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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_좋은 사람들 큰절을 올리고 싶은 통영의 어른 제옥례 선생/걷고 또 걷는 맑은 선비 김기현 선생/‘문학동네’ 손 떼고 떠나는 강태형 대표/부안시장에서 물메기탕 잘 끓이는 장순철 여사/전북 익산 왕년의 주먹대장 조석기 사장/애써 심심하게 살고 싶은 박성우 시인/시의 첫걸음을 가르쳐주신 도광의 선생님/5월을 노래하는 가수 김원중/모악산 아래 사는 청년작가 유휴열 화백/나보다 시를 잘 쓰는 열살 꼬마시인 이건/나를 두목이라 부르는 내 친구 정진섭/살아 있는 기억의 역사, 100살의 김병기 화백/딱따구리에 미친 남자 김성호 교수/돌아온 탕아 같은 시인 박기영/영락없는 안동 촌놈 안상학 시인/큰 귀를 가진 따뜻한 진보교육감 김승환/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꿈꾸는 시인 김민정/무한히 착하고 매사에 지극한 시인 유강희/암수술 이겨낸 봄꽃 같은 제자 이정민/내가 아는 가장 진보적인 할머니 선쌍임 여사 2부_몸속 잎사귀를 꺼내 흔드는 날 임홍교 여사 약전/구리실과 바디힌잎나무/남방큰돌고래 보호구역/돌담을 쌓으며/동시를 읽는 겨울/마당을 나간 암탉/멧돼지 생존 입장문/새들의 안부를 묻는다/시란 무엇인가/시와 식물/아, 변산반도/팽나무에 대한 편애/책을 읽지 않는 어른/자두와 추리의 관계/영양 수비면 자작나무 숲에서/초간정 가는 길/광기와 윤리/내성천을 때리지 말아주세요/숲과 나무들의 장례 3부_그래도 살아갑니다 평양은 멀지 않다/배차적과 배추적과 배추전/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때를 맞추는 일/권태응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몇 무릎 몇 손이나 모아졌던가/우물에 빠져 있는 동시/문학 자산의 기억 방식/세계는 배반하면서 성장한다 |
安度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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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명이나 사물에게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존재는 하나의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 작명이나 명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시인은 타성에 젖어 사는 사람들 앞에 사물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 들이미는 자다.
--- p.145 나는 식물과 관련된 책들을 자주 보는 편이다. 책에서 만나는 풀잎과 나무의 이름은 시시때때로 내 상상력을 자극한다. 식물의 이름을 맨 처음 붙인 그 사람이 바로 둘도 없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딱 들어맞는 언어, 그 명명의 순간이야말로 시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식물의 이름을 하나씩 익혀가면서 나는 생태적인 상상력이 우리 삶에서 왜 중요한지를 덤으로 배우게 되었다. 작은 풀꽃의 이름 하나가 깊은 사유라고 부를 만한 우주 속으로 나를 이끌고 간 것이었다. --- p.197~98 우리는 울어볼 일이 없는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밥을 버느라, 통장의 잔고를 늘리느라, 오로지 내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비즈니스를 위한 일에 매달리느라 울어볼 날이 없었다. 누군가가 눈물 타령한다고, 또 감상적이라고 이죽거린다고 해도 평양에서는 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26~27 나는 노래가 삶을 지배한다고 믿는 편이다. 군대 생활의 치욕과 억압과 불편을 잠시나마 견디게 해주는 것은 군가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르는 일과 은혜를 받는 일을 동일시한다. 교사로서 교육운동에 참여하면서 나는 민중가요를 지독히도 편애했다. 1980년대를 ‘현장’에서 보낸 이들이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노래가 나를 달구는 연탄불이었다. --- p.244~45 씨앗을 심는다고 해서 모두 아름다운 꽃이 피고 좋은 열매를 맺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때를 잘 맞춰야 한다. 씨앗 위에 덮이는 흙의 두께와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 데 필요한 물과 햇볕의 양과 북을 돋아줘야 할 시기와…… 다시 봄이다. 겨우내 일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있던 괭이와 호미와 장화를 깨우러 갈 때다. --- p.255 이 감미로운 노래는 젓가락 장단이 필요 없었다. 내게 왔던 그 모든 ‘당신’을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반쯤 눈을 감고 부르면 제격. 그 ‘당신’은 내가 혼자 좋아하던 그녀였고, 내게 쉽게 오지 않던 시였고, 우리 공동체가 찾아서 누리고 싶었던 자유와 해방의 다른 이름이었다. --- p.269 쓴다는 것, 여전히 무섭다. 뭔가를 쓰고 나면 내 삶이 거기에 쓴 대로 흘러간다는 걸 여러번 느낀다. 내가 시를 썼는데 시가 나를 감시하고 지시한다. 모든 언어가 주술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시는 언어가 언어끼리 만나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형식이다. 마치 땅에 심은 나무가 뿌리를 뻗어 땅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다. 언어는 그 시를 쓴 사람의 미래까지도 간섭한다. 문자언어보다는 음성언어의 능력이 약하기는 하다. 가만히 둘러보라. 짜증,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담는 사람은 짜증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소한 문자메시지 하나가 삶을 송두리째 옭아맬 수도 있다. 시어는 특히 무당의 언어와 같아서 여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 p.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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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통찰력 있는 언어로 그려낸
사람과 자연 그리고 삶 ‘좋은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붙인 1부에는 시인의 인생에 영향을 끼쳐온 사람들 20명의 이야기를 묶었다. 시인 박성우 박기영 안상학, 화백 김병기 유휴열 등 명사부터, 제자와 친구, 지역에서 교류한 일반인까지 두루 다양한 사람들의 면모가 담겼다.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도광의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글에서는 시인이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습작 시절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이기도 한 선생의 시가 시인의 시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처음 시인으로 만들어준 순간에 대해 고백하기도 한다. 또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임된 이후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고등학교에서 만난 제자 이정민의 이야기를 담은 글에서는 제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암투병을 하기까지 과정을 지켜본 순간순간들을 풀어놓는다. “몸이 고장 나면서 나는 비로소 멈추는 법을 알았다”라는 제자의 글을 인용하며 시인은 “숨 고르기가 필요”한 삶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한다. 1부에는 이렇듯 시인이 맺은 인연 곳곳에 사람살이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거니와 그 자체로도 훈훈하고 재미있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부 ‘몸속 잎사귀를 꺼내 흔드는 날’에는 어느새 시인의 삶에 주요하게 자리 잡은 ‘식물성’의 눈으로 바라본 비틀린 세계의 현실, 그토록 간결해진 마음으로 읽는 시와 책 이야기가 담겼다. 또 올여름 돌아가신 어머니의 약전을 쓰고 그것이 한편의 시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 고향 예천에 집을 짓고 마당에 돌담을 쌓으며 “이 세상에 쓸모없는 돌덩이는 하나도 없다”는 귀한 발견을 한 순간, 아침저녁으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새들의 이름과 거처와 안부를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다짐하는 목소리도 접할 수 있다. 그가 작년에 펴낸 시집에서 「식물도감」이라는 독특한 연작을 선보인 연유를 이번 산문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순한 마음은 자연스레 좋은 시를 발견하는 눈으로도 발현되는데, 논산 한글학교 어르신들이 쓴 시를 인용한 「시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는 단순해지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을 보는 어떤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3부 ‘그래도 살아갑니다’에는 지금의 현실을 딛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특별수행단으로 평양 땅을 밟았던 기행문 「평양은 멀지 않다」가 특히 눈길을 끈다. 시인이 처음 먹어본 북쪽 음식의 이름들은 마치 시 속의 낯선 시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백두산에서는 구절초로 짐작되는 식물의 씨앗을 봉투에 넣어오기도 했다는데, 시인의 고향에서 싹을 피우게 될 식물의 모습을 언젠가 시인의 시에서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산문집에서 시인은 주로 듣는 쪽에 서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와 식물, 동물의 말을 그저 듣는다. 그렇게 자연의 섭리를 따라가며 계절의 흐름을 듣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삶의 작은 재미도 있다. 물메기탕 옆에 숭어회가 빠질 수 없다. 겨울에는 살이 볼그레한 숭어회를 한 접시 같이 주문해야 제격이다. 소주도 물론 빼놓으면 안 되겠지. 햇살이 따듯해지고 냉이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에는 주꾸미와 도다리탕이 좋고, 여름철엔 갑오징어회, 가을에는 전어회와 꽃게무침이 그만이다.(「부안시장에서 물메기탕 잘 끓이는 장순철 여사」 36면) 제철 음식을 찾아 즐기는 시인의 발길을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봄에는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고, 가을에는 봉투에다 꽃씨들을 받고, 헛간 벽에 무시래기를 내걸고” 산다는 느린 삶의 속도를 만나게 된다. 철 따라 제철 음식을 먹고 봄에는 씨앗을 뿌리는 일은 우리 삶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살아보자는 궁리이다. 그리고 시인은 말한다. “말수를 줄이고, 크게 소리 지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으로.”(「책머리에」) 자연을 돌보는 시인의 섬세한 눈과 마음을 따라갈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고 따듯해질 것이다. 책머리에 40년 동안 끌어안고 살던 것들을 트럭에 싣고 전주에서 예천으로 옮겨 왔다. 작년 초부터 마당과 텃밭이 있는 외딴집에서 산다. 풀이 너무 빨리 자라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풀들과의 전쟁이다. 좋은 분들이 와서 닭장을 만들어준 덕분에 열댓마리 닭들이 쑥쑥 자라고 알도 잘 낳는다. 연못의 잉어 두마리가 사랑에 빠졌다. 수백마리 새끼를 쳐서 나는 수백마리 잉어 새끼의 보호자가 되었다. 연못에 먹이를 던질 때마다 그들의 주둥이가 뾱뾱 소리를 낸다. 틈이 나면 차를 끌고 돌을 주우러 다니고, 울타리 가까이 내려오는 고라니의 거동을 엿보고, 봄에는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고, 가을에는 봉투에다 꽃씨들을 받고, 헛간 벽에 무시래기를 내걸고, 말수를 줄이고, 크게 소리 지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코로나19로 세상의 발걸음이 멈추었거나 세상의 관절이 뒤틀려 있다. 이 와중에 간신히 책 한권을 낸다. 2021년 12월 예천에서 안도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