말 안 하겠지?”

, 입 밖에 내지 않겄십니다.”

병수는 흐느껴 운다. 울음은 격렬해져서 경기들린 아이처럼 전신을 떤다. 길상은 병수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대숲을 빠져나간다.

 

병수가 서희를 지켜봤던 적은 또 있습니다. 봉순이와 서희가 별당 연못가에 앉아 울음을 터뜨릴 때도 바라봤습니다. 봉순이가 죽은 엄마가 보고 싶다며 먼저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의젓하게 달래던 서희에게, 봉순이는 온 집안이 떠들썩하도록 엄마 데려오라는 떼를 썼던 서희의 어린 시절을 들먹입니다. 그랬더니 서희는 꾸욱 잠재웠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폭발시키고 맙니다. 억눌러있었을 뿐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서희는 발딱 일어섰다. “너만 엄마가 죽었니! 너만 엄마가 죽었냔 말이야!”

서희는 땅바닥에 주질러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울부짖고 새파랗게 질리고 눈을 까집으며 까무라칠 지경이다. 어릴 적 그대로의 패악이었다. 봉순이도 함께 울음을 터뜨린다.

 

꼽추 도령 병수가 신기한 듯이 얼굴을 기웃이 내밀고 있었다. 투명하고 창백한 얼굴에 커다란 눈이 울부짖는 서희 모습을 지켜본다. 기괴스런 병신이지만 얼굴은 천상의 동자같이 깨끗하다. 달밤에 이슬만 먹고 자란 풀잎처럼 가냘프다. 조준구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나 부모들과는 딴판으로 어떤 성령이 그의 속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정하고 귀하게 보인다.

 

별안간 서희는 울음을 그쳤다. 병수를 보았던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병수 가까이 걸어간다. 병수 얼굴에 손가락을 겨누며

비렁뱅이 병신! 네가 내 신랑이 되겠다 그 말이냐?”

홍당무가 된 병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른다.

가아! 다시, 두 번 다시 별당에 얼씬거렸다간 당산나무에 매달아서 때려죽일 테야!”

광태며 파격의 행동이다. 열한 살이면 행세하는 집안의 규수로서 그런 언동은 상상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병수 눈에는 엄마를 보고싶어 하는 서희의 애처로움만 보일 뿐, 양반 규수로서의 허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서희에게 병신이라는 욕을 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서희를 가여워하고 아름답게 여기며 살았으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어미가 보고 싶어서 울어대는 서희와 봉순이를 바라보는 병수의 심사는 어떠했을까요? 서희와 봉순이가 간직하고 있는 어미에 대한 정을 병수로서는 도무지 경험한 바가 없었으니 서희와 봉순이가 신기하게 보였을 법합니다. 병수 의식 속에는 어미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이 깊이 박혀 있을 뿐입니다. 찢긴 작은 눈에 흰자위가 가득한 무서운 얼굴을 가진 어미 홍씨는 공포의 대상일 따름입니다. 병수는 서울 골방에 갇혀 살던 그 시절의 무서운 어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언제였던지 뚜렷이는 기억할 수 없다. 서울 있을 때의 일이다. 빈집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었다. 병수는 햇빛을 따라 골방에서 마루까지 기어 나왔다. 따스한 초봄 햇빛을 받고 앉았는데 졸음이 왔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우리 병수도련님이구먼. 어릴 때 내가 안아 주곤 했었는데, 관옥 같은 얼굴에........가엾은 병수.”

중년의 점잖은 여인은 슬픈 눈이 되었다가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등 뒤에서 병수를 노려보던 어머니는 여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여인은 주머니 속에서 은전 한 닢을 꺼내어 병수 손에 쥐여 주었다. 문간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온 어머니는 병수를 쥐어박았다.

하필이면 손님이 와 있는데 마루까지 나올 건 뭐람? , 창피스러워서.”

 

심심했던 병수는 은전 한 닢이 신기하여 골방 속에서 이틀을 가지고 놀았다. 은전이 큰 궤짝 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병수는 은전 잃은 것을 잊었다. 다음 날 어머니가 나타났다.

너 아주머님한테 받은 은전 내놔.”

병수는 두려운 생각 때문에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몇 번인가 쥐어박힌 뒤 궤짝 밑에 들어갔노라 했다. 궤짝을 들어내어 은전을 찾은 뒤에는 뺨을 두 차롄가 맞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병수는 어머니 장롱 속에 은전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홍씨는 은전을 욕망하는데 온 힘을 쏟느라 자식은 안중에 없습니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재물 이외에는 마음이 가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홍씨에게 꼽추 병수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홍씨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깃발이 되어주지 못하는 자식과 남편에 대한 결핍을 재물에 대한 욕망으로 대신했을 수 있습니다. 홍씨는 재물의 화신이 되면서 어머니도 되지 못하고 아내도 되지 못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재물 소유에 집착하고 중독되면서 사람의 도리는 망각되어 갔을 듯합니다.

 

골방에서 지냈던 병수가 최참판댁으로 내려왔을 때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당시 서희는 열 살이었습니다. 최치수는 죽고 윤씨부인은 아직 살아있을 적입니다. 그렇지만 병수는 윤씨부인께 자기 존재를 알리지 못했습니다. 조준구와 홍씨가 창피스러운 마음에 인사를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준구가 나귀에서 내리고 뒤따르던 가마 두 틀이 멎는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홍씨가 타고 온 가마 뒤켠에 마치 짐짝같이 내버려져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가마 속에서 뭔지 모르는 이상한 것이 엉금엉금 기어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아이였었다. 분명 사내아이임에 틀림이 없다. 얼굴을 봐서는 여남은 살쯤 된 것 같았고 평생 햇빛이라곤 받아본 일이 없었던지 종잇장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다. 꼽추였었다. 아이는 어머니를 두려워하는 듯 계집종 곁에 가서 치마폭 속에 몸을 숨기듯 하며 눈만 내밀고 사방의 형편을 경이에 찬 표정으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길상이는 움직일 줄 모르고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해맑은 눈동자에는 어떤 의문의 빛도 없었으며 얼굴은 아름다웠다. 계집아이같이 입술은 빨그레했다.

 

어두운 골방에 갇혀 살던 십대 소년 병수에게 최참판댁과 평사리는 심신을 고양시켜 주는 밝은 무대가 됩니다. 비록 부모가 재물 갈취를 도모하고자 결정한 평사리행이었지만 자식 병수에게는 골방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었던 풍부한 빛과 넓디넓은 공간을 선사했던 것입니다. 부모의 나쁜 의도가 자식에게 좋은 기회로 작용되어질 수 있다니 세상사 오묘할 따름입니다.

 

서울에서의 골방살이에 비한다면 평사리는 넓고 넓은 천지였다. 그는 시시로 뒷산에 올라 하늘과 강물과 숲과 들판을, 철 따라 다양하게 변모하는 자연을 볼 수 있었고 날짐승 들짐승 뭇벌레들, 사철의 식물들을 볼 수 있었고, 먼발치로 들일 하는 농부들의 생태도 볼 수 있었다. 가두어진 생활에서 일시에 밀어닥친 외계의 상황은 그런 만큼 신선하고 강렬했을 것이다. 목마른 나무가 물을 빨아올리듯이 새로운 환경은 그에게 숱한 지혜를 주었고 생각을 풍부하게 해주었으며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주었다.

 

불타 없어진 누각 빈터에 쭈그리고 앉아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병수는 생각한다. 산에 오르면 늘 하는 생각이다.

생각할수록 모르겠어. 어째서 세월을 간다 하는고? 사람들을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온다고 말들 한단 말이야. 아니야. 끝이 없을 건데, 시작도 없을 건데 어째 시간이 있단 말이야? 세월이 어디 있다고 금을 긋고 길이를 재느냐 말이야? 날마다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그게 세월이란 말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늙어가고 죽고 또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걸까? 세월, 시간, 그게 뭐길래? 알 수 없군. 세월은 바람일까? 바람이 사람들을,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어디로 자꾸 몰고 가는 걸까?’

 

병수는 무슨 다른 재미나는 생각이 없을까 하고 눈을 멀리 보낸다. 눈에 비치는 것은 모두가 새롭고 신기하다. 말없는 자연과 마주하고 있으면 샘처럼 온갖 공상이 솟아나 그를 즐겁게 해준다. 슬픈 일을 생각할 때도 슬프지 않다.

 

와아, 병수는 자연의 품에서 결핍을 승화시킵니다. 상처를 치유합니다. 결핍과 상처를 운과 복으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어머니 홍씨가 결핍을 재물로 채웠다면 병수는 자연과의 관계 맺기로 결핍을 날려버립니다. 결핍이 흩어진 그 자리는 고독할 수 있는 여유로 채워집니다. 고독은 자연과의 충분하고도 각별한 관계 맺기를 선물합니다.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꼽추이기에 오롯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자연을 만납니다.

자연과 친구 되니 자연을 철저하게 이해하게 되고, 그 통찰 속에서 병수는 자기 자신을 불쌍하고 부끄러운 병신이 아니라 온전한 꼽추 인간이라는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였음 직합니다. 보호받아야 할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비난받아야 할 기이한 병신이 아니라, 꼽추도 숱한 인간 자연중의 하나임을 깨닫고 꼽추답고도 인간다운 자신의 삶을 기획했을지 모릅니다. 자연과의 우정이 도타워질수록 꼽추라는 자신의 외모와, 사악한 부모를 만난 인연을 자연의 섭리로 납득하고 수긍했으리라 싶습니다.

 

병수는 자신을 꼽추로 태어나게 한 부모를 향해 원망하지 않습니다. 꼽추인 자신의 몸에 적응하면서 그냥 살아갑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니 장애인 자신의 몸에 불만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꼽추와 하나되어 살아가니 장애가 장애로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꼽추인 자신의 몸이 해낼 수 있는 활동을 찾아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갑니다. 꼽추여도 자연과 놀고 책과 놀 수 있으니 병수는 그것들을 실컷 누립니다.

 

병수는 최참판댁 별채에서 글선생 이초시와 함께 생활합니다. 채마밭이 앞에 펼쳐진 별채는 예전에 윤씨부인 측근 김서방 부부가 살았었고, 서울에서 내려온 홍씨가 잠시 기거했고, 윤씨부인이 죽은 후 홍씨가 안채로 건너가자 별채는 병수 차지가 되었습니다. 병수는 별채에서 이어진 숲길을 오르내리고 책을 읽기도 하면서 별채 공간을 한껏 만끽합니다. 부모조차 잠시라도 들르지 않는 별채는 소외감을 자연과 책이 주는 사유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안성맞춤 공간이 됩니다.

 

게을러 빠진 것과 낮잠을 즐기는 버릇 이외 이렇다 할 특징이라곤 없는 이초시는 병수의 글 선생이다. 조준구와 홍씨가 얼씬거린 일이 없었으므로 누가 가타부타 할 사람도 없다. 애초부터 병신 아들, 면무식이나 하게 하자고 데려다 놓은 사람인 만큼 두 내외는 이초시에 대해서도 도통 관심이 없는 것이다. 시원찮은 선생이었으나 이초시한테 소학을 배우고 통감을 떼고 사서를 배우면서 도덕률에 의한 가치를, 인간 행위의 존엄성을 헤아리는 의지를, 지각하게 된다. 실로 병수는 옛날 성현의 글, 그 행간행간에 배어난 위대한 사상을 흡수하고 깨달으며 비약하고 상승해갔다.

 

병수의 공부는 신나고도 재미난 고군분투가 되었을 성싶습니다. 병수는 홀로 공부하는 속에서 더 부지런히 더 풍부하게 깨쳐나갔을 것입니다. 자칫 혼자하는 공부는 자기 고집을 더 공고히 하기 십상이라지만 병수는 우주 만물과 책의 행간들과 관계 맺고 사귀는 데에 바빠질수록 유연해져 갑니다.

항상 변하면서도 늘 그대로인, 자연을 향해 질문하고 소통하면서 병수만의 삶을 창조해 나갑니다. 대자연이라는 실제 현장과 이론적인 책이 다 함께 벗이 되어 주니 통찰과 안목은 일취월장하게 됩니다. 이는 글만 가르치고 게으른 이초시가 결코 당도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가르치는 이초시는 게으름을 피워도 배우는 병수는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이초시가 게으른 것은 꼽추 장애를 가진 자신을 도외시하는 처사라는 것을 병수는 간파합니다.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선생에게서 무시를 당해야 하니 얼마나 마음이 허했을까요? 이초시는 직접 글을 가르치면서도 왜 병수의 성품과 능력을 인지할 수 없었을까요? 어쩌면 충분히 느꼈지만 그 느낌을 거부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병수의 실력에 주눅이 들어 그의 장애를 무시할 수 없게 될까 봐, 그러면 마음놓고 게으름을 피울 수 없게 될까 봐 인정하기 싫었을 수 있습니다. 옹색한 이초시로서는 병수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순간부터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울서 열두 살까지 불구 자식을 수치로 아는 홍씨에 의해 세상 구경을 못하고 어두침침한 골방에서 자란 병수가 최참판댁에 내려와 자라지 않은 채 열다섯이 되었다. 자라지 않는 신체, 그 신체와는 반대로 정신의 성장은 이상하게 빨랐다.

 

대체로 신체적 불구자는 성한 사람들보다 감각이 예민하다고 한다. 병수는 감수성이 빨랐다. 직감은 정확했고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특질을 파악한다. 단순히 선악의 기준에서 파악한다기보다 사람들 성격의 빛깔이랄까 분위기랄까, 느낌 같은 것이라 할까.

 

병수는 내심 이초시를 좋아하지 않고 길상이를 좋아합니다. 길상이는 티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슬쩍 병수를 거들어주고 도와줍니다. 길상이는 이초시가 감지하지 못한 병수의 자질과 지성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꼽추 장애를 가졌지만 맑고 선량한 병수를 존중합니다.

 

꼽추 장애에 가려 병수의 자질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수의 남다른 점을 감지하고 있는 길상은 많은 장님 속에서 눈뜬 사람의 하나라고나 할까. 한번은 높은 마루에 오르질 못하여 병수가 버둥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가 안아 올려준 일이 있었다. 길상이었다. 그때 그의 눈에는 슬프고 따스한 것 같은 빛이 서려 있었지만 그 후 다시 무뚝뚝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병수는 길상이 좋았다.

 

대자연과 옛 성현의 책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이타성을 함양시켰을까요? 꼽추 병수의 이타적인 감수성은 정말 남달랐습니다. 철 지나도록 울고 있는 매미를 안쓰러워하고 학대와 폭행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삼월이를 위로합니다. 자신이 더 가련할 수도 있는 꼽추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서 말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멍에나 고통을 잊게 하는 것이 이타적인 마음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이 이타성일 수도 있음을 병수를 통해 배웁니다. 이타성에는 상처를 지우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병수는 자신의 장애를 괴로워할 여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욕을 당해도 가여워해 달라고 징징대지도 않습니다. 이타성을 발휘하느라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돌아본다든지 아파할 틈이 없습니다. 이기적이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인류가 그 긴긴 역사 속에서 여전히 이타성을 부여잡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고통을 덜어내는 데는 이타성만한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고통을 덜어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살려면 고통을 덜어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이기적이어야 했겠지만 생존하려면 또 이타적이기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남은 가족이나 다음 세대에 대한 이타성을 발휘할 때만이 덜어질 수 있으리라 싶습니다.

 

별채에서 병수는 글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매미를 연민합니다. 안채와 별당 사이에 있는 팽나무 속에서 찢어지게 울어대는 매미를 말입니다.

 

여름도 다 가는데 여태 매미가 우네? 저러다가 찬 바람이 불면 어디로 갈까? 아마 죽어버릴 거야

병수는 늘 생각하는데, 귀청이 윙윙 울리도록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싫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어머니 홍씨의 악쓰는 목청을 들으면 전신이 오그라들 듯 무섭고 괴로웠는데 그보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는 왜 싫지 않을까 하고.

이슬만 먹고 사는 죄 없는 벌레니까, 사람들처럼 욕심부리고 싸우지도 않지. 그리고 여름이 가면 죽는 슬픈 신세니까 말이야.’

 

병수는 채마밭에 쭈그리고 있는 삼월이를 본다. 여전히 피멍이 든 얼굴이다. 어머니의 소행이거니, 병수는 언젠가 삼월에게 모진 매질을 가했던 어머니의 무서운 형상을 생각한다. 병수는 삼월의 멍든 얼굴이 자기 등에 짊어진 혹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등의 혹에도 저와 같은 피멍이 있고 손톱으로 할퀸 핏자국이 있으리라 생각을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당에 내려간 병수는

삼월아! 배출 뭘 할려고 그래?”

머하기는요? 김치 담을라고요.”

배추 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한다. 뻔한 일이다. 뻔한 일을 물어보는 것은 삼월에게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졌지?”

.”

병수는 빙긋이 웃는다. 무슨 말을 할까. 적당한 말이 없다. 가까이서 보는 멍은 자줏빛에 가깝다. 별안간 멍든 삼월의 얼굴을 쓸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울컥 치미는 애정, 정다운 마음.

밥 많이 먹었니?”

?”

삼월이 의아해하며 쳐다본다. 바보 도련님이 하는 소리거니 하고 다시 배추 진잎을 뜯어내고 다듬는다.

삼월아. 옛날에 말이야. 장화홍련 있잖어? 계모 땜에 죽은 형제 말이야.”

삼월이는 도통 관심이 없다. 병수 역시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심히 한 말은 아니다.

삼월아, 니가 그 장화 같단 말이야.”

.” 덮어놓고 삼월이는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홍련이란 말이지?’

병수는 제깐에도 우스워서 하하핫 하고 웃다가 생각이 별안간 비약한다. 은전 한 닢.

나한테 은전이 있다면 첫째로 삼월이한테 주고 싶어. 그러면 삼월이는 애길 데리고 도망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얼굴에 멍도 안 들고 목에 피딱지도 앉지 않을 거야. 왜 어머니는 삼월이를 노상 때릴까? 이젠 아기 낳은 어머닌데 말이야.’

 

윤보가 자신의 곰보 얼굴과 친하게 지냈다면 병수는 자신의 굽은 등에 적응하며 살았습니다.

윤보가 목조주택을 짓는 대목의 전문가였다면 병수는 가구나 문방구 등 목공예품을 만드는 소목의 일인자입니다. 윤보가 노총각으로 생을 마감했다면 병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입니다. 게다가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아비가 되어 병수에게 수모를 안겼던 조준구의 말년을 보살피기까지 합니다.

 

돌이켜보면 병수가 부모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 부모의 노고가 영 없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꼽추 병수의 자립에 부모가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니 말입니다. 우선 병수에게 사람이라는 생명을 부여했습니다. 부모는 꼽추 장애를 가진 자식을 버리지 않았고, 골방에서 키웠지만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었습니다. 생명을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또 짐짝 취급이었지만 어쨌든 가마에 태워 평사리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풍부한 햇빛과 호젓하게 오를 수 있는 뒷산을 선사해 주었던 것입니다. 별채라는 병수만의 아지트에서는 개인 글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우게도 해주었습니다. 자연과 책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부모의 큰 은혜를 입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뿐만 아니라 꼽추 자식을 혼인까지 시켜주었으니 부모 노릇은 거의 한듯싶습니다. 아니 보통 수준은 능가한 부모 노릇에서 재력과 계층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 이르고보니 누가 누구를 연민하고 누가 누구를 선망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또 하나 더 던지게 되는 질문은 과연 온전한 인간, 정상적인 인간이란 어느 누구를 이르는 말인가,하는 것입니다. 양반가의 병수가 거리의 걸인에서부터 자립을 시작하는 용기와 꼽추 장애를 가진 그의 지고지순한 인간적 풍모를 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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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18 이*하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a*********3 | 2022.06.1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총 26권으로 구성된 대하 소설인 토지의 시작인 1권은 주로 주인공 서희의 어린시절과 최참판댁의 최치수, 그리고 평사리 마을의 분위기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이 여럿 있었는데, 특히 여는 말에 담겨 있던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도시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 라는 구절이었다. 지금과 같은 이 땅에서 100년 전을 꿋꿋이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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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6권으로 구성된 대하 소설인 토지의 시작인 1권은 주로 주인공 서희의 어린시절과 최참판댁의 최치수, 그리고 평사리 마을의 분위기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이 여럿 있었는데, 특히 여는 말에 담겨 있던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도시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 라는 구절이었다. 지금과 같은 이 땅에서 100년 전을 꿋꿋이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았던 토지라는 책에서의 이야기와 지금의 우리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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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윤보편)-20세기 1인 가족인 목조건축의 대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i*****e | 2022.06.1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20세기 1인가족은 유랑자이면서 정착인이기도 했다’라는 제목으로 윤보의 삶을 잠시 살아보기로 합니다. 독거 노총각 윤보는 고독사하지 않습니다. 길 위에서 죽음을 누린 듯합니다. 대개 뭇생명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윤보는 어찌하여 죽음을 향해 다가갈 수 있었을까요? 일자무식 윤보가 평소 중히 여겼던 ‘사람의 도리’와 연관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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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1인가족은 랑자이면서 정착인이기도 했다라는 제목으로 윤보의 삶을 잠시 살아보기로 합니다. 독거 노총각 윤보는 고독사하지 않습니다. 길 위에서 죽음을 누린 듯합니다. 대개 뭇생명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윤보는 어찌하여 죽음을 향해 다가갈 수 있었을까요? 일자무식 윤보가 평소 중히 여겼던 사람의 도리와 연관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자기 과시와 상대 무시로 자기 파멸에 이르기도 하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으로 봐야할까요 

 

윤보 얼굴은 얽죽얽죽 얽어 있습니다. 천연두 전염병이 지나간 흔적입니다. 곰보 자국이 심하다 보니 험상궂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외모 때문에 기죽는 법이 없습니다. 외모에 얽매일 줄 모르는 그의 영혼은 자유롭습니다. 못생긴 외모가 윤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없습니다. 처자식 없음도 그에게는 결핍이 아닙니다.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수긍하는 척하지 않음위선 없음은 고스란히 그의 카리스마가 됩니다.

 

처자식을 거느리지 않는 1인가족 윤보는 전국을 떠돌며 새집을 짓습니다. 그는 목재를 자르고 다듬어서 단단한 집을 짜맞춰 세우는 대목수입니다. 그에게는 허름한 오두막이긴 하지만 고향 평사리에 돌아갈 집이 있으니 정착민이면서 유랑자인 셈입니다. 윤보는 낯선 타지에서는 목수가 되고 태어난 고향에서는 강태공이 됩니다. 타지와 고향을 오가면서 넓혀진 그의 식견은 유랑자와도 다르고 정착민과도 다를 듯합니다. 방방곡곡의 낯선 사람과 별의별 사건과 관계 맺으면서 또 고향의 이웃과 우정을 다져가면서 윤보가 세상을 보는 안목은 일취월장하였으리라 싶습니다.

 

그렇지만 나룻배에서 만난 윗마을 농부는 윤보의 삶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단정 짓습니다. 처자식 없이 떠도는 윤보를 절대 본받아서는 안 될 사람으로 치부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20세기 이땅의 1인가족 윤보가 기죽을 리 만무합니다.

 

평생 계집 처신도 못하고 물 떠놓을 자식이 있다말가. 역마살이 들어서 밤낮 싸돌아댕기니께, 사람이란 한자리를 지키고 살아야.”

, 내가 살인하더나? 내가 우때서. 삼신이 맨든 이 꼬라지와 전염병이 맨들어준 곰보딱지 말곤 버릴 기이 하낫도 없지.”

 

윤보는 자신의 생일이면 부모의 은혜에 정성을 바치는 마음으로 미역국을 끓입니다. 부모의 기일에는 물을 떠놓고 제사를 올립니다. 부모에 대한 특별한 그리움이나 사랑이 애틋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사람이라는 생명으로 태어나게 해주었기에 생일과 기일을 챙길 따름입니다. 생명을 부여해 준 창조자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근본 도리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윤보에게 부모는 사랑 혹은 상처를 준 존재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부모 덕 볼 것도 없고 부모 탓할 것도 없는 셈입니다. 윤보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동학당이 되고 의병이 되어 싸웠던 것도 그와 다름아닙니다.

 

그는 지위나 명예를 얻기 위한 욕망으로 동학당이 되어 싸운 것이 아닙니다. 신분 타파나 만민평등을 위한 명분으로 봉기에 앞장선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땅에 태어난 사람의 도리를 지키고자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죽고자 그 대열에 끼였던 것입니다. 자신이 속한 무장봉기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무분별한 살상이나 파괴를 하면 동조하지 않습니다. 대열에서 빠져나와 고향의 낡은 오두막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에서 윤보의 사람다움을 보는 듯합니다. 그의 타고난 성정에는 군중의 광기에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않는 어떤 절제심이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 몸 낳아주고 키워준 강산을 남 줄 수 있나라고 했던 윤보는 1908년 의병활동에서 죽습니다. 그러니 1910년부터 본격화된 일제강점기의 살벌한 삶을 경험하지 못한 채 죽은 것입니다. 길 위에서 맞이한 죽음은 어쩌면 평생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의협심이 순수했던 그에게 베풀어진 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윤보는 이웃과 친구가 지켜보는 길 위에서 맞이한 죽음에 당당하고 안심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이 호탕하고 의로웠으니 말입니다.

 

살아 생전 윤보는 가족이 없어도 움츠러들지 않고 호기로웠습니다.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충실하게 사는 두만아비 이평을 측은히 여길 정도로 말입니다. 이평은 자기 식구만 중히 여기니 친구도 없고 이웃도 없는 편입니다. 그런 그가 큰아들 두만이를 목수로 자립시키고 싶은 속내를 갖고서 윤보를 찾습니다. 윤보가 조만간 서울에 있는 양반집을 짓기 위해 떠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평이 찾는 윤보의 집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허름한 초가입니다. 언제든 연장 망태를 둘러메고 떠나야 했기에 수고로움을 바쳐 집을 짓지 않았던 걸까요? 아니면 혼자 잠시 거처하는 집이라 굳이 단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이곳저곳을 유랑하듯 일하는 윤보는 자기 집에서조차 유랑자처럼 지내는 듯합니다. 한여름도 아닌데 거적을 깔아놓고 마당에 누워있다가 이평을 맞아들이니 말입니다.

 

짚세기 삼을 일이지 머하러 왔노.”

와 오믄 안 되나?”

우리 집이사 사통팔방이니께, 올 기이 머 있노. 짚세기나 삼아서 팔아가지고 계집자식 봉양 잘하라 그 말 아니가.?”

우찌 그리 밤낮 삐뚜룸한 말만 하노.”

그 재미로 안 사나.”

오면서 한조를 봤는데 팔팔한 성미에 무신일 안 저지를란가 모르겄네.”

니도 남으 걱정 할 때가 다 있나. 자기 앞만 가리고 사는 줄로 알았더마는.”

자꾸 그래싸믄 옳은 죽음 못할라?”

허 내사 보나 마나 길바닥서 죽을 기구마. 아 어디서 죽으믄 무신 상관고. 어차피 계집자식이 있어서 임종해줄 것도 아니겄고.”

누가 말리서 계집자식 못 두었나?”

니맨치로 될까봐서 안 그러나. 목매인 송아지처럼 오도가도 못하고, 그꼴이 머꼬?”

다름 아니고......우리 두만이 놈 서울 데리고 안 갈라나? 농사꾼 팔자, 이놈의 팔자 평생 가봐야 펼 날이 없고 대목 일이나 배워서 자립해서 살아보는 기이 아무래도.”

목수 팔잔 별수 있건데? ”

땅임자 눈치 살피믄서 사는 것보다는 기술 하나 있이믄 밥이사 굶겄나. 좀 부리묵다가 내비리고 오라모. 그놈이 잘못되지는 않을 기구마

 

큰아들을 윤보에게 딸려 보내고 나면 이평은 농사일이 버거울 게 뻔합니다. 그렇지만 자식의 자립을 위해 열여덟 살 두만이를 떠나보내려 합니다. 서울에 두고 와도 상관없다고까지 하는 걸 보니 두만이는 집밖에서 자립할 길을 반드시 찾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목수 실력이 전국적으로 파다하게 소문난 윤보를 첫 스승으로 삼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처자식 없는 1인가족 윤보는 장차 처자식을 건사할 능력을 갖춰야 할 청년의 자립을 기꺼이 돕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서울로 올라갈 때 두만이와 동행하게 됩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릴 필요가 없는 윤보에게 일을 맡기려면 돈만으로는 안 됩니다. 목숨을 이어가고자 구차하게 구는 법도 없으니 양반 지위를 내세워 군림해서도 윤보를 매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윤보가 1905년 서울로 올라가 집을 짓게 된 계기는 이러합니다.

 

윤보는 강변 언덕에 있는 집까지 못 가서 소나기를 만났다. 집 앞에 이르렀을 때 나그네 한 사람이 처마 밑에 바싹 붙어서 오종종한 꼴을 하고 있었다.

아 곰보 목수 아닌게라우?”

나그네는 반가운 듯이 말했다. 이 년 전인가, 전주에 사는 윤참봉의 집을 지어준 일이 있었는데, 나그네는 그 집 하인이었다.

그래 그 노랭이 양반은 밥 잘 자시고 잠 잘 주무시는가? 그 양반 일이라 카믄 안 할 기다.”

그러지 말란께. 우리 댁 나리께선 곰보 목수를 참말로 대단케 생각허시지라우. 솜씨 칭찬이 이만저만이라야제. 이분에는 서울인디. 친척 되는 윤감찰께서 집을 짓게 되싰는디, 우리 나리 께서 곰보 목수 칭찬을 하신 모양이라우. 그 댁은 유복허고 인심도 후하니께로......가믄 해롭잖을 것이오. 여기 노자도 가지왔이니께로.”

 

윤보는 전국 각처에 집 짓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관계가 풍성해집니다. 윤보의 식견을 넓혀줄 이들은 도처에 널려있었던 셈입니다. 특히 그에게 집 짓는 일을 맡기는 자들은 계층과 학식이 높은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세상 바닥에서 직접 몸을 움직여 일하는 윤보가 이런저런 먹물 든 자들을 상대하면서 세상을 통찰해 가는 재미는 제법 쏠쏠했을 듯합니다.

 

서울에서 집을 짓기 시작한 그해에 일본과 을사조약이 체결됩니다. 윤보는 통곡의 도가니가 된 서울을 직접 목격합니다. 그렇지만 경상도 지방 평사리 마을에 사는 열세 살 서희는 나라를 잃은 사건에 대해 그다지 실감하지 못합니다.

 

애기씨 나라가 망했다 합니다! 대신 놈들 다섯이 들어서 나라를 팔아묵었다 합니다! 이럴 수가 있겄십니까? 모두 땅을 치고 통곡을 한다 캅디다. 충신들은 칼로 목을 찌르고 죽었다 카고요.”

울며 봉순이 말했을 때,

죽으면 무얼 해? 죽는다고 나라가 안 망하나? 충신이라는 말이나 듣자고 하는 수작이지. 그럴 바에야 왜 망하기 전에 손을 못 썼으까. 병신들 같으니라구. 초상난 것도 아니니 울지 말아라.”

태연하고 냉정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망한 것을 알게 된 평사리 마을 김훈장은 주먹을 쥐고 마룻바닥을 치며 통곡합니다.

 

망했다. 나라 없는 백성이 어디 있으며 나라 잃고 살아 무엇하겠느냐! 원통하고 분하다!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들은 자결하니 이런 일이 어디 또 있겠느냐? 내 강토를 팔아먹는 문서에 도장 찍은 역적 놈들! 앞으로 이 나라는 어찌 될 것이며 백성들은 어디로 간단 말이냐. 세계만방이라 하건늘 도적질하는 왜적을 견제할 만한 나라는 하낫도 없었더란 말이냐.”

 

울음을 거둔 김훈장은 발걸음을 끊은 지 일 년이 넘은 최참판댁을 찾아갑니다. 조준구에게 의병활동에 보탤 군자금을 얻을 요량으로 말입니다. 조준구는 이 땅의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실상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묘책을 강구하는 터인데 말입니다. 양반 계층을 절대적 신뢰하는 김훈장은 조준구가 지체 높은 양반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미 친일 단체 일진회와 어울리는 친일파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준구가 거처하는 사랑방은 옛날과는 달랐다. 기방을 연상할 만큼 채색이 여기저기서, 김훈장 눈에 거슬렸다. 열 폭 병풍의 그림도 채색화였다. 돈에 아양 떠는 화공의 솜씨임이 분명했다. 주홍빛 보료 한복판에는 호피가 깔렸고 방안에는 달착지근한 향내가 풍겼다. 이윽고 조준구가 들어섰다.

 

찢어 죽일 놈들! 조약에 도장을 찍은 다섯 놈들을 밟아 죽여야 하오! ”

그네들도 그러고 싶어 했겠소. 일본은 도장을 찍은 그 사람들 아니라도 얼마든지 오적을 만들어낼 거요. 이미 우리들 힘이 미치지 못하는 대세요. 아라사를 상대로 싸워서 이긴 그네들이니까.”

참으로 부끄럽소이다. 우리 일어서야 하오. 조공? 양반인 우리가 앞장서면 마을 사람들은 다 따를 것이오. 방방곡곡 백성들이 모조리 연장들고 나선다면 무슨 수로 그놈들이 대적할 것이오?”

지금 동학당의 거두들이 어떤 줄 알기나 하시오? 동학의 접주 이용구를 말할 것 같으면 일진회 두목으로서 친일의 앞장을 선 사람이요. 손병희는 일본에 편하게 있으면서 거금을 일본 정부에 헌납하고 오로지 아라사가 거꾸러질 것을 빌었다 그 말씀이오. 동학의 졸개 놈들은 또 어떠했겠소? 개미떼처럼 몰려나와서 일본군을 도와 철도를 깔고 군수물자를 날라주고, 허 참 그런 동학이 일본하고 싸워보겠다는 그 자체가 망동이오. 서울서는 모두 김생원만 못해 도장을 찍었겠소? 어리석은 말은 집어치우시오. 누굴 망해 먹으려고. 아 그래 내게 의병장이 되라 그 말씀이오? 개죽음을 하라 그 말씀이오? ”

 

김훈장은 일어섰다. 대문짝에다 대고 툇! 하며 침을 뱉는다. 밤길을 돌아오는 김훈장은 길섶에 주저앉는다. 고독했다. 김훈장의 행동거리 속에 군자금 한 푼 군량미 한 섬 내놓을 만한 처지가 못되는 향반들 밖에 없었다는 것은 그 자신을 위해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서울서 조준구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일본은 치안유지에 만반태세였고 사태가 역전될 기미는 추호도 없다는 것이었으며 막강한 일본군에 대항하기에는 새 발의 피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조준구의 마음을 편안케 한 것은 하동 고을에도 일본 헌병이 주둔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태평성세를 가져다줄 일본에 대하여 준구는 충성심과 신뢰로 가득 차 있었고 나날은 쾌적하였다.

 

나라의 주권이 일본제국으로 넘어가는 정세는 이땅 권력 실세들의 판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나라는 잃어도 권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권력은 새롭게 재편되고 추종 세력이 달라질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제 몸 낳아주고 키워준 강산을 남 줄 수 있나라고 울분에 가득 찼을 윤보가 항쟁에 동참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1907년에 들어서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던 고종이 퇴위하는 비극과 조선 군대의 해산은 빈사의 목숨에 마지막 칼질이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군인들은 남대문에서 일본군과의 처참한 교전을 벌였다. 이 싸움에 서울로 일 갔었던 윤보가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1908년 윤보는 연장망태도 없이 거지꼴이 되어 평사리로 돌아옵니다. 두만이는 진짜 서울에 두고 왔는지 혼자 돌아온 것입니다. 윤보는 의병이 되어 서울 근방을 누비고 다녔던 걸까요? 심신이 지친 채로 귀향길 나룻배에 앉으니 고향산천이 반갑게 다가옵니다. 다가왔다가 스쳐지나가는 고향 풍경은 고즈넉함 그 자체로 감개무량입니다. 눈에 익은 그 풍경에 푸욱 안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나라야 잃든 말든 이 좋은 고향 품에 심신을 편안하게 누이고 싶은 심사가 됩니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떨쳐 일어나 싸우고 싶은 혈기도 다른 마음 한편에서 들고 일어납니다. 이 두 마음은 교차하고 요동칩니다. 오로지 하나의 마음만을 선택하라고 몰아붙이고 다그칩니다.

 

오래간만에 돌아와 보니 시시로 변하는 기이 세월이라 카지마는 산천은 예나 마찬가지로 좋구마. 이 좋은 고장을 버리고 내 참 많이도 떠돌아댕깄고나. 앞으로 어디를 갈 것이며 내 갈 곳이 어딘지 몰겄다. 어디기는 어디라? 그야 겔국에는 저승이겄지.

죽는 날까지, ....이 강변에 앉아서 낚싯줄이나 내리놓고 세상만사 다 잊어부리고 한분 살아보까. 남이야 북을 치든 나팔을 불든 조용히 한분 살아보까. , 그렇기 못 살 것도 없제. 살다가 굶을 판이믄 드러눕어서 눈 감으믄 고만일 기고. 세상에 나겉이 홀가분한 놈이 어디 또 있을라고. 울어줄 계집, 자식도 없고 남기놓고 떠나는 설움도 없일 기고.

허 참, 천지만물 어느 것 하나 멩이 없는 거는 없는 법인데 멩이 있고 보믄 죽을 날도 있기 매련 아니가. 인간 수멩이 칠십이라 카던가? 날포리는 하루를 살다가 가고 거북이는 천 년을 넘기 산다 카는데 곰곰이 생각하믄 어느 기이 질다 짧다 할 수도 없일 기구마. 제에기! 살다가 가기로는 매한가지 아니가 그 말이다. 굶을 판이믄 드러눕어서 눈 감고 죽음을 기다릴 기라고? 아서라. 그런 짓이사 논어 맹자 공부를 한 김훈장이나 할 짓이제. 상놈이 무신, 마른자리서 죽기는 다 글러묵었다.

사람우 사는 이치가 이러저러하고 여사여사하다고 글쟁이들은 말도 많더라마는, 날씨도 갠 날 흐린 날 눈비 오고 바람 불고 노성벽력 치고 하듯이 사람우 살아가는 펭생도 그 같은 거 아니겄나. 사시장철 갠 날만 있다믄 그기이 어디 극락이겄나. 산촌초목도 사람도 다 말라 죽어부리는 지옥이지 머겄노 말이다. 그러니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오는 그기이 땅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이치이듯이 사람으 경우도 매한가지 이치일 기니 우찌 낚싯줄이나 내놓고 가만 있겄노.

용천지랄을 해보는 기다. 사나아 자석으로 태이나서, 하기야 상놈으로 태이나서 받은 거는 천대밖에 없다마는 내가 그래도 이 강산에 태이났이니. , 멩줄이야 탄탄하게 태이났지. 용천지랄을 하다가 아무래도 그렇그름 죽는 기이 나한테는 걸맞을 기구마. 용천지랄을.’

 

평사리에 내린 사람은 윤보 혼자였다.

 

그의 귀향에는 이미 험난한 의병 활동과 길 위의 죽음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의 선택은 고향 강변의 강태공이 아니라 목숨을 내건 의병으로 기울어졌으니 말입니다. 윤보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죽음을 향해 초연하고 꿋꿋하게 다가가려 합니다. 결국 그는 길 위의 죽음을 선택합니다. 고향 강변에서 사시사철 붕어를 낚으며 먹고 살 것인가,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의병들 속에서 앞장서다가 죽을 것인가,하는 갈림길에서 그는 자신을 배려한 자신에 걸맞은 죽음을 창조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나룻배에서 내린 윤보는 마을로 들어섭니다.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영팔이와 마주칩니다. 소달구지에는 보기 딱할 정도로 퉁퉁 부은 막딸네가 누워있습니다. 사람좋은 영팔이가 과부 막딸네를 읍내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윤보는 막딸네를 위로합니다만 정작 그 위로가 막딸네에게 가닿지는 못했을 성 싶습니다. 몸이 아픈 것은 몸에 신경 쓸 겨를이 생길 정도로 형편이 나아진 것이고, 병이 드는 것은 자연의 지극히 당연한 이치라고 하니 말입니다. 게다가 아픈 덕분에 소달구지 타는 호강을 누리지 않냐고 우스갯소리까지 건넵니다. 싱그운 유머에 아픈 막달네는 잠시 미소지었을 것도 같습니다.

 

막달어매, 벵이 나는 거를 본께 살기가 편해진 모양이구나. 사램이 살자 카믄 벵들 날도 있제. 마른 하늘도 울고 오뉴월에 우박도 내리는데 사램이라고 안 아프까? ”

이렇그름 몸이 짚동겉이 부었는데 우찌 살겄소. 이년의 무상한 팔자, 고생을 그리 하고 살았건마는 아즉도 죄 닦음이 안 끝났다 그 말이가. 아이고 내 못 살겄네

산다는 기이 죄를 보태는 기지, 어디 죄 닦음하는 기든가? 앓는 소리는 고만하고, 아픈 덕분에 과부가 호시하는데 멀!”

 

병들고 아픔에 대한 윤보의 담담한 통찰은 놀랍습니다. 그런 경지에 이른 윤보에게 죽음은 한사코 피해야만 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이며 해방이며 휴식일 것도 같습니다.

 

윤보가 고향에 돌아와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은 용이입니다. 용이 집에 들렀더니 용이는 없고 임이네가 윤보를 붙들고 용이에 대한 불만을 쏟아냅니다. 용이 자식을 낳아준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한껏 으스대는 임이네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윤보가 아닙니다.

 

임이어매는 남보고 이러쿵 저러퉁 안 하는 기이 좋을 기구마요. 하늘 보고 침 뱉으니 제 얼굴에 떨어지더라고. 그라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믄 안 되제. 임이어매도 과욕을 부리지 않는 기이 좋을 기구마. 신상에 해로우니께.”

 

험담이나 과욕은 결국 임이네 자신을 다치게 할 것이라는 경고를 윤보는 넌지시 던집니다. 윤보의 혜안은 임이네가 자식보다도 욕심을 더 귀히 여기며 살게 될 앞날을 꿰뚫게 했나 봅니다. 하지만 윤보의 조언에 임이네가 귀 기울일 것 같지는 않으니 불행한 앞날을 향해 직진해 갈 듯합니다. 오로지 욕심만이 임이네의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다른 것들은 스며들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윤보는 용이 집을 나와 개울가로 향합니다.

 

햇빛에 바래어 눈이 부시게 흰 자갈밭, 그 한복판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이 씨원쿠나.”

얼굴을 북북 씻은 뒤 신발을 벗어버리고 두 발을 물 속에 집어넣는다.

용이 개울가로 내려온다.

 

윤보는 용이로부터 평사리 마을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신분타파와 인권 존중을 설파하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샀던 예전의 조준구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며, 사람들이 천하의 도둑 조준구에게 속았다고들 말한다는 것이며, 흉년에 최참판댁 고방을 부수고 곡식을 나눠줬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당했다는 것이며, 마름 역할은 삼수가 아니라 지서방이 맡았는데 그의 악행이 참으로 모질다는 것이며, 김서방댁은 빈 몸으로 쫓겨나고 한조는 부치던 땅을 빼앗겼다는 것들을 용이는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마을의 살림이 전보다 점점 더 어려워 허덕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 원인은 물론 조준구의 과도한 수곡 강요에 있었고 희망을 잃은 마을 사람들의 무기력해진 심리상태에도 있었다. 예전에 마을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며 제법 온정을 베풀고 너그러이 행세했던 조준구는 요즈음

농사꾼이란 소나 말과 다를 것이 별로 없고 일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음이 분명하다

는 따위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는 그의 지반이 그만큼 탄탄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조준구의 처사가 가혹할수록 그의 자리는 공고해져서 대항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을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했지만 조준구는 조준구대로

상놈이란 원래 귀여워하면 강아지 모양 기어오르려고 하고 채찍을 들어야 일을 하게 되는 소와 같아서 심히 다루어야, 그래야 질서가 잡히는 법이니라.”

지서방을 보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웃곤 했던 것이다.

 

조준구의 수탈과 괄시가 가혹해져도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윤보가 돌아왔으니 응징을 위한 술렁임이 구체화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양반절대주의자 김훈장은 양반 조준구를 습격하는 데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김훈장은 심정적으로는 동참하고 싶지만 내가 어찌 화적떼가 될 것이냐라며 소리칩니다. 윤보는 이에 맞서 자기 일신만 중히 여기는 양반때문에 나라가 망하지 않았냐라고 대꾸합니다.

 

다만 조준구 그 자를 치자는 거는 딱 두 가지 까닭이 있일 뿐인데, 그 하나는 그 자가 왜놈들 편에 빌붙어서 자기 영화만 생각는 역적이니께 이 차에 목을 쳐서 뽄뵈기로 삼자는 거요, 다른 하나는 누구 재물이든 간에 고방에 썩고 있는 거를 우리 의병이 써야겄다 그겁니다. 머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잃은 나라를 당장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겄고 왜군이 물러갈 기라는 생각도 없십니다만, 부모가 돌아가시도 곡을 하는 법인데 나라가 죽은 거나 진배없으니, 자결하는 것도 충절이겄지마는 죽기로 작정하고 싸워보는 기이 지금은 도리가 아니겄십니까.”

 

두만 아비 이평과 아들 영만이는 조준구 습격에 빠지기 위해 피신을 갑니다. 그런데 뜻밖에 삼수가 윤보 편에 서서 따르고자 합니다. 조준구로부터 토사구팽 당한 배신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일까요 

 

나도 알 만치는 알고 있이니께요. 한 마디로 딱 짤라서 말하겄소. 왜눔들하고 한통속인 조가 놈을 먼지 치고 시작하라 그 말이오. 고방에는 곡식이 썩을 만큼 쌓여 잇고 안팎으로 쌓인 기이 재물인데 큰 일을 하자 카믄 빈손으로 우찌 하겄소. ”

 

그리하여 결전의 날 최참판댁 대문을 열어준 것도 삼수였습니다. 그렇지만 조준구와 홍씨의 목숨을 살려준 것도 삼수였습니다. 그들을 죽여야만 의거에 참여한 사람들이 훗날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악질 마름 지서방만 대창으로 찔러죽인 후, 가축 곡식 피륙 패물 은전 지폐 등을 모조리 실어내는 동안에도 끝내 조준구와 홍씨 두 사람을 찾지 못합니다. 삼수가 그들이 숨은 곳을 알았지만 발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삼수는 사당 안으로 기어들어 간다. 조준구가 토지문서를 사당 마룻장을 뜯고 그 밑에 감춘 것을 삼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룻바닥에 엎드린다.

”“나으리 나으리 소인 삼수올시다. 지금 당장 내 말 한 마디믄 이 세상하고 마지맥이 될 깁니다. 삼수 놈이 그래도 나으리한테는 쓸모가 있는 놈이라는 것을 이자 아싰지요? 이놈한테 한몫을 주시는 기지요? 죽고 사는 기이 이 삼수 놈 손에 매있이니께요.”

 

구사일생한 조준구는 달려온 일본헌병 앞에서 삼수를 가리키며 여러 번에 걸쳐 폭도의 앞잡이라며 노려봅니다. 악한 조준구는 악한 삼수를 살려두지 않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악이 되기 위해 다른 악을 처단합니다. 약점이 잡힌 악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으리! 꿈을 꾸시는 깁니까? 목심을 건지디린 이 삼수 놈을 말입니다.! 소인은 나으리를 사 살리디맀는데 이럴 수 잇십니까?”

 

삼수는 걸레 조각처럼 끌려나갔다. 노비들은 숨을 죽이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문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삼수의 울부짖음은 계속 들려왔다. 울부짖음이 끊어졌는가 싶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뒷산 쪽에서 총소리가 두 번 울렸다. 삼수의 죽음에서 조준구의 본성을 하인들은 똑똑히 보았다. 이용하고 나면 버리는 무자비한 생리에 소름이 돋았다.

조준구에게 이제 삼수는 성가신 존재, 없어져 주는 편이 홀가분하다. 어리석은 삼수, 그가 아무리 악독하다 한들 악의 생리를 몰랐다면 어리석었다 할밖에 없다.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을 해칠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왜냐,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 밖에 없고 찢어발길 수 있는 허위의 의상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걷이가 끝났을 무렵 마을에는 쫓겨난 사람, 도망간 사람들, 하여 빈집이 많아졌다.

 

조준구 습격 사건 이후 서희는 간도땅 용정으로 주거지를 옮깁니다. 1908년 당시 서희 나이는 열여섯 살입니다. 그런데 용정에는 윤보도 없고 봉순이도 없습니다. 1911년 용정에 대화재가 일어나 도시 절반이 불에 타게 됩니다. 그때 집을 지을 목수에 대한 대우가 상전 모시듯 해지자 길상이와 김훈장은 윤보를 추억합니다.

 

목수 얘기가 났으니 말이네만 윤보 생각이 나는군. 그자가 죽지 않고 이곳에 함께 왔었더라면...의병장 홍범도만큼이야 할까마는 거 재목이 컸었는데......”

컷었지요. 그만한 인재도 드물겠지요.”

위인이 순직하고 입정이 나빠 탈이었지만 도량이 넓고, 무엇이든지 포용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 사욕이라곤 터럭만치도 없는, 목수로서 기량도 좋았고. 태어날 곳에 태어났더라면 아주 훌륭한 장수가 되었을 게야.”

김훈장이나 길상이는 다 같이 윤보에 대해서는 추억이 많다. 생사를 같이 했고 또 그의 죽음을 지켜본 이들이 감회 없이 윤보를 회상할 수 없는 것이다. 김훈장의 경우는 특히 그러했다. 김훈장은 윤보 말을 하고부터 풀이 죽는다.

하긴 윤보 목수가 함께 왔었더라면 김훈장이 저리 쓸쓸해 뵈지는 않았을 거야.’

 

중년 용이와 청년 거복이가 용정에서 마주칩니다. 윤보의 죽음을 전해 들은 거복이는 12년 전 열다섯 살 때 어머니 함안댁을 땅에 묻던 날의 우렁우렁했던 윤보 목소리를 상기하게 됩니다. 최치수를 살해한 죄값으로 처형된 김평산의 큰 아들 거복이가 20대 후반의 김두수가 되어 말입니다.

 

니가 우찌 여까지 왔노! 니 어무니 장사 지내고는, 처음이구나.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허허헛....”

아재씨도 많이 늙어셨습니다. 니 어무니 장사 지냈다는 말씀만 안 했어도 지는 그냥 달아났을 겝니다. 그때...영팔이아재는 지게송장을 지고 갔지오. 윤보아재는....”

윤보 형님은 죽었다. ”

죽어요......”

 

김두수는 십이 년 전의 그날을 눈 앞에 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관가로 끌려간 다음 날 이른 아침, 치마를 뒤집어쓰고 살구나무에 목을 맨 어머니, 시체도 살구나무도 비에 흠씬 젖어 있었다. 음산한 바람이 불던 북향의 산비탈, 추위에 먹빛이 된 동생의 얼굴, 얼어서 게 다리같이 꾸부려졌던 동생 한복의 손가락.

거복아, 니 오늘이 며칠인지 아나? 열이레다. 너거 어무니 돌아간 날 그러니께 이월 열엿새라 말이다. 여기가 니 어무니 산소고. 잘 명님해두어라. 알겄나?”

무덤을 만들어놓고 골통에 담배를 넣으며 말하던 윤보의 목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두만강 건너 멀고 먼 간도땅에서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살아내는 경상도 평사리 사람들 사이에서도 윤보 이야기는 은밀하게 오고갑니다. 친일파가 등을 찔려서 죽고, 일본 순사들의 목을 베가고, 경찰서 여러 군데에 불을 지르는 의병 활동들이 이어지자 그런 활동을 이끄는 사람이 윤보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여깁니다. 그렇게 윤보는 전설이 되어 일제강점기의 희망이 됩니다.

 

떠도는 말을 조맨 들었는데 말이 윤보가 아즉 살아 있다고도 하고.”

그 말이야 나도 들었거마는. 내 그런 말 믿지는 않으나 축지법을 써서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별의별 놈의 재주를 다 부린다 카고, 그거는 머 그렇다 카더라도 이때꺼지 윤보가 살아 있다믄 국으로 있지야 않겄지. 무슨 사단을 꾸미고 댕기도 댕길 기라.”

그렇지요. 그 사람 동학 때도 장수 노릇했다는 말이 있십디다

하여간에 동학 때 쌈질한 것만은 틀림이 없지, 장수를 했는지 접주를 했는지는 모르겄다마는. 지리산 골짜기에 쥐도 새도 모르는 군사가 여차하믄 치고 나올 기라니 대단한 일이제.”

, 나도 그 얘기는 들었소, 잘난 장수 한 사람 있으믄 어렵은 일도 아닐 기요.”

윤보라는 그 사람이 곰보딱지 흉측스리 생겨서 아아들도 보믄 달아난다 카고, 연장망태 짊어지고 집이나 지어주는 목수라 해서 사람들이 대우를 안 해주지마는. 실상은 유식하기가 이를 데 없고, 옛날 동학군에 있일 적에 저어기 저 백두산, 그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난 무슨 도사한테서 병법을 배웠다 카이, 예사 인물은 아니라더마요.”

 

죽어서 땅 속에 썩고 있을 윤보, 그 윤보를 두고 허무맹랑한 얘기는 솜뭉치처럼 부풀어간다.

 

1인 가족 윤보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과 죽음을 욕망했습니다. 명성이나 부에 대해서는 욕망하지 않았습니다.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보는 부모의 기일에 절을 올려 예를 갖추었지만 자신의 제사를 지내 줄 자식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자식더러 어찌 살아내라고 자식을 낳겠냐,면서 말입니다. 일자무식인 그가 어떻게 이런 경지의 측은지심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사유가 경이롭습니다.

 

전국을 떠도는 길 위에서 만난 선하고 악한 사람들, 고향 마을의 순박하고 간사한 이웃들, 사시사철 자연의 순리를 고스란히 담은 이땅의 산천초목들, 철통같이 튼튼한 집을 짜맞춰 세우던 목수 활동들, 그 모두가 윤보의 혜안이 되어 켜켜이 자리 잡았을 듯합니다. 윤보를 통해 사람의 도리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윤보는 불의에 맞서는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행위가 사람의 도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무분별한 살상이나 파괴를 일삼는 혁명과는 분명 결이 다른 행위인 듯합니다. 윤보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협기로 동학 봉기 대열에 동참해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흉년에는 최참판댁 고방을 부숴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을사조약 이후에는 친일파 조준구를 습격해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윤보는 자신에게 걸맞은, 일상을 창조하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생명을 살아냈습니다. 어림짐작과 직감으로 튼튼한 집을 짓기도 하고, 강변에 앉아 호젓하게 낚시대를 드리우기도 하고, 때로는 봉기에 앞장서서 거침없이 날뛰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일자무식인 사람도 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를 일깨울 수 있다는 사실을 윤보는 보여줍니다. 자신이 깨달은 바대로 솔선수범하여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이 윤보가 아닐까,싶습니다.

 

하지만 삼수가 조준구에게 이용당하고 폐기처분 되었듯이, 윤보같이 정의로운 사람을 은밀하게 조종하고 이용하려는 자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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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행 시작합니다 천천히 사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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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불**면 |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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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수네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고단한 삶의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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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이*기 | 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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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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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부**자 | 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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