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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비교 통사

한중일 비교 통사

: 역사상의 재정립이 필요한 때

리뷰 총점9.3 리뷰 3건 | 판매지수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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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404쪽 | 572g | 153*224*30mm
ISBN13 9788994606620
ISBN10 8994606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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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을 소개하며 조선시대 이해를 넓힌 미야지마 히로시의 근작. 이번 책에서는 한중일과 베트남, 류큐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전역으로 시야를 넓혔다. 일국사 관점에서 벗어나 한중일 삼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낸다. - 손민규 역사 MD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서문

1부_통사: 전통의 성숙과 새로운 시대로의 항해
(14~19세기 전반)


1장 14세기 동아시아의 정치 변동

왕조교체, 정권교체의 파도
원에서 명으로|강남의 경제력과 북경 천도|조선 왕조와 무로마치 막부
주자학 이념에 기반한 국가체제
주자학의 새로움|과거 관료제와 사대부|한국과 일본의 주자학 수용과 비수용
동아시아 국제 교역 체제
조공 체제의 재확립|정화의 남해 원정|북방 지역의 동정
류큐 왕국의 성립과 번영

2장 생산·생활 혁명

집약도작의 보급
동아시아 도작의 특징|중국의 집약도작 확립 과정|한국과 일본의 집약도작의 길
생활혁명과 문화교류의 양상
옷감 혁명|전통적 생활양식의 성립|문화교류의 여러 양상

3장 16세기 유동하는 동아시아

유럽 세력의 등장과 은의 비등
조선과 일본의 은|포르투갈의 동아시아 무역 참여|아메리카 대륙의 은과 스페인
동아시아 사회의 유동화
16세기 명의 화폐경제와 양명학|조선 사회의 계층화 현상|일본의 센고쿠 시대
도요토미 정권의 조선 침략과 동아시아
왜구와 도요토미 정권|임진·정유왜란=분로쿠·게이초의 역=만력조선역
동아시아의 구조 변동

4장 17세기 해금의 시대로

화이변태
만주족의 대두|명·청 교체와 동아시아의 변동|화기와 동아시아 대변동
화이변태
동아시아 삼국의 국가체제
국가 틀의 강화|국경의 획정|다민족 국가로서의 중국
경제적 아우타르키
청의 무역 체제|청의 조공 체제|조일 국교 회복과 조선통신사
도쿠가와 정권의 네 개의 창구|자급자족적 경제 체제|문화적 교류의 심화

5장 전통사회의 성숙

사대부, 양반, 무사
사대부와 양반|도쿠가와 일본의 무사|동아시아 전통사회의 특질
종족, 문중, 이에
부계 혈연 원리의 강화|가족·친족 결합의 확산
도시와 농촌
인구 동태|촌락의 변모|도시의 발전|화폐제도와 화폐경제의 침투
새로운 사상의 영위와 문화 기반의 확대
주자학의 지배와 그에 대한 비판|천주교와 서학의 영향
새로운 사상 조류와 문제점|문화기반의 확대
류큐와 베트남의 ‘중국화’
류큐와 베트남의 위치|일본 지배하의 류큐와 ‘중국화’|베트남의 동아시아화?

6장 변화의 징조와 근대로의 전망

사회 불안의 증대와 민중 반란
백련교의 반란과 지방 세력|천변지이와 민중 반란
살며시 다가오는 서양
근대로의 전망

2부_주제사: 동아시아의 새로운 이해

1장 동아시아 연구사

동아시아 연구의 특수한 위치
한국 연구 - 내재적 발전론의 함정
일본 연구 - 이데올로기로서의 일본 봉건제론
중국 연구 - 전제국가론

2장 정치 이노베이션

중국의 정치 이노베이션: 집권적 국가체제와 주자학 이데올로기
정치 이노베이션을 파악하는 틀|과거제도의 확립과 집권적 국가체제
주자학의 탄생과 명대 국가교학의 확립
한국과 일본의 정치 이노베이션
역사적 전개|한국의 정치 이노베이션|중국과 조선의 과거제도 비교
중국의 서리와 조선의 향리|일본의 막번체제와 이노베이션의 한계
조선과 일본의 유교 수용 비교 : 『소학』 수용을 중심으로

3장 동아시아 족보 비교

신분제와 가족?친족 조직의 결절점, 족보
중국에서의 족보 편찬과 그 의미|동아시아 각 지역의 족보|조선의 족보

4장 동아시아 경제혁명과 집약도작

동아시아 집약도작의 위치
농업생산력의 파악 방법|현대 세계의 농업과 동아시아의 위치|도작의 여러 형태
중국의 집약도작 확립
화북의 전작에서 강남의 도작으로|화북 건지농법의 유산|명대 이후의 델타 개발
조선·일본으로의 집약도작 전파
조선의 전작형 도작의 전통과 극복|일본의 대개발과 도작사회화
전작에 대한 평가
동아시아의 농서
동아시아 농서의 원천으로서 중국 농서|관찬 농서 중심의 한국 농서
농서의 후발 주자 일본

5장 한반도의 도작 전개

15세기의 도작법과 『농사직설』
도작 전개의 역사 연구와 그 현황|15세기의 수전과 한전 비율
조선 최고의 농서, 『농사직설』|직파법 주체의 도작|건경법와 묘종법
『농가월령』의 도작법
고상안과 『농가월령』의 무대|묘종법의 위험 회피책|시비 기술의 발전
묘종법의 보급-17세기 이후
『농가월령』 도작법의 전국화|『산림경제』와 묘종법의 전국 확산
묘종법의 우월함과 ‘번답’ 현상
근대로의 전망: 건전직파법의 재평가

6장 소농사회의 형성과 국가의 토지 파악 방식의 변화

국가의 토지 파악 전통
한국의 토지 파악 방식의 변화
신라·고려 시대의 토지 파악|조선 전기 국가의 토지 파악|전환기로서 16세기
17세기 양전 방식의 변화|특권적 토지 소유의 해체
중국과 일본의 토지 파악 방식의 변화
중국의 토지 파악 방식|일본의 토지 파악 방식|결부·세무·석고
국가 토지 파악의 새로운 단계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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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는 의衣의 변화를 비롯해 식食과 주住라는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측면에서도 동아시아의 전통적 생활양식이 서서히 형성, 확립되었다. 먼저 주住에 대해 살펴보면, 사회 상층부의 주거와는 별도로 일반 서민의 주거는 수혈식竪穴式 주거가 가장 보통의 형태였다. 그러나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경우 12, 13세기 무렵부터 일반 서민의 주거에도 기둥을 사용한 주거 형태가 보급되었다. 동아시아의 주住 생활에서 흥미로운 것 중에 하나는 앉는 방식의 문제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래 바닥에 앉는 가부좌跏趺坐가 행해지고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남북조 시대부터 의자좌椅子座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북방계 유목민족의 영향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의자좌의 습관이 처음에는 사회 상층부에서 시작되어 송대에는 도시의 일반 서민에까지 보급되었다. 이후 의자에 앉는 스타일이 정착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에 비해 한반도와 일본에서는 고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지배계층에는 의자좌가 수용되었으나 그것이 서민들에게까지 보급되지는 못하였고, 더욱이 지배층도 가부좌로 회귀하는 과정을 거쳤다. 단 한국의 경우는 왕궁이나 관아에서는 의자좌가 유지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전면적으로 가부좌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바닥에 앉을지 또는 의자에 앉을지의 차이는 단지 앉는 방식의 차이만이 아니라 가구의 차이(일반적으로 의자좌 쪽이 많은 가구를 필요로 함) 등과도 관련되어 있고, 나아가 체형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한반도의 전통적 주거 문화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온돌 난방은 당초 서민의 주거에서 행해지던 것이 점차 사회 상층부로 보급된 것이다.
--- p.54~55

결국 이 전쟁은 도요토미군의 완전한 패배로 끝났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모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전쟁은 왜 일어났던 것인가. 전쟁의 원인에 관해서는 히데요시의 개인적 성격에 무게를 두는 설,센고쿠 시대가 끝나며 정복해야 할 대상을 잃은 무사들의 영토 확장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해외 침략을 감행했다는 설, 혹은 무역의 문제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명의 조공무역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 조선과 명의 정복을 시도했다는 설 등의 다양한 학설이 있다. 개중에는 일본 국내의 평화(천하총무사天下?無事)를 위해 해외 침략을 단행했다는,―즉 평화를 위한 전쟁이었다는―흡사 미국의 이라크 침략 논리와도 통할 만한 발상이 학문이라는 옷을 걸치고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모두 매우 단기적인 관점에 선 것으로 도요토미 정권에 의한 통일 수립이라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 거듭 말하면 일본에서 무사정권의 존재 이유라는 가장 기저에 놓인 문제를 도외시한 진단에 지나지 않는다. 무사의 등장을 일본의 중세=봉건제의 개시로 보고, 그것을 동아시아에서 일본사의 선진성으로 파악하는 전통적 발상이야말로 이러한 상황을 낳은 원인으로 보이는데, 바로 이런 발상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 p.75~76

동아시아 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은 모두 스스로를 ‘사士’로서 지칭했다. ‘사士’라는 글자는 ‘사仕’와 통하며, 그것은 군주를 섬기는 것을 직무로 한다. 즉 사대부, 양반, 무사 모두 어디까지나 군주라는 존재를 전제하고 있으며, 군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들의 이와 같은 특징은 유럽의 귀족·영주와 비교해 보면 잘 이해된다. 유럽의 귀족·영주는 기본적으로는 군주와 대등한 존재로 이른바 절대주의 시대까지도 강력한 독자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권력이 부정되는 것은 이른바 시민혁명에 의해서인데, 동아시아의 지배층은 유럽의 지배층과 비교하면 독자적인 권력 기반을 갖지 않거나(사대부나 양반의 경우), 혹은 약한 권력 기반밖에 갖지 못하는(무사의 경우) 존재였다.

유럽의 경우 군주 위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관념이 강했는데, 이 점도 교회의 존재와 더불어 군주의 권력을 제약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군주가 곧 천자天子 또는 천天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점에서도 군주에 대한 제약이 결여되어 있었다. 사대부나 양반은 때때로 대토지 소유자이기도 했으나 그것은 결코 그들의 영토가 아니었고, 토지 소유의 면에서 다른 계층과 구별되는 어떠한 특권도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일본의 무사도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토를 갖지 못했고, 영토를 가진 다이묘라고 해도 영토와의 관계는 취약했다.

즉 영주는 바뀔 수 있는 존재인 데 반해, 토지와 농민은 ‘공의公儀로부터 위탁받은 것’이라는 의식이 강했던 것이다. 무사 중에 매우 소수에 불과했던, 구체적으로는 ‘구니國를 소유한 다이묘’로 일컬어진 자들은 도쿠가와씨와 대등한 지위의 계승자였으나(그리고 이로부터 메이지유신의 중심 세력이 나왔는데), 이들에게 천황과 대등한 존재라는 의식은 전혀 없었다. 더욱이 ‘구니를 소유한 다이묘’ 이외의 다이묘의 경우는 애당초 도쿠가와씨와 대등하다는 의식이 희박했다
--- p.10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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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사를 넘어선 역사읽기, 중·일 이질론과 한국사의 전략적 위치

현재 동아시아 각국에 공통되는 ‘국사’라는 강고한 틀이 있다. 곧 태고 이래로 중국사, 한국사, 일본사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처럼 통사로 서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동아시아를 총체로서 파악하는 역사연구가 부진했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중·일 이질론’이다. 이는 봉건제론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탈아론에서 기인한 것인데 저자는 일본 봉건제론이 러일 전쟁기에 나온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한국학계의 이른바 ‘내재적발전론’이 내재적 요인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한국사의 전개를 동아시아 세계와의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련을 중시하는 것 자체를 타율성론이나 정체론과 동일시하는 풍조가 강했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러한 국수화, 쇄국화 경향이 그 배경에 서구의 발전모델을 따르는 데 있다며 이제는 서구모델과 일국사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상의 정립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습관이 오래되면 마침내 천성이 된다(習與性成)’고 하듯이 50여년 한국사 연구를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사의 특징을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토로하는 미야지마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양자의 비교에서는 이질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경우에도 이 둘의 중간에 한국을 놓고 보면 양자가 그 정도로 떨어져 있지는 않은 현상들이(예를 들어 신분제, 마을의 양태 등) 많은 것처럼 한국사 연구는 한중일의 이질론을 비판할 때 전략적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중일 비교 통사』는 역사연구와 서술에서 비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중일의 정치 이노베이션,
과거관료제와 사대부, 주자학의 탄생이 불가분으로 연결된 정치 혁신


『한중일 비교 통사』는 처음으로 동아시아 세계를 일체로 파악한 독보적인 역사책이다. 14세기 몽골제국의 붕괴와 17세기의 명·청 교체라는 동아시아 규모의 지각변화에 대해 동아시아 각국이 어떻게 응전하는지 정치변동에서부터 사회, 문화나 경제의 장기적 추세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우선 과거관료제와 사대부, 주자학의 탄생 등 이 세 가지가 불가분적으로 연결된 정치 혁신은 유례가 없는 획기였다. 송대에 형성되기 시작한 중국(유교)모델이 명대에 확립되었다는 장기간의 경과를 더듬었는데, 이와 같이 긴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중국 사회의 선진성 때문으로 본받을 만한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정치 부문의 변화를 ‘정치 이노베이션’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는데 이는 경제와 사회와 깊이 관계되면서도 그것과 독립된 과정이며, 게다가 그 정치체제는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는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주희와 주자학을 다시 보자고 한다. 인간의 본래적인 평등성을 전제로 하면서 학습의 차이에 의해 인간을 차별화하고 사회질서를 잡으려는 주자학은 세계사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가장 선진적인 이론 체계라며, 종래 부정적으로 평가해왔던 역사적 경험을 재평가하자고 한다. 또한 주희에 대한 폄하는 오늘날 동아시아 사회가 얼마나 전통을 깎아내리고 있는지, 또한 유럽중심주의가 얼마나 많은 해를 끼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고 역설한다. 유교모델과 관련하여 미야지마 교수는 최근 ‘유교자본주의’와 이에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유교사회주의’ 모두 학문적 엄밀함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유교가 존재했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식의 명제는 막스 베버의 저명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필시 논증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반증도 불가능한 명제라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이노베이션은 조선왕조의 성립을 계기로 본격화되는데 중국모델을 수용하면서도 한국만의 독자적 양상을 띠고 전개된다. 중국과 한국의 차이점은 무엇보다 중국이 당·송 교체기에 구사회질서가 완전히 와해되었다면 한국의 경우 고려-조선왕조 교체에도 불구하고 구사회질서가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왕권과 신권의 문제에 주목한다. 왕권과 재상권의 대립을 축으로 한 양극 구조에 사림이라는 또 하나의 정치세력을 더함으로써 보다 안정된 정치구조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 즉 신권이 재상권과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낭관권으로 분리됨으로써 왕권과 신권의 균형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16세기에 형성된 조선의 정치체제는 이후 200년에 걸쳐 유지되는데, 조선왕조가 500년을 넘는 기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반면 일본은 막번체제로 인해 정치 이노베이션이 한계를 가졌다고 파악한다. 일본에서 주자학이 이미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왔으나 교양 차원이나 선택적 수용에 그쳤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도쿠가와 정권조차도 왕권과 정권의 분리라는 체제를 극복할 수 없었던 데 있다고 본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주자학으로의 회귀라고도 말할 정도로 주자학이 확산되는데, 그 가장 큰 원인은 막번체제가 벽에 부딪치게 된 데 있었다고 한다. 실제 막부, 쇼군이라는 말은 19세기가 되고 나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덴노(천왕)을 의식한 호칭이며, 주자학의 보급에 따라 덴노의 정치적 지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개항 후의 정치변동과 결합되면서 이윽고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동아시아의 집약적 도작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높은 토지생산성과 인구밀도를 낳은 원동력이었다


동아시아의 정치 이노베이션과 함께 이 책의 생산·생활 혁명에 관한 기술 또한 자못 흥미롭다. 14~16세기는 동아시아의 농업이 획기적이라고 할 만한 변화를 보였던 시기다. 그리고 이에 수반하여 생활관습 등의 다양한 방면에서 오늘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전통’적인 것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이러한 변화를 낳은 가장 큰 계기가 동아시아의 독특한 집약도작의 확립과 보급이었다. 중국문명의 장기 지속의 비결이 그 기반을 북에서 남으로 옮김으로써 다시 태어났다는 말처럼 중국 강남의 개발은 문명의 전이였다. 송대에 이르러 장강 델타에 우전 또는 위전이라 불리는 수전(水田)이 대규모로 조성되면서 곡창지대가 되었지만 이곳의 도작은 조방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오히려 산간 평지에서 이뤄지던 이식도작 쪽이 보다 집약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크게 변화하는 것은 명대에 들어와서 반복적으로 행해진 대공사를 통해 태호의 치수가 정비되면서 기존의 우전을 소구획으로 분할하는 분우 사업이 진전되면서였다. 비로소 델타 지역의 집약도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도작은 15세기까지도 전작형(밭농사) 도작이 중심이었다. 20세기 들어 한국인들이 중국 동북부의 도작을 널리 행하게 된 것도 전작형 도작 기술에 익숙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와 같은 상황은 16세기 이후 이식도작이 보급되어 점차 도작의 중심을 점하게 되면서 크게 변화한다. 특히 한반도의 도작 전개에 관하여 이 책은 별도의 장을 할애하는데, 종래 한국 역사학계에서 이러한 서술은 없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일본이 농업이 시작된 이래 도작의 나라였다는 것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일본 농업의 중심이 도작이었다는 점은 사실이고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를 통해서도 밝혀지고 있지만, 저자는 거시적으로 볼 때 일본열도 전체가 도작사회화 하는 것은 15~17세기에 걸쳐 대규모의 개발을 통해 이뤄졌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치수와 관개기술이 일본의 독자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진다. 실은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이 중요했다고 본다. 또한 대당미(베트남 참파에서 중국에 들어온 품종, 점성미)의 유입과 그 재배의 확대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이처럼 일본의 집약도작도 동아시아 규모의 변화와 궤를 같이 했다고 본다.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집약도작의 획기적인 확대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높은 토지생산성과 인구밀도를 낳는 원동력이 되었다. 주지하는 것처럼 유럽의 농업과 비교해 노동생산성이 후진적이라는 언설이 이른바 아시아적 생산양식론 등의 이론까지 나오는 것처럼 매우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는데 대해 미야지마 교수는, 토지의 한계생산성이 낮은 서구의 농업의 방향은 추가적 노동력 투입보다 생력화(省力化)가 기본이 되므로 결국 농구(農구)의 발전 기준으로 농업생산력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토지에 노동력을 투입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올라가는 동아시아의 집약도작에서는 보다 높은 생산성을 낳는 최대의 요인은 토지 그 자체이므로 토지에 대한 투자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 농업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후진성 운운하는 것은 완전한 오류라 한다. 16세기 이후 세계 시장 형성의 움직임은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부(富)를 찾아 일어났던 것이고, 그 원천은 집약도작의 성립이었다.

오늘날 우리와 동아시아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

이 시기는 동아시아 지역의 농업이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한 시기였을 뿐 아니라 의식주라는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측면에서도 동아시아 전통적 생활양식이 서서히 형성, 확립되어갔다. 의료(옷감)혁명으로서 면포의 사용, 주(住) 생활에서 앉는 방식의 문제, 식생활 등을 살피는데, 20세기 들어 서구의 영향을 받으며 크게 변화했지만 현재까지도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아파트에 다다미방을 만드는 일본의 사례나 온돌을 만드는 남북한의 예 등은 이를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미야지마 교수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비교를 통해 한국사와 동아시아 역사의 개성과 그 새로운 이해를 찾는데 있다. 사대부, 양반, 무사 등의 신분제와 가족·친족 결합의 확산으로서 종족, 문중, 이에(家)를 상호 비교한다. 나아가 도시와 농촌의 경관 및 화폐경제, 천주교와 서학 등을 새로운 각도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는 역사학자로서 저자의 연구이력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성과이다.

역사상의 재정립이 필요한 때

서구적 근대가 뿌리째 흔들리는 지금이야말로 이제까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상의 정립이 필요한 때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에서 다른 14세기에서 19세기 초반까지 동아시아 역사는 한중일 각국에서 오늘날 전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동시에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연결되는 이 시기의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는 것은 서구모델이 아닌 역사상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단초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연 미래에 대한 전망을 세울 수 있을지, 새로운 이념과 이에 기초한 사회를 새로이 구상할 수 있는지 여부에 어쩌면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지식인이자 역사학자로서의 사명감이 50년이라는 연구의 시간만큼이나 묵직하게 담겨 있다.

지은이의 말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을 제기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은 다름 아닌 한국사 자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비교사 연구는 대부분 양자 비교, 곧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처럼 두 나라 간의 비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연구의 축적이 가장 방대한 일본과 중국 두 나라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컸는데 이것이 비교사적인 연구의 진전을 방해해 왔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 사이에 한국을 두고 보면, 중일 간의 비교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깨닫는 일이 종종 있다. 이는 한국이 한편으로 중국과의 유사성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으로서 한국사를 연구한 덕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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