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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다이도지 지하루의 서문
번역자 서문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다이도지 마사시 자선집

연보

다이도지 마사시, 『최종 옥중 통신』에 부쳐_ 오타 마사쿠니

저자 소개 3

다이도지 마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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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道寺?司

1948년 홋카이도 구시로釧路 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로 건너갔다가 이후 도쿄로 거주를 옮겼다. 1969년 호세이 대학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 전공투 운동에 참가했다. 1971년 A급 전범을 기리는 ‘순국 칠사의 비殉國七士の碑’를 폭파하는 등 일본인 침략자를 위령하는 납골당, 아이누 유산을 수탈한 연구 시설, 동상들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1974년 8월 14일 천황이 탄 특별 열차를 폭파할 준비를 하나 직전에 중지, 다음날인 8월 15일 재일조선인 문세광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체포된 일에 충격을 받았다. 보름 뒤인 8월 30일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
1948년 홋카이도 구시로釧路 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로 건너갔다가 이후 도쿄로 거주를 옮겼다. 1969년 호세이 대학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 전공투 운동에 참가했다. 1971년 A급 전범을 기리는 ‘순국 칠사의 비殉國七士の碑’를 폭파하는 등 일본인 침략자를 위령하는 납골당, 아이누 유산을 수탈한 연구 시설, 동상들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1974년 8월 14일 천황이 탄 특별 열차를 폭파할 준비를 하나 직전에 중지, 다음날인 8월 15일 재일조선인 문세광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체포된 일에 충격을 받았다. 보름 뒤인 8월 30일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三菱重工業 본사 앞에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폭파하였고(사망자 8명, 부상자 165명), 자신들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늑대’ 부대임을 밝히고 그 후로도 ‘침략 기업’을 잇따라 폭파하는 일에 관여했다. 1975년 5월 19일 체포되 어 도쿄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1979년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후 1987년 고등재판소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2010년부터 다발성골수종으로 투병하다 2017년 5월 24일 도쿄 구치소 병동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출간된 책으로 옥중서한집 『새벽녘의 별을 올려다보며』 『사형 확정 중』, 하이쿠집 『친구에게』 『까마귀 의 눈』 『한 기의 관』, 『지새는 달』이 있다. 사형이 확정되고 나서 10년이 지난 1997년 9월부터 다발성골수종으로 숨을 거둔 2017년 5월까지 20년간 써 온 매일의 기록들과 말년의 심정이 응결된 하이쿠들이 포함된 이 책은 그가 죽은 다음 해인 2018년 간행되었다.
일본 식민지 시기의 프롤레타리아문학 공부를 시작으로 일본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도시샤 대학 대학원 글로벌스터디즈 연구과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현재도 교토에 거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공무원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잦은 이사를 경험한 탓에 ‘뿌리’와 ‘정착’, ‘소속’, ‘집단’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학문을 하면서 관심 분야와 연구 테마는 탄광과 여성의 노동, 섹슈얼리티이다. 최근의 논문으로 모리사키 가즈에의 책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목 소리?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한 한 일본인의 수기』(글항아리)에 대한 비평 「모리사키 가즈에가 부르는 ‘조선’의 목소리」(2021)
일본 식민지 시기의 프롤레타리아문학 공부를 시작으로 일본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도시샤 대학 대학원 글로벌스터디즈 연구과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현재도 교토에 거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공무원인 아버지의 전근으로 잦은 이사를 경험한 탓에 ‘뿌리’와 ‘정착’, ‘소속’, ‘집단’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학문을 하면서 관심 분야와 연구 테마는 탄광과 여성의 노동, 섹슈얼리티이다. 최근의 논문으로 모리사키 가즈에의 책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목 소리?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한 한 일본인의 수기』(글항아리)에 대한 비평 「모리사키 가즈에가 부르는 ‘조선’의 목소리」(2021), 「森崎和江の朝鮮經驗と父·森崎庫次―‘朝 鮮’という回路」(2021), 「1950年代における炭?記錄としての映?〈にあんちゃん〉の日韓比較」(201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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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정신분석 수용사 연구자로, 성균관대학교에서 비교문화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만 타이베이 소재 중국 문화대학 한국어문학과 조교수로 근무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한국의 초기 정신분석학 수용에서 일본의 영향: 김성희와 고사와 헤이사쿠의 이론적 유사점을 바탕으로」와 「한국의 프로이트 이론 수용 양상 연구」가 있으며, 역서로 『라캉, 환자와의 대화』,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 『캐릭터의 정신분석』(에디투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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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29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36쪽 | 772g | 152*225*28mm
ISBN13
9791191535068

책 속으로

평상시에는 사형을 집행할 때의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거부했지만, 요즘은 건강 상태를 자가 진단하기 위해서라도 응하고 있습니다. 봄에 측정했을 때보다 1킬로그램 정도 빠졌기에 여름을 타서 그럴까 하고 생각하며, 오늘도 한 구句를 남깁니다. 여윈 육신을 / 저울질하여 보는 / 나 귀뚜라미 [1997. 9. 11.]

최근 몇 년간 연말에는 반드시 사형 집행이 있어서 무거운 기분으로 신년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에 98년은 밝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크고 작은 도산이 잇따르는 불경기 속에서, 또 많은 동료들이 중년에 접어들고 있는 중에 구치소 바깥도 고생이 많겠지만 모두들 건강하게 신년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98년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1997. 12. 25.]

오늘 오후 세무사인 G 씨와 면회를 가졌습니다. 첫 대면인 저는 굳은 기색(?)이었지만 그녀는 형무소 안에서 면회를 한다거나 더욱이 사형수와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로 씩씩하고 시원시원했습니다. … “세대주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는 무심코 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과연 누구일까요. 그녀는 질문하면서도 우스운 듯했습니다. 어쨌든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비일상적인 자극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1999. 2. 4.]

영화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과의 교류가 시작된 참인데,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사형수인 저에게 흥미가 있는 걸까요? 아니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투쟁을 알고 싶다는 걸까요? 혹은 둘 다일까요? … 사형이 확정된 이래 거의 12년간은 젊은이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어서 ‘왜 그런 젊은이들이 나를?’이란 생각을 하게 됩 니다. 사진을 보니 정말 모두가 젊어요(당연하겠지만). 그런 그들이 제 생일을 축하하는 케이크를 사서 들고 와 주었다는 점도 기쁜 일입니다. 저를 “조사”함으로써 그들이 하는 공부에 성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1999. 6. 28.]

사쿠마 게이코 씨가 「주간 금요일」에 쓴 「내가 살았던 조선」을 읽었습니다. 작품 속의 ‘나’, 이케다 마사에는 일제 지배하의 조선에서 양심적인 교사였지만 식민지에 대해서는 양심적인 인간이 되려는 가해자일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집니다. 조선과 중국 동북부, 그리고 대만 등 일찍이 일제 식민지에서 살았던 일본인이 이케다처럼 자신의 역사를 솔직하게 말한다면 자유주의 사관 같은 엉터리를 용인하는 일은 없어지겠지만요. 이케다는 자신이 가해자였던 점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감동적입니다. [1999. 12. 24.]

1975년 5월 19일에 체포되었으니까 오늘로 옥중 생활 26년째에 접어듭니다. 사회에 있었던 시간만큼을 이 독방에서 지낸 셈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긴 시 간 동안 많은 친구들이 버팀목이 되어 준 것입니다. …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은 25년이 지나도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정신 단단히 차리고 살아가겠습니다. [2000. 5. 19.]

비밀로 남길 작정이었지만(!) 6월 5일에 쉰두 살이 되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시력도 떨어지는 등 육체적으로는 늙어 버렸지만, 마음은 전혀 성장하지 않아서 지금도 유치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바람에 사회의 고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고 하실지도 모르지만요. 모든 이가 세상 물정에 너무 밝은 나머지 현실주의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통하는 세상에 살아 있는 한, ‘극소수·반대파’의 입장을 견지해 나가고자 합니다. [2000. 6. 11]

하루하루 사형 집행에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미 달관하여 집행을 용인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이 사형수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결하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2000. 8. 27]

지난밤 간수들이 자꾸만 들여다보러 오는 데다가 천장에 달린 TV 카메라가 제 동작에 맞춰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바람에 안 좋은 예감이 들긴 했지만, 후쿠오카와 나고야에서 세 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네요. 올해는 열심히 저지해 왔는데, 안타깝습니다. 오늘 국회가 폐회하고 바로 새 내각이 발족하기까지의 시간이 위험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법무성은 저지 행동이 일어나기 전에 형을 집행해 버린 것이지 요. 다음 세기까지도 사형 제도가 계속된다는 이야기겠지만, 끈질기게 투쟁해 나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2000. 12. 1.]

『죽음은 불꽃과도 같이』(양석일 지음)를 읽었습니다. 문세광 씨가 박정희를 저격한 사건을 소설로 쓴 것인데,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아시아민족해방전선이라는 이름으로 긴밀한 연관을 갖고 그려져 있습니다. 세부 내용이 허구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인공인 송의철이 재일 조선인들의 운동에 불만을 품고 “내 손으로 역사를 바꾸어 주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에는 공감이 갑니다. 한미일의 어둠을 관통하는, 공안의 끝을 모르는 권력의 실태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2001. 2. 16.]

미쓰비시중공업 폭파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께 진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아뢰며 동시에 사죄드립니다. 느닷없이 생명을 잃고 만 분들의 원통함과 애통함, 분노를 생각하고, 또 지금까지 27년간 유가족이 겪은 무게를 생각하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자기비판을 심화할 뿐입니다. [2001. 8. 30]

폐쇄적인 새 수용동에 이감되어 이제는 벚꽃을 볼 일도 없겠구나 하며 체념하고 있었는데, 북측의 방에서 추위에 견뎌 온 덕택인지(!) 아득하기만 한 “바깥세상”의, 비록 한 그루 전체는 아니었어도 꽃을 볼 수 있습니다. … 이런 요행도 있구나 싶어 생각을 곱씹어 보고 있습니다. 모처럼 피었으니 서둘러 지지 말라고 생각하면서요. [2004. 3. 29.]

저녁 점검 종료 직후,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마사쿠니 씨의 전보를 전달받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거듭 읽어 보고서야 겨우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망연자실한 채, 두서없이 사죄하고 후회하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2004. 5. 12.]

8월 30일에 마리코 씨와 샤코, 도모노 씨가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건물 폭파 때 돌아가신 분들을 참배했던 사진의 복사본을 받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7월에 도히라노 씨, 마사쿠니 씨가 함께 참배해 주신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사진에 찍힌 묘에 합장했는데요, 묘비에 “쇼와 49년(1974년) 8월 30일 미쓰비시중공업 빌딩 폭파 사건에 조우하여 몰함”이라고 새겨진 글씨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입니다. [2004. 9. 15]

오후 늦게, 아니 저녁 가까운 시간에 마유미 씨가 면회를 왔다는 호출이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비가 내린 데다가 한겨울처럼 추웠는데 대체 무슨 일인가 생각하면서 나오니, 오늘 도쿄 구치소에서 두 명, 오사카 구치소에서 두 명이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 마유미 씨가 모처럼 장대비를 뚫고 왔는데 저는 말문을 잃어 거의 말도 못한 채 면회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2008. 4. 10]

제가 있는 곳은 약 4분의 1, 그러니까 열두세 명이 사형수이며 마찬가지로 4분의 1이 1심 혹은 2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층 사람들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처형되면 이 층 전체가 의기소침해집니다. 오늘은 비도 그쳐서 어제에 비하면 꽤나 따뜻한데도 밖으로 나가서 운동하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올해 움튼 새싹도 / 알지 못한 채 / 가 버리다니 [2008. 4. 11.]

면회실에서 마유미 씨와 유아사 씨로부터 “해피 버스데이 투 유”라는 합창을 듣고 감동의 눈물에 목이 메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가까스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60세가 되었습니다. 체포되었을 때는 스물여섯 살이었으니 옥중에서 환갑을 맞이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2008. 6. 5.]

미쓰비시 중공업 폭파로부터 37년이 지났습니다. 피해자, 그리고 관계자분들 께 마음 깊이 사죄합니다. 옥중에서의 나날, 특히 항암제 치료 중인 병상에서의 나날은 피해자분들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깊이 자기 자신을 비판합니다. [2010. 8. 30.]

36도, 맥박 92. 몸 상태는 병동으로 옮기기 전으로 돌아와 버린 듯하고, 상반신의 뼈라는 뼈는 모두 아픕니다. 진통제가 들었으면 좋겠지만 거의 일시적일 뿐입니다. 짧은 시마저 / 읊지 못함 비웃는 / 겨울 날파리 [2016. 12. 2.]

36도, 맥박 84.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한 후 누웠습니다. 가슴뼈와 다른 뼈들이 아프기도 한데, 8일부터 시작한 항암제의 부작용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불이 무거워서 참기 힘듭니다. [2016. 12. 12.]

다이도지가 읊은 하이쿠의 특징은 미쓰비시 ‘가해’의 기억을 반복해서 노래해 왔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죽은 이와 해일로 죽은 이를 생각할 때 그의 눈 속에는 미쓰비시에서 죽은 사람이 떠오른다. …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반성을 이 정도까지 심화시킨 다이도지 마사시의 죽음을 마음속으로부터 애도한다. 그는 원통하게도 옥사했지만, 만약 그가 오래 살아 사회에 ‘복귀’해서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았겠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정반대의 세계에 살고 있다. 전쟁과 평화, 휴머니즘과 테러, 게릴라와 테러리스트, 범죄와 형벌, 사형과 사면, 격차와 빈곤?우리의 눈앞에는 깊게 생각하고 맞서야 할 수많은 과제가 있다. 사회의 대세가 어떻든, ‘괴로움’이 있는 장소에서 이들 과제에 맞섰던 다이도지 마사시는 우리들이 미래의 열린사회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 서 있던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라 믿는다.

---pp.435~436

출판사 리뷰

1. 사건

‘사건’이 있었다―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과 전범/침략 기업 연속 폭파


1974년 8월 30일, 자신들을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늑대’ 부대라 칭한 이들이 도쿄 마루노우치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폭파시켰다. 이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하고 165명이 다쳤지만,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책임이 있고 지금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경제 침략/수탈을 자행하는 기업으로 지목한 미쓰이물산, 가지마건설 등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기도 했다. 결국 1975년 5월 동아시아반일 무장전선 ‘늑대’ 부대의 다이도지 마사시를 비롯한 부대원들은 체포되었고 주모자인 다이도지 마사시 등은 사형 판결을 받는다. 이는 일본의 격동기 반체제 저항운동사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일본 언론들은 기꺼이 이들을 ‘국민의 적’으로 몰아세웠다. 사건의 비극적 파장으로 인해 이후 일본 사회에서 누구도 공공연히 거론하기를 꺼리는 사건으로 기피하게 되었다.

왜 미쓰비시인가, 왜 ‘말’이 아니라 폭탄인가

다이도지 마사시에 의하면, “미쓰비시는 전쟁 중에 조선 인민을 강제 연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혹사시키고 학살했으며 … 지금도 한국에 경제 침략을 하고 있는 일본의 핵심 기업”이기 때문이다(2018년 한국의 대법원은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에 강제 징용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들이 일깨우고자 했던 것은 비단 약탈 기업만이 아니라 일반 일본 시민까지 포함된다. 이들은 일본 사회가 덮어 버린 과거의 지층을 드러내는 데서 나아가 일본의 기업과 시민들의 풍요가 과거의 식민지 착취와 연루되어 있는 식민자의 후예이자 제국주의 본국인임을 망각하며 유지되고 있음을 고발하고자 했다. 일본인으로서 자국인 일본과 일본인을 향한 이러한 치열한 윤리적 질문은 그렇다면 왜 ‘말’의 공표나 설득이 아닌 폭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이른바 일본의 전공투 경험과 양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간단히 치부할 수 있을까.

일본의 비판적·실천적 지식인 오타 마사쿠니에 따르면, 다이도지 마사시 등의 역사·정치 인식은 그때까지의 일본 좌파의 주류적 인식과도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전후의 반전·평화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진보적, 좌익적 지식인들의 일국 평화주의의 한계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다이도지 마사시의 경우,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일본인’인 이상 선주민인 아이누족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식민지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부친은 전쟁 전 만주철도 조사부에서 일했고, 미일 전쟁 개전 후에는 미얀마에 파견되어 자원 조사를 담당했다. 자신이 태어나기 3년 전까지 부친의 행적에서 보이는 아시아 침략 문제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그 후 그의 궤적을 결정한 ‘원점’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좌파까지도 포함하는 이 두텁고 견고한 침묵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데 말(언어)는 무력하며 자신과 타자들의 존재까지를 건 투쟁이 긴요하다고 판단했다.

‘투쟁하는 자신의 절대화’와 ‘싸우지 않는 타자의 전면 부정’이 낳은 결과

그러나 행동의 결과는 참혹했다. 그들은 미쓰비시에서 일하는 사원을 포함하여 사람을 죽일 의도는 원래부터 없었기에 예고 전화를 걸어 사원을 피난시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결과는 사망자 8명, 중경상자 165명에 달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폭탄의 위력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것, 통유리가 부착된 현대식 빌딩들에서 떨어진 유리 파편이 통행자의 머리 위에 쏟아져 내렸던 것, 예고 전화의 효과가 없었다는 것?참사가 벌어진 이유는 여러 겹으로 쌓여 있었다. ‘늑대’들은 당황하여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일단 개시한 전쟁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비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3주 후 그들은 성명을 발표했는데, 폭탄에 의해 폭사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은 무고한 사람들이 아니라 착취에 기생하는 식민자들이라고 규정하는 데까지 나아가 버렸다. ‘투쟁하는 자신의 절대화’의 뒷면에 있는, ‘싸우지 않는 타자의 전면 부정’의 논리. 폭파 행위의 결과는 물론이고, 이러한 내용이 담긴 협박 같은 성명을 발표해 버린 것이 후에 그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2. 사람

죽어간 자들의 잔상, 하이쿠


1975년 5월 19일, 미쓰비시중공업을 포함한 연속 기업 폭파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다이도지 마사시가 체포된 것은 그가 26세가 되던 해였다. 재판의 결과 사형이 확정된 것은 1987년이고, 그리고 마침내 2017년 5월 24일, 도쿄 고스게小管의 도쿄 구치소 병동에 있는 집중 치료실에서 다발성골수증으로 사망했으니 향년 68세. 따라서 생애에서 42년을 옥중에서 보낸 셈이다. 게다가 거의 해마다 사형이 집행되는 일본의 현실에서 언제 사형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형수에게는 누구보다도 엄격한 제한이 따르지만 사람과의 면회와 편지라는, 인간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정신적인 소통의 기쁨도 있다. 폐쇄적인 감옥의 건물 구조로 인해 사람과 자연스럽게 접하는 조건은 막혀 있지만, 차입되는 꽃가지와 함께 가끔씩 계절의 초목, 새의 노랫소리, 바람의 향기, 방 안으로 숨어들어 온 벌레나 나비 등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끝없는 전쟁과 계속되는 자연재해를 신문으로 읽고 마음이 떨린다. 다이도지 마사시가 자신의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하이쿠俳句(5, 7, 5의 3구 17자로 된 일본 특유의 단시)였다. 감옥 속의 그에게 계절과 자연에 대한 서정을 담는 하이쿠 안에서 쉽사리 언어화되지 않는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응축시키며 시간을 견뎌내려 했다. 그가 남긴 적지 않은 하이쿠들을 미루어 감옥 안에서도 그를 통해 노래하는 대상에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오타 마사쿠니에 따르면, 다이도지 마사시가 읊은 하이쿠의 특징은 미쓰비시 ‘가해’의 기억을 반복해서 노래해 왔다는 점에 있다. 자신의 사촌이기도 한 오타 마사쿠니에게 생명이 다하기 반년 전 면회장에서 다이도지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사람을 죽인 인간과 죽이지 않은 인간이란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사형수로서의 그를 긴 시간 견디게 한 것은 죽은 자들의 잔영과 행위의 결과에 대한 결코 덜어지지 않는 책임의식이었을 것이다.전쟁에서 죽은 이와 지진과 해일로 죽은 이를 생각할 때 그의 눈 속에는 미쓰비시에서 죽은 사람이 떠오른다. “눈을 감으면 / 죽은 자들의 음화 / 가을 해 질 녘”

세계와 홀로 마주서다―‘뉘우침’과 ‘사죄’는 자기부정인가

“옥중에서 끝없이 뉘우침과 사죄를 이어간 다이도지 마사시의 사념思念은 그만이 개척할 수 있었던 윤리의 새로운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피와 뼈』 등의 소설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재일교포 작가 양석일이 다이도지 마사시의 『최종 옥중 통신』에 대해 쓴 말이다. 결과로부터 달아나지 않고 결과를 직시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일. 그것이 사형수인 그가 감옥에서 42년간 수행한 일이며, 죽음을 기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의 윤리로 사형 폐지 운동을 이어간 이유였다.

『최종 옥중 통신』은 생의 마지막까지 이어간 다이도지 마사시의 자기비판의 기록이자 거듭 갱신되는 사유로 세계를 읽어내기를 멈추지 않았던 동시대 비평의 기록이기도 하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행동과 결과를 일본 현대 정치사에 박힌 유리조각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가슴에서 뽑아낼 수 없는 파편을 통해 일본 사회를 비추어 보려 했다. 그럼으로써 일본 사회의 내면을 읽는 소중한 자료를 남겨놓은 것이다. 오타 마사쿠니의 말처럼, 전쟁과 평화, 휴머니즘과 테러, 게릴라와 테러리스트, 범죄와 형벌, 사형과 사면, 격차와 빈곤-우리의 눈앞에 놓인 깊게 생각하고 맞서야 할 수많은 과제 앞에서 사회의 대세가 어떻든, ‘괴로움’이 있는 장소에서 이들 과제에 맞섰던 다이도지 마사시는 우리들이 미래의 열린사회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 서 있던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라 믿어도 될 것이다.

『최종 옥중 통신』과 연루된 사람들, 새로운 관계들

이 책 『최종 옥중 통신』은 1987년 최고재판소에서 사형이 확정된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1997년에서 2017년 5월 도쿄 구치소의 병동에서 투병 끝에 죽기 직전까지 옥중에서 쓴 편지와 말년의 심정이 응결된 하이쿠들이 담긴 최후의 기록이다. 이 책이 그의 사후 2018년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그와 연루되고자 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다. 어쩌면 이는 그의 마지막 옥중 편지들을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 작업도 마찬가지여서, 옮긴이인 강문희는 특히 이 점을 놓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다이도지 마사시와 그의 동료들의 운동은 1975년 5월 19일 일시 검거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일에 대한 반성과 통찰, 고뇌, 갈등, 격렬한 내부 비판을 거쳐 옥중에서도 운동을 전개했다. 원고인 분리 재판을 거부하며 공동 재판을 주장했고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일본의 사법 폭력을 경험한다.

긴 인내의 시간을 버텨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감옥 바깥의 지원과 격려, 그리고 운동을 함께해 주는 수많은 동료, 가족들의 덕택이었다. 바로 이 점이, 다이도지 마사시 개인뿐 아니 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사형 폐지 운동뿐 아니라 옥중 처우 개선을 위한 옥중 투쟁은 그들의 운동이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곳에서 전개되어 왔으며, 언제나 사법/국가 폭력에 약자인 이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뜻한다. 새로운 연루를 구축하는 일, 철학자 고병권은 이것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두 번째 투쟁이라고 말한다. 『최종 옥중 통신』은 다이도지 마사시라는 개인뿐 아니라 그와 함께 운동과 교류를 이어 온 이들의 모습도 담겨 있음을 글을 읽어가는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판 서두에는 다이도지 지하루라는 여성 실천가의 서문이 실려 있다. 그는 바로 사형수인 다이도지 마사시와 연루되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양자 관계를 맺고 사형수인 마사시의 여동생이 된 사람이다. 그는 한국어판이 무사히 나오기까지 한국 독자를 위해 번역자들의 요청에 기꺼이 번거로움을 감수한 사람으로서, 이 보도자료의 말미에 그의 말을 남기고자 한다.

“다이도지 마사시는 『최종 옥중 통신』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일을 기뻐하고 있을까. 물론 싫어할 리는 없을 것이다. 마사시는 한국의 민주화 투쟁 때 체포되어 장기간 구금되어 있는 분들의 수기를 읽고 격려를 받았다고 말했다. …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옥중 생활 기록을 어떻게 읽어 줄지, 어떤 감상을 지닐지 궁금해할 게 분명하다. 아직 살아 있었더라면, 격변하는 세계에서 투쟁을 지속해 나가는 사람들과 엮여 나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추천평

[2022 내 맘대로 올해의 책]
일본현대사,사형제도, 옥중생활, 투병 등 여러 주제들을 읽는 동안 계속 고민하게 하는 책. 동시에 굉장히 쓸쓸한 책이기도 하다. - 박솔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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