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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나의 님
다시 만날 가장 뜨거운 날
이다북스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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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조선 독립에 바친다
조선 독립의 서(書) / 한용운 취조서

(2장) 조선 청년에게
조선과 조선인의 번민 / 내가 믿는 불교 / 가갸날에 대하여 / 여성의 자각이 인류의 해방 요소 /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야기 / 검소함과 간결함 / 조선 청년에게 / 내게 만일 청춘이 다시 온다면

(3장)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남모르는 나의 아들 / 소작농민의 각오 / 정신부터 수양해야 / 나는 왜 중이 되었나 / 모든 것이 불성(佛性)으로 돌아간다 / 조선은 어디로 가나 / 재일·재만 동포 문제와 국제주의 / 용감한 사람이 되어라 / 한용운 씨와 석가를 말함 / 평생 못 잊을 상처 / 조선 민족은 어디로 가야 하나

(4장) 역경에서 순경으로
봄 / 역경과 순경 / 반성 / 우교 / 망양보뢰 / 욕조 문답 / 심우장에서 참선하는 한용운 씨를 찾아가 / 만고에 거룩한 석가의 정신 / 독서삼매경 / 명사십리

(부록)
《조선불교유신론》 중에서

저자 소개 2

韓龍雲, 만해, 한유천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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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예술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기획편집 일을 한 후 현재 드레북스 대표로 있다. 에세이집 《마흔의 봄》을 썼고, 《여자도 사람이외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잎이 푸르러 가시던 님이》 등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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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262g | 123*188*12mm
ISBN13
9791191625608

책 속으로

무릇 인류의 사상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는 것으로, 사상의 변천에 따라 사실의 변천이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사람은 실리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도 존중한다. 침략주의, 즉 공리주의 시대에서는 타국을 침략하는 것이 물론 실리를 위하는 길이었지만, 평화, 즉 도덕주의 시대에는 민족자결을 찬동해 작고 약한 나라를 원조하는 것이 국위를 선양하는 명예가 되며 동시에 하늘의 혜택을 받는 길이 된다.
--- p.34

그렇다. 독립이 될 줄로 안다. 그 이유는 목하 세계평화회의가 개최되고 있는데, 장래의 영원한 평화가 유지되려면 각 민족이 자결해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민족자결이 강화회의의 조건으로 윌슨 대통령에 의해 제창되고 있다. 오늘날의 상태로 보면 제국주의나 침략주의는 각국에서 배격해 약소민족의 독립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의 독립도 물론 각국에서 승인할 것이고 일본에서도 허용할 의무가 있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압수한 서면에 기재된 바와 같다.
--- p.47

종교의 성쇠는 그 시대 시대를 따라서 있는 것인즉, 오늘날 그 세력이 다소 쇠퇴되었다고 우려할 바 아니나, 종교의 교리와 종교가로서 가져야 할 품성과 행동이며 수양에 있어 타락되고 세속화가 되어간다는 것은 우리로서 적지 않게 우려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종교라고 결코 사회생활을 떠나서 살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비록 사회사업을 영위하더라도 종교가의 영역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때는 벌써 종교가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까닭이다.
--- p.103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는 기회주의자들, 인생으로서 가련하지 아니한가.
산과 능을 넘치는 준량인들 어찌 돌기둥을 움직이며, 질풍폭우의 어두운 밤인들 어찌 닭의 울음소리를 저지하랴. 역경이라는 것은 겁 많은 자의 눈에 보이는 신기루일 뿐이다.
그것을 겁내는 것이 어찌 스스로 부끄럽고 우스운 일이 아니랴. 하나의 티가 눈에 드니 하나의 티에 망상의 꽃이 어지럽게 떨어지느니 모름지기 청명한 눈을 요할지니라.
--- p.141

그와 반대로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함을 자기 도피의 자료로 삼는 자는 식은 한숨과 값없는 탄식이 언제든지 그의 귀한 것이 되어서, 일생을 통해 그것을 아무도 모르게 간직할 뿐 아니라 평생 이어져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기로 하여금 불행하게 한 원인이요 결과다. 자기가 불행한 때에 남을 원망하는 자는 자기의 불행이 남에 의해 온 것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그러면 자기의 행복도 남에 의해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독립성과 창조력은 조금도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저승에 가기 전에 세상에서 죽은 사람이다. 가련하기도 그에 비할 수가 없지만, 가증하기도 그에 비할 수가 없다.

--- p.145

출판사 리뷰

〈님의 침묵〉의 시인이자
낡은 불교를 개혁한 종교인
그리고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독립운동가


낡은 틀에 안주하던 불교를 개혁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 《조선불교유신론》. 소멸과 생성의 윤회 사상 속에서 서정성이 돋보이는 〈님의 침묵〉. 소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뜻을 담아 지은 심우장.

이 안에는 만해 한용운의 뜻이 흐르고 있다. 개혁적인 종교인이었고 문학적 깊이와 폭을 이룬 시인이자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독립운동가. 시대는 암울했으나 그는 시대를 깨치고 나왔으며, 다시 만날 날을 가장 뜨겁게 믿었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승려인 만해 한용운. 65세로 입적하기까지 세상은 암울한 시대였지만 그의 말과 글, 그리고 그의 삶은 시대를 깨치고 밝히는 빛이었다.

정옥으로 태어나 이후 용운이 되었고, 낡은 불교의 혁신을 부르짖었으며, 독립운동의 선두에 섰고, 〈님의 침묵〉을 노래한 만해 한용운. 그는 누구보다 민족을 사랑했고, 종교에 투철했으며, 불의에 굴하지 않은, 시대를 밝힌 거룩한 정신이었다. 아울러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한 승려로, 살아생전 여러 신문과 잡지에 작품과 논설을 실었고, 이 글들은 그의 행적에 버금갈 만큼 큰 궤적을 남겼다.

〈조선 독립의 서〉과 〈한용운 취조서〉
〈명사십리〉에서 《조선불교유신론》까지
만해 한용운의 거룩한 정신


《힌용운의 나의 님》은 1919년 〈조선 독립의 서〉에서 1940년 〈명사십리〉까지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글들과 대담을 묶었으며,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부록에 담았다. 암울한 시대에도 오롯이 서고자 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빛을 발하는 만해 한용운의 거룩한 정신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만해 한용운의 진솔하고 강직한 목소리를 온전히 읽을 수 있으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의 새로운 면모와 변하지 않는 정신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그의 말과 글이 당대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바로 세우는 버팀목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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