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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하나님이 계신가요? 증명할 수 있나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요 1 성경에 나오는 기적은 믿기 어렵지 않나요? 17 2 성경이라는 책이 과연 신뢰할 만한가요? 24 3 과학과 기독교 신앙은 서로 부딪히지 않나요? 30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분이 하나님 4 세상에 가득한 눈물을 왜 하나님은 보고만 있나요? 36 5 하나님 믿어도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데 교회는 왜 가요? 43 6 하나님같이 선한 분이 왜 지옥을 만드셨을까요? 48 7 하나님은 왜 선악과라는 함정을 만들어서 인간을 죄에 빠뜨렸나요? 55 인간은 혼자, 스스로 서야지요 8 착하게 살면 되지, 꼭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요? 62 9 혼자 잘 믿으면 되지, 굳이 여럿이 얽히는 교회를 다녀야 하나요? 69 10 신앙은 결국 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의 도피처 아닌가요? 75 기독교만 답이라니요 11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을까요? 83 12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가요? 88 13 한국 사람이 이스라엘 종교를 믿어야 하나요? 94 그리스도인은 무례하고 피곤해요 14 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종교를 무시하죠? 99 15 교회 안 나가는 가족에게 기독교 신앙을 너무 강요해요 104 16 겉 다르고 속 다른 그리스도인이 왜 이리 많죠? 109 교회는 별나라 17 기독교에는 무슨 교파가 그리도 많나요? 116 18 술하고 담배 끊은 다음에나 교회 갈게요 123 19 그리스도인은 제사도 못 지내요? 128 20 교회는 왜 그렇게 헌금, 헌금 합니까? 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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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 믿어도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데 교회는 왜 가요?
Q.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를 내리는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덜 고통받거나 덜 힘든 게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더 아프고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러면 왜 교회에 가야 하나요? A.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생의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적어도 그 고통의 의미를 바로 볼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에 짓눌리지 않고 의연하게 이겨 나갈 수 있다는 소망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있습니다. 이것이 유익입니다. 기독교는 상처 부위에 반창고만 붙여 주고 마는 얄팍한 종교가 아닙니다. 10. 신앙은 결국 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의 도피처 아닌가요? Q. 기독교는 약자들의 종교 아닌가요? 어려움을 겪거나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사람들은 손쉽게 은신처를 찾습니다. 자기 힘으로 이겨 내지 않고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자칫 비겁해지기 쉬운 미봉책에 불과하지 않나요? A. 하나님을 심리적 지팡이로 여기거나 단지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해 찾는다면 분명 한계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인생의 고통과 아픔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과 한계를 발견하고, 이를 넘어서는 존재를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의미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인생에서 고통과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어쩌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15. 교회 안 나가는 가족에게 기독교 신앙을 너무 강요해요. Q. 강요한다고 해서 신앙이 생기는 것은 아닐 텐데 아무리 가족이라도 너무 한 거 아닌가요? 가족 간의 불화를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 질렸어요. 그렇게 해서는 믿을 사람도 안 믿지 싶어요. A.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다 보니 설득도 하고 때로는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가족 간에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그리 지혜로운 방법은 아닙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며, 인생과 삶의 의미에 대해, 신과 진리에 대해, 서로 배우고 알아 가는 자세가 먼저 필요합니다. 20. 교회는 왜 그렇게 헌금, 헌금 합니까? Q. 교회 가면 봉투가 참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합니다. 그게 무서운 것 같아요. 익숙해지는 거. 무슨 무슨 명목으로 계속 새로운 헌금을 만들어 내는데 참 창의적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제가 언제까지 다양해지는 헌금들을 참고 지켜볼 수 있을까요? A. 일부 교회가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지나치게 헌금을 강요하거나 성경에 없는 여러 헌금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대신 교회는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등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헌금의 정신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지켜 나가는 것이 오늘날 현대 교회의 사명입니다. --- 본문 중에서 |
질문과 함께 교회에서 사라진 이들을 위한
스물한 개의 질문과 응답 문답이라기보다 다큐멘터리 기독교의 진리를 문답식으로 전하는 책들은 차고 넘친다. 기독교 신자라면 품기 마련인 질문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응답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진짜 질문인가”이다. 정답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 고안해 낸 질문이라면 현장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더군다나 답마저도 책상에서 써 내려가는 식이라면 실제 삶과의 괴리는 더욱 깊어진다. 그런 면에서 『교회에서 사라진 질문을 찾아요』는 현장과 딱 붙어있다. 복음 전도나 교회 공동체 현장에서 맞닥뜨린 질문, 그리고 이에 실제로 응대하면서 축적한 답변을 짧고 굵게 기록한다. 그래서 문답서라는 옷을 입은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짧고 굵게 핵심을 타격 답하기 어려운 질문일수록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려는 책들은 많다. 정교한 접근은 환영할만하나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 영상 문법에 익숙한 세대가 책을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숲이 너무 우거져서 길을 잃기가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교회에서 사라진 질문을 찾아요』는 둘러 가지 않는다. 핵심을 짧고 굵게 전하는 태도에서도 현장을 지향하는 책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 눈앞에서 질문하는 사람의 두 손에 바로 쥐어 줄 실마리가 필요하다. 물론 실마리는 실마리일 뿐 답의 전모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건축물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면 그림의 떡이다. 이제는 더 현실적이고 접근 가능한 방법이 필요하다. 거대한 여정의 시작 앞서 지적한 친절함과 정교함은 한 책에서 모든 이야기를 마쳐야 한다는 한계 때문에 더욱 강화된다. 다음이라는 약속이 없으므로 최대한 지은이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가상한 노력이다. “그래서 충분한가”라고 묻는다면,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기독교 신앙은 “여정”이라고 표현할 만큼 질문과 회의가 계속 따라붙고 그때마다 동행은 절실해진다. 그런 면에서 『교회에서 사라진 질문을 찾아요』는 작은 입구에 불과하다.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하나님나라의 도전』, 『풍성한 삶의 첫걸음』, 『풍성한 삶의 기초』로 내처 달리자고 내미는 손이다. 기독교라는 세계가 그만큼 깊고 넓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사라진 질문을 찾아요』의 메시지가 짧고 굵으나 책의 야심이 그 어떤 책보다 만만치 않은 이유는 책 하나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