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미리보기 공유하기

죄와 속죄의 저편

: 정복당한 사람의 극복을 위한 시도

장 아메리 | | 2012년 11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베스트
사회비평/비판 top100 2주
정가
16,000
판매가
14,400 (10% 할인)
YES포인트
구매 시 참고사항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시원한 여름을 위한 7월의 선물 - 동물 이중 유리컵/문학 아크릴 화병/썸머 보냉백/이육사 여름담요
7월 얼리리더 주목신간 : FIND YOUR WAVE 북서핑 배지 증정
7월 전사
쇼핑혜택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2년 1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30쪽 | 380g | 140*210*20mm
ISBN13 9788964450581
ISBN10 8964450582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세월 속에 잊혀지고 있는 역사적 파국을 치열하게 파헤치다

저자 장 아메리는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베르겐벨젠 수용소 생활을 통해 파시즘이 불러온 인류의 비극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그는 지나간 과거라고 해서 용서될 수는 없으며, 정서적으로 긴장된 상태에서 진정성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20세기에 인류가 저지른 죄악과 파국에 대한 고발이며, 지우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기억을 통해 우리의 안일한 일상에 던져주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는 고문을 강간으로 보고 있다. 구타와 강간은 타인에게 자신의 육체성을 강제하는 것으로서, 다른 이의 신체를 침범하는 행위이다. 또, 한 번 고문을 경험한 사람은 그 충격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달리해 버리고 만다. 이처럼 생생하면서도 잔인한 기억을 끝내 놓지 않고, 불편함을 견디고 정확한 분석을 시도했던 장 아메리는 자살로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그는 ‘자살 작가’, ‘불가지론자', '세상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상가’ 등으로 불리고 있다.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의 정신을 파악하고자 했던 그의 글을 통해, 누구보다 냉철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자 했던 그의 사상을 체험해 보자.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997년판 서문
1966년 초판 서문

정신의 경계에서
고문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
원한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옮긴이 해제 : 파국의 철학과 원한의 수사
옮긴이의 말
장 아메리 연보

지은이/옮긴이 소개

저자 소개 (1명)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역자 : 안미현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G. E. 레싱에 대한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목포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번역학, 수사학, 젠더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레싱의 초기작품에 나타난 구조적 관련성에 관한 연구』(독문, 1991)가 있으며, 연구논문으로는 「번역비평을 위한 한 시도: 히페리온-문화의 이중 굴절로서의 번역글쓰기」, 「탈경계적 주체로서의 번역가의 과제와 번역전략 1·2」, 「번역과 여성: 두 개의 하위주제」, 「여성 주체의 말하기와 젠더화된 수사학」, 「독일 낭만주의의 언어, 번역, 해석」 등이 있다. 역서로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생각의나무, 1999), 『이브의 역사』(자작나무, 2000), 『파솔리니』(한길사, 2000), 『아이들을 변호하라』(공역, 내일을여는책, 2000), 『독일 연극이론』(공역, 연극과인간, 2001), 『인류 최대의 착각과 오류사전』(해냄, 2001),『수사학의 재탄생』(고려대학교출판부, 2010),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공역, 내일을여는책, 2011) 등이 있으며,『W. G.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을유문화사, 2009) 번역으로 제6회 시몬느 번역상(제13회 한독번역문학상)을 받았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아우슈비츠, 그 파국의 직접적 체험은 결코 이론적이거나 사변적일 수 없다!
'자살 작가', '불가지론자', '세상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상가', '잃어버린 세대'. 이 책의 저자인 장 아메리(Jean Amery, 1912~1978)의 삶과 사상을 말해주는 핵심어들이다.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베르겐벨젠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파시즘 야만이 불러온 유례없는 인류사의 파국을 직접 체험했던 그는, 또 다른 아우슈비츠의 생환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리모 레비(Primo Levi)와는 또 다른 결의 글로 '지나간 불편한 과거'가 결코 화해되거나 용서할 수 없는, 그래서 더더욱 정신적 긴장과 불협화음 속에서 그 진정성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의 저명한 사상가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나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말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는 달리, 아메리는 파국의 직접적 체험이 이론적이거나 사변적으로 변하고, 추상적인 개념어가 진짜 공포를 대신하는 사태에 대해 결코 동의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즉 아도르노와 아렌트는 죽음을 넘나드는 여러 차례의 고비에도 불구하고 결국 망명에 성공했고, 그 후 다른 나라에 체류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사변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면, 아메리는 극단적인 고문을 비롯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 지옥 같은 집단 수용소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다섯 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의 대표작으로, 1965년 발표되어 서구 지성계에 충격을 던진 가장 유명한 글 「고문」(拷問)을 비롯하여 모두가 자신의 생생한 체험에 근거하여 집필된, 지난 20세기 인류가 저지른 '파국'에 대한 직접적 고발이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 대해 그래도 기억해야만 하는, 또한 되도록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일상성의 함정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고문, 그것은 두 당사자 중 한 사람의 동의가 없는 성행위, 즉 강간이다"
1943년 망명지였던 벨기에에서 반(反)나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체포된 그는, 브뤼셀 주재 게슈타포 본부가 관할하는 생질(Saint-Gilles) 수용소에 수감되지만, 같은 날 브렌동크 요새로 옮겨져 친위대(SS)에게 심한 고문을 당한다. 이 당시 겪은 생생한 고문의 경험은 "고문을 경험한 자에게 이 세상은 더 이상 편하지 않다"라는 인식에 이르게 한다. 즉 자아가 세계와 만나는 가장 일차적인 경계가 바로 '몸의 경계'인데, 누군가가 우리를 구타하고 고문한다면 그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의 육체성을 강요하는 것으로, 타인의 신체 혹은 피부를 침범함으로써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아메리는 그것을 "두 당사자 중 한 사람의 동의가 없는 성행위, 즉 강간"으로 본다. 이를 경험한 자는 그 어떤 인간적인 의사소통을 통해서도 상쇄될 수 없는 세계에서의 낯설음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고문에 시달렸던 사람을 더 이상 이 세상을 고향처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와 같은 처절한 체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송과 신문 기고, 책을 통해 끊임없이 불편하지만 적확한 분석을 시도했던 아메리는 197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의 '정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메리는 사실, 196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던 아우슈비츠 재판이 있기 전까지는 자신의 체험에 대해 침묵했다. 이 재판은 아메리로 하여금 그동안 독일인들이 부인하거나 축소하려고 시도해 온 나치 과거를 다시금 돌이켜 보게 만들었다. 그는 이 책에 실린 첫 에세이 「정신의 경계에서」에서 나치 전체주의에 의한 총체적 파국은 육신의 절멸과 더불어 '정신의 무용함'을 입증했다고 주장한다. 신앙이나 정치적 신념과는 달리 정신이나 형이상학, 인문적 교양은 수용소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많은 사례를 들어 증언한다. 즉 그는 자유로운 상황에서 인문적 지식인들이 추구하던 초월적이고 선험적인, 미학적이고 관념적인 사유가 극단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단순히 개인 차원의 인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결국 수세기 동안 유럽 문화 속에 동화되어 살아온 유대 지식인들의 권력 앞에서의 무능력함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서구 지성사 혹은 정신사 전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지성 혹은 정신은 그것의 필요성이 진정으로 요구될 때 한없이 무력감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런 정신의 무력함은 결국 언어의 무력함으로 이어진다. 모국어의 상실과 언어의 파괴가 바로 그것이다.

원한! 그러나 그 극복은 계몽의 언어로부터 ……
인류 역사에 있어 최대의 파국을 몰고 온 이 사태(유대인 대학살)를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결국 전후 패전국 독일의 처리 문제로 귀착된다. 영원히 폐허 상태로 남겨놓을 것인지 아니면 재건을 도와 유럽 사회에 다시 편입일 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다. 이 같은 결정에 있어 나치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의 태도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망명을 갔거나 살아남은 유대인들 가운데는 자신들의 편에서 독일과의 화해를 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스라엘로 건너가 예루살렘 대학에서 가르쳤던 마르틴 부버, 실존주의 철학자인 프랑스계 유대인 가브리엘 마르셀, 영국계 유대인이자 출판인이었던 빅터 골란츠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아메리는 전후 유대인들의 이 같은 화해의 노력에 동참하지 않는다. 그가 이런 관대한 움직임에 대해 신뢰나 동조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 것은 이들이 아우슈비츠를 직접 경험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아메리는 네 번째 글 「원한」에서 화해 대신에 원한의 감정과 원한의 수사(修辭)를 옹호한다. 당시 대부분의 독일인, 나아가 전 세계가 원했던 화해나 용서 대신 원한과 분노를 지속적으로 간직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같은 역설적 주장을 통해 자신이 받을 비난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원한에 찬 수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는 근본적으로는 '계몽의 언어'이다. 계몽의 원칙에 입각한 그의 글쓰기는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나 한 치의 가감 없이 사실만을 드러내려는 그의 의도와 관련된다. 모든 허구적인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진실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 철저히 자신의 체험과 사유에 바탕을 둔 그의 글쓰기는 풍부한 전거와 인용을 포함한, 치밀하고 세부적인 것에까지 파고드는 분석적 언어에 있다. 그는 말한다.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어떤 갈등도 해소되지 않았으며, 어떤 내면화하기도 단순한 기억이 되지 않았다. 일어났던 것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난 일어났던 것을 단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는 저항한다. 나의 과거에 대해,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역사로 냉동시켜 버리고, 그렇게 해서 화가 치밀 정도로 왜곡시키는 현재에 대해."

회원리뷰 (1건) 리뷰 총점10.0

혜택 및 유의사항?
장 아메리의 『죄와 속죄의 저편』 - 홀로코스트 어떻게 넘어서야 하나,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드**리 | 2013.12.0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선호하는 출판사가 하나 정도는 있다. 드미트리도 마찬가지인데, 이번 기회를 빌려서 나열해 보자면.앨피, 돌베개, 삼천리, 까치, 한길사, 문학동네, 갈무리, 한겨레출판대충 이 정도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바로 도서출판 '길'. 무한도전에 나오는 그 길 아니므니다. 출판사 길입니다. 그렇다고 길에서 나온 책을 본 적은 없다. 다;
리뷰제목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선호하는 출판사가 하나 정도는 있다. 드미트리도 마찬가지인데, 이번 기회를 빌려서 나열해 보자면.


앨피, 돌베개, 삼천리, 까치, 한길사, 문학동네, 갈무리, 한겨레출판


대충 이 정도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바로 도서출판 '길'. 무한도전에 나오는 그 길 아니므니다. 출판사 길입니다. 그렇다고 길에서 나온 책을 본 적은 없다. 다만, '프론티어 21' 시리즈로 나오는 책의 저자가 워낙 화려한지라, 시간 날 때 정독해 봐야지, 정도의 마음을 먹고 있던 참이다. 어느 정도로 저자가 화려하냐면.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베네딕트 앤더슨, 조반니 아리기, 테리 이글턴, 알랭 바디우...


아, 그러고 보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는 사놓고 2년이 지났건만, 서문조차 읽지 못했구나. 반성하자.


어쨌든 길 출판사에서 낸 책으로는 처음으로 읽은 게 바로 『죄와 속죄의 저편』이다. 저자는 장 아메리.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다. 무작정 길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뽑은 책이다. 책 날개에 적힌 저자 설명을 적당히 추려 옮기자면.


장 아메리 (1912~1878). 오스트리아 빈 태생으로 유대인 아버지와 가톨릭 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오스트리아가 제3제국에 합병되자 벨기에로 망명. 1940년 프랑스에서 체포되어 수용, 도주하여 반나치 운동을 전개하던 중 다시 체포. 이후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베르겐벨젠을 전전하며 수감 생활. 연합군 승리로 해방된 뒤 장 아메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 1966년 '고문'을 발표하며 아우슈비츠를 이야기하기 시작함. 1976년 자살 시도.1878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죄와 속죄의 저편』은 아우슈비츠에 관한 기록이다. 한 개인이 세계사 속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장 아메리는 이 책의 개정판을 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과 다를 바 없는 죽음을 맞이했으니.


아우슈비츠를 넘지 않고는 인류에 미래도, 희망도 없다. 이를 두고 아도르노와 호크하이머는 계몽의 속성 자체에 비극이 내재했다고 분석했고, 아렌트는 인류에 편재하는 악을 끄집어냈다. 장 아메리는 이러한 분석을 비웃는다. 『죄와 속죄의 저편』은 섣불리 아우슈비츠를 정리하고 과거와 화해하려는 시도를 조소하며 제3제국에 향한 적대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저자는 자신의 태도가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독설을 멈추지 않는다. 아우슈비츠는 실제 있었던 사건이며,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천착하는 태도, 왠지 쿨하지 않아 보이는데 이런 책을 굳이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우슈비츠는 종결된 사건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경제 불황을 보면서 전체주의의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어쨌거나 장 아메리의 필력은 대단한데, 드미트리가 그의 에세이에 담긴 요소를 분석하기보다는 저자의 말을 옮기는 게 적절해 보인다. 그러니 리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자.


---


우리는 어떻게 말이 육신이 되고, 육신이 된 말이 결국은 어떻게 층층이 쌓인 시체가 되는지를 목격했다. 그곳에서는 다시 한 번 많은 사람을 위해 공중에 무덤을 파는 불장난을 하게 될 것이다.  (11쪽)


계몽은 해명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 작은 책이 인쇄되었을 때 나는 해명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결코 해명되지 않기를 바란다. 해명이란 우리가 역사적인 서류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의 해결, 곧 합의이다. 내 책은 바로 이것을 막는 것에 기여할 것이다.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어떤 갈등도 해소되지 않았으며, 어떤 내면화하기도 단순한 기억이 되지 않았다. 일어난 것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일어났던 것을 단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는 저항한다. 나의 과거에 대해, 역사에 대해, 불가해한 것을 역사적으로 냉동시켜 버리고 그렇게 해서 화가 치밀 정도로 왜곡시키는 현재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어쩌면 1964년에 치유될 수 있었던 상처가 다시금 곪아터지고 있다. 감정적이라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계몽에 감정이 없어야 한다고 어디에 적혀 있나? 내게는 오히려 그 정반대가 진실해 보인다. (13쪽)


합리적이고 분석적 사고는 수용소에서, 특히나 아우슈비츠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곧바로 자기파괴라는 비극적 변증법을 이어졌다. (36쪽)


수용소에서는 총체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정신은 결정권이 없었다. (중략)

지혜라는 말이 세상에 관한 긍정적인 지식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아우슈비츠에서 지혜로워지지 않았다. (중략) 정신적인 차원의 정의가 심오한 깊이라면, 우리는 수용소에서 '더 깊어지지도' 않았다. 우리가 아우슈비츠에서 더 선해지지도, 더 인간적이지도, 인간에 대해 더 호의적이고 윤리적으로 성숙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주변적인 이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탈인간화된 사람의 행동이나 범행을 보면서, 인간의 타고난 존엄에 관한 생각에 의구심을 품지 않은 채 그 사람을 쳐다볼 수 없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용소에서 지냈던 사실은 정신적으로는 전혀 가치가 없었다. 우리는 말하자면 확고부동한 확실함을 얻었는데, 정신은 하나의 유희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하면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유희하는 인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52~54쪽)


첫 번째 구타와 함께 세상에 대한 이 같은 신뢰가 무너진다. 내가 세상에서 신체적으로는 반대하지만, 경계로서의 내 피부의 표면에 접촉하지 않는 한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은 그 첫 번째 구타로 내게 자신의 육체성을 강요한다. 그는 내게 접촉함으로써 나를 파멸시킨다. 그것은 강간, 곧 두 당사자 중 한 사람의 동의가 없는 성행위와 같은 것이다. (중략) 그러나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 우리의 신체를 제압하는 것은 결국 완전한 신체적 절명 행위가 된다. (71~72쪽)


고통이 어떠한지는 이미 언어적 소통의 한계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아마도 나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고문당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죽음의 예식이다. (80쪽)


고문에 시달렸던 사람은 이 세상을 더 이상 고향처럼 느낄 수 없다. 절멸의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분적으로는 첫 번째 구타에서, 그러나 전체 범위에서는 결국 고문 속에서 무너진 세계에 관한 신뢰는 다시 얻어지지 않는다. 이웃을 적대자로 경험했다는 것은 고문당한 사람 속에 경악으로 굳어진 채 남아 있다. (91쪽)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자리에서 첫 번째 임시적인 대답을 해도 도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더 많은 고향이 필요하다고. 왜냐하면 움직이는 고향이나 적어도 대체 고향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100~101쪽)


나는 나이 든 장군이 아니다. 나는 민족의 위대함에 대해 꿈꾸지 않으며 내 갖고 앨범에서 군인이나 국가 고위 공직자를 찾지도 않는다. 나는 또한 활쏘기 축제나 민요나 민속 의상 축제에 심한 거부감이 있으며, 독일에서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짐승 같은 지식인이라 불렀던 바로 그 사람이며, 해체적인 경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공부를 한 실향자이기 때문에 고향의 가치를 고백하려 시도하고, 고향과 조국의 날카로운 구분을 거부하며, 결과적으로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결국은 하나인 이 두가지가 없이는 잘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조국이 있는 사람은 말할 것이다.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국가 단위를 구성하는 사회 구성물 속에서 집이 없다는 것은 고향도 없다고 말이다. (118~119쪽)


한쪽 진영에 원한이 계속해서 남아 있고 그것을 통해 다른 진영의 사람들에게 자기불신을 일으킨다면, 오로지 우리 원한의 박차에 찔린 채 독일 민족은 자기 민족 역사의 일부를 시간의 흐름에 맡겨 정상화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156~157쪽)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 품절 상태입니다.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