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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말들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백승주
타인의사유 202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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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우주선이 도착했다

1. 낯선 한국어의 세계에 어서 오세요
: 표준어와 일상어를 대하는 우리들의 온도 차


혀의 연대기 / 다중 우주, 아니 다중 언어를 상상하라 / 사전에 빵꾸 내기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다시 찬드라의 경우

[책 속 칼럼] 금지된 언어1

2. 지금, 여기 말들의 풍경
: 폭력과 재난, 혐오와 차별의 현장에서


말들의 풍경 / 어느 식민지 출신의 고백 / 당신의 혐오가 당신을 찾아온다 / 긴 의자 / 분노를 팝니다 / 금지된 글 / 1956년 5월 18일, 맑음 / 한국인이라는 문제적 집단에 대하여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너의 이름은

[책 속 칼럼] 금지된 언어2

3. 지금, 여기 배움의 풍경
: 한국어 교실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시험에 대한 열정 /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 만날 수 없잖아 느낌이 중요해 난 그렇게 생각해 / 한국어, 착취의 언어 / 그녀가 갈 수 없는 곳

[책 속 칼럼] 금지된 언어3

4. 그 말은 ‘진짜’가 될 수 있나요?
: 언어와 그 너머의 것들


근로하지 말고 노동하라 / 도둑맞은 말 / 보이지 않는 도시 / 현실은 글자 네 개 밖에 있다 / 용서, 불가능한 / 인공지능이라는 가짜 믿음 / MBTI와 나 / 시간의 재발명 / 아파트

에필로그: 나의 자매들에게
그리고 남은 말들: 한국이라는 ‘언어의 서식지’를 탐구하면서 내가 발견한 것들

저자 소개 1

1976년 한국의 변방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의 작은 방에서 보르헤스와 로맹 가리, 롤랑 바르트, 고종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들을 만나 세상에 대해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섬을 탈출해 육지로 건너와서는 서강대학교 한국어교육원에서 10년 동안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 시간 동안 한국과 한국어를 타자의 눈으로 보는 법을 익혔다. 지금은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어교육학과 사회언어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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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400g | 135*200*20mm
ISBN13
9791168949577

책 속으로

나에게 두 개의 혀, 아니 여러 개의 혀가 있음을 발견한 것은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였다. 입시를 치르기 위해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커피숍 안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혀에 대해서만큼은 또렷이 생각난다.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길어지고 머물고 있던 친척 집에 늦는다는 전화를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커피숍 전화기 앞에서 나는 첫 번째 혀가 할 말 ‘승준디예, 좀 늦을 거 닮아마씀’과 두 번째 혀가 할 말 ‘승준데요, 좀 늦을 거 같아요’ 사이에서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 이후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 제주 사람들은 어떻게 타지로 가면 제주 말을 싹 버리고 그곳의 방언을 순식간에 익히는 것일까? 적어도 언어 사용의 측면에서 제주 사람들은 자신의 출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제주 지역 밖에서 제주 사람들은 자신의 첫 번째 혀를 철저히 숨긴다.
--- p.16~17

말에는 본래 국가도 없고 국경도 없다. 국경을 그어 놓은들 말들은 수시로 국경을 넘는다. 한국이라는 국가 내부의 말들도 마찬가지다. 지역이나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변이들이 존재하며 이들 변이들의 경계 또한 모호하다. 심지어 어떤 변이들은 수시로 끊임없이 이쪽과 저쪽 경계를 넘나든다. 말들은 결코 균질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어’라는 가공품의 ‘발명’은 이러한 차이를 일거에 제거해 버린다. 한국어라는 말 속에는 ‘언어=영토=국민’이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의 구도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이 구도를 통해 한국 영토 안에 거주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일하고 균질한 하나의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 p.34

생파(생일 파티) 때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생선(생일선물)을 들고 왔는데, 생선은 마음에 들었지만 사람이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를 못하더라. 여기까지 읽고도 낯설지 않다고? 정말 오나전(완전) ㅎㄷㄷ(후덜덜). 더 볼까? 그렇다면 이런 야민정음은 어떤가? 띵언(명언), 띵작(명작) 모르겠다고? 이런 댕청이(멍청이), 정말 롬곡옾눞(폭풍눈물)이 난다.

이런 신조어들의 목록을 계속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를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가? 욕망 때문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욕망 중 최고봉은 ‘그냥 이유 없이’ ‘놀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대’를 ‘머’로 읽고 ‘명’을 ‘띵’으로 읽는 야민정음은 이런 욕망의 산물이다. 야민정음이 한글을 파괴할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나는 이런 놀이 때문에 한글이 파괴되지 않는다에 오백 원,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통곡하지 않으리라는 것에 만 원을 걸겠다. 야민정음은 한글의 형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폭풍눈물이라는 말을 거울에 비춘 이미지인 ‘롬곡옾눞’ 역시 ‘폭풍눈물’이라는 말의 형태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사용할 수 없다.
--- p.39~43

나는 일요일마다 열리는 복지관 한국어 교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주유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을 가르치고 있었다. 기름을 가득 채워 달라는 말을 설명했지만, 학생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보다 못해 탱크에 기름이 가득 차 있는 장면을 칠판에 그려 주자 방글라데시에서 온 학생이 크게 깨달았다는 듯 소리쳤다. “아아, 이빠이!” 학생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선생님, 어떻게 ‘이빠이’도 모릅니까?

철두철미한 언어 경찰을 자임해야 하는 자로서 이 글의 다음 내용은 이래야 한다. 각종 노동 현장에 아직도 일본어의 잔재가 ‘뿌리 뽑히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개탄하고, 하루 빨리 힘을 모아 이런 저급한 언어들을 ‘순화’해야 한다고 힘차게 외쳐야 한다. 그런데 나는 불온하게 자꾸 이런 질문을 떠올린다. 언어학자들은 공장으로, 건설 현장으로 찾아가서 그 공간의 사람들이 어떤 말을 사용하고, 어떻게 대화하는지 진지하게 탐구해 본 적이 있는가?
--- p.46~47

얼마 전 한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제주 말 중에 ‘속솜하다’라는 말이 제일 좋아요. 고요하다는 뜻이잖아요. 너무 편하고 느낌이 좋은 말 같아요.” “네?” 아!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도 이 말의 어감이 귀엽다고 쓴 글을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내부 식민지의 언어는 질곡의 역사가 담긴 말조차도 ‘예쁘고’ ‘팬시’하게,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소비된다. 당황한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이렇게 설명한다. “속솜하다는 보통 ‘조용히 해라’라고 경고할 때 쓰는 말이에요. 저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4·3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요, 그때 할머니께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여쭤봤어요. 제 질문을 듣자마자 할머니가 하신 첫 말씀이 ‘속솜허라’였습니다.”
--- p.105~106

뺄셈의 명명법은 소위 ‘이대남(이십대 남성의 줄임말)’을 청년의 ‘원형’이라고 정해 놓고 그 주위를 철조망으로 둘러친 후 그 나머지는 청년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원형 이론은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가 분명한 경계선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알려 준다. 참새 같은 가장 새다운 새도 새이지만 타조나 펭귄처럼 가장 새답지 못한 새도 새라고 인식하는 이유다. 이대남. ‘반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의미 성분만 가진 텅 빈 풍선 인형 같은 기호.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펌프질에 점점 거대해져서 모든 세대에게 “너희는 이제 포위되었다”라고 외치는 이름. 글쎄다. 이십대 남성들의 삶과 서사가 이러한 이름으로 대표되는 게 정말 맞는 것일까?
--- p.125~126

그녀는 베트남에서 온 란이다. 그녀는 중국에서 온 왕리이기도 하고, 필리핀에서 온 자넷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름이 지영이면 또 어떤가? 사실 그녀에게 이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부여된 특성이란 외국 출신이라는 점과 ‘결혼한 여자’라는 것뿐이고, 그 이외에 그녀에게 부여된 고유한 개성은 전혀 없으므로. 그녀는 한국어 조사 ‘-에’를 배운다. 그녀에게 ‘-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에: 「조사」명사와 결합하여 사물이나 건물, 장소의 위치를 표현하는 격조사.”

이 설명은 언어의 불순물을 거르고 걸러 만들어 낸 순수하고 단단한 결정 같다. 누가 감히 여기에 어떤 편견이나 차별이 개입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녀는 이런 ‘-에’를 이용해 세탁기가, 냉장고가, 전기밥솥이 어디에 있는지 말한다. 그녀의 남편은 묻는다. 여보, 양말은 어디에 있어요? 서랍 안에 있어요. 어느 서랍에 있어요? 침대 옆 서랍에 있어요. 안경은 어디에 있어요? 그것은 책상 위에 있어요.

조사 ‘-에’가 제시된 이 교재의 세계에서 장소란 ‘집 안’의 방들만을 가리킨다. 사물들은 가전이나 가구뿐이다. 이 세계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의 신체가 집 안에만 머물도록 설계되어 있다. 새롭게 배운 언어로 이 여성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집 안 물건의 위치뿐이다.

--- p.171~173

출판사 리뷰

혐오와 차별의 시대,
지금 여기의 말들을 다시 들여다보다

“순수와 정상을 내세운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려면
서로 엉겨 붙고 물들어 섞이는 수밖에 없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응용언어학자 김성우 추천!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우리의 매 순간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인사를 하거나, 과제 혹은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SNS에 오늘 뭘 먹고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갔는지를 써 올리는 등의 일은 개개인의 일상을, 나아가 사회의 한 장면을 구성한다.

이렇듯 개개인의 일상으로부터 길어 올려지고 확장된, 우리 사회를 빚어내고 있는 말들의 지형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말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걸까? 재미와 재치를 가장한 ‘○밍아웃’ ‘○린이’ ‘○○충’ ‘암 걸리겠다’ 같은 밈들에서부터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는 ‘휴거(휴먼시아 거지를 줄인 말로, 임대아파트인 휴먼시아에 사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 ‘엘사(LH아파트에 사는 사람)’ ‘전거(전세로 사는 사람)’ 같은 표현까지. 어렵게 분석할 필요도 없이 현재 한국 사회를 점거하고 있는 것은 혐오와 차별, 폭력과 배제의 말들이다.

하지만 이게 우리 사회의 풍경 전부일까? 사회언어학자 백승주는 한국 사회라는 언어의 서식지로 들어가 혐오와 차별의 말들 아래 숨죽이고 있던 ‘다른 말들’을 찾아낸다. 각 지역의 방언, 외국인 노동자의 말, 통속어, 트라우마 생존자의 드문드문 끊어진 말들을. 이 같은 말들의 존재가, 그리고 이 말들이 서로 자유롭게 섞이고 넘나들 수 있을 때 차이나 결핍, 장애는 배제와 억압의 수단이 아닌 소통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 외국인도 아닌 외계인의 눈으로 한국어를 바라보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당연하다는 듯 지나치는 ‘접촉의 순간’들을
정지 버튼을 누르고 살펴보다


한국 사람들은 단일 언어 세계에 살고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동일한 장면에서 동일한 말을 사용하고 있을까? 만일 ‘그런 당연한 걸 왜 묻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음의 물음들에도 답해 보자. ‘다라이’ ‘벤또’ ‘빵꾸’ ‘구루마’ 같은 말들은 식민 시대의 잔재인 일본어일까, 지역방언일까? ‘미싱’이나 ‘오함마’, ‘공구리’ 같은 노동 현장의 언어는 꼭 순화되고 고쳐야 하는 언어인 걸까? 이 땅에 존재하는 250만 이주민들의 언어(와 그 차이)는 한국어로 볼 수 있는 걸까?

전작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에서 ‘문맹’이 되어 타국에 들어가 낯선 리듬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탐험한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언어, 자신의 모어이자 모국어인 한국어를 ‘외계인’의 눈으로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런 그가 펼쳐 보이는 한국어의 세계는 생각보다 낯설고 기이한 모습이다. 제주 사람이 제주 친구에게 제주어로 편지를 쓰다가 어색함을 느끼고는 기형도 산문집에서 본 편지투를 따라해 편지를 쓰는 모습. ‘미싱’ ‘오함마’ 같은 건설·공장의 노동 언어는 순화어로 바꿔 사용하자고 하면서 ‘블리딩’ ‘컨스티페이션(변비)’ ‘가스 아웃’ 같은 의료 현장의 언어는 신비한 주문을 보는 것마냥 감탄하면서 듣는 모습.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이주민들만 피해서 전파되는 것은 아닐 텐데 오로지 한국어로만 긴급재난문자가 전송되는 모습.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다는 듯 지나치는 말들을 둘러싼 장면들에, 그 ‘접촉의 순간’들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 이를 자전적 성찰과 정치한 메타포, 비판적 담화 분석과 SF적 상상력까지 품는 섬세한 글쓰기로 꼼꼼히 살펴본다.

|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 속에서 말들의 의미는
고정되지 못하고 언제나 유예된다.”

유예되고 미끄러지는 말들을 붙잡아
언어-사람-사회의 관계를 그려 보려는 시도


이 책은 사회언어학자 백승주가 2020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 중인 ‘언어의 서식지’라는 칼럼을 중심으로 다른 매체에 쓴 글들, 논문, 에세이 그리고 추도문 등을 함께 묶은 것이다. 1장부터 4장까지는 표준어와 일상어를 대하는 우리들의 온도 차, 폭력과 재난, 혐오와 차별의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지금, 여기’ 말들의 풍경,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는 모순의 한국어 교실 등 언어와 언어 그 너머의 세계를 다룬다. 언어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퍼져 있던 이야기는 결국 ‘유동적이고 유예되고 미끄러지는’ 언어의 필연적인 속성으로 묶이게 되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순수한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 언어는 순수하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언어에 대해서 생각할 땐 언어의 사용자인 사람들 간의 관계, 사람들이 세상과 맺는 관계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그렇게 봤을 때야만 비로소 ‘자연화’되어 마치 상식처럼 존재하던 말들은 상식적이지 않은 것으로, 그러나 실제에 가깝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끄러지는 말들』은 한국어와 한국 사회,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장면들을 낯설게 보기 위한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혐오와 차별 대신 조용히 연대의 손을 잡으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은밀한 서신이기도 하다. 다른 생각, 다른 프레임을 만들려면 우선은 다르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순수와 표준, 효율과 경쟁력을 가장한 말로는 불가능하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체성들을 인정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말‘들’, ‘서로에게 말 걸기 위해 기꺼이 엉켜들고 오염된 말들’이 필요하다.

추천평

“사회란 사람들이 말을 섞는 순간 만들어진다”라는 이 책의 한 문장처럼, 사회언어학자 백승주는 사회라는 숲으로 들어가 우리가 만든 말들의 풍경을 보여 준다. 이 숲에는 차별과 혐오의 말들이 쌓여 있고 공갈빵 같은 구호들이 사태를 가리고 있다. 하지만 이게 우리 사회의 풍경 전부일까? 저자는 숨죽이고 있는 다른 말들을 찾아낸다. 각 지역의 방언, 외국인 노동자의 말, 통속어, 트라우마 생존자의 드문드문 끊어진 말. 이 말들은 묻혀 있었을지언정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듯해 보이는 공허한 말은 서로에게 말 걸기 위해 기꺼이 엉켜들고 오염된 땀의 말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수와 정상을 내세운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려면 서로 엉겨 붙고 물들어 섞이는 수밖에 없다.
- 권김현영 (여성학자, 『여자들의 사회』 저자)
사람에게서 나와 사람을 향하는 말은 미끄러지고 충돌하며 끊임없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회언어학자 백승주는 ‘언어의 서식지’를 탐험하며 자전적 성찰과 정치한 메타포, 비판적 담화 분석과 SF적 상상력까지 품는 섬세한 글쓰기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그려 낸다. 언어 습득과 사용의 역사를 체화한 자신의 혀, 재난 시대 속 이주 노동자의 일상, 치유의 첫걸음도 떼지 못한 ‘4·3’ 제주, 삶을 배신하는 한국어 수업 교실, 역대 대통령들의 말에 대한 논쟁에 이르기까지를.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사회, 아니 우리 자신의 권력과 편견, 차별과 배제, 묵인과 망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김성우 (응용언어학자,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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