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6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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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8쪽 | 488g | 145*210*18mm |
ISBN13 | 9788954672863 |
ISBN10 | 8954672868 |
발행일 | 2020년 06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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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8쪽 | 488g | 145*210*18mm |
ISBN13 | 9788954672863 |
ISBN10 | 8954672868 |
1장 불멸의 집 2장 희극배우 3장 무력하고 불행한 4장 새와 물고기 5장 파르티잔들의 극장 6장 당신 이야기 |
소설 《파르티잔 극장》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을 시간적 무대로, 여배우 최현서와 그의 언니인 난향이 함께 꾸려가는 거처를 공간적 무대로 삼아 시작되고 진행된다. 제목이 ‘파르티잔’ 극장이니 빨치산이 나오지 않을 수 없고, 그런고로 해방 공간에서 한국 전쟁의 발발, 그리고 빨치산들의 활동으로 시간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 소설 분량과 비교하자면 미미하다.
“... 엄마는 병자가 확실했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상처들, 마음에 새겨졌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아니고서야 누구도 치유할 수 없고 어쩌면 스스로도 결코 치유할 수 없는 병을 앓는 거였다. 섭리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섭리가 되어버린 상처를 안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우두망찰 이쪽과 저쪽을 바라보며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인 거였다...” (p.27)
소설의 주인공은 여배우의 딸인 희서이다. 최현서는 희서의 엄마이기 위해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그 시대의 여성이자 배우인 이로 살아가기 위해 견뎌야 하는 내용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한 사회적 편견 안에서 그저 조용히 잦아들 수 없는 여성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딸인 희서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고 있지는 않다. 결국 현서는 죽고 희서는 남겨진다.
“... 준은 속으로 저 아이가 바로 그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유서 깊은 어느 가문의 파락호에게 능욕당한 배우, 아무도 원치 않았으나 태어나버린 아이. 미쳐서 정신병동으로 끌려갔다는 엄마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계집아이...” (p.71)
희수와 함께 일인칭의 자리를 번갈아하는 것은 준이다. 최현서와 난향의 집에서 세들어 살던 인력거꾼의 아들인 준은 어린 시절부터 한 집에 사는 희수를 바라본다. 적당한 순간이 오고 홀로 서기 전까지 준은 희수를 바라보고 기록하기 위한 인물로 이용된다. 그의 누이가 죽은 다음에야 보다 독자적인 인물이 되고, 그의 아비가 죽고 난 다음에야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끌려 나가게 된다.
“... 희수는 눈에 보이는 희수보다 큰 사람이었다. 성숙하다거나 어른스럽다거나 지혜롭다거나 한 사람의 품성을 도야하는 방식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들과는 무관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성숙함과 어른스러움과 지혜로움이라 일컬을 수 있는 무언가를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것 같았다.” (p.117)
소설에는 희수와 준을 비롯해 작은 공동체와 같은 거처에 함께 사는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한다. 마술사와 거인을 비롯해 미스터리한 노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한다. 박 선생에서 박소위로 캐릭터를 업그레이드하며 나아가는 인물도 있는데 박정희를 연상시킨다. 나름의 의도이겠으나 재미가 있기보다는 징그럽다. 그러는 사이 희수와 준도 커가고, 둘 사이에는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 같은 관계가 형성된다.
“... 무얼 두려워해? 나 자신을. 왜? 난 영원할 수 없으니까.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영원하고 싶거든. 그들의 입안은 사막처럼 말라갔다. 그들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물고기가 되어 미증유의 슬픔 속을 헤엄치다 돌아왔다.” (p.349)
오랜만에 해방 공간을 무대로 하는 소설을 읽었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를 사놓기는 했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반갑기는 한데 고루하였다. 그 고루함을 무마하기 위하여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두 인물의 사랑 이야기를 배치시켰으나 흠뻑 빠져들기에는 이야기가 부족하였거나 평이하였다.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문장들로 이를 넘어가고자 하였지만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손홍규 / 파르티잔 극장 / 문학동네 / 367쪽 / 2020 (2020)
책 소개 내용과는 전혀 딴판인 내용을 보고 기만도 이정도면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남녀간의 사랑을 엮어가는 듯하나 사실은 구닥다리같은 이념의 테두리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는 관념의 유령이다.
땀과 눈물이 소홀히 취급받지 않는 나라,
사람이 사람을 짐승으로 취급하지 않는...나라,
인민이 주인인 나라, 모두가 인민인 나라.(351)
이른바 인민 민주주의를 위해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죽는 영웅들의 모습이 작가의 이상인가? 지금 국민을 개, 돼지로 취급하다 못해 가재와 붕어로까지 비하하는 정신 이상자를 법무무 장관으로 임명하는 권력은 무엇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인가?
'가난과 몰인간성과 억압과 착취(319)'를 부수고자 했던 남로당의 흔적을 미화한 것은 남부군이나 태백산맥의 아류에 불과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피흘려 이만큼 국가가 형성된 지금에서도 이런 잡문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는 불순함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다면 적어도 중도 입장에서 성찰과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러시아 혁명사(360)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 사상의 오류를 사랑 놀음으로 어설프게 포장한 것도 어이없고, 합법적인 정부에 대한 증오를 교묘하게 부채질하는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친일파 논쟁으로 시류에 영합하고 권력에 아부하려는 모습은 참기 어려울 만큼 거북하다.
이제는 개인이나 지역의 편향된 관점을 벗어나 좀 더 성숙하고 미래 지향적인 자세로 균형감을 갖춘 역사 인식을 보편화시켜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남침은 남로당의 동조와 지원 보장에 힘입어 이루어졌다. 본질적인 전쟁의 비극과 발단은 어물쩍 넘어가고 그 이후의 과정만 미시적으로 부각시켜 감정선을 자극하는 포석은 역사 앞에 또다른 거짓말을 창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