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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최첨단 가족
박혜윤
책소유 202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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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_ 가족 안에서 살아남기

1. 개인들이 함께 산다는 것

우리가 원하는 가족의 모양
가족, 유전자를 공유하다
다르지만, 가족인 걸로 좋아
죽도록 싸우며 상대를 인정하기
느슨하기에 오래 지속 가능한
타인에게서 ‘나’ 찾기
좋아하는 마음을 스스로 지킨다
미움마저 새롭게 해석하는 자유

2. 비로소 나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내 아이를 소개합니다
세상은 주관식이다
그게 정말 큰 문제일까?
배움 자체와 배우고 싶어지는 경험
모두가 성장하는 싸움의 기술
내 아이 키울 곳을 찾아서
넌 엄마 닮아서 잘 살 거야
실수 대처, 유일한 조기교육
인터넷의 습격: 권력자 대 협력자
마음에도 면역이 필요하다
말 안 듣는 애로 키우기

3. 세상의 시스템, 우리 식대로 살기

내가 원하는 경제 교육
각자에게 돈의 의미는 다르다
가족이 돈 쓰는 방법이 다르다면
시골 부동산 아저씨의 진짜 금수저 이야기
나의 성공은 내가 정한다
무조건 이기는 삶
진짜 보상은 남의 쓸모가 되는 것

4. 우리가 선택한 가족 실험

천상천하 유아독존, 우리로 함께 살아가기
가족을 내버려둘 수 있는 용기
먹는 일의 사소함과 위대함
경쟁력 있는 집밥
집밥, 노동 나눔이라는 멤버십
완전한 이별도, 완전한 속박도 없는 관계
솔직하고 당당하게
우연이기에 더 아름다운
가족의 효용
무엇이든 열려 있는, 최첨단 가족

에필로그_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저자 소개1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일한 뒤, 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로 가버린 언니를 그리워하는 중학생 둘째와 남편과 함께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시골에서 산다. 한국의 입시를 신봉한 덕에 수능 영어, 토플 등은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았으나 미국에 가서 시험 바깥의 영어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영어가 어려웠던 적도 영어 때문에 곤란했던 적도 없다. 적어도 나 자신은…. 대신 내 이야기를 듣는 원어민에게 그들의 이해력이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틀린 영어로 태연하게 전하곤 한다. 천천히 음미하듯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일한 뒤, 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로 가버린 언니를 그리워하는 중학생 둘째와 남편과 함께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시골에서 산다. 한국의 입시를 신봉한 덕에 수능 영어, 토플 등은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았으나 미국에 가서 시험 바깥의 영어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영어가 어려웠던 적도 영어 때문에 곤란했던 적도 없다. 적어도 나 자신은…. 대신 내 이야기를 듣는 원어민에게 그들의 이해력이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틀린 영어로 태연하게 전하곤 한다. 천천히 음미하듯 영어를 읽으며 원어민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원어민의 영어를 목표로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한국어와 영어의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한다. 이렇게 영어를 도구로 끊임없이 실험하고 발견하며 지낸다. 영어 공부는 절대로 영어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 『숲속의 자본주의자』 『도시인의 월든』 『오히려 최첨단 가족』 『부모는 관객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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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32g | 252*225*17mm
ISBN13
9791196254094

책 속으로

가족들 관심사의 중심이 되는 것은 꽤 중독적임과 동시에, 아빠나 엄마의 기대를 다 맞출 수도 없었다. 이런 가족관계 역학에서는 객관적인 성취나 성공, 실패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정한 사건이나 사람이 원인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관계의 구조가 형성되면 바퀴가 돌 듯 반복되며, 이 상황이 점점 강화되곤 한다. 이걸 깨닫는 데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론은 지극히 간단했다. 아빠의 높은 기대를 거부하거나 엄마의 부당한 무례함에 분노하다 보니, 나는 사회적 성공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인지 의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에는 고통스러웠던 가족관계에서의 일들이, 알고 보니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중요한 자극이었던 것이다. 바로 ‘적당히’ 살아남아서 나 자신이 되어가기. 우리는 서로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각 자체가 나의 착각이었다. 괴로워하면서도 끈덕지게 버텨온 그 자체가 바로 나의 과정이자, 나 자신이었으니까.
--- p.009

나는 우리 가족이 이런 부족의 정서 상태를 조금이나마 가지길 바랐다. 가족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기능하게 만드는 소비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이런 사회가 주지 못하는 원시적 부족민으로서의 소속감을 제공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부모는 성실히 부양의 의무를 다하고, 아이들은 미래의 경쟁력을 위해 공부함으로써 은혜를 갚는 ‘거래’의 형태가 아니라, 자유로우나 충성스러운 원주민과 같은 공동체 말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렇게 어려운 실험은 아니었다.
--- p.022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 중 가장 행복에 가까운 순간을 꼽으라면, 거실에 모여 각자의 일에 몰두해 있을 때이다. 때로 사춘기 큰아이는 혼잣말로 숙제나 학교에 대한 불평을 중얼거리고, 둘째도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며 성질을 부리곤 한다. 불평에 대해 함께 의논하거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당사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기를 요청할 때다. 그럴 때에는 기쁜 마음으로 머리를 맞댄다.

부모인 남편과 나도 거실에서 각자 고료를 받는 의무적인 글을 쓰기도 하고, 스스로 내켜서 아무 글이나 쓰기도 한다. 보통 뭘 쓰는지는 서로 모른다. 내가 어렸을 때처럼 힘들게 돈 버는 부모를 우대하는 분위기는 없다. 역시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도 자기 선택일 뿐이다. 다만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의무인 집안일은 이런 일들보다 항상 우선한다. 중세영어 스터디에서 각자 맡은 부분의 단어를 찾아야 했던 것처럼.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혼자 사는 사람이 해야 할 가사 노동보다는 적을 수밖에 없다. 모두 나눠서 하기 때문이다.
--- p.049

자기가 먼저 집은 장난감을 포기한 아이는 직접적인 충돌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품을 가진 아이일 수 있다. 혹은 처음 집은 장난감을 빼앗긴 것이 진심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아이일 수도 있다(내가 그렇다. 싫증을 잘 내서, 귀찮게 싸우느니 줘 버리자는 마음이 드는 편이다). 아니면 남이 보기에 허접한 장난감이 아이만의 이유로 정말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엄마가 개입함으로 인해서 아이가 어떤 경우인지 알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진 셈이다. 아이의 마음이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아이는 불필요하게 ‘아무렇지 않은 내가 문제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또한 그 경험은 많은 경우 아프고 슬플 수밖에 없다.
--- p.143~144

나이가 들어서 자식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보다, 나는 자식들의 삶에 ‘relevant ’해지고 싶다. 자식들이 늙은 부모를 안쓰럽게 여기고, 과거에 감사하는 심정으로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도 기쁠 것이다. 좋은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자식이 부모의 실망을 걱정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그럼으로 인해 그들에게 필요한 부모이고 싶다. 지금은 어리기 때문에 돈과 보호와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것처럼, 그 필요의 구체적인 모습은 미래에는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면서 부모와 싸우지도 숨기지도 않고, 또 나는 그것을 흔쾌히 보아주는 연습을 한다. 그 연습들이 쌓여 우리 가족의 관계가 변화를 거듭하며 살아남아, 내가 늙어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유로운 생각을 잘 들어주는 것밖에 없는 날을 상상한다.
--- p.155

내가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싶은 이유는, 단지 무엇을 얼마 주고 사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돈을 쓰는 것은 남들에게 내 자존심과 가치를 어떻게 주장할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등 나만의 독특성을 아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당연히 온전히 전부는 아니고, 내가 타고난 성향과 사회문화적 배경과 합쳐져 나만의 소비 성향이 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경제적 가치가 무엇일지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쓸데없는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 곧 지출을 무조건 줄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도박하고 돈이 생기는 족족 돈을 써 없애는 것, 다음 끼니에 먹을 게 없어도 손님을 먹이는 것, 내 친구가 남들에게 밥을 사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쓸데없는 지출이 아닐 것이다(내 친구는 나와 이야기를 나눈 후, 할머니와 자신의 소비를 연결하면서 밥을 덜 사게 되고, 이용당한다는 분노가 줄어서 좋다고 했다).
--- p.168

가이드는 불릿 센터가 ‘살아 있는 빌딩’이라고 설명했다. 자급하고 자립한다고 해서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기술과 철학, 주변 자연환경과 인간이 만든 모든 조건들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덕분에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어떤 주의도 따르지 않지만 삶을 기회주의자처럼 헤쳐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풍요롭고 좋은 것을 더 많이 누리겠다는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주어진 기회를 알아채고, 실험해보고, 진화하고, 새로운 무언가에 항상 열려 있어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또 이 과정은 결코 혼자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 가족 안에서 ‘대화’로 실천한다. 이 대화는 일상적인 수다를 포함하지만,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가족의 구조물이 되어간다.

--- p.283

출판사 리뷰

애틋하면서도 부담스럽고,
숭고하면서도 불편한 이름 ‘가족’

“우리, 더 가볍고 느슨해질 순 없을까?”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작가가 찾은 오래 지속 가능한 가족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최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컬래버레이션 무대가 있다. 원조 국민가수 양희은 씨와 청아한 목소리로 사랑받고 있는 악뮤 이수현 씨의 ‘엄마가 딸에게’ 듀엣 무대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보고 세대를 막론하고 대중들이 감동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아름다운 선율도 한몫했겠지만, 뻔하지 않은 솔직함이 담긴 가사가 세대를 관통해 모두에게 공감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 자식 잘되라고 헌신한 부모’, ‘그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딸’의 목소리 대신, 엄마는 ‘실은 나도 인생을 잘 모르니 너의 삶을 살아라.’ 말하고, 딸은 ‘내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으니 잔소리를 그만해 달라.’고 하는 내용은 어쩐지 그동안 성역 같던 가족의 숭고함을 내려놓으면서도, 진정성 있는 사랑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족의 속내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는 것은 어쩐지 불편하고 무겁다. 유교 정서가 일상 곳곳에 뿌리를 내린 데에다, 과거 경제 성장의 주역이 바로 ‘잘살아보세’라는 기치하에 희생과 인내를 견뎌온 가족이라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새벽잠 이겨가며 돈 벌어오는 가장, 식구들 뒷바라지와 살림살이 늘리는 데에 평생을 바친 엄마, 사회적 성공을 일구어 집안을 일으키려는 자녀, 뛰어난 형제자매에 밀려 자기 꿈은 양보해야만 한 다른 자녀…. 이 흔한 가족 서사는 경제 급성장기를 지나 형태는 변화했지만, 여전히 그 기본 틀을 유지한다. 온 가족이 부의 축적과 계층 상승을 위한 하나의 효율적 팀처럼 기능하는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그런데 절대 빈곤을 벗어난 이 시대에도 이런 희생과 헌신, 그리고 보답이라는 거래적 가족관계가 여전히 유효할까? ‘1인 가족’, ‘비혼’, ‘졸혼’ 등의 가족 해체는 이로 인한 부담과 무게감의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면 가족이란 곧 사라져야 마땅한 시스템인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오래 지속 가능한 운명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면서도 유쾌하고 희망적으로 이야기하는 책, 『오히려 최첨단 가족』이 출간되었다. 최근 신선한 관점으로 독자 팬들을 모으고 있는 『숲속의 자본주의자』『부모는 관객이다』 박혜윤 작가의 신작이다.

미국 시골의 이동식 주택에 거주 중인 저자는 두 아이, 남편과 함께 흔한 4인 가족들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이들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며, 그 안에서 개인들이 자기다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가족 구성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는지를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구태의연한 가족관계로부터 발견해낸 진짜 효용과 쓸모에 대해 말한다.

능력 있는 배우자, 희생적 부모, 은혜에 보답하는 자녀…
과연 아직도 ‘좋은 가족’의 기준일까?


『오히려 최첨단 가족』은 구성원들 모두 자기다움을 지키고, 그럼으로써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오래 지속 가능한 관계가 되기 위해 저자 가족들이 해온 일상의 여러 실험들을 4가지로 분류해 소개한다.

1장 ‘개인들이 함께 산다는 것’에서는 서로 다른 개인이 자신의 고유성을 잃지 않고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가족은 사회의 치열한 경쟁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가령, 열심히 일하거나 학교 공부를 잘하는 것은 개인적 선택일 뿐, 가족의 의무가 아니다. 대신 서로에게 직접 쓸모를 제공하는 가사 노동과 같은 일은 그보다 우선한다. 이들은 마치 원시 부족민 같은 정서 상태를 추구한다. 즉, 전체의 생존을 위한 일들을 수행해내면 다른 모든 부분에서 폭넓은 자유를 누린다. 그로 인해 가족 내에서 불평 없이 끝없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는 것이다.

2장 ‘비로소 나의 세계가 완성되었다’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에게 양육이란,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고, 부모 역시 부모의 삶을 산다. 양육 속 고민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것이 아닌, 그 과정으로부터 부모 스스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한 ‘부모 말 안 듣는 자녀’는 가족의 존속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자녀는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닌, 새로움을 제시하고 가족이 건강하게 진화하도록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장 ‘세상의 시스템, 우리 식대로 살기’는 사회 통념상의 성공 기준을 벗어나 고유한 가치를 지키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돈, 교육과 입시, 성공적인 삶 등에 대한 이 가족의 색다른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사회가 부여한 한 가지 기준만 따라온 이들의 잇따른 고백을 보여주며, 진정한 승리란 타인이 평가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과제인 돈과 성공에 대한 고민의 방향이 매우 신선하다. 무작정 부를 일구는 데에 열을 올리는 대신, ‘우리 가족에게 돈은 어떤 의미이며, 자기다운 모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돈은 얼마인가?’를 깊이 생각한다. 또 맹목적인 교육열, 성공 의지보다 ‘각자가 생각하는 성공적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탐색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마지막 4장 ‘우리가 선택한 가족 실험’에서는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 가족의 가치를 소개한다. 이들은 어떤 주의만을 따르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든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누리겠다는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다가온 기회를 알아채고, 이를 실험해보는 것이다. 또한 이 시도들은 모두의 대화를 통해 이뤄진다. 도덕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에 늘 열려 있는 이 가족은, 그렇게 진화한다.

늘 열려 있는 최첨단 가족,
함께 있기에 더욱 나답게 살아남는다!


미국 시애틀에는 불릿센터라는 6층짜리 상업용 건물이 있다. 환경자선단체 불릿재단에서 2012년에 준공한 이것은 ‘살아 있는 건물’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수백 개의 태양광 패널이 지붕을 덮고 있어 건물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고, 빗물 탱크에 저장된 물을 정화해 식수, 화장실 물로 충당한다. 화장실에서 나온 오물은 자체적인 퇴비화 작업을 거쳐 거름으로 활용된다. 한마디로, 250년 동안 외부 공급 없이 자립 가능한 건물이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최신의 첨단 기술들이 도입된 것이 아니다. 대신 엔지니어, 자재 도매업자, 허가 담당 공무원, 실제 이용자 등이 참여해 각자 아는 지혜를 모아 이 건물을 완성했다. 공법에 맞지 않아 잊힌 옛 자재, 그 자재를 생산하는 숨은 공법 등 뜻밖의 아이디어들이 활용되었다. 저자는 불릿 센터의 자급과 자립보다 더 중요한 것을 꼬집는다.

과거와 현재, 기술과 철학, 주변 환경과 인간이 만든 조건들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야말로 이 건물이 살아 있게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 그녀의 가족은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알아채고, 이를 실험해보고, 진화하고, 새로운 무언가에 항상 열려 있어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불릿 센터가 참여자들의 대화로 이뤄진 것처럼, 이들 가족도 대화로 이 모든 도전을 시도한다.

서로 의견이 달라서 끝장 볼 때까지 싸우기도 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반적 식사 대신 틈나는 대로 온 가족이 통밀을 갈아 빵을 굽고, 숲에서 야생 베리를 따고,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시간에 구속받지 않는 끼니를 채운다.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을 소비하기보다는 나무의 결이 깃든 공방 소품이나 중고가게에서 친환경 소재의 옷을 구하며 돈의 가치를 배운다. 학교 성적이나 사회적 능력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배움과 성공의 의미를 발견하게끔 끊임없이 대화한다. 일상적 수다를 포함하는 이들의 소통은 어떤 변화가 온다고 해도 가족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서 존재하는 ‘살아 있는 구조물’이 되게 한다.

그렇다면 이 가족의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이 과정을 통해 훗날 자녀가 도덕과 예의 때문에 의무감으로 노부모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의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소통을 필요로 하여 자연스레 관계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자녀가 새로운 가족을 꾸려도 여전히 느슨하면서도 꼭 필요한 공동체로 기능하길 원하는 것이다. 현재의 나로도 충분한 관계, 그럼으로써 함께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관계, 그 자체로 쓸모 있는 관계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위트를 섞어 확신한다. 자신의 가족이야말로 언제나 진화 가능한 ‘오히려 최첨단 가족’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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