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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축사 서문 01 영웅의 어머니로 02 내 아들 동원이 03 야구를 시작하다 04 연습벌레 최동원 05 아버지와 아들 06 동원이를 보내고 07 내 가슴의 심장, 최동원 야구인 최동원 연표 ‘1984 최동원’의 위대함. 하지만 더 긴 시간을 봐야하는 이유_이성훈(SBS 스포츠 기자) 불멸의 투수, 최동원_유효상(모바일야구전문미디어 ‘야구친구’ 전 대표, 팟캐스트 ‘야반도주’ 운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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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초등학교로 전근을 가서 보니 마침 거기에 야구부가 있었다. 안경을 쓴 날렵한 모습의 동원이만 기억하는 팬들은 상상을 못 하겠지만, 동원이는 5학년 때 45kg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뚱뚱한 편이었다. 학교에서 별명이 ‘돼지’였다. 친구들이 놀리면 화가 나도 뭐라고 말도 못 하고 삭히던 어린 동원이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야구라면 한번 해보고 싶다던 동원이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운동해서 살도 빼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께 동원이를 전학 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당시 정년퇴임을 하신 시아버지에게 학교 육성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리 하기로 하고 동원이를 구덕초등학교로 전학시켰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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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는 운명의 고향이 그의 육신을 만들고, 야구라는 뜨거운 피가 그의 심장을 만들고, 팬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에 그의 영혼을 묻고 싶어 했던 사람. 부산 사람, 롯데 자이언츠, 무쇠팔 최동원.
그가 오롯이 살아낸 오십세 해는 먼지를 일으키는 불같은 강속구, 엄청난 궤적을 그리던 커브, 경이로운 연투 능력도 모골이 송연한 ‘야구’ 그 자체였지만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 시리즈 7차전을 ‘홀로 4승’이란 불멸의 기록으로 한반도를 송두리째 달구었던 ‘1984년의 기적’은 30여 년이 다 되는 이 순간까지도 팬들의 심장을 두들기는 불멸의 ‘최.동.원’으로 완벽하게 불태우는 데 아낌없이 바쳐졌다. - ‘무쇠팔 투수 최동원 동상’ 건립사 중에서 야구팬이라면 1984년의 기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든 주역이 최동원 선수라는 것도. 한국 야구사에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최동원 선수가 떠난 지 10년이 되었다. 10주기를 맞이하여 김정자 어머니가 아들 최동원 선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셨다. 두둑하게 따온 딱지나 구슬을 의기양양하게 내놓던 한 아이를, 온 가족이 합심하여 야구 연습을 돕는 아름다운 장면을, 서로에게 각별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먼저 떠나간 아들을 당신의 심장에 담아둔 어머니의 그리움에 기어이 우리 가슴도 적시고야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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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최동원은 야구, 그 이상의 의미인 사람이었다. 한 시대였고, 사라지지 않을 별 같은 존재였다.
단지 그가 세운 엄청나고도 수많은 숫자, 기록 때문은 아니다. 그의 생을 걸고 묵묵히 걸어온 그 시간들의 무게가 어떠한지를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시대를 살아온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을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선수들이 나온다 하더라도, 최동원이란 이름이 가진 이 뜨겁고도 생생한 온도는 쉬이 잊히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 지면을 빌어, 어머님께서 최동원 선수의 이야기를 전해주시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조진웅 (영화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