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좋아져버린, 이 집 어린 마녀, 등장 우리는 동급생 그 나무의 정체 아이를 지킨다는 것 진짜 꽃구경 두 사람의 마지막 날 여름밤 현실의 조각 기억의 소용돌이 잊어서는 안 되는 그 책, 발견 버찌 열매가 열리는 나무 |
Hiroko Reijou,れいじょう ひろこ,令丈 ヒロ子
레이죠 히로코의 다른 상품
현승희의 다른 상품
|
예상외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밖에 없는 집에서 뒹굴며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으면서 노란 불빛에 희미하게 비추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스르르 풀어져서, 마치 나를 가둔 틀이 천천히 열리고 내 속을 하나하나 꺼내 서늘한 밤공기 속에 펼쳐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면에 쌓여있던 불필요한 열기와 습기가 점점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안정이나 힐링과는 조금 결이 다른, 스스로 정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심각하게 먼지투성이인 방인데, 이 싱그럽고 편안한 느낌은 뭘까. 분명 처음 묵는 장소인데, 집보다 더 집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행복에 파묻혀 잠들었다.
--- p.22 문을 열자 빨간 카디건을 입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귀엽고 동글동글 커다란 눈. 코 위에 계핏가루를 뿌린 듯 잘은 주근깨. 그리고 짙은 밤색의 몽실몽실한 머리카락. 마치 동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귀엽잖아? 상대가 꼬마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귀여움에 온몸에 긴장감이 돌아 말을 더듬고 말았다. (중략) “어어, 그…… 넌 누구니?” 지금 상태에서 이 질문이 최선이었다. 그러자 아이는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 이름을 안 말했네요. 저는 이에하라 리리나라고 해요. 할머니가 여기서 지내라고 해서 이사 왔어요.” “할머니라고?” --- pp.30~32 ‘뭐지, 이 느낌.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드는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나. 하지만 리리나가 똑같은 말을 하진 않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리리나에게 물었다. “그렇구나. 나랑 같이 있는 건 편해?” “응.” “긴장된다거나 막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구나?” “응.” “리리나가 리리나 그 자체로 있을 수 있다면 뭐, 다행이고.” “그 자체로 있다는 건 뭐, 그런 건가? 사츠타가 리리나를 바꾸려 들지 않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고, 생각대로 안 된다고 화내지도 않고, 리리나다운 얘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 pp.66~67 지금까지의 나는 ‘상실’을 두려워했다. 누군가와 깊이 연을 맺고, 그 누군가의 행복을 항상 비는 관계가 되는 게 두려웠다. 귀찮고, 이것저것 신경을 써야만 하고,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느낌. 그런 감정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겠지. 하지만 죽도록 노력해서 이런저런 일을 극복해 누군가와 맺어진다 해도, 영원하지 않다. 반드시 무슨 일인가가 벌어져 그 관계는 소멸한다. 서로가 싫어져 좋았던 관계가 사라지기만 해도 무척이나 괴로울 터인데, 행복의 절정에서 그 누군가를 통째로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상실. 진정한 의미의 상실. 상대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만들어진 내 모습도 뿌리째 잃게 된다. 상대의 존재와 함께 내 모습도 함께 사라져버린다. 리리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어둠의 틈새로 추락해 떨어지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p.88 발끝의 바위가 우르르 무너지며 내 몸은 다시 비탈길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몸이 뒤쪽으로 쏠리며 머리부터 떨어졌다. 리리나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리리나!” 나는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거꾸로 떨어지는 내내, 계속. 떨어지는 내 몸 위로 차디찬 빗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 p.122 우리 꽃구경도 같이 갔잖아. 꽃구경? 꽃구경은 리리나랑 갔는데. 아니야, 잠깐만. 꽃구경은 나아리랑 갔어. 우리는 언덕 위 공원을 향해 걸었다. 기억 속 나와 나아리는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언덕길을 걸었다. 아니야, 잠깐만. 리리나는 언덕길을 뛰어 올라갔어. 감기 기운이 있는 나는 못 따라갔고. 아니야, 분명 나아리랑 손을 잡고 언덕을 올랐는데. 아니야, 잠깐만. 아니야, 잠깐만. 기억이 폭포처럼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와 요란하게 소용돌이쳤다. 혼란에 빠진 나를 소용돌이가 삼켜버렸다. --- p.173 나는 책을 끌어안고 역으로 뛰어들어 전차에 올라탔다. 빈자리에 앉기 무섭게 표지를 펼쳤다. 제목이 있는 페이지도, 목차도 휙휙 넘긴 채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낡은 그 저택에는 벚나무가 있었습니다. 꽃이 전혀 피지 않는, 이상한 나무였어요. 첫 두 줄이 눈에 들어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꽉 옥죄는 듯했다. --- p.208 |
|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현실적인 공간 버찌관.
그곳에서 펼쳐지는 눈부시게 아련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마침내 벚꽃처럼 피어나는 벅찬 감동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 같아!” 대학도 휴학하고 소설 집필에만 시간을 쓰고 있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먼 친척인 이에하라 할머니의 버찌관이 비어 있으니 당분간 집 관리를 하면서 머무르라고. 황당하고도 갑작스러운 제안이지만 막상 가보니 고즈넉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먼지투성이에 낡은 집인데, 왠지 모르게 싱그럽고 편한 느낌. 내면에 마음속 불필요한 열기와 습기가 사라지는 이 기분 뭐지? “저 이사왔어요. 여기 원래 제 집이에요.” 복슬복슬한 머리에 빨간색 가디건을 입은 소녀 리리나가 갑자기 나만의 공간으로 이사왔다. 열 살짜리 꼬마아이는 다 이런 걸까? 순전히 제멋대로에다가 바라는 것만 많다.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존재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은 느낌의 이 아이.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이 열리던 차에 리리나가 갑작스레 아파지면서 크게 마음이 쓰인다. 아픈 아이에게 뭘 해 먹여야 하지? 따듯한 양말을 사줄까? 리리나도 크면 이런 교복 입고 친구들과 다니겠지? 어라, 이 마음은 뭐지. 리리나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해진다. “리리나가 나 없이 지낼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리리나 없이 지낼 수 없는 걸까.” 이제나저제나 집에 가서 편하게 지낼 날만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버찌관을 떠나야 될 줄은 몰랐다. 아직 버찌관에 손볼 곳이 많다고 해볼까. 리리나와 아직 못 해본 게 많은데. 복합적인 감정이 몰아친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 벚꽃 구경을 떠나기로 했다. 리리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사무치게 그리운, 그리고 이 애절한 느낌은 뭘까. 이 낯설지 않은 기분은 뭐지. 갑자기 눈앞에 까매지고 아득해진다.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드는 리리나와의 대화와 관계, 그리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버찌관. 과연 두 사람의 인연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지금까지 나는 상실을 두려워했다. 그런 내게 소중한 존재가 생겨버렸다.” 내 자신마저 소실되어 버린 묵직한 상실 앞에, 끝내 묻히지 않고 살아남은 마음에 대하여 국내와 일본에서 극찬받은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애니메이션의 원작자 레이죠 히로코의 첫 번째 장편소설 『손을 잡은 채, 버찌관에서』가 출간되었다. 다양한 작품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 레이죠 히로코 가 이번에는 판타지 동화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살면서 누구나 부딪치게 되는 ‘이별’에 대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이토록 따듯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소설을 탄생시켰다. 고즈넉한 버찌관에서 펼쳐지는 사츠타와 리리나의 벅찬 행복에 대한 이야기에 기시감이 들 무렵, 독자들은 이것이 또 하나의 가슴 저미는 이별 이야기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우리는 항상 이별하며 살아간다. 이별에 젖어 있는 사람은 이 이별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을 읽으며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면, 마침내 그것 또한 사랑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버찌관 앞마당에 멋들어지게 뻗은 벚나무를 상상하며 읽다 보면, 가지마다 소담스레 피어오를, 잠시 머물다 이내 다시 흩날리게 될 하얀 벚꽃의 모습을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겨우내 빈 가지였기에 잠시 만개한 벚꽃은 더 애절하게 아름답지만, 곧 다시 푸르른 잎들이 가득해질 것이다. 마치 이 이야기를 읽고 난 우리의 마음처럼. |
|
여기,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 비로소 이별의 슬픔과 마주한 소년이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도 깨닫는다. 이별이란 어쩌면, 떠난 이를 향한 새로운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을. - 최희서 (배우,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