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마니아 현상은 미국에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비틀즈가 미국을 방문한 9일 동안 미국인들은 비틀즈 음반 200만장과 비틀즈 관련 굿즈 250만 달러 어치를 구입했다. 비틀즈 밴드 로고나 멤버 사진이 들어간 모자, 티셔츠, 바지는 물론 비틀즈 잠옷과 과자까지도 불티나게 팔렸다. 비틀즈 멤버의 헤어 스타일과 패션을 따라하는 것도 유행이었다. 전통적인 미국 남성 패션이 바뀐 게 바로 이때였다는 얘기도 있다. 1964년 2월 미국 주간지 라이프(Life)에 실린 한 문장은 영국 록 음악에 대한 미국의 완전한 항복 선언과도 같았다. “1776년에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었다. 그리고 지난주 비틀즈는 그곳을 되찾았다.”
--- 「경제적 풍요로움을 즐긴 로큰롤」 중에서
이들은 런던 고급 주택가에 살며 비틀즈 노래를 흥얼거리는 부유한 학생들과 똑같은 정서를 공유할 리 없었다. 블랙 사바스와 레드 제플린, 딥 퍼플이 만든 음악이 일반 대중이 즐기는 록 음악보다 빠르고, 시끄럽고, 어두운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것이 헤비메탈의 탄생이었다.
--- 「공장에서 태어난 노동자들의 음악」 중에서
이 시대의 대중음악은 과거 저성장 시기에 억눌렸던 욕망을 표출하는 통로가 됐다. 대중은 반전이나 저항보다는 자유와 쾌락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록 음악도 과거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던졌다. 여자와 술, 심지어 마약을 찬양하는 노래가 넘쳐났다. 헤비메탈에 팝을 접목한 글램 메탈(glam metal)은 1980년대 후반 대중음악의 주류로 등장했다.
--- 「경제 성장기를 수놓은 글램 메탈」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너바나(Nirvana)가 등장했다. 라디오에는 “Smells Like Teen Spirit”이라는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연주는 단순했고, 노래는 분노에 가득 찼으며, 가사는 우울했다. 멤버들의 외모는 노숙자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이 글램 메탈과는 달랐다. 그런데 대중은 이들의 음악에 매료됐다.
--- 「우울한 경제를 대변한 그런지 록」 중에서
몽크에 따르면 반 헤일런의 위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손에 돈이 들어오고 여자와 술과 마약을 마음껏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싹텄다. 서로 더 많은 돈을 가져가겠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무명 시절 밴드의 수입을 4명이 똑같이 나누기로 했던 약속은 깨져버렸다.
--- 「탐욕이 불러온 반 헤일런의 침몰」 중에서
실제로 파커는 돈벌이에 밝았다. 1956년 엘비스가 20세기 폭스(20th Century Fox)와 영화 출연 계약을 체결할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영화사가 파커와 협상을 거듭하다 지쳐 “2만5000 달러면 괜찮겠느냐?”고 묻자 파커는 “난 그거면 되지만 그 아이(엘비스) 몫은요?”라고 물어 더 많은 돈을 받아냈다. 이렇게 계약을 체결해 엘비스가 출연한 첫 영화는 ‘Love Me Tender’였다.
--- 「재주는 엘비스가 부리고 돈은 파커가 챙겼다」 중에서
백마스킹이 대중의 주목을 받은 사건은 1988년에 일어났다. 22세 여성 등 13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 살인마 리처드 라미레즈(Richard Ramirez)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재판에서 AC/DC의 “Night Prowler”를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다. 이 곡에서는 백마스킹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같은 앨범에 수록된 “Highway to Hell”은 ‘I′m the law’(내가 법이다), ‘my name is Lucifer’(내 이름은 루시퍼), ‘she belongs in hell’(그녀는 지옥이 알맞아) 등의 백워드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음반을 거꾸로 돌리면 악마의 메시지가?」 중에서
록 음악이 한국에 뿌리를 내릴 무렵 대형 악재가 발생한다. 1975년 ‘록의 대부’ 신중현을 비롯해 포크 록 뮤지션인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등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로커들은 ‘약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됐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1980년대 들어선 들국화의 전인권과 부활의 이승철, 1990년대에는 신성우, 신해철 등이 대마초 혐의로 구속되면서 록 뮤지션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 「한국은 어쩌다 록의 불모지가 되었나」 중에서
BTS가 창출하는 경제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BTS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1조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BTS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매출 규모, 한국은행 투입산출표,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 ‘구글 트렌드’ 검색량 등을 종합해 분석했다.
비틀즈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던 것처럼 BTS의 미국 시장 성공은 본격적인 코리안 인베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BTS 신드롬을 계기로 더 많은 K팝이 미국 시장에서 소비될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BTS에 이어 블랙핑크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를 날도 조만간 올 수 있다.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아이유 같은 아티스트가 아시아를 넘어 미국에서 인정받는 것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그리고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 록과 헤비메탈의 시대가 다시 열리는 날에는 드디어 K록과 K메탈에도 기회가 올 것으로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 「BTS의 코리안 인베이전 경제 효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