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윌리엄 프랭클린에게 _1771년 트와이퍼드, 세인트애서프 감독관에서 1장 보스턴의 조상과 청소년기 2장 인쇄소 도제 시절 3장 필라델피아에 도착하다 4장 첫 보스턴 방문 5장 필라델피아의 친구들 6장 첫 번째 영국 여행 7장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시작하다 8장 성공적인 사업을 위한 공공 서비스 2부 내 삶에 관한 이야기 _1784년 파시에서 다시 시작하다9장 완벽한 도덕적 삶을 위한 계획 3부 집에서 계속 쓰다 _1788년 8월10장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및 기타 활동 11장 공적인 일에 관심이 생기다 12장 주 방위군을 조직하다 13장 필라델피아 대학교를 설립하다 14장 필라델피아에서의 정치 이야기 15장 올버니 연합 계획 16장 독점 경영자들과의 분쟁 17장 브래독 탐험대 18장 프랭클린의 국경 방어 19장 과학 실험 20장 펜실베이니아주를 위해 일하다 해제 | 강주헌 벤저민 프랭클린 연보
|
Benjamin Franklin
벤자민 프랭클린의 다른 상품
강주헌의 다른 상품
|
미국 건국의 아버지 프랭클린이 직접 밝히는, 확실한 성공과 지혜의 원형프랭클린은 자수성가한 사람의 표본이기도 하지만, 초기 미국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미국적인 남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부유하지 않았고 대단한 권력을 쥐지도 않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면서 근면과 절약과 인내라는 덕목을 제대로 실천했을 때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지 몸소 증명했다. 이런 점에서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은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 기회의 땅에서 어떤 결과를 성취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프랭클린이 자서전 쓰기를 중단하고 10년쯤 지났을 때, 필라델피아의 상인 에이블 제임스가 프랭클린에게 자서전을 계속 쓰라고 재촉하는 편지에서도 그의 자서전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아직 뒤를 이어 쓰지 않았다면 더는 늦추지 말길 바랍니다. 삶은 불확실하지요. 설교자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친절하고 인간적이며 자애로운 벤저민 프랭클린이 친구들과 세상에 재미와 교훈을 주는 작업, 즉 소수에게만 아니라 수백만에게 유익한 즐거움을 주는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밑바닥에서 시작했지만 존경받는 자수성가형 인물의 본이 되다1부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아들 윌리엄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쓰였다. 당시 65세이던 프랭클린은 할아버지, 삼촌들, 아버지와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를 전해주는 것으로 자서전을 시작한다.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아버지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라 열 살 때 정규 교육을 끝내고 제임스 형의 도제로 들어가 인쇄 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형제간에는 다툼이 잦아졌고 벤저민은 형의 그늘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형의 입김 때문에 보스턴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자 뉴욕을 거쳐 필라델피아로 이주한다. 2부는 프랭클린이 1780년대 초 파리에서 지낼 때 받은 두 통의 편지로 시작한다. 둘 다 그에게 자서전 집필을 계속하라고 독려하는 편지다. 그래서 파리 외곽에 있는 파시에서 프랭클린은 1784년 자서전 2부를 쓰기 시작하며 공립 도서관 설립 계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고는 “도덕적으로 완벽해지겠다는, 대담하면서도 몹시 어려운 계획”에 관해 언급하며 13가지 미덕을 나열한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대부분 진실한 성품을 훈련하여 체득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하늘나라에서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해지고 싶다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게 더 낫다. … 이런 이유에서 나는 가난한 사람에게 청렴과 진실성이야말로 성공을 보장해주는 수단이라는 걸 젊은이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해왔다.” 3부는 1788년 8월 프랭클린이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자서전을 다시 시작하려 하지만 독립전쟁 중에 많은 자료가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시작된다. 1부가 끝난 시점으로 돌아가 1732년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을 처음 발행해 성공을 거둔 과정을 회상한다. 이즈음 프랭클린은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를 공부하고 제임스 형과도 화해한다. 1736년에는 의회 서기직을 받아들이며 처음으로 정계에 발을 디딘다. 이듬해에는 우체국 관리자가 되어 신문을 위한 기사를 얻고 구독자 확보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한편 프랑스와의 전쟁을 앞두고 여러 식민지를 대신해 인디언들과의 협상 대표로 선출된다. 이때 프랭클린은 식민지 연방을 제안하지만 그 제안은 채택되지 않는다. 두 연대를 이끌고 영국에서 들어온 브래독 장군이 군대 식량과 군사 장비를 운반할 마차와 말을 구하는 일에서도 사비를 털어 보증까지 서가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앞장선다. 특히 그는 종교가 달라도, 정치적 진영이 달라도, 불편부당한 일처리와 함께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끔 사업을 진행해 나갔기에 심지어 반대편에 선 총독까지도 사석에서는 그의 편을 들었다. 200년간 ‘미국의 정신’을 완벽히 대변해온 인생 고전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후에 이 책을 썼다(어떤 이유에선지 그가 살아 있을 때 출간되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잘못과 부족함, 실수를 소상하게 밝히고 인정함으로써,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근면하고 인내하며 꾸준히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개인적인 성공을 이루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그런 불리한 태생과 인간 조건에도 불구하고 깊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독학과 지적인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인생의 많은 약점을 벌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필라델피아에 먼저 자리를 잡은 인쇄소 두 곳과 경쟁해야 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는 매일 두세 시간씩 자신이 도입하고 만들어간 공공 도서관에 파묻혀 지내며 아버지가 허락해주지 않았던 교육의 기회를 조금씩 만회해나갔다고 고백한다. 요즘 말로 하면, ‘흙수저’ 물고 태어나 평생 가난과 씨름하며 형제들(17명의 형제자매 중에 15번째였다!)에 치여 형들 눈치나 보며 주눅 든 채 살 수밖에 없었던 그였지만, 균형 잡힌 지성과 치우침 없는 인간관계, 내면의 미덕 훈련 등을 통해 날마다 1%씩 성장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마침내 미국 건국 초기에 독립선언문 초안에 참여하고, 미국 독립전쟁 때 프랑스의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이끌어내는 등 외교적인 성과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난 200년간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삶에 자기계발의 공식처럼 인정받아 온 그가 직접 밝힌 인생의 지혜에 귀 기울여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