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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jneesh Chandra Mohan J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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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현대인은 매우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며 신성의 개념을 전혀 모르는 최초의 인간 부류이다. 현대인은 돈, 권력, 명예가 전부라고 여기며 그런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너무나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현대인의 삶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에게는 자기 자신보다 더 거대한 어떤 개념이 없다. 그는 신을 부정했고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 이후의 삶을 부정했고 내면의 삶을 부정했다. 그는 중심을 부정하는 것만 믿는다. 그는 오직 표면적인 것만 믿는다. 그는 주변부만 믿고 중심은 계속 부정한다. 그래서 너무나 지루해 보이는 것이다. 그대가 자신보다 더 거대한 뭔가와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삶은 무디고 지루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삶은 큰 도전이 될 때에만 비로소 흥겨운 춤판이 펼쳐진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곳보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할 이유가 있을 때 비로소 삶은 멋진 모험이 될 수 있다. ‘신성’이란 우리가 끝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통로라는 뜻이며,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난 게 아니라 아직도 일어날 일이 많다는 뜻이다. 씨앗은 아직 싹을 틔우지 않았고 싹은 아직 나무가 되지 않았다. 그 나무는 봄이 오기만을 기다려서 수천 송이 꽃을 피워내야 하고 그 영혼의 향기를 우주에 내뿜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성취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성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탐구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처음에는 어둠 속에서 헤매겠지만, 조만간 모든 일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조만간 저 너머를 일별하기 시작하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 우리의 가슴속에 울려 퍼질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뒤흔들고 우리에게 새로운 색채, 새로운 기쁨, 새로운 삶을 안겨줄 것이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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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당대의 독보적인 신비가인 오쇼가 다양한 사람들과 친밀한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오쇼는 이 책과 더불어 〈저녁에 오쇼(Last in the Evening)〉의 출간을 직접 제안했다. 두 책은 매일 한 가지의 테마를 다루면서, 아침의 이야기와 저녁의 이야기가 서로 보완되도록 짜여졌다. 따라서 〈아침에 오쇼(First in the Morning)〉만 읽어도 되고, 〈저녁에 오쇼(Last in the Evening)〉와 함께 읽어도 좋다.
이 책은 마음이 낮 동안의 행위들에 개입하기 전,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이 책에는 365개의 글이 실려 있고, 순서대로 읽거나 순서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읽어도 좋다. 이 책에서 오쇼는 종종 ‘산야스(sannyas)’, 혹은 ‘산야신(sannyasin)’을 언급한다. 오쇼가 이 용어를 사용할 때, ‘산야스’란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관심사와 자기 삶을 자각하기로 결심을 하거나, 내면과 외면을 탐험하고 축하하기 위해 시간을 내기로 결심한다는 뜻이다. 오쇼는 말한다. “산야스는 외부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돌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태도로 급작스럽게 변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타인의 의견이나 경전 등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에 고요히 앉아서 바라보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부터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답변에 의존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답변을 발견해야 하며, 그것이 유일한 성취가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읽는 것 자체가 명상이다. 오쇼의 말에 의하면, 신비가의 언어는 어떤 이론을 받아들이거나 논박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에게 추종자나 신봉자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사실 그 언어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그 언어가 전달하는 의미가 중요하다. 오쇼는 말한다. “(신비가의) 언어는 그 주변에 침묵을 깔고 있으며, 그의 언어는 결코 요란스럽지 않다. 그의 언어는 아름다운 멜로디이자 리듬이며 음악이고, 그 언어의 핵심은 완전한 ‘침묵’이다. 그 언어를 꿰뚫을 수 있다면, 그대는 무한한 침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각자(覺者)의 언어를 꿰뚫는 방식은 분석이나 논쟁이나 토론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과 동조하고 그와 조화를 이루고 그와 혼연일체가 되는 일이다. 하나로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는 스승의 언어에서 가장 깊은 핵심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거기서 어떠한 소리나 소음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곳에서 완전한 침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경험하는 게 바로 스승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다. 언어의 의미가 아니라 언어의 침묵이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