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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선정 이유
1부 대상 수상작 그리고 작가 조경란 대상 수상작 / 일러두기 수상 소감 / 오늘은 여기까지만 문학적 자서전 / 살아가기 작품론 / 소설의 안과 밖에서 퍼져나가는 ‘일러두기’의 울림(손정수) 작가론 / 끝까지 사랑하는 일(정한아) 자선 대표작 / 검은 개 흰 말 2부 우수작 김기태 / 팍스 아토미카 박민정 / 전교생의 사랑 박솔뫼 / 투 오브 어스 성혜령 / 간병인 최미래 /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3부 선정 경위와 심사평 심사 및 선정 경위 심사평 - 예심 총평 노태훈, 양윤의, 이경재 · 워즈-와이드-웹 - 본심 심사평 구효서 · 미주알고주알 구구절절이 없는 일러두기 김종욱 · 가까스로 존재하는 목소리들 윤대녕 · 존재의 존엄성, 그리고 존엄할 수 있다는 것 전경린 · 자기 삶의 주도권을 찾으려는 핵개인들의 고투 권영민 · ‘일러두기’의 서사적 미학 이상문학상의 취지와 선정 규정 |
趙京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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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은 소리 없이 웃었다. 소리 없이 움직이고 소리 없이 먹고 마시고 심지어 노래할 때도 미용은 그래 보였다. 그래서 다른 가게 사장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의식하고 있지 않다간 미용의 존재를 까맣게 잊기 십상이었다.
--- p.14 「일러두기」중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미용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청소년 시절에 미용은 이런 생각을 했다. 외로운 사람은 잠든 척하거나 살아 있는 척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중년에 다다른 무렵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외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죽이거나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고. --- pp.17~18 「일러두기」중에서 미용이 USB를 대학사에 잊어버리고 간 건 정말 실수였을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뒤늦게 들었다. 보기보다 용의주도하게 미용이 그 대상을 자신으로 선택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과 함께. --- p.39 「일러두기」중에서 의사와 상관없이 늘 복종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고치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 중년이 되어 미용은 마음먹었다. 자기 자신을 죽이기로. 아니 자기 자신만 죽이기로. --- p.40 「일러두기」중에서 좋은 책을 읽다가도, 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더 멀리 걷고 싶은 날에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읽자, 여기까지만 보자, 여기까지만 걷자,라고 말합니다. 어쩌다 글이 잘 써지는 날에도 내일을 떠올리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며 중단합니다. (…) 꾸준히 게으르고 굼뜨고 느리게 살고 있습니다. 소설도 그렇게 쓰고 있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럴 것입니다. --- p.53 「수상 소감」중에서 등단한 지 이십팔 년. 이런 게 소설이지 하는 방법론, 전개론, 글쓰기의 익숙함은 생기지 않는다. (…) 이야기는 매번 다른 형식과 다른 진술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 소설이라는 집에 이야기를 맞추는 게 아니라, 이야기마다 새 집을 지어야 한다. 시작하고 마치고 수정하고 다시 시작하고 마치고 수정한다. 그걸 반복할 뿐이다. --- pp.61-62 「문학적 자서전」중에서 ‘일러두기’는 텍스트의 내부를 지시하는 동시에 그 외부를 향해 열린 것이기도 하다. 소설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관점과 의지를 투영하면서 글쓰기를 통해 자기 안에 뿌리 깊게 남아 있던 상처를 밖으로 내보낸 미용의 이야기는 재서를 넘어 독자에게도 흘러 들어와 위안과 격려를 전하는 한편, 소설의 새로운 존재 방식에 대한 사유를 일깨우고 있다. --- p.83 「작품론」중에서 조경란 작가는 모두가 아는 대로 아름답다. 한없이 검은 드레스, 칼로 벤 듯한 단발머리, 날렵한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성처럼 우아하다. 같은 비유를 그녀의 문장에도 똑같이 가져다 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으로도 깨지지 않는, 단단하고 투명한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영원히 그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 p.90 「작가론」중에서 |
★ 대상 수상작 「일러두기」중에서
이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대도시 변두리 동네에서 아버지로부터 떠맡다시피 물려받은 복삿집을 운영하는 재서, 그리고 길 건너편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미용. 나이대도 비슷하고 자주 마주치는 사이이지만, 재서에게 미용은 ‘모른다고도 잘 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일 뿐이다. 토박이가 대부분인 동네 사람들 또한 그 나이에 남편도 자식도 없고 혼자 산다는 이유로 미용을 여전히 석연찮은 여자로 여긴다. 자신의 감정을 한사코 숨기는 데 가진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듯한 사람. 의식하지 않으면 그 존재를 까맣게 잊기 십상인 사람. 그런데 어느 날 미용이 프린트하러 왔다가 까먹고 놓고 간 USB 속 글을 읽고, 재서는 그제야 미용이란 존재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다. 미용은 이렇게 썼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사람이었다,라고. 미성년인 열여덟 살에 첫아이를 낳은 엄마의 넷째로 태어나 모든 불행의 원인으로 지목된 탓에 생존을 위해 눈에 띄지 않는, 공손한 아이가 되어 살아야 했던 미용의 과거가 그 글들에 담겨 있었다. 재서가 팔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미용이 찾아와 복삿집 일을 거들면서 재서는 미용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재서는 그녀가 또 실수로 USB를 놓고 가길 은연중에 바란다. 그러면서 왜 자신이 그녀의 글을 읽고 싶어 하는지를 깨닫는다. 결국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무료한 삶을 살아갈 터인 그 역시 그녀와 다르지 않은 인생이라는 것을.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재서는 미용이 그때 USB를 가게에 놔두고 갔던 것은 어쩌면 실수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을 찾고 있었고, 자신이 그 대상으로 선택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누군가를 찾아내기 위해 검은색 복면을 구입했다는 미용이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사라진다. 재서는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서 결국 산비탈에 있는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미용은 다행히 집에 있었다. 가까이에서 대면하게 된 두 사람은 더욱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그동안 글을 썼다면서 재서에게 그 글을 읽어준다. 이 글을 통해 그녀가 찾아내고자 한 인물이 고등학교 시절 교련 시간에 자신을 학대했던 교련 선생님이었음이 밝혀진다. 교련 선생님을 만나 왜 그때 자기에게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용은 자신이 정말로 쓰고 싶었던 것은 교련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교련 시간에 창밖으로 내다보았던 연연한 분홍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복사나무에 대해 얘기한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던 인생의 순간에 대해. 미용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재서는 책을 읽을 때 주의 사항을 미리 알려주는 ‘일러두기’에 대해 일러준다. 사람들 사이에도 ‘일러두기’라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미용은 검은색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대신에 그 아랫단을 접어 벙거지처럼 머리에 쓴다. 그녀는 글을 통해 자기 내면 깊이 들어박혀 있던 상처투성이의 어린 미용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일러두기」는 가만한 게 좋다. 독자로 하여금 걸음을 서두르지 않게 한다. 가만히 무언가에 다가서게 한다. 언제라도 주춤 한 발 물러설 채비가 돼 있어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미주알고주알 구구절절이 없는 일러두기여서, 그렇게 가만한 문장의 걸음걸이로 서로에게 다가서는 우리는 어느새 물로 씻은 듯 개운해지는 재서와 미용, 너와 나가 된다. - 구효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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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속도에서 비켜나 있는 사람들, 혹은 가까스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의 소설 속에서 오롯하다. 문명의 굉음 속에서 들리지 않던 목소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실체가 되었다. 귓결에 스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조용히 듣는 것이 세상을 함께 건너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덕목이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 김종욱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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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진한 울림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간곡함이 북소리처럼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불러들인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존재의 존엄성’이란 말을 새삼 곱씹는 경험을 했다. 조경란 특유의 섬세하고 구체적인 서술, 인간을 바라보는 부드럽고 깊은 시선, 세련된 방식의 드러내기와 감추기가 그 존엄함을 드러내는 미학적 요소들일 터이다. 그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존엄의 태도 말이다. - 윤대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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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없고, 전망도 없고, 볼품조차 없는 중년 남녀가 피폐한 삶 속에서도 반짝이는 작은 실마리들을 잡고 기신기신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사랑이 아니라 사람을 오롯하게 담아내 예상치 못한 감동을 자아냈다. 내게는 또한 이 소설이, 글쓰기에 대한 지극한 긍정이자 외롭게 글을 쓰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기도로 읽혔다. - 전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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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책의 ‘일러두기’를 펼쳐 보듯 조심스럽게 접근한다면 서로를 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조경란 작가의 ‘일러두기’ 방법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화법이다. 삭막한 현실에서 단절된 인간관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일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소설의 참주제임을 읽어내는 일은 이제 독자의 몫이 된다. - 권영민 (문학평론가, 월간 『문학사상』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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