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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다섯 병정
어둠의 그늘 충적세, 그 후 제쳐 논 노래 분호난장기 폐원 방황하는 넋 달팽이의 외출 금시조 해설_낭만적 관념성이 주는 투쟁의 미학 / 강유정(문학평론가) |
Lee Mun-yol,李文烈,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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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이쪽 언덕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흉악한 범죄가 되고, 저쪽 언덕에서는 영웅적인 행위가 된다. ─ 나는 도박죄의 재판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그런 기분이 드오. 똑같은 도박인데도 카지노에서 몇 십 몇 백만 원이 오가는 것은 죄가 안 되고, 품팔이꾼인 저들이 시골 농한기에 점심내기나 술추렴을 한 것은 엄중한 범죄가 되오. 거기다가 판검사 낀 사회 상류층에서 공공연하게 하고 있는 마작이나 포커판도 보통은 이들 판돈의 두 배는 넘소. 횟수도 이들보다는 잦아요. 그러나 판돈 몇 백 원에 석 달에 걸쳐 열한 번 한 저들은 상습 도박이 되고 상류층인 그들에겐 그저 오락일 뿐이오. 저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 가족이 겪어야 할 굶주림과 추위를 생각하면 내가 법관이 되지 못한 게 다행으로 여겨지오.”
--- p.130 「어둠의 그늘」 나는 종갑 씨가 무엇 때문에 이미 죽은 줄 알면서도 그렇게 열렬히 그녀를 찾아 헤매었는가를 물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물음을 끝맺기도 전에 문득 떠오르는 답이 있었다. 어쩌면 종갑 씨가 그토록 열렬히 찾아 헤맨 것은 옥선이가 아니라 그녀를 통해 언뜻 접하였던 이조 풍류의 잔영(殘影)이 아니었을는지. 그리하여 스러져가야 할 것이기에 더 아름다운 그것이 알지 못할 향수로 그 고독한 영혼을 일생 동안 내몰았던 것이나 아니었던지. --- p.270 「방황하는 넋」 금시조가 날고 있었다. 수십 리에 뻗치는 거대한 금빛 날개를 퍼득이며 푸른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갯짓에는 마군(魔軍)을 쫓고 사악한 용을 움키려는 사나움과 세참의 기세가 없었다. 보다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화려한 비상의 자세일 뿐이었다.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거룩함의 얼굴에서는 여의주가 찬연히 빛나고 있었고, 입에서는 화염과도 같은 붉은 꽃잎들이 뿜어져 나와 아름다운 구름처럼 푸른 바다 위를 떠돌았다. 그런데 그 거대한 등 위에 그가 있었다. 목깃 한 가닥을 잡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매달려 있었다. 갑자기 금시조가 두둥실 솟아오른다. 세찬 바람이 일며 그의 몸이 쏠려 깃털 한 올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점점 손에서 힘이 빠진다. 아아……. 깨고 보니 꿈이었다. --- p.362 「금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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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고유한 주관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 『금시조』
『금시조』에 수록된 소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가 ‘예술’로 상징되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라면 다른 하나는 근원과 멀어진 현실에 대한 낮은 포복 자세의 탐사이다. 탐구와 탐사라는 명사가 암시하듯, 이문열의 소설은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 사실주의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문열이 그려 놓은 ‘현실’은 어떤 관념을 응축한 세계상에 가깝다. 그의 소설이 알레고리성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소설집 『금시조』를 관통하는 서술자는 체험을 회상하고 고백하는 ‘나’가 아니라 체험에 거리를 두고 그 경험을 주관화하는, 기획된 서사적 자아이다. 이문열의 소설은 철저히 매개된 소설인 것이다. 이 서사적 자아의 사유는 시민과 예술가 사이에 대한 갈등의 구체적 형상이기도 하다. 시민과 작가로서 일종의 자기 분리 작업을 거친 결과물들은 매후 현학적이며 장려한 문장을 통해 재현된다. 그래서 이문열의 서사 공간에는 고백하는 자아가 부재하는 역설적 주관의 세계가 열린다. 이는 실로 한국문학에 있어 매우 희유한 세계임에 분명하다. -강유정(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