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ㆍ3
제1부 꽃의 위로 백동백 꽃의 위로 물매화 반얀나무 코스모스 배롱나무 복수초福壽草 들꽃 이름 외우기 상사화相思花 서향瑞香 해바라기 선인장아 시로미나무 여뀌와 대우리 수선화 밭에서 제2부 찔레꽃 당신은 경훈씨 그거 알아? 그대여,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더덕 캐기 맹지盲地 뭘 해도 오미자 호 아저씨 권정생 이 세계 절반의 사람,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하여 정선 여인 찔레꽃 당신은 미영美影의 달 도안응이아*의 봄 공철이형 우리 현미 제3부 산과 바다가 윤회輪廻 산山 계단 만월滿月 봄 조난遭難 산과 바다가 아무도 없었다 춘분春分 포구浦口에서 귤향橘香 벌초伐草 민들레거나 생강나무꽃 같은 입김 한라병원 5병동 502호 제4부 뚝배기 그릇처럼 뚝배기 그릇처럼 권위에 대하여 뇌 세척 바이러스 고해苦海 나의 절명사絶命辭 ㅋ 빤스의 수명 낮아진다는 것 숭어 대접과 그릇 우울 촌철살인寸鐵殺人 입맞춤 뚱딴지 제주상사화 |
김경훈의 다른 상품
|
제주시의 동촌 조천리 출신인 그는 소위 조천 사름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냄새라니…. 오해하지 마시라. 그가 잘 씻지 않아서 몸에서 폴폴 나는 그런 냄새가 아니니.
제주시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조선시대 이래 연륙 포구이자 제주 유림의 본향으로 이름 높던 ‘조천’은 특히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서 제주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문기가 서린 포구마을이기도 하다. 그 역시 그러한 고향의 문기를 물렸는지 조 천 사람다운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 냄새가 포구의 갯내음만은 아니리라, 그건 그의 DNA 속에 흐르는 조천의 전근대를 지나 해방공간 역사의 옷깃에서 묻혀 온 냄새가 틀림없으리라. 우스갯소리로 모 원로작가는 술좌석에서 푸줏간 시라고 약평, 또는 악평한 적이 있다. 그건 그가 그간 써낸 피비린 4.3의 시어들이 날 것 그대로의 언어들이었던 데서 기인하는 바일 것이다. 특히 4.3이 아니더라도 강정에 꽂혀 강정 투쟁의 최전선에서 그가 써낸 시들 역시 매한가지였다. 시인은 살인자다 촌철寸鐵의, 능히 비인非人을 제압하는 - 〈촌철살인 寸鐵殺人〉 전문 그의 시어들은 바로 비인(非人)을 제압해야 했기에, 무척이나 날카롭다. 찔리면 내상이 깊은 위험한 칼날의 언어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그의 시만 접한 독자들이나,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대단히 과격하거나, 거친 시인으로 기억할 듯하지만, 사실 그는 지극히 정이 많은 시인이고 눈물도 많은 시인이다. 그랬기에 그는 제주섬이 아파할 때마다 신열을 앓는다. 그의 여린 섬세한 신경세포들이 이 섬이 또는 이 섬의 자식들이 아파하는 것을 모르는 체하지 못했으리라. 어디 이 섬의 일로만 아파할까? 그의 시는 그러므로 신열의 언설들이다. 그랬기에 그의 시어들에는 펄펄 끓는 열정이 배어 있다. 그런 그가 자칭 ‘서정 시집’을 냈다. 굳이 ‘서정’을 강조한 이번 시집에서 그는 저간의 시선을 의식했을까? 다분히 자부자분한 시어들로 시편들을 엮었다. 물론 몇몇 시편들에서는 여전히 촌철의 시어들이 행간을 채우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가 그간 간간이 써두었던 자칭 서정시들과 새 시집을 묶기 위해 최근에 써낸 시편들까지 그의 섬세한 시선과 정 많은 심성을 실은 언어들로 채워졌다. 꽃내음에 취해 죽어도 좋으리 그대 사랑 지천으로 흐드러졌으니 나 여기에 묻혀 꽃이 되어도 좋으리 - 〈수선화 밭에서〉 전문 수선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 시집 제목도 ‘수선화 밭에서’로 정했다. 수선화는 제주섬에 지천으로 널린, 지중해 연안이 고향인 귀화식물이라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섬꽃이 되었다. 이 수선화가 귀한 것임을 밝힌 것은 제주 대정골에서 오랫동안 귀양 생활을 했던 ‘추사’다. 그가 제주에 유배와서 화첩에서나 보는 수선화가 유배지 마을에 잡초처럼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환호했고, 몇몇 글에 제주섬이 수선화 시편 몇과 썰을 남기면서 제주섬의 수선화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왕 수선화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나가면, 제주에서는 예로부터 특히 서화가들이나 호사가들이 애지중지했던 것은 난초다. 춘란, 한란으로 널리 알려진 제주섬의 난초는 예로부터 선비의 지조와 기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로 선비들에게는 고결한 화초로 융숭한 대접을 받아온 고결한 신분이었다. 추사 역시 지독한 애난가여서 빼어난 수작들을 남기고 있다. 어찌 보면 난은 고귀한(?) 지배계급인 선비들의 귀족성을 지닌데 반해, 온 섬에 지천으로 깔렸던 수선화는 민초의 삶을 닮았다. 또한 빼어나서 고귀하기는커녕 농부들의 호미에 뽑혀 나가는 등 잡초 취급을 받았지만, 한겨울 동리 울담 밑에 무심히 자라 온 마을을 다디단 꽃 향으로 물들였다. 그런 수선화는 어찌 보면 늘 아웃사이더 포지션인 그를 닮았다. 그래서 수선화에 더욱 꽂혔는지도 모르겠다. 진입로조차 차단된 역사의 맹지 내통이 좌절된 회천동 이덕구 가족묘 도 막은 밭 - 〈맹지 盲地〉 부분 맹지는 제주에서 소위 ‘도(道) 없는 밭(땅)’ 즉 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없는 막힌 땅을 말한다. 그러기에 맹지는 땅값도 도 있는 밭에 비교할 바가 못 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덕구, 4.3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결코 잊힐 수 없는 이름 석자다. 제주도 인민유격대 제2대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4.3 발발 이후 1대 사령관이었던 김달삼이 입북하면서 넘겨받은 빨치산의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훤칠한 미남형 리더였던 김달삼에 비해 벅벅얽은 얼골에 사람 좋았던 이덕구는 흔히 선말 제주섬의 만란을 이끌었던 ‘장두’에 비견된다. 장두란 섬사람들의 억울하고 굶주리는 삶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고 등소(等訴)의 맨 앞에 섰던 인물을 가르킨다. 즉, 자신의 목숨을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내어놓는 이타적 희생정신의 화신이다. 그리하여 장두의 목숨을 바친 후에야 겨우 나아지는 삶을 살아내야 했던 제주인들에게 장두는 영웅이면서 은인이기에 섬사름들은 결코 그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자식의 자식, 그 자식의 대를 이어 신화로 전설로 전승한다. 이덕구 역시 그러했다. 폭도라고 낙인찍혔고, 한 집안이 씨 멸족 당했지만, 그는 홍길동처럼 휙휙 날아다니고 신출귀몰했다. 하지만, 패배한 역사의 주인공이 된 4.3장두 이덕구. “지금은 진입로조차 차단된 역사의 맹지”가 되었지만, 시인은 도 막은 밭 앞에서 전설의 부활을 꿈꾼다. 언젠가는 이덕구 가족묘의 도 막은 밭이 비로소 길이 생기고 역사의 성지로 탈바꿈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의 시들은 바로의 이 역사의 맹지에 길을 뚫는 일이기도 하다. 제주 시인, 조천 사름, 김경훈. 그의 시어들은 사정없이 몰아치며 싸대기를 후려패는 섬 바람의 매서운 맛과 동리마다 무심히 자라 온 마을에 자신의 향을 채워 사악한 것들을 정화하는 수선화 향을 닮았다. 매섭지만 달다. 매서운 바람의 시만 써대던 그가 난생 처음 “나도 서정시 쓴다”고 내 놓은 이 시집, 《수선화 밭에서》 향에 취해보길 권한다. 저자의 글 부드럽고 품위 있는 언어로 꽃을 노래하고 사랑을 예찬하고 내면의 우주를 돌아보고 싶다고 나도 그런 서정시를 쓰리라고, 내 꿈은 창대했으나 아뿔싸, 그 끝은 심히 미약하였네. 때늦은 8월의 장마가 우수의 안개로 저미는 날 창고재創古齋에서… |
|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는 사람이라 한다. 지나온 시간들이 결코 너그럽지만은 않았을법한대 조근 조근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봄날 주먹 펴는 고사리 손을 닮았다. 배시시 웃게 하고, 엉엉 울게 하는, 사랑의 본질을 아는 메시지다. 소박함과 비장함으로 시대의 행간을 담아내는 삶의 철학이다. 또한 시편들이 귀하게 다가옴은 시인의 걸어온 그 족적의 집합체여서일 거다. 작은 소리들이지만 큰 울림을 주며 지나간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야기… 가끔씩 길을 잃고 싶을 때, 술패랭이꽃처럼 찢겨나간 밀짚모자를 쓴 시인이 그리워질 것 같다. 눈 속에서 득음한 복수초의 웃음이 저러할까. - 한희정 (시조시인)
|
|
그는 오래전부터 거리와 광장에서 비분강개한 목소리로 우리를 각성시키는 시인이었다. 강정마을, 시청 앞, 신산리 골목 어디에서라도 그의 시는 늘 우리 이웃들과 함께 하며 ‘자신을 관통하는 마음 떨림에 주파수를 공명’하는 시인으로서의 책무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것이 시인으로서 그의 삶의 가치였으며 그의 ‘심장에 각인된 파동에 정비례’하는 일관된 목표였다. 그러나 김경훈을 그렇게만 인식해서는 그의 진면목을 놓치는 일이다. 그는 누구보다 눈물이 많은 시인이며 외롭고 허약한 존재 앞에서는 여지없이 허물어져서 제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약점을 지닌 사내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싸워야 할 때와 사랑해야 할 때의 경계가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 오랫동안 그의 분노와 눈물을 지켜봐온 처지에서 이 시집에 담긴 모든 생명에 대한 그의 수줍고 서툴기까지 한 사랑 고백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 이종형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