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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貞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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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한없이 떨어질 때……
그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앨리시어는 재개발을 앞둔 ‘고모리’에 살고 있다(작가는 이 고모리를 소설 속의 그 어떤 것들보다 공들여 만들어낸 것처럼 보인다). ‘무덤’이라는 어원을 가진 이곳은 식용을 목적으로 길러지는 개들을 가둔 개장, 그 개들의 뼈와 내장과 가죽을 먹고 큰 은행나무, 너클크레인과 폐지더미로 둘러싸인 고물상,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공사장과 악취가 풍기는 하수처리장, 폐쇄된 단추공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보다 이곳을 황무지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단단히 한몫을 챙겨 떠나기 위해 남은 마을 사람들 때문이다. 앨리시어와 그의 어린 동생은 어머니에게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수시로 벌어지는 이들 모자의 일상 자체다. 내가 세라고 했지? 세라고 했는데 왜 세지 않냐 몇 대까지 맞았는지 세지도 못하냐 잊어버렸냐 너는 그 정도 머리도 없는 짐승이고 잊어버렸으니까 다시 하면 되겠네? 잊어버린 네가 순전하게 잘못했으므로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되겠다 세라 머리부터 꼬리뼈까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십 씨발 십이 십삼 사 오 육 칠 팔 다음이 뭐냐 응? 다음이 뭐야? 앨리시어의 아버지는 이러한 폭력적인 상황에 한없이 무심할 뿐이며 마을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이들은 한 몸처럼 오로지 재개발 이후 치솟을 땅값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앨리시어 형제는 폭력과 그 폭력보다 더욱 폭력적인 무심을 통과하며 성장한다. 마치 성장의 유일한 조건이 폭력이라도 되는 것처럼(그런데 이 형제가 폭력을 통과해가는 모습을 두고 “성장한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은 걸까? 이들이 자라는 데 가해지는 것이 오로지 폭력뿐이라서 우리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다). 쏟아지는 폭력에 온몸을 맡긴 채 버틸 수밖에 없었던 앨리시어는 길어진 자신의 팔다리와 그 안을 채우는 강한 힘을 느끼면서 어머니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앨리시어는 이제 그녀가 자신보다 크지 않으며 어쩌면 작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깨를 대고 나란히 설 일이 없으므로 확실하게 알아낼 방법은 없지만 그녀가 문간을 지날 때,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려고 서 있을 때, 부엌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을 때, 머리의 높이와 위치를 기억해두고 나중에 그 자리에 서 보는 방법으로 비교하고 관찰해서 그것을 알아내고 깨닫는다. 놀랍다. 그건 아주 놀랍다. 어쩌면 앨리시어가 그녀를 이길 수 있다. 앨리시어는 그녀를 단번에,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길 수는 없는 것일까? 그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앨리시어는 유일한 친구인 고미와 구청의 상담센터를 찾아가보지만 직원으로부터 무책임하고 무력한 조언을 들을 뿐이다. 가로등 한 점 없이 캄캄한 고모리의 밤처럼 출구의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 폭력의 세계에서 앨리시어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직도 떨어지고, 여태 떨어지고 있는 거다. 상당히 어둡고 긴 굴속을 떨어지면서 앨리스 소년이 생각하기를,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상당히 오래 전에 토끼 한 마리를 쫓다가 굴속으로 떨어졌는데…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를 않고 있네… 나는 다만, 떨어지고 있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계속… 더는 토끼도 보이지 않는데 줄곧… 하고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언제고 바닥에 닿겠지, 이제 끝나겠지, 생각하는데도 끝나지 않아서, 이게 안 끝나네, 골똘하게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 … 그래서 어떻게 되냐. 뭐? 앨리스 새끼는 어떻게 되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