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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하는 글 4
제 1 부 마지막 금기 10 제 2 부 미지의 여행 132 제 3 부 이정표 204 제 4 부 축제의 시간 312 제 5 부 에필로그 382 |
Rajneesh Chandra Mohan J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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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이 걸어온 역사에서 죽음의 세 가지 표현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표현방식은 자신의 육체에 집착하며 음식이나 섹스의 쾌락만 알았던 평범한 사람의 방식이다. 삶에는 음식과 섹스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며 내면의 궁전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밖에 서서 이게 바로 삶이라고 여겨온 원시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도 매달려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는 죽음을 거부하며 죽음과 싸우려 든다. 그는 죽음이 적처럼 자신을 쳐들어온다고 여긴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죽음은 어둡고 사악한 것으로 묘사된다. 인도에서는 죽음의 사신이 음산하고 암울한 분위기의 악마로 표현된다. 죽음이 너무나 기괴하게 생긴 소를 타고 온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죽음을 표현하는 평범한 방식이다. 이런 사람들은 삶을 놓쳤다. 그들은 삶이 지닌 모든 차원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삶의 깊은 심연에 다가가보거나 드높은 창공을 날아올라본 적이 없다. 그들은 충만한 삶이 안겨주는 축복을 놓쳐버렸다. 두 번째 표현방식이 있다. 시인들과 철학자들은 죽음이 나쁘거나 악한 게 아니라 그저 기나긴 휴식이며 영원한 잠이라고 말해왔다. 이것은 그나마 첫 번째 표현방식보다 낫다. 적어도 이런 사람들은 육체를 뛰어넘는 뭔가를 알고 있었다. 마음에 대해 조금은 알았던 것이다. 그들은 단지 음식과 섹스에 머물며 시종일관 먹는 일과 아이를 낳는 일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과 철학과 문명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고민을 했다. 그들은 죽음이 기나긴 휴식이므로 삶에 지친 사람이 죽음을 통해 영원히 휴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편안한 휴식이다. 그러나 그들도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 삶을 가장 깊은 곳까지 알던 사람들은 죽음이 신성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휴식이자 부활이다. 그리고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이며 새로운 관문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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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개념이 찾아오면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떤 것에도 전혀 집착하지 않으면 죽음이 지금 당장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전적으로 죽음을 따라갈 준비가 될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죽음이 무릎을 꿇고 패배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죽음은 패배하고 만다. 그들은 불멸의 존재, 즉 붓다가 된다.
모든 종교적 구도의 목표가 바로 이러한 ‘자유’이다. 집착으로부터의 자유가 곧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는 바로 삶과 죽음의 굴레로부터의 자유이다. 집착으로부터의 자유가 그대로 하여금 우주의 빛으로 빨려 들어가서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가장 위대한 축복이며 궁극의 황홀경이다. 이제 내면의 고향에 도착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