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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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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y de Maupass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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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루소의 교훈대로 자연을 사랑하는 여자로 딸을 키우고 싶었다. 그것이 딸을 선량하고 얌전한 여자, 자연에서 행복을 찾는 여자로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 p.9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면 ‘그분’도 온 마음을 다해서 자신을 사랑해주리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두 사람은 오늘 같은 밤, 별에서 떨어지는 반짝이는 빛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둘이 거닐 것이다. 손을 맞잡고 몸과 몸을 붙인 채 다정하게 걸어갈 것이다. 둘은 오직 둘만의 사랑의 힘만으로 굳게 맺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청순한 사랑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 p.16~17 차츰차츰 그녀의 생활 위로 체념의 층이 쌓여갔다. 그것은 마치 물속에 잠겨 있는 것들 위에 끼는 물이끼 같은 것이었다.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만나는 무의미한 일들에 대한 흥미, 단순하면서 하찮은 일들에 대한 규칙적인 관심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우수, 흐릿한 환멸 같은 것이 그녀 안에서 퍼져갔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 어떤 세속적 욕구도 그녀를 사로잡지 못했다. 기쁨을 향한 갈증도, 환희를 향한 충동도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다른 무엇이? 세월과 더불어 응접실의 의자가 퇴색해가듯, 모든 것이 그녀의 눈에서 조금씩 그 빛을 바래가고 있었으며 모든 것이 지워져가고 있었고, 창백하고 생기 없는 색조를 띠고 있었다. --- p.74 잔느는 자식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어린애는 자기 주변의 세 사람의 우상이며 관심의 전부가 되었다. 폴은 세 사람에게 폭군으로 군림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세 사람의 노예들 사이에 질투심이 생길 정도였다. 남작이 폴을 무릎에 앉히고 말타기 놀이를 한 후, 폴이 남작에게 키스를 해주면 잔느는 시기 어린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나 푸대접을 받는 리종 이모는 폴에게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아이에게서 하녀 같은 대접을 받고는, 폴이 자신에게 마지못해 해주는 입맞춤을 그가 엄마나 할아버지에게 해주는 입맞춤과 비교하며 자기 방에서 서럽게 울기도 했다. --- p.159 하지만 그녀는 폴을 그리워한 것만이 아니었다. 폴을 생각하면서 그녀는 폴을 빼앗아간 저 낯선 여자에 대한 질투에도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녀를 증오했다. 그녀는 당장 아들을 찾고 싶었다. 당장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낯모를 여자를 향한 그녀의 증오심이 그녀를 막았다. 자식의 정부가 문 앞에 버티고 서서 “부인, 여긴 뭐 하러 오셨나요?”라고 묻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로서의 자부심이 그런 식의 만남을 거부했다. 언제나 순결했고 일말의 과실이나 오점이 없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추잡한 육체적 사랑에 굴복해서 그 마음까지 비굴해져버린 남자들을 향한 분노를 키웠다. 그럴 때마다 잔느는 인간이란 것이 불결한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 p.188 그건 분명 젊은 날의 환희와 똑같은 것이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 주변의 그 무언가가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 태양은 젊은 날의 태양보다 열기가 식은 것 같았으며 하늘은 덜 푸르른 것 같았고 풀들도 그 색이 바랜 것만 같았다. 꽃들도 향기가 덜한 것 같았고 이전처럼 자신을 취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떤 날은 삶의 행복이 그녀에게 스며들어 또다시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되기도 했다. 운명이 아무리 가혹하다 한들, 이처럼 좋은 날에 어찌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 p.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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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최초의 세계문학컬렉션
톨스토이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이후 프랑스 최고의 소설이라고 칭송한 걸작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불행과 고통이 함께한다는 외면하기 힘든 사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잔느는 꿈 많은 처녀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자신에게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현실에서 만난 남편은 그녀가 환상 속에 서 키운 백마 타고 온 남자가 아니다. 그는 이기적이고 인색한 남자일 뿐이다. 결혼하자마자 그녀의 환상은 깨진다. 잔느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쏟지만 아들은 빚을 지고 필요할 때만 편지를 보낼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삶이 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며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녀의 삶은 무언가 쓸쓸한 기분에 젖게 한다. 우리는 모두 잔느처럼 꿈을 가졌고, 그 꿈이 깨지는 경험을 했으며,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한탄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녀처럼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우리도 어느 정도는 그녀처럼 쓸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절대로 즐거움만으로, 행복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삶 속에는 즐거움도 있고 행복도 있지만 환멸도 있고 고통도 있다. 우리가 잘못 살고 있기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우리의 삶 속에는 불행과 고통이 함께한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행복으로 눈을 빛내는 순간은 잠깐이고 그 뒤에는 또다시 환멸과 고통이 이어지는 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모파상의 『어느 생애』가 우리에게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외면하기 힘든 사실을 우리에게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생애』를 읽고 우리가 느끼는 쓸쓸함은 우리를 달래주는 쓸쓸함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로잘리의 도통한 듯한 마지막 말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건 생각만큼 그렇게 좋지도 않고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요”라는 말에 많은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잔느의 먹먹할 정도로 가련한 삶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짙은 애정을 발견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