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비혼은 ‘왜 결혼하지 않느냐’부터 ‘왜 혼자 살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까지 감당해야 한다. 결혼을 했다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아니듯, 홀가분한 싱글이라고 해서 모두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살지는 않는다. 사실 비혼의 삶이 그리 멋지지만은 않다. 정제해서 올리는 SNS 속 사진처럼 늘 근사한 곳에서 외식을 하지도, 금요일 밤이면 클럽에 가서 아직 남은 청춘을 마음껏 소비하듯 자유롭게 살지도 않는다. 이런 일은 어쩌다 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충분히 안정되어 있다면 모를까, 매일의 일상이 SNS처럼 예쁜 화면으로 장식되진 않는다. 보통 비혼의 경제 사정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성인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늘 빠듯하다. 혼자 산다고 해서 돈을 혼자서 ‘다’ 쓴다고 생각했다면 너무 일차원적인 판단이다. 혼자 살면서 부모님을 부양할 수도 있고, 월세나 전세금, 대출금을 혼자 갚아야 해서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고정 지출은 있는 법이며 각자의 사정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 p.23~24
과거의 사진들을 보고난 뒤에야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때와 똑같지 않고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내가 말했다. “우리 이제 어디 가서 ‘하나도 안 변했어’라고 하지 말자. 이거 정말 주책이다.” 친구들은 순순히 동의했다. 우린 변했고 전보다 나이를 먹었다. 결코 20?30대 같지 않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시간은 언제 이렇게 흘렀나. 신체연령 대비 정신연령을 감안하면 아직 다섯 살 정도는 어리게 느껴지는데 말이다. --- p.42
여자가 ‘여러 가지로 아닌’ 남자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때는 언제일까? 내 주변에서도 나이에 발목 잡혀 지지부진한 연애를 끝내지 못하고 ‘을’이 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한번 을이 된 관계에선 상황을 주도하여 결혼까지 가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결혼 준비 단계부터 그 이후의 많은 상황까지 혼자 마음고생하는 여자들도 많이 봤다. 그리고 단지 나이 때문에 성급하게 내린 선택을 후회하는 여자들도.
서른 초중반을 넘긴 여자는 여러 가지로 불안해진다. 한 남자와 연애를 오래 했으면 ‘그 정도 연애했으면 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라는 주변의 말들 때문에 노심초사한다. 반대로 현재 연애를 하고 있지 않으면 ‘지금 연애해서 결혼하고 애 낳아도 노산이다’라는 무례한 말과 태도로 인해 기분이 상한다. 애인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간섭을 받는다. 그러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고, 애도 낳고, 전셋집 꾸미며 신혼생활을 하는 걸 보게 되면 조급증은 더욱 증폭되고 만다. 결국 ‘내 나이가 이래서’라는 말까지 하게 된다. --- p.102
주변에 괜찮은 30대 남자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해도, 최소한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연결을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아무나와 연결하려 하고, 소개팅을 거절하면 ‘재는 여자’ 취급을 하느냔 말이다. 내가 소개팅을 거절할 때면 지인들은 또 말했다. “일단 그냥 만나 보라니까. 인연일지 또 어떻게 아냐?” 아니, 뭘 그렇게 무조건 일단 만나라는 거냐고! 나도 나름대로 노력하려고 했다. 진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남자의 이름과 나이 정도만 알고 ‘좋은 사람일 거야’라는 생각으로 소개팅에 나가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나가 보니 나이나 직업이 내가 들은 것과 달랐던 경우도 있었다. 건너서 전해 들은 정보가 불일치하는 경우였다. 이 정도면 거의 헌팅 아닌가. 그리고 이런 만남을 한 뒤엔 깊은 자괴감이 몰려왔다. 이러려고 황금 같은 주말에 이렇게 꾸미고 나왔나. 나는 누구이며 여긴 어딘가……. --- p.122~123
좋은 상황에서는 나쁜 사람이 거의 없다. 좋은 상황에서도 나쁜 사람이라면 관계는 성립조차 되지 않을 테니까. 중요한 건 상황이 나빠졌을 때 평소 좋았던 사람이 어떤 얼굴을 보여주느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아직도 착각한다. 좋은 상황일 때의 그 모습이 계속 유지될 거라는 안타까운 착각. 만약 지금 인간관계에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이것부터 점검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쁜 상황일 때도 내 편에 서주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저 사람은 상황이 바뀌어도 똑같은 모습일까.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라는 게 아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관계의 민낯에 대해 고심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 p.167
기혼의 경우 출산과 육아를 통해 새로운 인맥이 생기고, 미혼의 경우에도 그 공백을 메워줄 다른 인맥이 생긴다. 관계가 빠진 자리에 새로운 관계들이 생겨나는 법칙이다. 혹은 한동안 소원했던 관계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면서, 줄어든 관계가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관계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가 채워지는 어떤 법칙’ 같은 게 관계에도 적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관계의 중요도가 ‘시간’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관계는 시간보다 ‘의미’에 있다. 긴 시간을 함께하며 추억을 쌓은 것보다 ‘어떤 시간’을 함께 보냈느냐에 더 방점을 두고 싶다. 어떤 관계는 오랜 시간 함께해도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관계는 짧은 시간 속에서 강렬하고 진하게 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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