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많은 전문가들이 폭넓게 규정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이하 DSM) 진단 기준을 보지 않고, 환자와의 소통과 환자가 처한 환경에 대한 조사를 최소화한 채 어려움을 호소한 기록만 가지고 진단을 내린다. 정신 건강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역학 연구가 현재까지 밝혀낸 바는,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사례 가운데 겨우 절반만이 최소한의 진단 기준을 충족시켰다는 점이다. 이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의사가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도 전에 혹은 의사의 진단과 반대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진단을 내리며 의학 용어를 남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심각한 정신질환이 아닌 누구나 어쩌다 겪게 되는 정신적 고통이나 힘든 상황, 행동상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바로 그들이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었으며, 정신과적 진단과 처방을 받는 대표적인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 내용은 당연하다는 듯이 정신장애의 범주에는 들지 못했다. DSM에 따르면, 일반적인 스트레스 요인이나 상실, 사회적 일탈 행위,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갈등에 대한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은 정신장애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경험, 즉 ‘일상의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p.22
전반적으로 심리치료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감당하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을 강조했다.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계를 인정하거나 스스로를 돌보는 데 장애가 되거나 골칫거리가 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록 그들 중 일부는 변화를 위해서는 많은 개인적 노력과 올바른 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으나 고통을 자기들 탓으로 여기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방향을 바꾸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 반면에 의료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모두 약을 복용했다. 여기에 속하는 이들은 대부분 심리치료나 상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리사와 달리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서 이런 경험들을 많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긍정적이었던 약물복용 경험을 주로 언급했다. 그들은 약을 복용한 덕분에 예를 들어 감정 기복이나 불안감이 덜하고, 자신감과 활기 그리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등 전반적으로 나아졌다고 했다. 결국 차이를 보였던 것은 약에 대한 태도에서였다. 특히 처음부터 약의 도움을 받기로 했던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 반면, 다른 사람들은 약물복용에 대해 양가적 태도를 취했다.
--- pp.68-69
사회통제에 대한 이런 문제의식은 1970년대 페미니즘의 주요 주제이기도 했다. 1963년에 출간된 『여성성의 신화』에서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예속화를 당연시했던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을 맹비난했다. 그 책이 나온 이후 케이트 밀릿의 『성의 정치학』(1970년), 필리스 체슬러의 베스트셀러 『여성과 광기』(1972년)를 필두로 프로이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정신의학에 대한 과학적 요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1970년대의 저명한 학자와 대중 저술가들은 정신분석을 공격하기도 했고, 1960년대에 대유행을 했으나 리처드 로젠의 유명한 책 제목을 따서 ‘사이코배블(psycho-babble)’로 전락한, 너도나도 다 하던 심리치료를 풍자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피터 메더워는 1975년에 발행된 《뉴욕리뷰오브북스》에서 교조적인 정신분석 이론을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지적 사기”라고 규정했다.
--- pp.141-142
일부는 소비자 직접광고에 교육적 이점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런 광고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약을 쓰면 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일부는 광고에 비판적이기도 했다. 광고로 인해 단순히 힘든 것과 정신질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광고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마거릿은 “예쁘고 멋진 사람을 등장시켜 그의 삶이 이 약 하나로 완전히 제자리를 잡았다”는 식으로 광고한다고 불평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광고가 부작용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제약 광고를 개인적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광고가 그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조지아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보기엔, 자신들의 증상이 광고에서 말하는 증상과 똑같았다. 광고에서 제시한 우울증 체크리스트를 보니 자신들의 감정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겪고 있는 바가 ‘저기 저렇게 쓰여 있었던’ 것이다.
--- p.187
사실 어떤 참가자도 문제를 도덕적 결함이냐 생물학적 결함이냐 하는 제로섬 이분법으로 바라보진 않았다. 특히 마음을 바꿨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두드러진 생물학에 대한 대안적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도덕적 잘못이 아닌 정신사회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간주했다. 제대로 대응을 못 했거나 곤경을 이겨내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의 원인을 지목하는 데 있어선 그것을 의도적 행동에서 찾거나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데서 찾지는 않았다. 규범적 기준이나 이상을 충족시킬 능력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곤경에 빠진 것이라 보지 않았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주목한 바에 따르면, “규범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선한 의지)이 있는 것으론 부족하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규범을 따르기 위한 제어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참가자들로선 그들의 고통이 선택 혹은 의도적 일탈로 인한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은 곤경을 단순히 말해 ‘도덕적 잘못’이라거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그들이 후회를 하거나 용서를 구해야 하는 어떤 일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pp.235-236
한편으론 각 개인에게는 심오한 ‘참된 자아’가 존재한다. 이 가장 내면적인. 자아는 우리의 욕망, 도덕적 감정, 성향 그리고 다른 여러 속성의 원천이며, 그것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참된 길로 인도하는 중요한 지침이다. 안으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우리는 자기 초월을 모색한다. 우리보다 위대하고 우리를 넘어선 그 어딘가, 즉 자연, 우주, 존재의 질서와 같은 것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론 사회질서가 있다. 바깥세상은 사회의 ‘억지와 관습 그리고 가면과 위선’이 지배하고 왜곡된 거짓 자아의 영역이다. 그것은 그저 피상적이고 가공된 것이며 우리와 우리의 진정한 자아 사이에 놓여 있다. 이 장벽을 돌파한다는 것은 우리 안으로 눈을 돌리고 우리의 가장 깊은 감정과 만나며 그곳에 숨어있는 진실과 독창성에 심미적 표현을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는 것은 집중적 자기 성찰과 솔직한 자기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찰스 귀뇽의 말을 빌자면, 그것은 ‘참된 자기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것은 우리가 이런 자기 지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에서 우리의 참된 자아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 pp.315-316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유전학과 신경과학의 여러 책을 보면, 그것들은 마음과 영혼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활발한 논쟁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그런 책들은 마음의 문제를 뇌의 문제로 환원하고 인간적 특질, 가령 이성, 사유, 도덕 관념과 같은 것을 좀 더 근본적인 자연의 메커니즘과 과정, 가령 유전자, 호르몬, 뉴런의 부수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낡은 심신 이론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 책들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 “인류에겐 전통적으로 받아들였던 마음, 영혼, 자유의지의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도, 여분의 역량도 없다.” 의식, 의도성 그리고 우리의 주관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유사한 특징은 사실상 뇌에 의해 구성되어 세상에 투사된 뇌의 기능일 뿐이다. (…)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상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경우 의식이나 의지적 통제 밖에서 작동하는 반사적 뇌 작용의 통제를 받는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우리가 자기 성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반성하고 해석하고 이해할 수 없는 힘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이방인이 된다.
--- pp.378-380
우리 자신에 대한 보다 더 풍부하고 정확한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것엔 시간적 요소(우리의 기억과 역사)와 사회적 관행(오늘날의 우리가 있도록 만들어준) 그리고 대화적 관계(내적 대화를 통한 우리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와 전통과의 관계)가 수반된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 퇴고는 진행형의 윤리적 활동이며, 자신을 명료하게 보고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지를 온전히 파악하며, 또한 우리가 살아가며 의지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런 식의 퇴고는 사회성과 다른 이들과의 연대성을 키워나갈 기반을 제공해줄 수 있다. 좀 더 풍부하고 정확한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것엔 고군분투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도움이 수반되고 우리의 과거 사실에 대한 해석을 돌아보는 작업이 수반된다. 거기엔 우리의 행위와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일이 요구된다. 우리의 감정,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수반되는 사회적 감정(부끄러움, 회한, 자랑스러움, 감탄, 부러움, 질투, 자기비하, 실망, 죄책감 등)은 자기 인식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감정들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상관관계에 있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주관적 준법 의무와 자기 가치를 아우른다.
--- p.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