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등 맞은편 건물 1층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걸음을 옮기다가 그는 불이 켜진 건물의 유리문 안쪽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입구 처마에 은은한 불빛을 내뿜는 전등이 켜져 있고, 안쪽에도 엷은 조명이 밝혀져 있었다. 유리문 안쪽에 서 있는 가림막에 ‘영달동 미술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여기에 화랑이 있었던가?’
--- pp.7~8, 「프롤로그ㆍ영달동 미술관」중에서
바다를 향해 나 있는 창문은 지난 몇 개월째 굳게 닫혀 있었다. 더 이상 옥탑방은 도현이 사랑했던 그때의 공간이 아니었다. 쳇바퀴처럼 이어지는 의미 없는 시간을 지속하기 위해 잠시 쉬어 가는 곳일 뿐이었다. 집이 팔리면 미련 없이 이 동네를 떠날 생각이었다.
--- p.16, 「에피소드 1ㆍ아를의 침실 창문을 열면 햇살이 쏟아질 거야」중에서
“불이 켜져 있고 문이 열려 있기에 혹시 문단속을 안 하셨나 걱정이 되어 들어왔습니다.”
도현이 당황해서 변명하자, 남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제든 찾아 주시라고 일부러 문을 잠그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편하게 찾아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남자는 도현에게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편하게 그림을 감상할 마음은 아니었지만, 남자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도현은 의자에 앉았다.
--- p.21, 「에피소드 1ㆍ아를의 침실 창문을 열면 햇살이 쏟아질 거야」중에서
하지만 무명 화가 고흐의 제안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고흐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테오는 자신이 그림을 팔아 주는 화가들에게 형과 함께해 줄 것을 권유했다. 이에 응한 화가가 고갱이었다. 고흐의 이상향인 일본과 같은 곳이 고갱에게도 있었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타이티가 고갱의 유토피아였다. 그는 ‘형과 함께 아를에서 작업을 한다면, 매달 생활비를 보내 줄 뿐만 아니라 우선적으로 작품을 팔아 주겠다’는 테오의 제안을 수락하고 아를로 향했다. 그러면서 친구인 에밀 베르나르에게 ‘네덜란드 형제의 모략에 응하지만 5,000프랑만 모으면 곧장 타이티로 떠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 p.26, 「에피소드 1ㆍ아를의 침실 창문을 열면 햇살이 쏟아질 거야」중에서
가끔 어머니의 이젤에는 사람 얼굴 형체의 스케치가 그려진 캔버스가 놓여 있었다. 도현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려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번번이 그 그림은 실패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절망했으며, 도현은 영영 아버지 얼굴을 접할 수가 없었다.
--- p.32, 「에피소드 1ㆍ아를의 침실 창문을 열면 햇살이 쏟아질 거야」중에서
애초에 고흐는 이 속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삶을 불행했다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만큼은 고흐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이 고통으로 점철되었다는 평가는 겉으로 두드러진 일생의 몇 가지 단면만을 부각시킨 오해일지도 모른다. 이상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고흐의 가공되지 않은 열정과 지난한 삶은 자꾸만 세상의 질서에 길들여져 가는 이들의 무뎌진 감각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오래토록 기억될 만했다.
--- p.45, 「에피소드 1ㆍ아를의 침실 창문을 열면 햇살이 쏟아질 거야」중에서
“지금은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생전의 베르메르는 전업 화가가 아니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여관을 운영했어요. 화가 조합(길드)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다른 화가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삼십여 편의 작품만을 남긴 것을 보면, 그림에 전념할 만큼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초기에 그린 종교화 몇 점을 제외하고는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장면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회화계의 분위기도 한몫했겠지만, 아마도 베르메르가 다른 사람들의 주문을 받아서 초상화를 그리거나 풍경이 뛰어난 곳을 찾아다닐 만한 형편이 아니어서 그랬을 겁니다.”
--- pp.75~77, 「에피소드 2ㆍ작은 거리의 유쾌한 하루」중에서
〈농가의 결혼식〉에서 딱히 중심인물이라고 내세울 만한 존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피로연에 참석한 모두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주인공으로 보였다. 이미 피로연장이 사람들로 꽉 차 있는데도 입구 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잔치에 참석하려고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문짝을 떼어 내 급하게 만든 들것으로 음식을 나르고 빈 통에 맥주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남성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제사 음식에 여자가 손을 대면 부정이 탄다는 악습이 있었는데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당시의 여느 지역과 달리 플랑드르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화가가 여성이 대접받고 남성이 봉사하는 평화로운 세계를 꿈꾸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 pp.83~84, 「에피소드 2ㆍ작은 거리의 유쾌한 하루」중에서
정현이 플래시를 끄고 도현을 향해 돌아섰다.
“여도현, 나는 이 동네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 누가 사는지 훤해. 네가 말하는 미술관은 적어도 내가 주민 센터에서 일한 지난 사 년 동안은 없었어.”
도현은 갑자기 딴 세상에 있는 듯했다. 이 거리도, 바로 앞에 서 있는 정현도, 깜빡거리는 보안등도, 어두운 밤하늘도, 낮 동안의 김장 담그기도 모든 것이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 pp.102~103, 「에피소드 2ㆍ작은 거리의 유쾌한 하루」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