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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5
1부_쇠스랑게의 집 짓기 네일아트·13 둘레길 가는 길·14 화장하는 이유·16 쇠스랑게의 집 짓기·18 페이지를 넘기며·20 별·22 아직도 식지 않은 장미·23 바람·24 강태공·25 속눈썹 연장술·26 19금·28 인생을 빼앗긴 천사들·30 나태·32 갈바람 그리고 노을·34 2부_시인의 가슴이 되어 민들레·37 시나브로·38 새우는 비상하고 싶다·40 시인의 가슴이 되어·41 죽향·42 나의 우산이 되어 줄래·43 목요일의 반란·44 매운탕·46 비요일의 아침 단상·48 각인된 향기·50 신량등화·51 라이브 카페에서·52 마중·54 3부_봄, 작은 속삭임 우중매화·57 두견화·58 화무십일홍·60 계향충만·62 춘풍화우·64 봄, 작은 속삭임·65 어쩌나 이 모양을·66 오늘·67 천연기념물·68 물의 넘침·70 백목련·72 긴목말불버섯 밭에서·73 운명의 날갯짓·74 선후후락·76 4부_진펄과 갯벌 소확행·79 먹태의 최후·80 4년 거치 5년 완납·81 진펄과 갯벌·82 몰입의 바다에 빠지고 싶다·84 살아만 있으면 피어날 때가 있나니·86 하고 싶은데로 내 맘 당기는데로·88 해녀와 바다·90 다시 하늘로·91 시대를 모르는 사람·92 광어 & 연어 사시미·93 희덕씨의 결혼기념일·94 나 이렇게 살고 싶다·96 겨울비 내리는 날·98 겨울비는 내리고·100 ■작품 해설 | 조현경 시詩 속의 시심에 대하여·101 전문수(창원대학교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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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경 시詩 속의 시심에 대하여
조현경 시를 보면서 과연 한 편의 시가 어느 수준에서 시로 성립되는가를 새삼 질문하게 되었다. 같은 입장에서 과연 시인은 어느 수준에서 시인이라 해야 하는가도 같은 의문이었다. 시를 사랑해서 한 십 년을 안고 살았다면 어쩌면 그 시 속 시인의 시심을 보고 시인임을 환영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라는 세계로 해서 일상의 모든 아픔을 버틸 수가 있었고, 시에게 기대어 위안받으며 사는 가치를 자부해 왔다면 그 귀한 시가 누구에게 꼭 그렇게 그럴싸하게만 보여지는 시라야 하느냐는 그다음 차원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시각은 조현경의 「둘레길 가는 길」을 보면 아마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시적 자각에 이를 것이라 본다. 1. 인생의 둘레길 둘레길은 산 둘레, 도시의 둘레나 수변과 공원의 둘레 등등 누구나 편하게 잠시 일상을 접고 휴식을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여유 공간의 길을 말한다. 실은 인생의 일상도 둘레길들 걷는 집합들이라 하겠는데 이를 잊고 너무 아등바등 살다 보니 이 본질을 되찾으려는 지혜가 창조한 귀한 길이다. 바로 시를 작시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본질을 되돌려 놓는 둘레길 찾기고 걷기의 여유이다. 이런 둘레길에 값하는 조현경의 시심은 이 둘레길 위에서 생명의 중대한 두 가지 불가사의를 발견한다. 다음에 제시한 시에서 1)과 2)를 우선 지적해 본다. 둘레길 가는 길/ 조현경 꽃눈이 내리는 날 가고 싶었던 길을 오늘에야 걸었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고 때를 따라 푸르름은 깊어가는데 몇 년 동안 주춤했던 힐링, 호흡으로 빨아들이고 햇살 한 줌 주머니에 넣고 신나게 출발했지만 걷다가 지친 다리가 한숨을 쉴 때쯤 ……중략 서로 앞다투며 시도 때도 없이 재롱잔치를 펼치는 이들이 다 아들이고 딸이다 1)**외롭다는 느낌 따윈 전혀 모르실 명당을 차지한 *그 영감은 좋으시겠다 (무덤 주인장) 어쩌나 저 모양은 수호지 보호 핑계로 철조망 감옥 신세 오랜 세월 동안 물살에 떠받치고 비바람에 쓸려 살이 찢겨지고 찢겨지고 헐벗은 앙상한 다리에 허리는 휘어질 때로 휘어진 채 온몸으로 버티는 2)**삼백 살 넘긴 *저 노인네 (나이테 삼백 년이 넘은 소나무) 누구 하나 봉양할 수 없으니 쓸쓸한 주검만이 유일한 희망일 뿐 1)은 인간의 무덤에 대한 명당 집을 발견한다. 그 영감 좋으시겠다는 외마디 발성이 시 한 편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점이다. 이게 바로 시심 응어리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는 지금 살아서도 제집 하나 명당 못 갖고 있다는 절규가 들리는 것이다. 그 영감의 직위 따위는 죽음 앞에 가릴 필요가 없다. 오직 죽어서도 좋은 자연 속 둘레길 옆에 명당 집 한 채 가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이런 눈이 시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심이 시의 핵심인 것이다. 이 핵심이 바로 우리의 인생을 관조하게 한다. 그래서 시인이 필요하다. 그다음은 2)의 삼백 년 소나무를 본 시심이다. 두 번째 노인이다. 아직 살아있으니 영감이라고 인간과의 의인성을 차별하였다. 질문거리는 이 시심에 대한 문제이다. 인간과 자연의 대립적인 비유이고, 그리고 삼백 년이라는 나이 문제이다. 인간 수명을 백 년으로 잡아도 소나무는 인간의 3배이다. 인간 욕망의 한계는 물론이고 이 자연의 둘레길이란 본래 본성의 영원함에 대한 외경과 감동이다. 둘레길에는 수없이 많은 나이테의 나무들이 건재할 것이라는 희망과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러면서 보다 중요한 발견은 역시 소나무의 삼백 년 된 몸집이다. 자연은 다 제집을 짓고 거기 들어가 잘살고 있기에 씨 종에 따른 장수를 누린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많은 사람이 세 들어 살다 가니 어찌 편한 장수 수명이 있겠는가 하는 문제 제기가 이 시의 시심 응어리다. 시는 이런 응어리 덩이를 독자에게 던지는 것이라 치면 좀 시의 짜임이나 구성이 엉성해도 시인은 시를 쓸 자격이 있는 것이다. 시의 집 짓기가 어려워도 인생의 집 짓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불경에서 말하는 소위 화광반조의 수준 높은 시심의 시가 되는 셈이다. 결국 이 시는 첫 번째의 위치에 든 인생 집짓기 문제에 대한 시이다라고 결론을 낼 수 있다. 2. 두 번째 인생 집짓기 자연의 사물들을 거울이 보면 식물들은 대개 뿌리의 머리와 줄기의 이음 그리고 가지와 잎으로 4분 법 껍질의 집이 명확히 구분된다. 그러나 동물들은 하나의 껍질 몸집 안에서 머리 몸통, 다리의 3분 법이다. 그러나 어는 한 부분이 전체 몸집을 대변하기 힘든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모든 상대의 대면이 얼굴의 주요 기능들이라 요약할 수 있다. 영과 혼의 지휘소가 머리 얼굴 부문의 감각 기관이다. 따라서 무의식중에 인간은 이 자기 얼굴의 감각 기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예민하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이 얼굴 변장의 화장에 보다 관심이 컸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화장을 변장으로 보는 점이 시심의 응어리 덩이다. 화장은 정상작인 미적 꾸밈이지만 변장은 보다 의도적인 강력한 본심 감추기다. 자연성 그대로의 화장으로는 이미 망가진 골격에 대한 복원이 불가능한 형편에 대한 억지 반항이다. 왜 이 시에서 이런 정상적인 생성소멸의 자연법칙에 저항하는 이유가 무슨 응어리인가이다. 생로병사의 천리를 누가 거스르겠는가. 문제는 나만의 억울함이라는 응어리가 어디서 온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변장의 얼굴 집을 지어서라도 대항해보자는 현실 혐오감이다. 심장 망가진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낯선 얼굴 집짓기를 해야 하는 현실의 슬픈 차별이 지금 이 시대의 주요 화두가 되는 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전혀 화장조차 하지 않는다는 무 화장일 수도 있는 이 시의 중의성이 이 시를 낳았다고 본다. 이런 가짜 집 갖기의 부동산 투기가 얼마나 실제 현실이 되었는가. 진정한 자기 집 짓고 살기가 어려운 이 시대의 아픈 응어리가 이 시의 시심이다. 화장하는 이유/ 조현경 너 왜 울려 하니 또 거울 봤구나 너 더는 거울 보지 말라 했잖아 슬퍼져 아니면 심장 망가지던가 거울만 보면 무너져 그래서 변장술 배우지 입체적인 인물화 한점 그려보자고 잘 세운 콧날을 기준점 세우고 구도 잡아봐 좌우 대칭이 알맞게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 것 같은 갈매기 눈썹에 눈두덩이엔 펄이 섞인 섀도우 펼쳐 바르고 짙고 볼륨 있는 마스카라가 필요하지 입술엔 꽉 깨물고 싶은 사과색으로 하자 겨울을 이겨내는 생명 같은 빨강으로 마지막으로 볼우물 같은 꽃 연지 찍고 누구나 반할 것 같은 향기는 귓불에 뿌려주는 감각은 팁 자 이제 이만하면 됐어 아무도 몰라볼 거야 오늘은 완벽한 변장 끝 낯설게 하기는 여기에도 있어 3. 세 번째 인생 집짓기 손발톱에 장식 아트를 넣어 5천 년 고대 이집트와 중국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이후 이 네일아트는 전 세계에 일반화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도 1980년대 후반부터 아트 업소 생겼다고 한다. 상당히 진전된 새로운 집짓기의 형식이다. 가장 많이 활동하는 손발톱에 제일 많이 접촉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러나 우선은 아마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손을 내놓고 싶을 것이다. 그다음은 아마도 자기 손의 고마움일 거다. 열심히 나를 위해 일한 손은 대접받아야 한다. 스스로 떳떳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열심히 일한 뒤의 손은 이제 진정으로 자기만족에 들고 넓어진 여유와 감사는 겨울 얼음까지도 아트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손에는 사계절이 없다. 다 일을 성실히 해야 하는 계절이니 이제 발가락도 네일아트 다 해야 한다는 시심의 폭이 커진다. 비로소 조현경의 시는 제자리로 안정되게 돌아온다. 인생의 기본 집짓기가 거의 끝나는 것이다. 인생의 성숙이 시적 성숙이 되고 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집짓기는 무엇일까요? 4. 네 번째 인생의 집짓기 제목도 강한 쇠스랑이가 집짓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자신의 모든 아픔을 굳건히 이기고 사랑을 드려와 살고 싶은 사랑의 집 짓기에 든다. 철학자고 종교 교주고 누구에게 인생의 목적이 무어냐고 물으며 다 행복한 삶이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다 알아보아도 구경의 도달점은 이 행복이다. 돈도 명에도 권력도 행복의 목표는 될 수 없다. 오직 사랑만이 영원한 행복 조건이다. 그러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집 짓기는 최고 자기희생의 복락이다. 짧은 인생에서 구경에 이 시라는 세계의 집에서 살다가는 꿈이 실현된다면 무엇이 고되겠는가. 쇠스랑 같은 강한 힘으로 마지막 인생 집짓기를 꿈꾸는 것이다. 아래 시는 특별한 부연 없이도 이 시심의 종점에 다 같이 합류될 것이다. 쇠스랑게의 집 짓기/ 조현경 물 밀어낸 갯벌엔 바쁜 그림자가 있어요 내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옆으로만 그늘 옮기길래 어디까지 가는지 두고 보았어요 해지기 전에 방 두 칸은 만들려나 봐요 모래 땀 흘리며 쌓는 집 멋질 것 같아요 창구멍도 내었어요 제 몸보다 몇 배나 큰 집이네요 편안하게 초승달에서 보름달까지 보려나 봐요 심술쟁이 바람 잔파도로 괴롭혀도 막아 주는 튼튼한 집이네요 집게발이 기지개를 켜니 발 마디 끝에 노을이 묻히고 등갑 털이 수풀로 그득해 보이는 낭만 수컷 같이 살 신부가 부러워지는 마음도 한 칸 챙겨 두네요 나도 붉은 노을 물고 깃들고 싶네요 조현경의 최근 시 4편이 그의 시적 둘레길 위에다 이렇게 아귀가 잘 맞는 집짓기를 하고 있는 것이 실감되었다. 이는 조현경의 시의 과정과 종졸점이 다 함의돼 있다는 점에서 이제 새 출발이 시작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은 다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면 자기만의 집을 지어 사는 것이라는 본질을 알아챈 것이다. 우주 안의 무생물들과 생물들은 다 주어진 환경 조건에 따라 제집 짓기를 한다. 많은 생명체들은 자기만의 삶에 맞는 집을 지어 아예 집을 입고 나오는 것들이 있다는 점의 시사를 읽어내야 한다. 우리들이 흔히 대하는 동식물의 껍질이 바로 개별 집이다. 때로 동굴이나 바위 틈새의 은신처가 있다면 이것들은 위기의 피난처일 뿐 다 제 꺼질 집을 지어서 살아간다. 비바람에 알몸으로도 모든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천후 천연 조절 집지들이다. 조현경의 시는 이런 천리의 이치를 알기에 인간에게 적용할 때 인간 조건의 부조리함에 저항하면서 새 삶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그의 시가 인생이라는 둘레길에 들어서 합의한 자기 내적 진면목에 알맞은 더 좋은 작시에 정진해야 한다. 시의 새집 짓기에 쇠스랑의 강인함으로 정진해 가기를 바란다. - 전문수(창원대학교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몇 번이나 망설였다. 비록 많은 독자들이 찾지 않는다 해도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생에 왔다면 한 권의 시집이라도 남기고 떠나야 하지 않나 하고… 오늘은 감히 용기를 내어 본다. 최선을 다해 한 권의 시집이 만들어질 때까지. 2022년 11월 30일 조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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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경 시를 보면서 과연 한 편의 시가 어느 수준에서 시로 성립되는가를 새삼 질문하게 되었다. 같은 입장에서 과연 시인은 어느 수준에서 시인이라 해야 하는가도 같은 의문이었다. 시를 사랑해서 한 십 년을 안고 살았다면 어쩌면 그 시 속 시인의 시심을 보고 시인임을 환영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라는 세계로 해서 일상의 모든 아픔을 버틸 수가 있었고, 시에게 기대어 위안받으며 사는 가치를 자부해 왔다면 그 귀한 시가 누구에게 꼭 그렇게 그럴싸하게만 보여지는 시라야 하느냐는 그다음 차원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시각은 조현경의 시들을 보면 아마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시적 자각에 이를 것이라 본다. - 전문수 (창원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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